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부상자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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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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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천자
3. 봉합
4. 택시아
5. 마취
6. 고통
7. 파열
8. 해열



1. 개요[편집]


망령의 시즌 스토리 슬픔의 결속 임무를 완료하면 얻을 수 있다.


2. 천자[편집]


황혼이 내리고, 화로에 불이 붙었다. 굶주린 개처럼 울부짖는 바람이 드러난 목덜미를 할퀴었다. 사피야는 등불을 들어 올리며 강철 군주의 관문으로 흘러드는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부상당한 사람도 있었다. 간이 들것에 실린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천막을 향해 손짓했다. 따뜻한 불빛이 천막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다들 얼어 죽고 말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빨리 안으로 데려가요."

가뜩이나 소박한 병원은 주위를 둘러싼 석조 구조물과 비교되어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건설을 감독하고, 물자를 비축하고, 거기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강철 군주들 뒤로 문이 닫혔다. 다들 부상당한 곳 없이 무사했다. 자발라도 그들과 함께였다.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말다툼을 할 만큼 고집스럽지만, 그녀의 말을 무시할 만큼 고집스럽지는 않은 사람. 그는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악마의 가문에서 조직화된 공격이 시작되고 있네. 이번 기회를 이용하면 반격할 수—"

"반격이라고요?!"

자발라는 고개를 돌려 사피야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엔 부상자들이 있어요! 폭력 행위는 필요 없다고요. 지금 필요한 건 보급품이에요!"

다른 이들은 자발라만 남겨 두고 멀어져 갔다. 똑같은 여자와 똑같은 싸움을 반복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뭐라고?"

그녀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분명히 말했잖아요." 그녀는 말했다.

드론, 아니, 고스트가 자발라의 어깨 뒤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타르지, 이름이 타르지라고 했다.

"전 없다고 생각하세요." 타르지는 말했다. 사피야는 발끝으로 서서 그의 눈을 바라봤지만, 고스트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몰락자를 공격해야 그대와 부상자들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네." 자발라는 말했다. "나도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우릴 지키고 싶나요?" 사피야는 변변찮은 병원을 가리켰다. "그러려면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걸 확보해 줘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타르지가 말했다.

"넌 없다고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어?" 자발라가 고스트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피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멀어져 갔다.

"어딜 가는 거지?" 그는 물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천막의 가림막 아래로 들어갔다. 자발라는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는 모든 논의를 자기가 직접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피야는 대야에서 손을 씻은 후 그를 흘긋 바라봤다.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손을 씻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는 잠시 주저했지만, 그녀의 말을 따랐다.

"받아요." 그녀는 그에게 깨끗한 헝겊 한 줌을 건넸다. 그녀는 간이침대 중 하나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더러운 붕대를 피로 적시고 있는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붕대를 제거했다.

"이리 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발라의 손을 이끌어 그가 깨끗한 헝겊으로 상처를 압박하며 지혈시키게 했다. 그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녀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전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어떤가요?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는 있나요?"

"그래." 그는 말했다. 그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자 그녀는 상처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딱, 튀겼고 그는 다시 압박을 가했다.

"고스트가 없을 때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합이 필요하겠다고, 사피야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소독제와 장갑을 챙기며 점점 더 부족해져만 가는 의약품을 계산하듯 훑어봤다.

"몰락자만이 아니에요. 전쟁군주만도 아니고요. 질병, 굶주림, 추위까지."

그녀는 자발라에게 옆으로 비키라고 손짓했고, 그는 묵묵히 지시에 따랐다. 부상자는 안타깝게도 정신을 차렸고, 온몸이 덜덜 떨리며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는 최대한 부드럽게 상처를 닦아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켜야 했다.

"우린 당신들처럼 이런 일들을 외면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는 희미한 연민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자발라가 반박을 하고, 그녀를 밀어내고, 목소리를 높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생각에 잠겼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턱에 어떻게 힘이 들어가는지 살폈다. 그는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장갑을 손목부터 잡아당겨 벗었다. 관자놀이에 붕대를 두른 또 다른 환자가 잠을 자던 중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담요가 옆으로 떨어졌다. 사피야는 조심스럽게 담요의 끝을 잡고 들어 올려 다시 그 여자를 덮어 주었다. 그녀는 여자의 이마에 손을 댔지만,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사피야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자발라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절 찾아요." 그녀는 시선을 내리지 않고,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당신들이 아니라요."


