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스포츠/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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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볼드는 가급적 그 선수가 아예 안 뛰었거나, 그 스포츠 계에서 손꼽을 만한 액수를 받고 먹튀 반열에 오르거나, 승부조작 등으로 영구제명되는 등의 경우, 심각한 사건사고를 일으켜서 초대형 민폐를 끼친 경우, 존재 자체만으로 팀을 말아먹은 경우에만 사용할 것. 또한 인물을 추가할 경우 가나다순으로 정렬할 것.




1. 한국프로농구[편집]


안양 KGC 인삼공사에서 뛰다가 2014-15 시즌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어 왔다. 그것도 연봉 6억! 그러나 부상의 여파인지 시즌 시작 전 국가대표팀으로 뛰었던 농구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완전히 폭망한 모습을 보여주며 고태술, 김퇴술 등의 부정적인 조롱이 붙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14-15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시망급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연봉 6억의 가치는커녕 팀에 완전히 마이너스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kcc 몰락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사실 김민구의 나가리 때문에 kcc는 시즌 전부터 답없다는 평가를 듣기는 했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던 리딩 능력마저 부상 후유증 탓인지 완전히 상실하였다. 15-16시즌에도 마찬가지어서 평가전에서의 평가가 중위권 대학 포인트가드의 리딩 능력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으며, 심지어 득점가담, 패스 투입, 드리블 능력, 스틸 능력 모든 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은 국가대표에서도 여전했는데, 팬들은 김태술을 그냥 귀국시키라, 최준용보다 나은 게 뭐냐? 놀았냐 라는 등, 이런 말을 통해서 나온 처참한 경기력을 통해 씻을 수 없는 망신까지 당했다. 그리고 팀에 복귀한 것도 여전하였다.[1]
  • 그렉 콜버트: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 말 그대로 시즌 중에 튀었다. 그가 빠진 동양 오리온스는 세계기록 32연패를 달성.
  • 양희승: 부산 KTF 매직윙스 시절 한정.
  • 은희석: 안양 SBS시절부터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가드로 적절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리빌딩 돌입 시점부터 부상으로 주저앉으며 3억의 높은 연봉을 받고 벤치에만 있는 신세. 일명 은삼억. 은퇴 이후 대학농구를 떡주무르듯 하는 연세대 농구부 감독으로 인생역전했고,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으로 KBL 무대에 복귀했다.
  • 김승현: 대구 오리온스의 프랜차이즈이자 농구계의 스타플레이어였지만 FA 이면계약 등 온갖 구설수를 일으키며 팀도 자신도 나락으로 추락,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지만 그를 데려오려고 준 선수가 김동욱이었고, 김동욱에 비해 김승현은 4억 연봉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삼성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 전형수: 전형적인 슈팅가드로 그냥저냥 뛰다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의 부활을 보고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데려갔는데, 오자마자 바로 똥망. 종종 프로농구 역사상 최악의 FA계약으로 회자되곤 한다. 이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해서 선수생활을 끝마쳤다.
  • 주태수: 11-12시즌, 12-13시즌을 거쳐 용병과 빅맨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한때 식물감별사라는 별명과 함께 공헌도를 인정받아 5년 연간 3억의 계약을 따내며 일약 팀내 고액연봉자가 되었지만, 2013-2014년부터는 부상과 부진으로 경기도 얼마 못나오고, 경기를 나와도 오래뛰지 못하고 자기가 식물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팀 내에서 입지도 김상규, 이정제, 정효근같은 젊은 빅맨들에게 밀리는 형편. 실제로 전자랜드는 주태수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음에도 2013-2014년 4위, 2014-2015년에도 중위권 경쟁을 하고있다. 이후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되어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 기승호: 군 입대 전에는 창원 엘지 세이커스에서 문태영 다음으로 국내 에이스로써 버금가는 활약을 했었고 수비, 궂은일, 심지어는 김동욱, 박상오처럼 가드진의 연결고리까지 도맡으면서 리딩,슛도 정확했지만 군 전역때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부상이 잦아서 그 이후로 폼이 떨어져 버렸다..거기에 발목 부상까지 당한데다가 활약도에 비해 터무니없는 고연봉(현재 3억이다!)으로 만인의 농구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여기에 문태영하고 챔피언 결정전 때 추태는 그의 이미지를 많이 말아먹었다. 그 이후로 고향팀인 안양 KGC인삼공사로 쫓겨나듯이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서는 어느 정도 폼을 되찾으면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지만 모비스에서는 안좋게 선수생활을 끝마쳤다.
  • 이승준: 부상으로 1년 쉰 선수를 팀의 기둥 김민수보다 큰 연봉으로 데려오고 미디어데이 때도 내보냈다. 결과는? 수비안돼 득점안돼 부상재발의 악몽의 4연타. 시즌 중반부턴 D리그에 갔는데 여기서도 못해서 까였다. 현재는 그냥 농구관광을하고 있다. SK에서 1시즌만 뛰고 은퇴해버렸다.
