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바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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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란츠 크사버 슈바르츠(Franz Xaver Schwarz)는 나치 독일의 정치인, 슈츠슈타펠 최상급집단지도자이다. 나치당 국가재정지도자를 역임했다.
2. 초기 행적[편집]
귄츠부르크에서 제과점 아들로 태어난 슈바르츠는 8형제 중 7번째 아들이었다. 직업훈련학교를 거쳐 1900년부터 1925년까지 뮌헨 시청에서 일한 그는 이후 귄츠부르크 지구의 재판소에서 공증인으로 일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보병대 소위로 종군했다.
3. 나치당 활동[편집]
전후인 1922년에 나치당에 입당해 1923년의 맥주홀 봉기에도 참가했다. 1925년에 나치당 당원번호 6번이던 슈바르츠는 나치당의 회계일을 맡았었는데 뮌헨 폭동 후 아돌프 히틀러가 출옥한 다음 재건된 나치당에서 선거운동과 당 재정의 경비를 도맡았다. 1933년에 프랑켄 지방에서 나치당 의원으로 선출된 슈바르츠는 패전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1933년에 수상이 된 히틀러로부터 국가재정관리자로 임명되어 나치정부의 재정전권을 담당하게 된 슈바르츠는 7월에 친위대 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부터 친위대 대장의 계급을 수여받았다. 1935년 11월에 60세의 생일을 맞이한 슈바르츠는 히틀러가 직접 파티에 참석하여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슈바르츠는 정치보다는 재정같은 당의 활동에만 힘썼는데 괴벨스는 그를 평가할때 <정치엔 필요없지만 가장 신용할만한 자로 우수한 당원이다>라고 평가했다.
1942년 4월 20일에 친위대 상급대장[2] 으로 승진했다. 1944년 6월 5일에 뮌헨 공습을 대처한 공으로 1급 검 전공십자상을 수여받았다.
4. 패전과 최후[편집]
슈바르츠는 전쟁 말기에 국민돌격대 1개 대대를 지휘하다가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레겐스부르크 구치소에 수감되었지만 연로한 탓에 몸을 상하여 1947년에 사망했다. 1948년 9월 뮌헨 탈나치 법정에서 이미 사망한 슈바르츠를 주요 가해자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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