3. 봉합[편집]


사피야는 오후 햇살이 비치는 남은 시간 동안 천막 밖에 앉아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른 봄이라 손가락은 추위에 빨개졌고, 숨을 내쉴 때마다 뽀얀 안개가 번졌다. 자발라는 마당에서 훈련을 지휘하며 민간인들과 스파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무거워 보이는 무기를 억지로 들고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나마 자신감 있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피야의 눈이 다시 바늘로 돌아갔다.

그때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한 민간인의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려 옷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사피야가 앉은 자리에서도 상처가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바느질은 잊어버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상처 하나에 적이 멈춰 줄 거라고 생각하나?" 자발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상대방은 어깨의 상처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 칼을 들었다. 사피야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딱, 튀겼다.

"지금 뭘 하는 거죠?"

자발라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때가 기회였다. 자발라의 스파링 파트너는 앞으로 도약하여 그를 기습했다. 칼이 자발라의 팔뚝을 베고, 피부가 갈라지며 밝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되살아난 자가 피를 흘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타르지가 상처를 치료하려고 떠올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그러지 말아요." 그녀는 말했다. 고스트는 동동 뜬 채로 그녀와 자발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뭘 원하는 거지?" 자발라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팔뚝을 꼬집어 상처를 오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사피야는 자발라의 말은 무시한 채 그의 스파링 파트너를 향해 손짓했다. "따라와요." 그녀는 말했다.

"타르지," 자발라는 자기 고스트를 불렀지만, 사피야는 다시 손가락을 튀겼다.

"당신도요. 제가 뭘 좀 가르쳐 드리죠. 안으로 들어와요."

그녀는 두 사람이 따라올 거라고 확신하며 병원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말에 따랐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피야는 자발라의 상처를 살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주의를 끌 만큼 깊은 상처이긴 했다. 병원 보조가 그의 스파링 파트너를 맡았고, 그는 자발라의 시선을 느끼자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뭘 하는 건가?" 그는 물었다.

"보면 몰라요?" 그녀는 말했다. 자발라와 고스트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상처를 소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럴 필요는 없어."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둥글게 굽은 바늘과 지혈제, 폴리프로필렌 실을 꺼냈다. 손에 익숙한 도구들이었다. 불사의 인간에게 사용하기에는 너무 귀한 재료였다.

"이제 상처를 꿰맬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장갑 낀 손으로 그의 팔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여섯 바늘 꿰매겠어요. 상처가 나으려면 나흘이나 닷새 정도 걸릴 거예요."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녀의 마음이 정해졌다는 걸 이해한 듯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보급품은 보충해 주겠네." 그는 말했다. "뭐가 필요한지만 얘기해 주게."

사피야는 그의 약속에 마음이 들뜨는 걸 느꼈다. 이제 그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됐다.

"당신도 우리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야 해요." 그녀는 자발라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동의를 기다렸고, 그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녀는 상처를 바늘로 꿰매고 양쪽을 하나로 모았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첫 번째 바늘.

"어머니께요." 그녀는 대답했다. "황금기의 책들하고요."

그녀는 십여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엉성한 책장을 가리켰다. 낡고 다 해져 있었지만, 전부 소중히 간직한 책들이었다.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군." 그는 말했다. 그녀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바늘.

"제가 보여드리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시선으로 자발라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온기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우린 여러 곳을 오갔어요." 그녀는 너무 빠르다 싶은 속도로 말하고는 세 번째 바늘을 꿰는 상처로 시선을 내렸다. "아주 먼 곳, 마을에서 마을로 오갔죠. 어머니, 아버지, 언니, 저까지." 네 번째 바늘. "아버지는 습격을 받아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요. 언니는 여기에서 서쪽에 있는 마을에 남았지만, 전 정착할 수 없었어요."

"왜지?"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다섯 번째 바늘을 뀄다.

"제가 도와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 친구 교육을 마치면 여기서도 떠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까딱해 보조를 가리켰다.

사피야는 마지막 바늘을 꿴 후 가위로 실을 잘랐다. 상처는 봉합되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팽팽하게 붕대로 감았다.

"어디로 갈 생각인데?"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 그는 물었다. 사피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 시점까지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붕대를 안쪽으로 밀어 넣어 마무리했다.

"다 됐어요."

