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웰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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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명
2. 실존 인물
2.1. 퍼시벌 로웰
3. 가상 인물


1. 인명


Lowell
어원으로는 '늑대'와 '아이, 젊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지닌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성이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실존 인물


  • 게일린 로웰 : 탐험대와 함께 아니마칭의 정상까지 오르는데 성공하여 높이를 측량한 결과 에베레스트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20610피트(약 6282미터)라는 것을 밝혀냈다.
  •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 미국의 작곡가.
  • 로웰 버그먼 : 60 Minutes의 PD.
  • 로웰 키셀(Lowell Kiesel) : 카빈 코퍼레이션을 세웠다.
  • 마이크 로웰
  • 애보트 로런스 로웰 : 퍼시벌 로웰의 동생. 하버드 대학교총장으로 지냈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에 대해 만들어진 독립 조사 위원회의 일원이다.
  • 에이미 로웰(Amy Lowell) : 퍼시벌 로웰의 동생이자 미국의 시인. 런던으로 건너가 이미지즘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에즈라파운드는 그녀를 중심으로한 시인들을 가리켜 농담 섞인 말로 '에이미지스트'라 부를 정도로 열성적인 이미지즘의 시인이었다.
  • 캐리 로웰 : 007 살인 면허에 나온 배우. 리처드 기어의 전 부인이다.
  • 크루 루벤 로웰 : 캘리포니아에 위치하고 있는 무에타이 및 아마추어 복싱 도장 '익스트림 파워 짐'의 공동 소유주. 다른 소유주는 빌 골드버그다. 운영을 맡고 있다. 무에타이와 태권도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미 해병대 전투 교관에, 퀸튼 잭슨의 트레이너도 맡은 바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2.1. 퍼시벌 로웰


Percival Lawrence Lowell
1855년 3월 13일 ~ 1916년 11월 12일
미국천문학자. 1970년대 교학사에서 낸 천문학 어린이 책자에서는 난데없이 톤보오라는 이름으로 표기된 바 있다. [1]
보스턴의 로웰 가문에서 태어났다. 동생으로는 애보트 로런스 로웰과, 에이미 로웰이 있다.
부유한 집안이었던 로웰은 1876년에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상류 사교계의 생활을 즐기다가 1880년대에 극동에 대한 호기심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1883년, 미국에 외교 사절을 파견하기로 한 조선고종보빙사를 보냈다. 보빙사는 7월 15일 출항하여 일본에 들렀는데[2] 얘들로만 보내기는 좀 불안했던지 주일 미국 공사의 주선으로 로웰과 그 비서 미야오카가 동행하게 되었다. 조선 정부는 정식으로 로웰에게 보빙사 서기관 겸 고문이라는 관직을 내려 주었다.
파일:external/img.hani.co.kr/0091000301200504040405_16.jpg
왼쪽 두 번째의 인물.
로웰은 보빙사와 같이 다니면서 홍영식과 친해져서 조선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사진사와 동행해 최초로 고종의 사진[* 당시 조선에서는 사진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때 촬영한 사진이 그의 최초의 사진이라는 것은 후일 윤치호 등의 증언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과,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선 조선의 여인을 찍는 등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으로 3개월간 잘 놀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선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에서는 홍영식 외 소장파 관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로웰은 일본에서 이 소식을 듣고 갑신정변의 내역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조선의 쿠데타(A Korean Coup d'Etat)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글은 당시 평론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886년 11월호에 게재되었다. 그 후 계속 일본에서 지내면서 동양 관련 저술가로 활동해 <Choson : the Land of Morning Calm>[3][4]을 출판하고 조선 관련 사진첩도 내고 일본 관련 서적도 여럿 써내며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인 1894년에는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쓴 '행성 화성'(La planète Mars)을 읽고 화성을 관측하기로 결심했으며, 천문학자로 변신하게 된다. 그 후 자비로 로웰 천문대를 건설, 화성에 운하(그리고 곧 화성인도!)가 있다고 주장하여 또 이름을 날리게 된다. 본래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바니 스키아파렐리가 화성 관찰 논문에서 화성 표면에서 '계곡 같은 모양(canali)'이 관찰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는데, 이것을 프랑스 천문학자가 '운하(canal)'라 번역했고, 그것을 '인공적인 운하'로 받아들인 로웰은 24인치 굴절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찰한 뒤 '1895년 화성'이란 책을 발표하면서 인공적인 운하를 건설한 화성인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것은 영어이탈리아어의 차이에서 발생한 오역의 결과물이었다.[5] 화성에 화성인이 있다는 오해가 퍼지면서 화성인 열풍이 퍼졌다. 허버트 조지 웰즈는 이런 열풍에 편승하여 우주전쟁을 썼고, 이런 열풍이 더더욱 퍼지게 되었다.
그 뒤 명왕성(당시 가칭 Planet X[6])의 궤도를 예측해 탐사하던 중 1916년 사망하였다. 그 후 명왕성은 그가 세운 로웰 천문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클라이드 톰보가 1930년 발견했다.
행성(당시에는)을 발견한 당시 영국 옥스포드의 11세 소녀였던 베네시아 버니가 플루토(Pluto)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그 이전에는 발견자인 로웰 연구소 안에서 제우스, 미네르바, 크로노스 등의 이름을 검토했지만 플루토라는 제안이 알려지면서 만장일치로 플루토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이름을 Pluto라고 지으면 행성 기호를 P와 L을 겹친 것(♇)으로 할 수 있는데, 이는 로웰의 머릿 글자와 같아서다.
다만 명왕성이 발견된 뒤에 로웰이 주장한 Planet X는 별개의 천체로 관측•계산상의 오류로 만들어진 허상으로 밝혀졌다. 그가 계산한 영역에 우연히 명왕성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2011년 3월 27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3. 가상 인물



[1] 톤보오는 톰보의 일본식 음차만 보고 기록한듯 하다. 로웰과 톰보를 헷갈리고 거기서 또 오역이 나온 것[2] 당시 태평양 횡단에는 샌프란시스코 - 요코하마 정기선을 이용하여야 했다.[3]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해석된다. 1882년 미국의 동양학자 월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가 '은둔의 나라 코리아-COREA, the Hermit Nation'의 서문에 조선(朝鮮)을 한자 뜻으로 풀어 영어인 'The Land of Morning Calm'라고 적었고, 로웰은 그걸 제목으로 따온 듯하다.[4] 조선 기행기로, 서문에 홍영식에 대한 추모글이 있다.[5] canali가 '자연적으로 생긴 수로, 물길'이라는 뜻인데 비해, 영어의 canal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운하'를 뜻한다.[6] 다만 그의 사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