  • 이동준: 이승준의 동생. 시즌 초반에 드러누운데다가 형이랑 똑같이 수비못해 공격안돼를 폭발시키며 팀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 2군 김우겸과 신인 이대헌에게도 밀리며 벤치만 하염없이 달군다. 데려오는 대가로 내준 주희정은 날라다니고 있어서 더욱 부각되는 먹튀. 현재는 경기장에서 싸이클만 씽씽 타고 있다. SK에서 1시즌만 뛰고 은퇴해버렸다.2
  • 이정석: 이동준과 같이 주희정을 삼성에 주고 데려왔다. 이정석은 나와서는 턴오버 폭발. 상대팀이 뒤쳐지면 점수차 순식간에 좁혀주기를 하는데 반해 주희정은 답이 없는 삼성 가드진을 멱살잡고 끌어올리면서 SK를 상대로 5승이나 쓸어담았다. 그 이후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지만 또다시 벤치신세 이후 은퇴했다?
  • 오용준: 박상오를 kt에 주고 데려왔다. 외곽포를 기대하고 데려왔지만 외곽포는커녕 한경기당 2점도 못넣고있다. 이후 안양 KGC인삼공사로 축출되었다가 그곳에서도 전혀 활약을 못하고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했으며 다시 수원 kt 소닉붐으로 옮겨갔다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 양희종: 13-14시즌이후 FA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노상 부상을 당해서 기록은 점점 더 떨어지고 슈팅은 나아지지 않아 사실상 수비용 선수로 전락했는데도 샐러리 캡 잡아먹네 연봉이 너무 많은것이 문제. 분명 정규리그에선 낮은 득점과 야투율로 먹튀라 불릴만 했지만 생애 두번째였던 16-17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또다시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통합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거기에 선수단을 한데 뭉치게 하는 리더십은 물론이고[2] 시즌 종료 후 사비로 팬들에게 고기를 살 정도로 팬 서비스까지 좋아서 안양 KGC의 팬들에게 먹튀 이미지는 거의 없는 편이다. 아니, 아예 영구결번 해주자는 얘기도 많다.
  • 이광재: 동부 시절 주전 2번으로 활약하며 한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FA로 KT로 이적해서는 대부분 출장시간을 위시로 많은 기록이 반토막났고 심지어 노상 부상으로 허덕이면서 1군 엔트리에 합류를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연봉이 2~3억대 가까이 된다. 이후 다시 친정인 원주 DB 프로미로 복귀했으며 이후 은퇴했다.
  • 변기훈: 군 전역후 처음 치루는 풀시즌이였던 16-17시즌 내내 최악의 부진을 겪었지만 SK 구단 측에서는 공로를 생각해 3억에 FA 게약을 했다. 17~18시즌 또한 여전히 심각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모습을 보여줬다. SK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공헌한 것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수준. 결국 창원 LG 세이커스로 쫓겨났고 이후 은퇴했다.
  • 강병현: 선수지명과 데뷔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했지만 서장훈하승진의 공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했다. 그 이후 KCC에서 성장하면서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기도 했고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하면서 일약 KCC를 대표하는 주축 프랜차이즈 선수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갑작스럽게 무너졌고 부상까지 당하면서 안양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 이적 첫해는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다시 고질적인 부상이 발목을 잡으면서 반년을 통으로 쉬어버렸고 이후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지 못하고 창원 LG 세이커스로 마지못해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 박상오: 수원 kt 소닉붐서울 SK 나이츠에서 혁혁한 활약을 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여러차례 팀을 옮겨 다니는 중이다. 이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2시즌 간 뛰다 은퇴했다.
  • 김현중: 오리온에서 김승현의 백업선수로 데뷔한 이후 창원 LG 세이커스에 잠시 있다 그 당시 상무에 입대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들어가서 양동근의 공백을 착실히 메웠다. 허나 막판에 부상으로 안타깝게 낙마해서 다시 창원 LG 세이커스로 오게 된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수원 kt 소닉붐으로 옮겼고 이거 때문에 KT는 무리하게 전태풍을 영입했지만 신통찮게 되었다. 그 이후 김종범과 같이 트레이드를 통해 원주 DB 프로미에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마쳤다.
  • 김동욱 : 서울 삼성 썬더스 2기 시절.
삼성 1기 시절때는 신예 포워드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오리온으로 트레이드 된 뒤에는 2015-16 시즌 추일승식 포워드 농구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아 오리온의 챔피언 결정전 두 번째 우승[3]에 공헌을 할 정도로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었다. 이후 FA로 보수총액 6억 3천만원이라는 대박을 쓰고 삼성으로 돌아온 첫 시즌에는 나름대로 평범했으나 확실히 연봉에 비한다면은 약간 아쉬운 정도였다. 두번째 시즌부터는 부상과 부진으로 돈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급기야 시즌이 다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부상으로 조기 시즌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돈값 하기는커녕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후 두 시즌동안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먹튀 여론은 거의 없어졌으며 수원 kt 소닉붐으로 옮겨서 새출발 하였고 결과는 부상이 잦은거 빼고 생각외로 수지 맞은 장사가 되었다.
  • 김우람 - 전주 KCC 이지스수원 kt 소닉붐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선수였으며 잦은 부상으로 인해 빠지는 경기가 많았고 결국 20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 최현민 - 한때는 안양 KGC 인삼공사에는 준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순수였지만 상무 농구단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어서 성장이 정체되었음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서 전주 KCC 이지스와 야심차게 FA 계약을 체결했지만 기대 이하의 활약을 해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쫓겨나다시피 트레이드 되었다.