그는 팔을 움직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멈췄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치유에는 시간이 걸리죠."

***

그날 밤, 그녀는 텅 빈 마당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자발라와 살라딘이 화로 옆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막의 가림막 너머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솜씨 좋고 강인한 여성이네." 자발라는 말했다.

살라딘은 언짢은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자발라는 불빛에 비친 윤곽으로만 보였다.

"난 바보가 아니야." 살라딘이 으르렁거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는 이미 알고 있어."

사피야는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그의 다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난 그녀를 존경하고 있을 뿐이네." 자발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살라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굴렸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우린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어." 살라딘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자네가 우리 세상을 버리려 할 순 있겠지만, 그들의 세상이 자네를 거부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진 않네." 자발라가 말했다.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삶은 너무 여려서 자네가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살라딘은 자발라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사피야는 그걸 연민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결국엔 깨져 버리고 말겠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상처 입고 말 테고."

사피야는 천막 가림막을 놓아 버렸다. 그게 펼쳐지는 소리를 그들이 들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4. 택시아[편집]


"이렇게요." 사피야가 그에게 말하며 그의 검지손가락에 뜨개실로 고리를 만들어 걸었다. 그는 바늘을 너무 단단히 쥐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어 그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은 병원 밖에 함께 앉아 있었다. 늦봄의 햇살 아래에서, 사피야는 그에게 뜨개질을 가르쳤다.

"이거 참 복잡하군." 그는 말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렇죠." 그녀는 말했다.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미소를 지으며 오후 하늘을 바라봤다.

"저기 좀 보세요." 그녀는 가쁜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평선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벌떡 일어섰다. 자발라는 어색하게 뜨개실 고리에서 손을 풀어냈다.

연기가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몰락자, 혹은 전쟁군주. 그들이 새로운 희생자를 찾은 것이다. 사피야는 자발라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음울한 결의를 읽고, 병원 천막으로 달려가 필요한 용품을 챙겼다.

사피야가 돌아왔을 때 야영지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강철 군주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사이 그녀는 관문을 향해 달렸다. 자발라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정말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가 그럴 생각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람들이 위험해요." 그녀는 말했다.

"안전하지 않아."

"그래서 제가 가야 하는 거죠."

"우리가 저 지역을 확보할 때까지는 안 돼."

사피야는 그의 손에서 팔을 풀어냈다. 그녀는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관문을 지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몰락자가 수송대를 매복 공격한 것이었다. 사피야는 봄꽃을 짓이기며 뒤집힌 썰매의 잔해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뚫고 달렸다. 그리고 마차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자에게 달려갔다. 관자놀이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 뒤쪽에는 한 남자가 내장이 흘러나온 배를 움켜쥔 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드렉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사피야는 그자의 목에 칼을 꽂았다.

자발라가 수송대를 향한 돌격을 이끌었다. 몰락자는 새된 목소리로 서로에게 소리치며 새롭게 나타난 공격자들에게 주의를 돌렸고, 태양 에너지가 대기를 갈랐다.

자발라는 사피야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돌진하는 대장 앞을 가로막았다. 적은 전기 창을 들어 올려 자발라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피를 토하며 땅에 쓰러져 움직임을 멈췄다. 사피야는 끔찍한 광경에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더듬더듬 자발라의 무기를 집어 들어 자신에게 달려드는 대장을 겨눴다.

그녀는 적의 가슴과 목에 탄환 세 발을 때려 넣었다. 그리고 적의 몸에서 에테르가 떨어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가쁜 숨을 쌕쌕거렸다. 쓰러진 사체가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고, 그녀는 애써 옆으로 밀어냈다.

타르지가 쓰러진 수호자를 스캔했고, 거친 숨을 내쉬며 자발라는 다시 일어났다. 그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발라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죽어 쓰러진 대장을 확인했다.

"괜찮나?"

"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피야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불운한 남자와 그의 곁에서 흐느끼고 있는 여자를 향해 돌아앉았다.

고요한 전투의 여파 속에서, 사피야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잔해 속에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사망한 남자 한 명이 꿈틀거리는 포대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렸다. 사체가 아기를 어찌나 꼭 부둥켜안고 있는지, 사피야는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나서야 사내아이를 그의 품에서 빼낼 수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받쳐 주었다. 아기의 울음이 속삭이는 옹알이로 바뀌었다.

