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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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페팃
(Bob Pettit)

도미니크 윌킨스
(Dominique Wilkins)

루 허드슨
(Lou Hudson)

피트 마라비치
(Pete Maravich)

디켐베 무톰보
(Dikembe Mutombo)

No. 59
Ted Turner
카심 리드
(Kasim Reed)

테드 터너
(Ted Turner)





파일:호크스 루 허드슨.jpg
애틀랜타 호크스 No.23
루이스 클라이드 허드슨
(Louis Clyde Hudson)

생년월일
1944년 7월 11일
사망
2014년 4월 11일 (향년 69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브로

196cm (6' 5")
체중
95kg (210 lbs)
출신학교
미네소타 대학교
포지션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66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지명

등번호
23번
소속팀
세인트루이스/애틀랜타 호크스 (1966~1977)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77~1979)
별명
Sweet Lou [1]

애틀랜타 호크스 영구결번
No. 23

1. 개요
2. 커리어
2.1. 데뷔 이전
2.2. 세인트루이스/애틀랜타 호크스
2.3. 은퇴 이후


1. 개요[편집]


세인트루이스 후반기부터 애틀랜타 초반기까지 팀에서 뛰었던 가드/포워드 선수. 부드러운 점프슛으로 인해서 스윗 루라는 별명을 얻었다.


2. 커리어[편집]



2.1. 데뷔 이전[편집]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구와 미식축구(쿼터백), 야구(1루수)와 육상을 하는 등 여러 스포츠를 했다. 이 시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훗날 NFL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의 찰리 샌더스다.

허드슨은 미네소타 대학교로 진학했는데 미네소타에서 실시한 흑인 장학생 제도의 첫 번째 수혜자다. 1964-65년에 빅 텐 컨퍼런스의 2위까지 학교를 올려놓았고 훗날 미네소타 골든 고퍼스에서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했다.


2.2. 세인트루이스/애틀랜타 호크스[편집]


1966년 NBA 드래프트에서 허드슨은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지명되었고 동시에 NFL 드래프트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에게 와이드 리시버 포지션으로 드래프트되었으나 농구를 선택했다.

루키 시즌에 평균 6분 5초 출장, 5.4리바운드, 18.4득점을 기록하면서 올 루키팀에 이름을 올렸고 레니 윌킨스, 젤모 비티 등등과 함께 밥 페팃이 은퇴한 호크스에서 뛰었다.[2], 시카고 불스를 스윕하고 디비전 파이널까지 올라갔지만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에게 패한다.

허드슨은 군입대를 위해서 1967-68시즌은 46게임만을 뛰고 자리를 비웠고 그가 돌아오자 팀은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긴 상태였다.

애틀랜타 이적 첫 시즌에 허드슨은 평균 21.9득점, 6.6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새구장인 알렉산더 메모리얼 콜리세움의 첫 번째 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되었고, 1969년에는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구단 통산 최고 기록인 57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0-71시즌에는 피트 마라비치가 합류하지만 화려한 마라비치의 스타일은 정적인 허드슨과 월트 벨라미와는 맞지 않았고 마라비치가 자신의 스타일을 억제하면서 팀에 융화하려했으나 팀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던 선수와 트레이드되고, 큰 금액으로 계약을 했던 마라비치를 호크스의 베테랑 선수들은 고깝게 보았고 허드슨이 평균 25득점, 마라비치가 평균 27득점으로 화려한 공격농구를 했음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허드슨까지 부상을 당하자 호크스는 마라비치를 1974년 뉴올리언스 재즈로 보냈고 마라비치는 그 곳에서 전설이 되었다.

이 후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허드슨의 득점력은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고 호크스는 1977년 그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올리 존슨을 상대로 트레이드했다. 레이커스에서의 마지막 두 시즌 동안 허드슨은 제리 웨스트, 카림 압둘자바, 자말 윌킨스, 마이클 쿠퍼 등과 함께 뛰었으나 1978년과 1979년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는 두 번 모두 시애틀 슈퍼소닉스에게 패하고 만다. 이 시즌을 끝으로 허드슨은 은퇴했는데 레이커스가 이 다음 시즌인 1980년에 매직 존슨을 뽑고 쇼타임 레이커스 시대의 첫 우승을 하게 되므로 아깝게 우승을 놓쳤다.

부드러운 점프슛을 주무기로 사용했으며, 정규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득점력이 올라가는 등 큰무대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던 선수다.


2.3. 은퇴 이후[편집]


1979년 NBA를 은퇴한 허드슨은 애틀랜타에서 식당 장비 사업을 하다가 잠시 호크스의 라디오 아나운서로 일했다. 그 후 유타주로 이적해 부동산 사업에 종사했다, 2005년 스키를 타다가 뇌졸중에 걸렸고 2014년 이 병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났다.

허드슨에 이어 80년대 호크스를 책임진 도미니크 윌킨스는 허드슨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야한다고 지지했다.

[1] 루 윌리엄스와 같다.[2] 페팃은 우승을 하고, 2만 득점을 넘기자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1964-65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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