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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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프로게이머에 대한 내용은 김장겸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언론인.
1961년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태어나 마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현 식품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11월에 문화방송 공채 기자[3] 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 수습 기간을 거쳐 1988년 보도국 제2사회부를 시초로 스포츠국 스포츠취재부(1990~1992), 보도국 TV편집1부(1992 / 1993~1995), 사회부(1993) 등을 거치다 1995년부터 1년여 간 영국 카디프 대학교 대학원으로 연수간 바 있었다. 1997년 국제부에 배치되었다가 하반기 이후 정치부를 거쳐 1998년 7월 기획취재부로 배치되어[4] '카메라 출동'에서 활약했다가, 1999년 국제부로 돌아온 후 2000년 차장대우로 승진하여 <피자의 아침> '이 시각 세계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고, 동년 11월 문화부를 거쳐 2001년 정치부로 갔다가 2002년 국제부로 돌아오기도 했다.
2003년 차장 승진 후 2004년 런던 특파원으로 전보됐고, 2008년 귀국 후 사회에디터 휘하 사건팀장으로 처음 간부직에 올라 이후 정치국제에디터 휘하 국제팀장으로 전보됐다. 2009년에는 네트워크부장으로 갔다가 사회1부장(2009~2010), 생활과학부장(2010~2011), 정치부장(2011~2013), 보도국장(2013~2015), 보도본부장(2015~2017) 등을 두루 거쳐 2017년 2월 안광한 사장의 임기가 끝나가자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사장 공모에 나서 23일에 상대 후보들인 권재홍 당시 부사장, 문철호 당시 부산MBC 사장을 제치고 임기 3년의 대표이사 사장직에 선출되었고, 28일 정식 취임하여 '품격있는 젊은 방송'을 모토로 편향 보도/선정적 방송의 유혹에서 벗어난 철저한 팩트체크, PD에 대한 자율성 부여와 과감한 투자/지원, 강력한 평가/보상 시스템 확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모바일 플랫폼 사업 모색 등을 내걸었다.(취임사 전문)
임기 초반인 2017년 6월까진 27억 흑자로 경영/재정 면에서 순풍을 다는 듯했으나,[5] 당시 정권교체 등 과도기적 시국상황으로 인해 노사분규를 겪다가 공영방송 총파업으로 인해 퇴진 위기에 몰렸고, 결국 그 해 11월 13일 방문진 임시이사회에서 재임 8개월 만에 해임당했다.[6]
MBC 외적으로 2015년부터 2년 동안 대법원 양형위원을 맡았으며, 2019년에 '자유미디어국민행동'이 발족되면서 고문으로 위촉됐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서려 했으나 3월 6일 컷오프됐다.
2020년 12월 14일부터 1년여 간 펜앤드마이크 유튜브 채널에서 오전 10시마다 <김장겸의 세상읽기>를 진행했고, 2022년에는 '공영언론미래비전100년위원회' 설립에 참여하여 공동대표를 맡고, '공정언론국민연대' 설립에도 참여하여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동년도에 국민의힘 ICT미디어진흥특위 포털소위원장까지 선임되었다.# 2023년 6월 신설된 정책위원회 미디어정책조정특위 자문위원 및 포털TF 공동위원장, 7월 26일 구성된 '가짜뉴스·괴담 방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각각 선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7년 해임 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안광한 전 사장과 함께 기소되었다.
언론노조로부터 다른 전직 사장[7] 들과 함께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 해당 건에 대해서 명단에 이름이 오른 당사자 16명이 언론노조 및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으나 # 기각되었고, 2019년 4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역시 기각되었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언론인.
2. 일생[편집]
1961년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태어나 마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현 식품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11월에 문화방송 공채 기자[3] 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 수습 기간을 거쳐 1988년 보도국 제2사회부를 시초로 스포츠국 스포츠취재부(1990~1992), 보도국 TV편집1부(1992 / 1993~1995), 사회부(1993) 등을 거치다 1995년부터 1년여 간 영국 카디프 대학교 대학원으로 연수간 바 있었다. 1997년 국제부에 배치되었다가 하반기 이후 정치부를 거쳐 1998년 7월 기획취재부로 배치되어[4] '카메라 출동'에서 활약했다가, 1999년 국제부로 돌아온 후 2000년 차장대우로 승진하여 <피자의 아침> '이 시각 세계는'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고, 동년 11월 문화부를 거쳐 2001년 정치부로 갔다가 2002년 국제부로 돌아오기도 했다.
