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절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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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都切
기원전 17년경 ~ 기원후 1년 (향년 18세)
고구려의 태자. 제2대 유리명왕의 장남이자 해명태자, 대무신왕의 형제였다.
2. 상세[편집]
기원전 6년에 부여의 대소왕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인질 교환을 요구한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때 유리명왕이 대소왕의 세력이 강한 것을 알고는 요구대로 태자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했으나 도절이 이를 거부하여 끝내 부여로 가지 않았다.[1] 이에 분노한 대소왕이 같은 해 겨울에 50,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때마침 심한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패배하고 돌아갔다.
이후 서기 1년 1월에 죽었는데, 사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2] 도절이 일찍 죽는 바람에 아우였던 해명태자가 서기 4년에 태자가 되었으나, 해명태자 역시 유리명왕과의 갈등 끝에 자살하고 말았다. 결국 차기 왕좌는 해명의 아우였던 왕자 무휼이 이어받았다.
유리명왕이 도절태자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해명태자를 태자로 책봉하는 것으로 보아, 모계가 졸본성 인근의 비류국 출신인 대무신왕과 동복형제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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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에 따라 '보내봐야 지키라는 약속은 안 지키고 나만 죽을 게 뻔한데 그래도 보낼 거냐' 라거나, 부여로 가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할 만큼 무서워했다는 등 분분하다.[2] 해명태자나 호동왕자가 그랬듯이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책임을 지고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혹은 날 때부터 몸도 마음도 유약했던 탓에 요절했다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