  • 전준범 - 모비스 시절에는 팀의 주전 슈터로 활약했지만 상무 제대 이후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창영, 이근휘한테 밀려 엔트리에서도 못 드는 일이 많아졌고, 설혹 든다해도 전혀 출장을 못하고 있다.
  • 김시래 :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한정. 삼성의 감독이던 이상민이 프랜차이즈 스타 이관희와 김준일을 내주면서 야심차게 데려왔지만 폼은 오히려 떨어진 모습을 보인 채 최악의 플레이만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LG한테서 이어받은 FA계약 관련해서 보수총액 5억원을 계약기간 동안 보장하다 보니 삼성으로써는 최악의 계륵인 상황이다.

2. 한국여자프로농구[편집]


  • 김계령: 삼성생명(1998~2004), 춘천 우리은행 한새시절까진 괜찮았다. 우리은행 이적할 땐 자기 역할도 잘 했고 암흑기의 에이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부천 신세계 쿨캣 트레이드 후 기록 대비 팀 성적은 폭망했고 1년 만에 삼성생명이적 이후 급격히 출전시간이 줄어들더니 12-13시즌 이후로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거기다 우승은 개뿔이고 팀 성적은 4-2-4-4... 2년동안은 그래도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적 당시 2억5000만원 받고도 12-13시즌후엔 1억 5000만원이 삭감된 1억. 12-13시즌 후 인상되었다고 하지만 연봉에 비해 줄어든 출전시간... 플레이오프 진출이 3팀으로 줄어들고는... 걍 망했다.
  • 박태은: 연차만 있지 성장은 전혀 못하고 자신이 무슨 플레이를 해야 할 지 모차 모르는 선수로 삼성생명 먹튀 3인조 중 1명 이후 우리은행으로 이적.
  • 이유진: 13-14시즌 1억 5천만원을 받고 하나외환으로 갔지만 삼성생명때와 마찬가지로 성장은 성장대로 못하고 돈만 먹고 튀었다.
  • 정선화: 13-14시즌 청주 KB 스타즈에서 1경기도 뛰지 않았으면서 2억 2500만원이나 받아 먹었는데. 2억에 2년 계약으로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이적했으나 1시즌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무릎 부상 마저 발견되어 14-15시즌 후 아예 은퇴하며 고아라를 능가하는 먹튀 확정. 그 이후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으로 복귀를 선언하여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팀이 부산으로 옮겼음에도 고질적인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하고 말았다.
  • 모니카 라이트: NBA 슈퍼스타 케빈 듀란트의 약혼녀. 부천 KEB하나은행 소속의 외국인 선수였는데, 가족 문제를 들먹이며 팀을 무단이탈하여 5년동안 WKBL에서 뛸 수 없게 됐다.
  • 김수연: 외국인 제도가 없었던 시절에는 여자농구판 식물 감별사로 쏠쏠한 활약을 하다가 고질적인 부상으로 출장시간이 크게 줄면서 이적해 온 정미란과 신예 박지수, 김민정한테까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면서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쫓겨났다.
  • 이경은: 금호생명부터 시작해 KDB생명 위너스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폼과 팀 성적이 동시에 하락, 이후 전성기 때 영원한 맞수였던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로 이적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후술할 김이슬보다는 양반이다.
  • 김이슬 : 18-19시즌 종료 후 신한은행으로 이적하면서 연봉이 1억 8100만원이었는데 이 마저도 선수층이 무너지다 시피한 신한이니까 가능했지 선수층이 정상이었다면 FA미아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19-20시즌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1억500만원으로 삭감되었는데 20-21시즌은 한 술 더 떠 아예 드러누웠는데 그러는 동안에 이경은이 부활하고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유승희, 김애나가 부활하며 팀 내 입지마저 좁아지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보상선수였던 강계리와 맞트레이드되어[4] 친정 팀 하나원큐로 돌아갔고 21-22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 강아정: 2021-22 시즌 3년간 3억 3천만원에 고향팀인 부산 BNK 썸으로 FA 이적했지만 커리어 로우를 찍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3. NBA[편집]


  • 고든 헤이워드: 이쪽은 좀 운이 없는 케이스. 계약 첫해부터 르브론과의 충돌로 부상 당한 뒤 이후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으며, 2020년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또 부상을 당하기 이르렀다
  • 그랜트 힐: 디트로이트의 에이스였지만, 올랜도로 거액 이적 후에는 부상때문에 경기를 잘 나오지를 못했다. 이 때문에 티맥이 빈약한 동료 지원 속에 고생했다. 게다가 올랜도에서 골골대다 말년으로 갈수록 점점 건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년에는 쌩쌩한 모습을 보이며 올랜도 팬들을 벙찌게 했다. 계속 다친 건 발목이지 무릎은 건강하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원인은 정확히 규명된 건 아니지만 그 당시 그랜트는 필라 신발을 사용했는데 그것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그리고 먹튀긴 했지만, 건강할 때는 그런저런 성적을 내주기도 했고 올랜도 시절이 끝난 뒤엔 준수한 성적을 내주었기 때문에 먹튀라는 인식이 좀 덜하긴 하다. 다만 이건 한국 팬들 사이에서 인식이고 올랜도 팬들에겐 빼박 먹튀다. 올랜도와 7년 계약했는데 제대로 뛴 건 딱 두 시즌 정도(그나마도 70경기가 안 됨)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준수한 실력의 선수를 두 시즌 쓰려고 슈퍼스타급 연봉 7년치를 준 셈이니 올랜도 팬들 입장에선 환장할 수밖에. 게다가 이 계약이 끝나자 피닉스와 저렴하게 계약했다.