2003년 차장 승진 후 2004년 런던 특파원으로 전보됐고, 2008년 귀국 후 사회에디터 휘하 사건팀장으로 처음 간부직에 올라 이후 정치국제에디터 휘하 국제팀장으로 전보됐다. 2009년에는 네트워크부장으로 갔다가 사회1부장(2009~2010), 생활과학부장(2010~2011), 정치부장(2011~2013), 보도국장(2013~2015), 보도본부장(2015~2017) 등을 두루 거쳐 2017년 2월 안광한 사장의 임기가 끝나가자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사장 공모에 나서 23일에 상대 후보들인 권재홍 당시 부사장, 문철호 당시 부산MBC 사장을 제치고 임기 3년의 대표이사 사장직에 선출되었고, 28일 정식 취임하여 '품격있는 젊은 방송'을 모토로 편향 보도/선정적 방송의 유혹에서 벗어난 철저한 팩트체크, PD에 대한 자율성 부여와 과감한 투자/지원, 강력한 평가/보상 시스템 확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모바일 플랫폼 사업 모색 등을 내걸었다.(취임사 전문)
임기 초반인 2017년 6월까진 27억 흑자로 경영/재정 면에서 순풍을 다는 듯했으나,[5] 당시 정권교체 등 과도기적 시국상황으로 인해 노사분규를 겪다가 공영방송 총파업으로 인해 퇴진 위기에 몰렸고, 결국 그 해 11월 13일 방문진 임시이사회에서 재임 8개월 만에 해임당했다.[6]
MBC 외적으로 2015년부터 2년 동안 대법원 양형위원을 맡았으며, 2019년에 '자유미디어국민행동'이 발족되면서 고문으로 위촉됐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서려 했으나 3월 6일 컷오프됐다.
2020년 12월 14일부터 1년여 간 펜앤드마이크 유튜브 채널에서 오전 10시마다 <김장겸의 세상읽기>를 진행했고, 2022년에는 '공영언론미래비전100년위원회' 설립에 참여하여 공동대표를 맡고, '공정언론국민연대' 설립에도 참여하여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동년도에 국민의힘 ICT미디어진흥특위 포털소위원장까지 선임되었다.# 2023년 6월 신설된 정책위원회 미디어정책조정특위 자문위원 및 포털TF 공동위원장, 7월 26일 구성된 '가짜뉴스·괴담 방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각각 선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7년 해임 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안광한 전 사장과 함께 기소되었다.
김장겸 및 안광한 전 사장은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으나, 3년 동안의 지연 끝에 2023년 10월 12일 대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 유죄가 최종 확정되었다.(연합뉴스, 법률신문, 김장겸 측 입장문)
3. 기타[편집]
언론노조로부터 다른 전직 사장[7] 들과 함께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 해당 건에 대해서 명단에 이름이 오른 당사자 16명이 언론노조 및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으나 # 기각되었고, 2019년 4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역시 기각되었다.#
4. 저서[편집]
- 정권의 품에 안긴 노영방송 MBC: 김장겸 전 MBC 사장의 증언 - 펜앤북스. 2019.
5. 출처[편집]
- 문화방송 연감 1988 ~ 2002
- 한국언론 인물사전: 1883~2009 - 한국언론재단. 2009.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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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식품자원경제학.[2] 집권자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언론의 역할: 제5공화국·서울신문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중심으로(1989)[3] 입사 동기로는 최기화(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정형일(전 보도본부장), 송요훈(전 국제방송교류재단 방송본부장), 조상휘(전 울산MBC 사장), 송형근(현 원주MBC 사장), 권순활(전 펜앤드마이크 부사장), 박태경(전 iMBC 사장) 등이 있다.[4] 1998년 11월 기획취재부 해체로 사회부에 배치.[5] 그러나 하반기 이후 총파업 등의 영향으로 565억원대 적자를 찍은 후, 2019년까지 3년 연속 적자만 찍어서 누적 적자만 2,700억원이 넘었다.[6] 이에 따라 백종문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으나, 그가 하루만에 사임하여 최기화 기획본부장이 12월 차기 사장 선임 전까지 메웠다.[7]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