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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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한자
닥치고 攻擊 (닥攻)
영어
Shut Up and Attack (Dakgong)

1. 개요
2. 역사
3. 관련 링크
4. 기타 분야에서의 활용


1. 개요
2. 역사
3. 관련 링크
4. 기타 분야에서의 활용




1. 개요[편집]


전북 현대 모터스 특유의 공격 일변도의 전술을 표현하는 단어. 대한민국에서 공격 축구의 표본이며 타 종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공격과 관련해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동시에 전북에서 오랫동안 감독직을 맡은 축구인 최강희를 상징한다.

일명 닥공으로 국제축구연맹에서는 'Shut Up and Attack'으로 번역했다.


2. 역사[편집]


2005년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전북은 FA컵을 우승하고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속적으로 공격 축구를 지향하며 다크호스로 불리우던 전북은 2009년 이동국, 에닝요, 루이스를 영입한 결과 마침내 구단 통산 K리그 첫 번째 우승을 이뤘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이라는 구단의 대명사가 된 K리그 최고의 브랜드인 닥공은 2011년 미디어 데이에서 "전북은 올해 닥치고 공격, '닥공'을 하겠다"고 말하며 첫 등장했다. 평소 소위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최강희 감독은 닥치고 본방사수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닥치고 공격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기세를 올려 2011년에는 K리그 두 번째 우승과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거뒀다. 전북은 1년 동안 정규 리그 30경기에서 67골,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4골, 컵 대회 1경기에서 1골, AFC 챔피언스 리그 12경기에서 33골, FA컵 2경기에서 3골로 도합 47경기에서 108골로 경기당 2.29골을 쏟아부으며 그야말로 닥공의 진수를 아낌없이 뽐냈다. 미디어 데이에서 한 발언은 확신에 찬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인 전북 구단은 '닥공(닥치고 공격)'을 영어로 그대로 옮겨서(Dakgong) 아시아 전역에 소개했다. 말레이시아 페탈링 자야에서 있었던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 교육 세미나'에서 전북 구단 관계자는 당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아시아 32개 축구단을 상대로 닥공 축구와 AFC 챔피언스 리그 준비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AFC가 축구의 브랜드화를 통해 관중 몰이에 앞장선 전북을 모범 사례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일본·호주·중국 등의 구단 직원들은 전북의 모범 사례에 귀를 기울였다. AFC 주관 세미나에서 개별 구단이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202139492263006320.jpg

Dak Gong
닥치고 공격

닥공은 전북이 추구하는 공격 축구, 즉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라는 말처럼 전북의 상징, 그리고 앞으로 전북이 나아가야할 모토가 되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이후 닥공의 성공에 자극 받은 K리그 각 구단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서울의 무공해 축구, 울산의 철퇴 축구, 포항의 스틸타카, 제주의 방울뱀 축구, 광주의 직진 축구 등 축구의 브랜드화 붐을 일으켰다.[1]

그러던 중 K리그를 평정한 최강희 감독은 원치 않게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한국을 본선에 진출시킨 후 전북으로 복귀하는 것을 조건으로 수용했다. 최강희 감독이 없는 전북은 1년 반의 공백 기간 동안 두 명의 감독 대행[2]이 수행했다. 그 사이 전북은 계속 흔들리며 닥공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2013년 후반기에 최강희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 계약을 끝 마치고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진 후 전북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북이 수원에게 대패하는 모습을 관전한 최강희 감독은 그 자리에서 전북으로 즉시 돌아갔다. 흔들리던 전북을 최강희 감독이 어느 정도 붙잡아가며 무서운 기세로 선두를 추격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리그 3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2014년에는 K리그 왕좌를 탈환하며 세 번째 별을 달았다. 다만 후반기에 들어서는 닥공보다는 수비 밸런스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8월과 9월을 기점으로 상대의 극단적인 수비에 여러모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이자 승리를 놓치지 않는 실리적인 축구로의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전북은 그 동안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철학을 뒤집고 결과를 내는 실리를 추구했으며 결과가 좋아지자 점차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0월부터 K리그 최초 8경기 무실점 연승을 기록했고 리그 종료 시에는 실점률은 22점, 득실 차로는 39점을 기록했다.

팬들에게는 수비 밸런스적인 축구지만 공격적인 본능을 잃지 않고 방패로 상대를 후두려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휴식 기간 동안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시메오네 감독과 만나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밸런스 전술에 대해 상의하고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2011년과 같은 파괴적인 닥공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2015년 에두를 영입하며 그 동안 이동국을 중심으로 했던 4-2-3-1 전술에서, 에두와 이동국의 투톱을 중심으로 한 4-4-2 전술로 변화를 시도했다. 최강희 감독은 전반기 내내 지속적으로 투톱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투톱을 가동한 닥공은 미드필더 숫자가 줄어들어 수비에 약점이 생겼지만 최전방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K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 투톱의 닥공으로 에두는 11골로 득점 선두를 달렸고 이동국은 8골로 2위에 올랐다. 리그에서는 1위 선두를 달리며 2위 수원과 승점 10점차로 벌리며 전반기를 마감하였다. 에두와 에닝요가 이적과 계약을 해지를 했지만 후반기를 앞둔 여름 이적 시장에서 루이스베라, 이근호를 영입하였다.

동아시안컵 휴식기 이후 재개한 K리그 클래식에서 전북은 5경기에서 5득점 5실점하면서 3승 2패를 거뒀다. 상대 구단의 선수비 후 역습에 고전하며 공격을 시도하다 공간을 내주고 실점해 패배하는 경기가 최근 두 경기에서 나타나자 최강희 감독은 또다시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 축구로의 회귀 의사를 나타냈다.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전 감바 오사카전을 통해서 수비의 균형을 잡았지만 공격진에서 부족함이 나타났다. 때마침 찾아온 A매치 휴식기에서의 공격진 완성이 전북의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었다. 결국 2015년에는 닥공은 아니지만 꾸역꾸역승으로 우승을 차지, K리그 클래식 출범 이후 최초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2016년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경기당 2.1골이라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몰아치며 2006년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ACL을 우승해 닥공의 위력을 전 아시아 대륙에 알렸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이 전북을 떠난 이후 팀 컬러인 닥공이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3. 관련 링크[편집]




4. 기타 분야에서의 활용[편집]


  • 닥공에서 역두문자어로 '닥치고 공격'이라는 표현도 파생되며 일상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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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대 들어 그나마 종종 사용하는 표현은 스틸타카뿐이다.[2] 이흥실(수석 코치) 대행, 파비우(체력 코치)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