  • 길버트 아레나스: 워싱턴 위저즈의 인기 많은 에이스로 한때는 길교주였으나 대형계약 후 어느샌가 부상으로 골골대며 제 몫을 못하다 락커룸에 권총을 보관했다가 적발되는 초대형 사고를 치면서 시즌을 완전히 망치고 이후 기량까지 바닥나며 다른팀으로 쫒겨난 뒤 커리어를 마감했다.
  • 더마레 캐롤: FA 비인기 도시인 토론토가 4년 5700만달러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액으로 애틀랜타 60승의 주축 멤버이자 플레이오프에서 핸들러 역할까지 겸하는 시장 최고의 3&D 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캐롤을 영입하게 되었는데, 캐롤은 개막 후 몇 경기는 그럭저럭 했으나 이후 부상 당하면서 실력이 도로 줄어버리면서 수비도 못 하고 3점슛도 못 넣는 잉여로 전락하였고, 르브론에게 원래 강한 편도 아니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르브론에게 그야말로 탈곡당하면서 토론토가 16시즌~17시즌 무력하게 시리즈를 내주는데 영향을 미쳤다. 거기에다가 당시 뜨고 있던 2라운더 유망주 3번 노먼 포웰의 시간까지 나눠받으면서 나오던 터라 플레잉타임 뺏어가는 잉여취급 받으면서 브루클린으로 쫒겨났다.
  • 데릭 로즈: 시카고가 드래프트에서 홈보이인 로즈를 1픽으로 지명하고 로즈는 염가로 잡혀있는 루키계약에 만점 활약을 하며 조던 이후 시카고 불스의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며 떠오르는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한다. 세번째 시즌에는 조아킴 노아와 함께 시카고를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으며 2010~2011 시즌에 MVP를 따내면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나서 사무국이 로즈의 이름을 딴 로즈룰이라며 MVP 수상, 올스타, All NBA TEAM 수상 성적이 있으면 루키계약 후 맥시멈보다 더 추가된 금액에 일명 로즈룰, 슈퍼맥시멈이란 혜택을 로즈가 받으면서 슈퍼맥시멈 계약을 한다. 이 슈퍼맥시멈 계약이 시작되는 첫해를 ACL 부상으로 단 한번의 출장도 없이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시즌 복귀를 하고 평득 15.9득점에 야투율 35.4% 트루슈팅 44.6%의 저조한 성적으로 고작 10경기 출장한 뒤 또다시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고만다. 이 2시즌은 NBA 역사상 역대 넘버원 먹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복귀하지만 MVP를 수상했던 선수가 계속된 부상으로 그냥 평균급 주전 PG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2시즌을 더 뛴 뒤 뉴욕으로 트레이드 되어 뉴욕에서도 평균 혹은 준수한 주전 PG로 활약했다. 하지만 슈퍼맥시멈 금액에는 못 미친 3년동안은 준수한 먹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물론 먹튀는 먹튀였다. 슈퍼맥시멈 가지고 평균-준수 수준의 주전 PG였으니 말이다. 종합적으로 5년간의 슈퍼맥시멈계약은 수준급 먹튀라 볼 수 있고, 첫 두 시즌은 역대 NBA 역사상 최악의 먹튀였다.[5] 최근에는 과거 MVP를 수상하던 슈퍼스터 급은 아니지만, 플레이스타일을 바꾼 이후 벤치에이스 내지는 준수한 주전급으로 다시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네소타 소속이었던 2018년 10월 31일에는 최전성기때도 해내지 못했던 50득점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해 팀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고 눈물의 인터뷰를 해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시카고 팬들 역시도 그를 응원하는 등 점차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있는 중이며, 로즈가 언젠가는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젊은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도 커져가고 있다.
  • 라샤드 루이스: 국내 nba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연봉조던"이란 별명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고졸 스타로서 장신의 슈터였던 루이스는 2007년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며 6년 1억 1800만 달러 계약을 맺는다. 루이스는 매직에서 양궁부대의 일익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줬지만 통산 2회 올스타에 불과한 선수에겐 과분한 금액. 참고로 누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올랜도 매직이 혼자만의 경쟁심으로 라샤드 루이스에게 저 계약을 선사했다. 심지어 계약 이후 득점이 거의 매년 감소하였으며 2009년에 올스타에 뽑히긴 했지만 계약기간 내내 한번도 평득 20점을 못 넘겼다. 견디다 못한 매직은 2010년에 또다른 먹튀 길교주 길버트 아레나스를 받고 워싱턴으로 그를 넘겨버린다. 2012년에 위저즈 소속으로 28경기에 출전해 평균 7.8점, 총 217점(;;;)을 넣으며 받은 연봉은 2천1백만달러... 거의 1점당 1억이다. 삼점슛 하나에 삼억이 생기는꼴.야 신난다 버틸수 없었던 위저즈는 그를 뉴올리언즈 호네츠로 넘기고 여기서 결국 방출된다.