사피야는 울음을 터뜨렸다. 품에 안은 아기와 그를 안고 있었던 남자, 주위를 가득 채운 피와 에테르 냄새 때문에. 그녀가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 때문에. 부드럽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발라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얹히고, 등을 쓸어내리며 말없이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똑바로 펴고 그를 바라봤다.

"우리가 그 아이를 지켜 주자." 자발라는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사피야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켰다. 자발라는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사내아이는 작디작은 손을 그에게 뻗으며, 커다란 갈색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봤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줘야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그녀는 애틋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하킴," 그녀는 말했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

하킴은 성장했다. 몇 달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와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자발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종종 그녀를 찾아왔고, 사피야는 자발라가 곁에 없을 때 하킴의 울음을 달래 주었다. 물자는 빈약했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저녁이 되고, 사피야는 따스한 하킴을 가슴에 품었다. 그녀는 숨을 쉬며 아이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아이 정수리의 곱슬머리에 입을 맞췄다. 자발라는 그녀 곁에서, 그녀의 등에 한 손을 얹고 있었다.

매미들이 노래했다. 그녀는 자발라에게 들어 보라고 손짓했다. 매미들은 계속 노래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곤충들이 영원히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땅에서 올라올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요."

자발라는 두 사람을 함께 안았다.
"매미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살아요. 멸종의 위기를 맞기도 했죠. 그때 붕괴가 일어났고… 이제 다시 번성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잠시 하킴을 얼렀다.

"우리 언니가 있는 마을로 데려가야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자발라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우리가 함께 데려가지." 그는 말했고, 그녀는 웃었다. 그의 말은 늘 그런 식이었다.

자발라는 다음 날 아침 살라딘에게 이야기했다. 자발라가 그녀를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강철 군주의 인장이 담긴 목걸이를 남겨 주었다.


5. 마취[편집]


사피야의 언니는 자기 마을 입구에서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아마니," 사피야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후, 두 자매는 서로를 포옹했다. 그녀는 환영받았다. 그러고 나서 아마니는 자발라와 하킴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며칠이 흘렀다.

"언니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자발라는 아마니의 집에 만든 간이 요람에서 잠든 하킴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해요." 타르지도 불쑥 나타나 말했다.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사피야가 물었다.

"언니가 얘기했어요. '난 당신들이 싫어요.'" 타르지가 대답했다. "저희 둘 다에게요."

사피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하킴은 좋아해요." 지금은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언니가 머무는 마을은 작지만 적절한 방어를 갖추고 있었고, 나무 말뚝이 개개인의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땅에서 채소와 씁쓸한 호밀을 긁어모으고, 헛간에는 가축도 키우고 있었다.

사피야와 자발라는 그곳에 자기들만의 집을 세웠다. 몇 년이 흘렀다. 하킴은 자랐다. 자발라는 불안정한 작은 발로 걷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타박, 타박.

사피야는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했다. 한때 소중히 아꼈지만 남겨 두고 떠나야 했던 의자였다. 창밖으로 집 뒤뜰에서 자발라가 아들과 함께 목검으로 훈련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놀이였다. 아들은 이제 겨우 아홉 살이었다. 사피야는 가을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나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뜨개실로 돌아갔다.

타박, 타박.

아들은 열두 살이었다. 그녀는 자발라가 하킴의 팔을 위로 올리고 등을 똑바로 펴게 하며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의 키는 이제 아버지의 팔꿈치에 닿았다. 타르지가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는 손가락에 뜨개실을 걸고 바늘을 번갈아 움직였다.

타박, 타박.

아들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녀가 뜨는 스웨터의 소매 길이가 길어졌다. 여름이었지만, 그녀는 다가올 추운 날씨에 대비해 옷을 만들었다. 언니가 그녀 곁에 앉아 소총을 닦고 탄환을 세고 있었다.

"습격이 올 때가 지났는데." 아마니는 흉작이나 우중충한 날씨, 송아지의 사산에 관해 얘기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그저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고난일 뿐이라는 말투였다. 총알이 달그락거리며 그녀의 품에 떨어졌다.

사피야는 털 스웨터를 무릎 위에 펼쳤다.

"하킴 거야?" 아마니는 물었다. 사피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마다 스웨터가 작아져서 못 입게 되네. 새 바지도 필요해. 지금은 발목이 다 나온다니까."

