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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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cagua
랑카과
파일:Escudo_Rancagua.jpg
문양
국가
칠레

리베르타도르 헤네랄 베르나르도 오히긴스주
Región del Libertador General Bernardo O'Higgins
면적
260.3km²
인구
232,211명
(2012년 기준)
시간대
UTC -4
서머타임: UTC -3
고도
572m


Rancagua.






파일:rancagua.webp
파일:rancagua-7-1024x576.jpg

1. 개요
2. 역사
2.1. 창립기간
2.2. 오늘날
3. 인구 통계
4. 랑카과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들
5. 행정
6. 문화
7. 교통
8. 기후
9. 스포츠
9.1. 경기장과 아레나
10. 쌍둥이 도시 – 자매 도시




1. 개요[편집]


랑카과는 칠레 중부 랑카과 현의 코무나이다. 오히긴스주의 주도이며,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8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원래는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산타 크루즈 데 트리아나로 명명되었다. 2012년 기준으로 인구는 232,211명이다. 주요 경제 활동은 광업, 관광, 농업, 목재, 식품 생산 및 서비스업에서 소규모 산업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도시는 또한 지역의 행정과 법적 중심지 역할을 한다.

마할리, 굴트로와 함께 랑카과 구릉지대를 형성한다. 쿠리코, 탈카, 콘셉시온 다음으로 칠레 중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다.


2. 역사[편집]




2.1. 창립기간[편집]


랑카과 계곡은 이 지역의 피쿤체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15세기에 잠시 잉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 유적들은 오늘날에도 도시 근처에서 여전히 발견될 수 있다. 그들의 토목공학을 통해, 잉카인들은 그들의 제국의 남쪽으로의 탐험을 성취했다.

랑카과는 스페인의 탐험가 호세 안토니오 만소 데 벨라스코가 칠레 중부 지역에 여러 도시를 세웠다. 이 정착지는 처음에 빌라 산타크루스 데 트리아나라고 불렸다.

1814년 랑카과 참사가 일어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칠레군이 패배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스페인칠레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인 레콩키스타로 알려진 시기의 시작을 알렸다.


2.2. 오늘날[편집]


최근 몇 년 동안 도시는 오히긴스 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문화 및 관광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랑카과는 또한 스포츠 센터와 더 작은 마을과 마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푸카라 데 라 콤파니아와 인근 리오 치프레세스 자연보호구역과 같은 고고학적 유적지에도 방문객들이 몰린다. 두 곳 모두 자가용이나 현지 여행사로 방문할 수 있다.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 또는 칠레 국도 5번으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메트로트렌은 산티아고에서 랑카과까지 기차로 연결한다.

랑카과는 랑카과 대학교가 소재해 있는곳이기도 하다,
또한 랑카과 대학교는 오히긴스 지방에 설립된 최초의 사립 대학교이다.

이 지역은 인근 안데스 산맥의 엘 테니엔테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 구리 광산"이다. 도시의 동쪽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엘 테니엔테는 국영 광업 회사인 코델코가 소유하고 있다.

도시의 브래든 구리 경기장은 20세기 전반까지 광산을 개발한 미국 회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1962년 FIFA 월드컵의 4개 경기장 중 하나였다. 최근에는 칠레의 축구 클럽인 오히긴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칠레 로데오 전국 선수권 대회가 Medialuna Monumental de Rancagua에서 열린다.

2015년 랑카과는 2015년 코파 아메리카를 개최하였고,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개최하였다.


3. 인구 통계[편집]


랑카과 인구는 주로 스페인계 또는 메스티소이며, 특히 바스크의 영향이 크다. 독일계, 크로아티아계, 이탈리아계, 그리스계, 레반트계, 스위스계, 프랑스계, 잉글랜드계, 아일랜드계 등이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인 마푸체 노동자들은 남부에서 이주하고, 몇몇 롬인 집시들도 있다.