  • 비스맥 비욤보: 샬럿에서 8순위로 지명되어 별로인 성장세와 늘지 않는 공격 역량 때문에 좋은 계약을 따내지 못하고 토론토와 FA재수를 택했는데, 토론토에서 벤치 센터로 나오면서 림프로텍터&리바운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16년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26리바운드 4블록으로 매치업 상대인 트리스탄 탐슨을 찍어누르는 활약을 하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에 리빌딩하던 올랜도로 4년 7000 받고 이적했으나 전형적인 백업 빅맨에게 과하게 오버페이해서 올랜도는 그대로 시즌 농사를 망쳤다. 블랙홀 기질에 스크리너&핸즈오프 역량은 전혀 없고 수비마저도 토론토가 잘 활용하면서 약점을 가렸는데 올랜도에서는 수비적인 커버를 별로 받지 못하며 수비에서도 영 아니었다.
  • 스티브 내시: 피닉스 시절까지는 MVP가드였지만, 레이커스가 반지원정대 2기를 결성하면서 300만불과 레이커스의 13,15년도 1라운드픽과13,14년도의 2라운드픽을 내주고 영입했는데, 정작 내쉬는 드와이트 하워드등과 호흡이 맞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부상으로 32경기를 결장하고, 다음해에는 아예 거의 못나오고 14-15시즌에는 시즌전 등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아웃을 당하고 연락도 두절되는등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끝내지 못했다. 팀도 12-13 반지원정대 결성 이후 거하게 망하고 있다.
  •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피닉스 시절 여러 부상을 달고서도 올 NBA급 파워포워드 실력을 보여주며 뉴욕 닉스와 5년 100M이라는 거대 계약을 맺었다. 닉스와 계약한 첫 해에도 All-NBA 세컨드 팀에 들면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자주 결장하며 부상 때문에 점점 실력이 떨어지더니 13-14시즌에 들어서는 완벽한 먹튀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14-15시즌에 닉스에서 바이아웃 된 후, 댈러스 매버릭스와 계약하여 매버릭스에서 뛰었으며, 이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1년을 뛰었다. 2017년 7월 26일, 닉스와 은퇴를 위한 계약, 은퇴발표, 곧바로 웨이브 되어버린다.
  • 안드리스 비에드린스: 통칭 비듬린스.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이전의 라트비아 출신 농구선수이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빅맨인데, 나름대로 기대를 가지고 11픽으로 뽑은뒤 빅맨 흉작인 팀에서 꽤 좋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08-09년부터 시작되는 6년 5400만불의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부터 폭망하기 시작한다. 08-09시즌에는 시즌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하면서 기대를 갖게 하더니 다음해부터 부상에 시달리면서 결장경기 수가 많아졌으며, 부상과 함께 기량도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골든스테이트 팬들의 뒷목을 잡게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백미는 선발출장 9분동안 4파울이라는 가공할만한 파울관리 능력.그 와중에 파울 하고 손을 드는 모습이 멋있다는 평이 많다 결국 팀은 12-13시즌이 끝나고 알짜 선수인 재럿 잭과 칼 랜드리를 잡지 못했다. 이후 유타로 샐러리 캡 절감차원에서 트레이드 되었고 유타에서 6경기 나오고 사실상 커리어를 마감했다.
  • 안드레아 바르냐니: 일명 7풋 센터. 2006년 1픽으로 토론토에 입단했지만 당초부터 오버픽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토론토 시절에는 득점력은 준수했으나 인사이드에서 잘 놀지 않으면서 7풋 슈터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7풋 슈터라는 것 자체는 거짓말은 아니고 외곽능력도 분명히 있으나, 3점을 넣으면 3점을 주는 생산력을 자랑하였다. 이후 몇 번의 부상으로 폼이 떨어진 상태에서 닉스가 무려 2016년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면서 영입했고 닉스에서 완전히 폭망했다. 부상으로 실력도 줄고 잦은 결장에 소위 말하는 스탯찌질이 짓까지 하면서 뉴욕의 망조에 일조했다. 결국 14-15시즌 이후 브루클린으로 쫓겨났다.
  • 앤드류 바이넘: 어떻게 보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역대 최악의 탱킹 모드를 시전하게 된 원흉... LA 레이커스 시절에는 데뷔 때부터 큰 기대를 모으며 LA 레이커스의 우승도 이끌었고, 점차 실력이 늘면서 11-12 시즌에는 완전히 엘리트급 센터로 자리매김 했다. 이후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기적적인 업셋을 이뤄냈지만 2라운드에서 바로 탈락한 필라델피아가 로스터의 한계를 느끼고 프랜차이즈 스타인 안드레 이궈달라까지 내주면서 하워드라마에 참여해 바이넘을 얻었지만 무릎이 불안한 상태에서 비시즌동안 무릎에 무리가 가는 볼링을 계속 치는 등 무릎 상태를 악화시키면서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12-13 시즌을 통으로 날려 버렸다. 수술을 3월이 돼서야 받게 해 필라델피아 팬들을 빡치게 한 것은 덤. 이후 2년 24M의 계약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했으나 거기서도 팀 캐미를 해치는 등 기행을 계속 일삼았으며, 결국 구단으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를 받고 시카고로 트레이드된 뒤 방출되었다. 동 시즌 인디애나와 계약했지만 또 부상당하면서 시즌을 마감했고, 이후 무릎부상으로 계속 개점휴업상태이다. 게다가 여러 선수한테 거친 파울을 하는 등 멘탈레기로 악명이 높다.
