토마스 크리스티안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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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리스티안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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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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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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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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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48대
토마스 크리스티안센의 수상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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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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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Selección de fútbol de Panama
파일:thomas-christiansen.jpg
이름토마스 크리스티안센
Thomas Christiansen Tarín
출생1973년 8월 1일 (51세)
덴마크 하순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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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덴마크 국기.svg

직업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신체180cm
소속선수FC 바르셀로나 (1991~1996)
스포르팅 히혼 (1993 / 임대)
오사수나 (1993~1994 / 임대)
라싱 산탄데르 (1994~1995 / 임대)
레알 오비에도 (1996~1997)
비야레알 CF (1997~1999)
테라사 FC (1999)
파니오니오스 FC (2000)
HB 코이에 (2000)
VfL 보훔 (2001~2003)
하노버 96 (2003~2006)
코치알 자지라 (2013 / 수석 코치)
감독AEK 라르나카 FC (2014~2016)
아포엘 FC (2016~2017)
리즈 유나이티드 (2017~2018)
로얄 위니옹 생질루아즈 (2019~2020)
파나마 대표팀 (2020~)
국가대표2경기 1골(스페인 / 1993)


1. 개요
2. 선수 경력
3. 감독 경력



1. 개요[편집]


스페인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파나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스페인 출신 어머니, 덴마크인 아버지를 둔 혼혈로 어머니의 나라인 스페인 국적을 선택해 선수시절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2. 선수 경력[편집]


덴마크 하순 출생으로 코펜하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덴마크의 여러 유스 클럽을 옮겨다니다가 1991년 6월 요한 크루이프FC 바르셀로나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성인 팀 훈련에도 함께하였으나 출전 기회는 받지 못했고 B팀에 주로 소속되어 있었다. 이 시기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고 U-21 대표팀에도 소집되었다. 독일을 상대로 득점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고, B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은 1993년 1월 성인 대표팀에 그를 발탁하기에 이른다. 물론 B팀이 속한 하부리그에서 득점력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멕시코와의 A매치에서 데뷔해 경기력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994 FIFA 월드컵 미국 지역예선 리투아니아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출전하여 이번엔 골까지 기록했다.

전도유망한 자원으로써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을 1997년까지 연장하였고,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UEFA 슈퍼컵 결승에서 첫 1군 경기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코파 델 레이에는 출전하였으나 리그에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결국 같은 리그의 스포르팅 히혼으로 1993년 2월 임대되어 리그 4골을 득점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러나 임대 기간 입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한 채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왔고, 이어지는 시즌에도 오사수나, 라싱 데 산탄데르로 임대를 떠났으나 부상이 잦아지며 각각 시즌 1골에 그치는 등 실패한다.

1995년 10월, 맨체스터 시티행에 근접하였으나 결국 스페인에 남기를 선택하여 레알 오비에도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에는 5골을 득점하였으나 두 번째 시즌, 31경기 0골을 기록하며 세군다 디비전의 비야레알 CF로 방출되었다. 다행히 2부에서는 분투하며 팀의 승격에 일조했으나 이어지는 승격 시즌, 1부에서 1골에 그치며 팀의 강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만다. 멕시코 클럽과의 이적설이 있었지만 불발되고 1999년 남은 기간을 무소속 상태로 보내는 굴욕도 경험한다. 이후 스페인 하부리그의 테라사 FC에 잠시 머문 다음 그리스 리그의 파니오니오스 FC를 거쳐 2000년 8월, 덴마크로 전격 복귀한다.

덴마크 리그 디펜딩 챔피언 HB 코이에에 입단했고, 당시 리그 2위 팀이었던 브뢴뷔 IF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만 코이에에 몸담은 뒤 바로 2001년 1월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하였다.

보훔에서 뒤늦게 선수 경력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비록 팀이 1부리그에선 약체급이라 첫 시즌 중도 합류 후 강등을 맛봤지만 2부에서 17골을 잡아내고 팀의 분데스리가 재승격을 이끌었다. 이후 2002-03 시즌 보훔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서 리그 21골을 작렬, 바이에른 뮌헨의 주포 지오반니 에우베르와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다.

프레디 보비치의 대체자로 하노버 96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에는 9골로 분투하였으나 두번째 시즌 노쇠화와 함께 정강이뼈 부상 등이 겹쳐 폼을 회복하지 못했고 잔여 시즌 리그 3골에 그친다. 이후 2006년 시즌 종료 후 33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3. 감독 경력[편집]


선수 은퇴 이후 그의 바르셀로나 시절 동료였던 루이스 미야가 감독으로 있던 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자지라 클럽의 코치로 들어가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야 감독이 10월 경질되면서 동반 사임했다.

2014년 4월, AEK 라르나카 FC의 디렉터였던 또다른 바르셀로나 전 동료 하비에르 로카의 추천으로 라르나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이후 2년 연속 리그 준우승을 이루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특히 2015-16시즌에는 유로파 리그 3차예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2016년 5월 21일, 아포엘 FC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비록 챔피언스리그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코펜하겐에 져 탈락했지만, 대신 이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로파 리그 16강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6-17 시즌 프로타트리마 A 카티고리아스에서 우승하며 그의 감독 경력 첫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시즌 리그 팀 무실점 27경기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6월 17일 EFL 챔피언십의 리즈 유나이티드가 그를 영입했다. 오랜 기간 2부리그에 머물렀던 팀의 승격이 목표였고, 키프로스 리그에서의 지도력을 인정받아 그가 선택되었다. 나름의 사단을 모두 데려오는 등 그 또한 의욕적으로 감독직에 임했으나 결국 이 시즌 리그 10위에 그치며 승격 가능성이 멀어진 2018년 2월 경질되었다.

2019년 7월 벨기에 2부리그의 로얄 위니옹 생질루아즈 감독으로 영입된다. 1부리그 승격이 그에게 주어진 미션이었으나 11승 12무 5패로 승격에 실패하며 한 시즌만에 경질되었다.

2020년 7월 23일 파나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의 감독 커리어 첫 국가대표팀 감독직이다. 코스타리카와의 2연전을 데뷔전으로 가졌고 두 경가 모두 1:0으로 승리해 좋은 출발을 알렸다. 특히 2021 CONCACAF 골드컵 조별리그 탈락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최종예선 조기 탈락으로 큰 위기를 맞았지만, 2023 CONCACAF 골드컵에서 미국을 승부차기로 꺾으며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더니, 이후 열린 CONCACAF 네이션스 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파이널에 오르는 등 탄력을 받았다. 파나마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중미 지역 최강자로 오랜기간 군림한 코스타리카의 아성을 넘보고 있을 정도로 파나마의 전력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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