게다가,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와 같은 이웃 남미 국가들로부터 도시로 이민이 증가하고 있다. 넓이는 260.3km2이고, 인구는 214,344명(남자 104,879명, 여자 109,465명)이다. 이 중 20만6,971명(96.6%), 7373명(3.4%)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인구는 1992년과 2002년 사이에 14.4%(27,020명) 증가했다.


4. 랑카과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들[편집]


헤르만 리에스코(1854-1916),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칠레의 대통령이었다.

루초 가티카, 볼레로 가수.

크리스토발 곤살레스, 축구선수.

호세 빅토리노 라스타리아 (1817–1888)는 작가이자 정치인이다.

마리아노 디아스,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작가.

클라렌스 아쿠냐, 전 축구선수.

브라이언 라벨로, 축구선수.

마리오 누녜스, 전 축구 선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퀸타닐라, 신학자


5. 행정[편집]


랑카과(Rancagua)는 칠레의 행정 구역으로 행정 구역상으로는 3급이며, 행정 구역상으로는 시의회가 관리하고 알칼데가 수장을 맡고 있다.
알칼데는 4년마다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


6. 문화[편집]


이 지역은 칠레 카우보이인 후아소의 이름을 따서 "후아소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유럽인(아르헨티나 이민자 포함)과 토착 인종과 문화가 혼합되어 있다. 이 지역은 칠레리다드라고 알려진 균질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메스티소의 영향이 뚜렷하다.

랑카과와 리베르타도르 헤네랄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주는 스페인인(특히 안달루시아인, 바스크인, 아라곤인, 나바라인)과 다른 유럽인들에 의해 정착되었다. 와인 루트는 콜차과 계곡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독일스위스 이민의 유산인 양조장도 찾을 수 있다. 가축 개발과 목축은 특히 영국,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정착민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 도시는 산티아고에서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지역 문화에서 도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랑카과는 빠르게 산티아고 상류층 전문 인력들의 교외가 되고 있다.

랑카과에선 매년 10월 2일마다 1814년에 일어난 랑카과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7. 교통[편집]


대중교통은 트랜스오히긴스에서 6개 노선의 버스를 제공한다.


8. 기후[편집]


랑카과는 지중해성 기후(쾨펜 Csb)로 계절이 뚜렷하다. 여름은 보통 매우 건조하고, 아침은 시원하고 오후는 더운 반면, 겨울은 온화한 아침과 때때로 매년 평균 510mm 또는 20.08인치 정도의 폭우가 내린다. 어떤 해에는 약간의 눈이 올 수 있다.


9. 스포츠[편집]


도시의 스포츠는 축구, 농구, 하키 등 다양하다.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축구 클럽은 현재 칠레의 1부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 데 칠레에서 뛰고 있는 오히긴스이다. 오히긴스는 1970년대에 엘 테니엔테의 도움으로 칠레의 주요 클럽들 중 하나가 되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도 여러 차례 출전하였는데, 그들의 최고 성적은 준결승전이었다. 2013년에는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2014년에는 칠레 수페르코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도시의 다른 축구 클럽들로는 토마스 그라이그와 엔포케가 있는데, 둘 다 테르세라 디비시온 데 칠레에 속해 있다.

2015년 칠레 그랑프리가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2016년 그랑프리 모터사이클 레이싱 시즌에도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


9.1. 경기장과 아레나[편집]


1962년 FIFA 월드컵과 2015년 코파 아메리카의 호스트인 에스타디오 엘 테니엔테.

메디달루나 모뉴멘탈 데 랑카과, 로데오 앤드 내셔널 챔피언십 호스트 데이비스 컵.

코데과 국제 경주장

헤르모게네스 리자나 체육관

랑카과 시립 경기장

랑카과 농구 협회 체육관

기예르모 사베드라 스타디움


10. 쌍둥이 도시 – 자매 도시[편집]


랑카과는 다음과 같이 자매 결연을 하였다

스페인 로그로뇨

대한민국 파주

아르헨티나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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