마지막으로 검이 부딪히는 타박 소리가 잦아들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사피야는 하킴의 손에 들린 금속 검이 번득이는 걸 보았다. 그녀는 뜨개질 도구를 내던지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두 사람 곁에 도착했을 때, 칼은 자발라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뭘 하는 거예요!"

질문이 아니었다. 책망이었다. 자발라는 뒤로 물러나 하킴의 손에 들린 칼을 향해 손짓했다.

"자기 몸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중이야."

사피야는 아들을 향해 손을 뻗고 하킴을 품에 안았다. 그녀는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는 부드러운 곱슬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아들은 그녀를 밀어내고 물러난 후 반항하듯 그녀를 노려봤다.

"할 수 있어요." 그는 말했다. "그냥 훈련일 뿐이라고요!"

사피야는 자발라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도 목숨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아들에게 자기 목을 자르라는 얘기를 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아직 어린아이예요." 그녀는 말했다.

하킴은 숨을 들이쉬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후,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자발라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몰락자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음울했다.

사피야는 아들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날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그건 치유가 아니라 해를 끼치기 위한 칼날이었다.

그녀는 자발라 말이 옳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싫었다.

***

그날 밤, 사피야의 언니는 늦게까지 그녀 곁에 남아 촛불 아래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써 몇 년째야." 아마니는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절대 우리처럼 생각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애초에 그럴 수가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도 알아."

아마니는 웃었지만, 사피야는 아무 말 없이 얼굴만 찌푸렸다. 그는 이해해야 했다.

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널 사랑해."

사피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킴도 사랑하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한지도 몰라."

사피야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발라는 잠든 하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하킴의 어깨까지 끌어 덮어준 후, 손가락으로 아들의 볼을 쓰다듬었다.

사피야는 그제야 되살아난 자의 길고 부럽지 않은 삶에서, 그들은 한 번도 아이였던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발라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용서해 달라는 말 없는 부탁이었다.

"조금만 더 아이로 남게 해 줘요." 그녀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많이 그리워질 테니까요."


6. 고통[편집]


사피야는 사격을 교환하는 소리를 들었다. 탕-탕-탕, 새가 나무를 쪼는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너무 빠르고 너무 날카로웠다. 자발라가 불쑥 일어섰다.

"몰락자다!" 밖에서 공포에 질린 외침이 들려왔다. 악마의 가문. 사피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자발라는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용품을 챙겼다.

총성은 점점 더 크고 빨라졌다. 고통스러운 외침, 단말마의 비명이 이어졌다.

하킴은 열일곱 살이었다.

"여기 있어." 그녀는 애원했다. "조심하고."

"저도 싸울 수 있어요." 그는 말했다. 이제는 키가 어머니보다 훌쩍 커져 있었다.

"부탁이야." 그녀는 말했다. 하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피야는 잠시 동안 아들을 품에 안고 두려움을 가라앉힌 후, 남편을 따라 전투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몰락자가 마을의 관문을 기어올라 넘고 있었다. 지나치게 흉포하고 치열한 전장으로 향하려는 욕심이 앞선 대장이 무질서한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자발라가 훈련시킨 친구와 이웃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드는 적 앞에서 마을을 지켰다. 사피야는 남편이 방어 인원을 지휘하며 총성과 비명 너머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총을 든 한 농부는 허벅지를 탄환이 관통하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피야는 거기로 달려가 그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 옮긴 후, 손에 잡히는 대로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았다. 그녀는 몸을 낮게 숙였고, 때때로 부상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몰락자는 조금씩 밀려났다.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목소리가, 공포와 뒤섞여 소란을 꿰뚫었다. 사피야는 고개를 홱 돌렸다. 하킴이 몰락자 대장이 휘두른 전기 창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한 타격에 하킴의 자세가 불안정해졌다. 사피야는 비명처럼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하킴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장은 창을 들어 그대로 아들의 몸에 꽂아 넣었다.

