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코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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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제120대 천황.
이름은 유타노미야 아야히토(恵仁)였다. 고카쿠 덴노의 4남으로 닌코 덴노의 생모는 가주지 다다코(勧修寺 婧子)였지만, 양모는 고카쿠 덴노의 황후인 요시코(欣子) 내친왕[1] 이었으며, 부인은 다카쓰카사 츠나코였다.[2]
2. 생애[편집]
1809년 3월 24일, 요시코 내친왕의 양자로 들어가 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817년 10월 31일, 고카쿠 덴노에 이어서 제120대 천황에 즉위했다.
닌코 덴노는 황족이나 공가[3] 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을 설치하고자 했다. 부케덴소(武家伝奏, 무가전주)였던 토쿠다이지 사네카타[4] 에게 에도 막부와의 절충 역할을 맡겼다. 부케덴소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설치된 조정의 직책으로 무가의 주청을 조정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공가(公家)가 그 직책을 맡았다.
닌코 천황이 계획했던 황실 내 교육기관 설치는, 그가 붕어한 이후 유지를 이어받은 고메이 덴노 때 이루어졌다. 고메이 덴노는 교토 고소(京都 御所, 경도 어소)에 공가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인 교토 가쿠슈인(京都学習院, 경도학습원)을 설치했다. 가쿠슈인은 도쿄로 옮겨져, 1877년 메이지 덴노의 칙명으로 황족과 화족을 위한 관립학교인 가쿠슈인으로 발전했다. 1945년 패전 이후에는 사립학교로 전환되었고, 평민에게도 개방되었다. 물론 말이 평민이지 살인적인 학비 때문에 부유하고 한 자리씩 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1846년, 닌코 덴노는 47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그의 능은 교토시 히가시야마(東山)구에 있는 센뉴지(泉涌寺, 천용사)에 있다. 아들 고메이 덴노가 뒤를 이었다. 한편 닌코 덴노의 딸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은 제1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모치에게 시집갔다.
[1] 内親王. 고모모조노 덴노의 딸이기 때문에 내친왕이었다. 일본 황실에서 천황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부른다. 단 1947년 《황실전범》 개정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이라 하고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는 친왕/왕.[2] 직위는 뇨고女御로 추증황후다.[3] 公家, 구게. 황실에 관련된 귀족이나 관리.[4] 徳大寺実堅. 간인노미야의 초대 당주였던 나오히토(直仁) 친왕의 손자로, 닌코 덴노에게는 5촌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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