  • 앨런 휴스턴: 한때 최고의 슈팅폼을 가진 슈팅 가드이자 뉴욕 닉스에서는 1억 달러 먹튀로 악명 높은 선수. 사실 첫번째 닉스 계약 당시엔 먹튀는 아니었다. 오히려 98-99시즌 뉴욕이 8번 시드의 기적을 일으킬때 마이애미와 최종전에서 위닝샷을 쏘기도 했고, 라트렐 스프리웰과 함께 트윈테러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2번째 계약에서 6년 100M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메가톤 계약을 맺는다. 당시 그의 나이 30. 계약 첫해와 이듬해까지는 팀의 코어로서 활약하였으나, 전설의 스캇 레이든이 짤리고 아이제아 토마스 체제가 들어선 2003-04 시즌 갑자기 무릎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 시즌 뉴욕 닉스는 감독을 3명을 갈아 치웠으며, 잦은 로스터 변동으로 팀의 무려 22 명이 로테이션에 속했었던 시즌이었다. 그래도 3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그 다음 시즌인 2004-05시즌엔 팀에 희망이 보인다고 여겨 앨런 휴스턴도 12월에 복귀를 하였으나, 고작 20경기에 출전해 전성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평균 10득점이 조금 넘는 수준의 활약에 그치고 그대로 시즌아웃 되어버렸다. 오프시즌에도 무릎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조기 은퇴를 하게 된다. 휴스턴의 남은 계약은 닉스의 샐러리 유동성을 꽉 막아버렸으며, 이후 팀의 암흑기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당시 NBA는 각 팀에서 한명씩 방출하면 그 샐러리를 제외해주는 일시적인 사면룰을 시행했는데, 그 사면룰이 일명 '앨런 휴스턴 룰'로 불릴만큼 당시 휴스턴은 빼도박도 못하는 최악의 먹튀였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스 팬덤에서는 앨런 휴스턴을 먹튀라고 욕하기보단, 까지 말자 혹은 까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식의 의견이 많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정리하자면 "2차 계약이 엉망이 된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그의 훌륭한 슛 디시젼과 페이스업 게임 능력 등 플레이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무엇보다 닉스란 팀의 상징성을 이을 인물로 그 계약은 할 만한 계약이었고, 자꾸 부상 이야기 하는데 다친 사람이 제일 속상할 테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이다. 추가로 당시 닉스가 저지른 실책이 워낙 많아서 묻힌 것도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비난여론이 많이 줄어든거지 과거에 영광을 잊지 못하고 언제든 반등할 수 있을거란 환상을 가졌던 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닉스팬들의 실망과 비난은 컸다. 당시만 해도 영입 몇번만 잘하면 바로 컨텐더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거란 희망이 있었으며, 아이제아 토마스가 스테판 마버리를 영입한 것을 두고 잡지 루키에서 "일 잘하는 CEO가 얼마나 팀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할 정도.(조현일 편집장 시절 이후 인력난에 허적이는 루키가 아니다. 당시는 아직 최연길이나 손대범을 필두로 필진 뎁스가 두텁던 시절.) 그러나 지나고 보면서 감독과 싸우면서 팀 케미를 박살내는 마버리, 커리, 랜돌프의 말썽쟁이 듀오, 한심한 수준의 드래프티들,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영입해 좀 잘하다가 노화로 돈값을 못하는 왕년의 슈퍼스타 등등 수많은 먹튀들이 닉스를 기나긴 암흑기로 몰고가면서, 부상 때문에 못 뛴 것이었을 뿐 실력도 좋고 인품도 좋은 휴스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격히 사그러진 것이다. 게다가 실력없는 먹튀들이 프랜차이즈 역사를 좀먹는 동안 "그나마 휴스턴 만한 슈터가 어딨었다고" 하면서 추억보정도 들어가고 거기에 99년의 영웅 중 하나였다는 것도 더해 현재는 현지건 한국에서건 환영받는 닉스선수가 된 것. 사실 현역 당시와 은퇴 이후 대접이 다른 선수는 많다. 당장 현재 뉴욕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대접받으며 아직도 닉스 팬들이 그리워하는 패트릭 유잉도 현역 시절 우승도 못한다며 많이 까였다. 물론 "유잉 무용론"은 개소리지만 이를 믿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면 그렇게 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기대치의 문제인데, 컨텐더를 기대하던 팬들은 휴스턴을 욕하고, 우승을 바라던 팬들은 유잉을 욕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것이다.
  • 에디 커리: 가격 자체는 6년간 평균 900만 달러 선이기 때문에 가격은 다른 먹튀들에 비해 비싸지는 않지만 커리를 데려오기 위해서 1라운드 픽을 2개나 줬는데 그 1라운드 픽으로 시카고는 라마커스 알드리지와 조아킴 노아를 뽑아버렸다. 게다가 커리는 첫 두 해에는 그럭저럭 활약 했는데 이후 발전은커녕 몸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결장이 계속되다 08-09, 09-10시즌을 합쳐서 총 10경기만 뛰게 되었다. 결국 먹튀인 커리를 처분하기도 힘들어진 닉스는 2010년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커리는 이후 미네소타로 트레이드된 후 미네소타에서도 방출당했고, 중국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 에반 포니에: 2021-22시즌을 앞두고 뉴욕 닉스와 4년 78m의 거대 계약을 맺었으나 첫 시즌은 기대한 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 2년차때는 시즌 초반부터 부진하다가 급기야 얼마 지나지 않아 로테이션에서 아예 배제되 출전조차 못하고 있으며, 팀에서는 어떻게든 처분하려 안달하는 악성 매물로 전락했다.