갑자기 자발라가 거기 나타나, 두 번의 사격으로 그 생물을 쓰러뜨린 후 다시 한번 사격하여 목숨을 끊었다. 사피야는 하킴에게 달려가 미끄러지듯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전기 에너지에 가장자리가 그을려 버린 상처를 압박하는 그녀의 손등을 미끌거리는 붉은 액체가 뒤덮었다. 하킴이 뭔가 말하려 하자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무기를 움켜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건 호밀 줄기를 베는 데 쓰던 낫이었다. 그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아들의 죽음이 남긴 냄새가 그녀의 폐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자발라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을 아들의 볼에 얹고, 그녀는 초점을 잃은 두 눈에 남은 차가운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의 숨결이 떨렸다. 천천히, 그녀는 다른 손을 하킴의 상처에서 떼낸 후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두 팔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들의 사체가 가슴에 닿았다. 그녀는 아들의 체중이 너무 무거워져, 예전처럼 품에 안고 얼러 줄 수 없었던 그때를 잠시 떠올렸다.

"사피," 마침내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발라를 바라봤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윤곽선으로만 보였다. 그의 방어구에 새롭게 생긴 흠집과 균열이 빛을 받아 아른거렸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도 죽었던 걸까,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하킴을 바라봤다. 아들에게 고스트는 없었다.

자발라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부들부들 떨며, 그는 하킴의 사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7. 파열[편집]


자발라는 하킴을 자기 침대에 뉘어 주고, 머리를 부드러운 베개에 올려놓아 주었다. 사피야는 떨리는 손길로 그의 담요를 들었고, 얼굴을 덮기 직전 잠시 멈췄다.

곁에 있는 자발라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을 때, 그녀는 자기 팔꿈치까지 아들의 짙고 어두운 피로 얼룩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깊은 상처가 남긴 피였다.

자발라는 잠든 아들을 깨울까 봐 조심하는 사람처럼, 담요 끝단을 붙잡고 하킴의 어깨를 살며시 덮어 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마니는 언제나 핵심을 짚곤 했다. 하킴을 묻은 지 한 달이 되었을 때였다. 아들의 묘비에는 꽃이 놓여 있고, 두 자매는 무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밤공기는 여름의 온기가 가득했다. 달빛을 받아 모든 게 은색으로 빛났다. 매미들이 노래했다. 세계가 잠시 멈춰 서서 그녀의 슬픔을 함께해 주는 일은 없었다.

사피야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니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떻게든 결정해야 해."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마니가 자기를 꼭 끌어안는 걸 느꼈다.

"착한 아이였어." 언니가 말했고, 사피야는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아버지처럼 우직하고 용감했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떨어졌고, 아마니는 사피야의 두 손을 잡았다. 언니는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사피야는 마주 웃어 주지 않았다. 그녀의 슬픔은 고독했다. 내면으로 향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울었다.

"자발라는 거의 매일 밤 하킴의 무덤을 찾아." 한참이 지나고 사피야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가서 자." 언니는 말했다. "푹 자고 네 미래에 관해 생각해 봐. 여기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내가 여길 떠나면 좋겠어?" 사피야는 물었다. 아마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니, 그럴 리가. 난 네가 다시 기쁨을 찾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여기선 그럴 수 없을 거야."

"그 아이를 살려내."

사피야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소리를 따라 침실로 향했다.

"그 아이를 살려내." 그는 다시 요구했다. 자발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사피야는 조금 열린 문틈으로 안쪽을 들여다봤다. 남편은 그녀를 등지고 고스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럴 순 없어요." 타르지는 말했다.

타르지는 자발라를 올려다봤다. 고스트는 떨고 있었다.

"내 빛을 가져가고 그 아이를 살려내." 그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뱉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해 주겠어?" 자발라는 물었다. 뭔가 그의 목소리를 할퀴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아이를 살려 주겠냐고?"

타르지가 대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피야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협탁에 놓인 자발라의 총이 움직이는 소리는 분명히 들었다.

"방법을 찾아내. 그 아이를 살려내라고." 자발라는 애원했다.

자발라가 무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사피야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벌컥 열었다. 남편은 몸을 움찔하더니 돌아서서 문간에 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다가가 그의 팔에 손을 얹고 총을 내렸다. 자발라는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총이 덜그럭, 바닥에 떨어졌다.

사피야는 타르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고스트를 보듬어 주었다. 손바닥에 따뜻한 떨림이 느껴졌다. 고스트의 창백한 푸른빛 외눈이 그녀를 올려다봤다. 타르지가 하킴의 손이 닿는 곳 바로 밖에서 빙빙 돌며 아들과 함께 장난을 치던 때가 모두 떠올랐다. 그 순간에는 타르지도 그 아이를 사랑했다고, 사피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순 없어요." 그녀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그런다고 지금의 우리가 달라지진 않아요."

