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다 가쓰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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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97대 법무대신 | |
일본국 제45-49대 중의원 의원 가네다 가쓰토시 金田勝年 | Katsutoshi Kaned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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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9년 10월 4일 (74세) |
아키타현 미나미아키타군 쇼와초 (현 가타카미시) | |
현직 | 제49대 중의원 의원 |
재임기간 | 제97대 법무대신 |
2016년 8월 3일 ~ 2017년 8월 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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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전 법무대신.
2. 생애[편집]
1949년 10월 4일, 아키타현 미나미아키타군 쇼와초(현 가타카미시)에서 태어났다.
1973년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 관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주계국에서 근무했고, 관료생활 도중인 1990년에 방미, 1년간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1995년 대장성에서 퇴직하고, 대장대신으로 모셨던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와 와타나베 미치오 의원등의 추천을 받아 같은 해애 치러진 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아키타현 선거구 자민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었다. 첫 당선 당시 파벌은 다케시타파였으나, 지금은 다케시타파의 후신인 모테기파가 아닌 니카이파 소속이다.
이후 2001년 제19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지만, 2007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당시 아베 신조 내각에 대한 낮은 인기와 민주당의 돌풍에 휩쓸려 낙선, 3선에 실패한다.
참의원 낙선 이후, 2년 뒤 치러진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때 아키타현 제2구에 출마, 0.62% 차이로 무소속 가와구치 히로시 후보에게 패하나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다. 첫 번째 중의원 임기 도중 뇌출혈로 입원하나, 이후 완치되었고 별다른 건강문제 없이 지금도 의원직을 수행중이다.46, 47회 총선에서는 자민당의 압승 속에 손쉽게 재선, 3선에 성공한다.
3선 의원이던 2016년, 제3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이 출범하면서 법무대신에 임명된다. 논란이 많은 테러대책법을 강행처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에 지탄을 많이 받았고, 법무대신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2017년년 10월에 치러진 48회 총선에서는 1%차이로 겨우 지역구 수성에 성공한다. 상대인 희망의 당 미도리카와 타카시 후보는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처음 중의원 의원이 되었다, 2020년에는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역임했다. 2021년 10월에 치러진 49회 총선에서는 세대교체 여론속에 입헌민주당 미도리카와 타카시 후보에게 지역구에서 패하고 석패율제를 통해 당선된다.
고령등을 이유로 2023년 9월, 차기 총선인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는 불출마하고 임기 만료 후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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