  • 오메르 아식: 2014-15시즌부터 휴스턴-워싱턴-뉴올리언스와의 3차 트레이드 형식으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16시즌 시작 전에 5년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 첫 해부터 68경기 4.0득점 6.1리바운드라는 창렬스러운 스탯을 기록하더니 다음 해엔 아예 드러누워서 31경기 중 19경기만 선발에 2.7득점 5.3리바운드라는 눈이 썩는 스탯을 기록, 커즌스를 영입하여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팀의 암적 존재가 되어있다. 뉴올리언스 팬들은 제발 어디로 픽 끼워서 보낼 수 없냐고 욕을 하는 상황. 그리고 니콜라 미로티치 트레이드에 끼워져 시카고에 처분하는데 성공했다.감사합니다 시카고 사실 드러눕고 아예 안나오거나 나와도 더럽게 못한것도 큰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먹튀짓이 드마커스 커즌스의 커리어를 망쳤다. 아식과 아진샤가 나오지 못하면서 AD와 커즌스가 미친듯이 굴러야 했고, 결국 커즌스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 제롬 제임스: 닉스 최고 암흑기 시절 먹튀중 한명이자 탑이며, 실상 NBA 역대 최고의 먹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으로 5년 30M의 계약을 따냈다. 사실 금액만 놓고 보면 여기에 적힌 인물들중에서도 적은편이지만 실력 자체가 이 리스트의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떨어진다. 제롬 제임스의 통산 성적을 보면 데뷔 이후 2005시즌까지 통산 평균 4.9점 3.5리바운드 1.3블럭, 이후 2005년 플옵에서 12.5점 6.8리바운드 1.8블럭으로 반짝 활약했다가 거대계약 이후 은퇴할때까지 평균 2.5점 1.8리바운드 0.4블럭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실 애초에 장기 계약을 한 만한 선수가 아니었는데, 한 시즌도 아니고 플옵에서 딱 한번 활약한 것에 낚여서 5년 계약을 안겨준 아이제아 토마스의 머리 속이 궁금해질 지경... 심지어 경기 외적으로는 동료와 주먹다짐, 태업을 일삼고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망치는 암적인 존재였다. 뉴욕에서에 마지막 2시즌동안은 출전시간을 모두 합해 무려 15분(!!!) 뛴게 전부였다.
  • 조아킴 노아: 필 잭슨 사단이 뉴욕에 뿌린 똥 중 하나. 누가봐도 하락세가 명백한데다 유리몸이 되어가는 수비형 빅맨에게 4년 7200만 달러라는 오버페이를 했고, 결국 뉴욕 닉스 소속이던 2016~2019년 초까지 꼴랑 53경기 나온 후 방출되었다.
  • 조 존슨: 일명 조듣보. 애틀랜타에서 준수한 활약으로 6년 120M이라는 메가딜을 체결한후 점점 실력이 감퇴하다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하고 나서는 돈값을 못했고 마지막해에는 지명권도 없는 팀을 제대로 망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존재감은 투명하지만 연봉은 절대 투명하지 않다 무려 24.7M로 14-15시즌 연봉 2위였다.
  • 존 월: 슈퍼맥스 장학생 문무겸장 20년부터 슈퍼맥스를 받게 되는데 발뒤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중에 집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여기에 수술 부위에 감염이 일어나 재활이 더 오래 걸리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본인은 대학교 복학해서 학업을 마치겠다고 하여 워싱턴 팬들은 뒷목을 잡았다. 결국 2020-21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로키츠로 이적했지만 여전히 돈값하기엔 한참 모자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 주완 하워드: 90년대부터 봐온 NBA팬이라면 한때 먹튀의 대명사였던 하워드를 잘 기억할 것이다. 206cm 신장에 득점력이 괜찮은 파워포워드였던 그는 2년차였던 96시즌에 평균 22점을 찍으며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미시건 대학 시절 fab 5의 일원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히 높았고 이에 마이애미 히트의 팻 라일리 단장은 바로 그 해에 그에게 1억달러 이상의 장기계약을 제시한다. 그러나 샐러리 캡 계산을 잘못해 무효가 되었고 노렸을지도 결국 원 소속팀인 워싱턴 불리츠(현재 위저즈로 개명)가 7년 1억500만달러로 그를 잡는다.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 이 정도 액수면 지금도 엄청난 계약인데[7] 당시에는 같은 해에 계약했던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보다 약간 낮은 액수였다. 당시 하워드는 젊은 나이, 준수한 기량과 함께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농구 전설 팻 라일리가 찍었다는 걸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세가 여기서 딱 멈췄다는 것. 심지어 96시즌에 기록한 22점이 커리어하이가 되고 그 이후엔 20점을 넘기지도 못하고 올스타에도 못 뽑혔다. 다른 먹튀와 다르게 하워드는 성실히 뛰면서 꾸준한 기량을 보였지만 그 기량이 기대보다 너무나도 못해 문제였던것. (90년대란 걸 기억하자. 2016년 샐러리 캡의 대폭 상승으로 인한 연봉 인플레 이후 기준으로 보면 거의 연간 3천만달러 수준이다) 높은 연봉으로 트레이드도 거의 불가능해 위저즈의 경영에 참여한 조던이 트레이드시키자 능력자로 칭송받았을 정도 그리곤 콰미 브라운을 1픽으로 뽑았지 이후 하워드는 그럭저럭 적절한 연봉에 계약해 올랜도, 휴스턴 등에서 롤플레이어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너무 돈을 많이 받아서 그렇지 실력 자체는 제법 있는 선수.[8]