그녀는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며, '지금의 나는 무엇이지?'라고 물어볼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타르지는 그녀의 품을 벗어나 자발라 곁에 떠올랐다.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도 확신했다.

사피야는 그의 얼굴을 찾았다. 그를 볼 때면 하킴의 얼굴이 보였다. 자기 자신의 고통이 그의 눈에 비쳐 보였다. 그리고 그의 고통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고통이 끝난 뒤에도, 그가 끝없는 세월 동안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사피야는 고개를 돌렸다.

"난 영원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당신은 영원을 살아갈 테고, 전 아니겠죠."

자발라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고,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우릴 잊지 말아요, 자발라."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당신에게 허락된 영원까지. 부탁이에요."

"그럴 일은 없어."

8. 해열[편집]


마을은 그들 뒤에서 늦여름 하늘의 빛 속으로 흐려졌다.

그들이 떠날 때, 아마니는 사피야의 손을 꼭 붙잡고 그녀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발라를 향해,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곧 강철 군주 야영지의 석조 구조물이 지평선 위로 나타났다.

자발라와 사피야는 처음 하킴을 찾았던 곳을 지나갔다. 사체는 사라졌지만, 피는 이미 오래전부터 땅에 스며들어 있었다. 불타 버린 나무는 상처 주위에 새롭게 싹이 돋아났다. 하지만 유용한 부품이 모두 수거된 후 남겨진 녹슨 잔해는 그 길에 그대로 남아 반쯤 흙에 묻혀 있었다.

관문에 도달해서, 사피야는 뜨개질바늘로 그의 손을 꾹 눌렀다.

"따뜻하게 잘 챙겨 입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당신은 이겨낼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피야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 떠났다. 그녀는 강철 군주의 관문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자신을 뒤쫓는 자발라의 시선을 느꼈다.

야영지의 관문이 홀로 남은 자발라 앞에서 열렸다. 살라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한 의견을 내놓지도, 불필요한 훈계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사랑은 시간 속의 한순간에 불과해. 우린 그렇지 않고."

자발라는 그게 살라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괜한 질문 없이, 잠시 심호흡을 하고 살라딘 경을 따라갔다.

수십 년이 지난 후, 아마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최후의 도시에 있는 그에게 도달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쯤 구겨지고 색도 온통 바래 있었다. "빨리 와요,"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 늦기 전에."

하지만 그는 너무 늦었다.

아마니는 문상객들에게 둘러싸여 무덤 앞에 서 있었다. 허리가 굽고, 많이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잠시 그녀와 눈을 맞췄다. 슬프지만 낯익은 미소가 그녀의 입술을 스치고, 그녀는 감사 인사를 하듯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묘비에 다가섰다. 그곳까지 오는 동안 꺾은 꽃을 손에 들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앳된 꽃이었지만, 어느새 꽃잎은 멍들어 있었다. 그는 조금 전 쌓아 올린 흙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꽃을 올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발라 곁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따뜻하고 상냥한, 똑같은 눈. 그녀의 딸이었다.

"어머니를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는 물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문상객끼리 으레 하는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옛 친구였지."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지친 기색이 목소리에 스며드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발라는 그녀가 자신에 대해, 자신과의 과거에 대해, 자기 오빠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감사 인사를 했다. 더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 후에는 그녀의 아들 무덤을, 아들의 아들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에 묘비가 빽빽이 채워져 갔다. 그는 매번 그 여정을 반복했다.

그들은 열 세대를 거치는 동안 최후의 도시를 찾아오지 않았다. 은신자들은 그들이 태어나고, 병에 걸리고, 죽을 때마다 자발라에게 알렸다. 그는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무덤을 찾아갈 때마다, 그는 그곳에 증표를 남기며 물었다. '날 용서해 줄 수 있겠어?'

붉은 전쟁은 그들을 앗아가지 않았지만, 도시가 벡스와 끝없는 밤에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할 때, 자발라는 사피야의 마지막 후손을 애도했다. 이번에는 무덤에 묻을 유해조차 없었다.

이제 자발라는 책상에 앉았다. 오랫동안 사용한 뜨개질바늘은 뭉툭하게 닳아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바늘을 들고, 그녀가 자기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도록 그의 손가락 위치를 잡아 주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뜨개실을 길게 빼내며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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