  • 챈들러 파슨스: 이 인물의 진가는 커리어 초창기 역대 최고의 혜자 계약에서 커리어 말기 역대 최악의 창렬 계약으로 드라마틱하게 추락한데 있다. 데뷔팀인 휴스턴에서 수 년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도 2라운더 출신이라 연봉은 고작 90만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시절 가성비의 아이콘, 혜자계약 등으로 칭송받던 파슨스는 이후 댈러스가 거액의 RFA계약을 날려 댈러스로 이적했으나, 전보다 못해진 실력과 시도때도 없이 부서지는 유리몸때문에 댈러스팬들에게 비난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피스로 4년 9,400만달러라는 거액으로 이적했으나 첫 시즌부터 부상과 부진을 겪으며 17시즌 앤드류 해리슨과 함께 공공의 적 취급받았다.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기량이 퇴보해 결국 2019-20시즌을 앞두고 애틀랜타로 쫒겨나듯이 트레이드되었다. 애틀랜타에선 아예 로테이션에서 배제되어 겨우 5경기에 가비지 멤버로 출전해 평균 2.8득점에 야투율 .278이라는 바닥마저 뚫은 경기력을 보여주다 그나마도 2020년 1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향후 선수생활마저 불투명해져졌으며 애틀랜타는 즉시 파슨스를 방출했다. 참고로 이 마지막 시즌에 파슨스가 수령한 연봉이 무려 2,500만달러가 넘는다.(...)
  • 켐바 워커: 19-20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걸로 모자라 개막하기전에 부상까지 당해버렸으며 부상 복귀후에도 전혀 돈값을 못하고 있다. 이후 저니맨으로 전락했으며 이팀 저팀에서 바이아웃으로 방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코비 브라이언트: 전성기에서 살짝 내려온 시점에서도 실력과 마케팅 측면에서 가치가 확실해 돈값은 해주는 선수였다. 하지만 12-13시즌에 큰 부상 이후 14시즌에도 거의 못 뛰고 15시즌에는 아예 경기력이 폭망하면서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가 되었다. 사실 실력 자체가 엉망인건 아닌데 난사하는 플레이스타일이 가장 큰 문제. 리그에서 가장 슛을 많이 쏘는데 야투율은 37%정도이며 팀은 바닥을 기고 있으며 실책도 많다. 해당 시즌 2,350만 달러로 리그 1위의 연봉을 받고 있단 걸 생각하면 어지간히 잘하지 않는 이상 먹튀이며, 게다가 다음 시즌도 2,500만 달러로 계약이 되어있어 한동안은 먹튀소리를 피하기 어려울듯. 안습인건 코비가 큰 부상에서 회복한 것, 19년차 노장이기 때문에 이런 기량 하락이 충분히 예상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레이커스가 미쳐서 이런 거액을 제시한건 아니고 프랜차이저에 대한 예우긴 하지만...상상 이상으로 기량이 너무 떨어졌다. 게다가 이건 나이 먹고 다쳐서 실력이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올라갈 여지도 별로 없다. 결국 계약 종료해에 은퇴발표 후 사실상 팀은 탱킹하는 가운데 시즌내내 은퇴 투어를 돌았다.
  • 클레이 탐슨: 2018-19시즌 막판에 전방 십자인대 파열을 받고 시즌아웃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탐슨의 복귀 후 기량에 대한 믿음와 그동안 해준게 얼마인데의 심정으로 팀의 1옵션 선수가 아님에도 당시 기준 NBA 역대 계약 규모 3위에 해당하는 5년 190M에 달하는 초대형계약을 줬지만, 2019-20시즌에도 재활로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이후 오프시즌에는 연습중에 아킬레스건 파열을 당하면서 2020-21시즌도 통으로 날려먹으며 2년간 한경기도 안뛰고 80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수령해갔다. 저 중 한가지 부상만 당해도 치명적인데 십자인대와 아킬레스건 둘 다 파열된 탐슨은 재활 후에 복귀한다고 해도 기량하락이 불가피하다. 여러모로 향후 전망도 안좋은 상황. 실제로 복귀 후 첫 시즌은 부상 경력을 고려하면 양호한 편이었으나, 복귀 2년차부터 효율이 매우 안좋아지며 골스 팬덤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 티모페이 모즈고프: 클리블랜드 스속으로 15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을 일으키킨 했으나 그 이후 주전급에서도 밀려나 하락세에 머물던 선수였는데, 레이커스가 뜬금 4년 6,400만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질렀다! 그래서 NBA 커뮤니티에선 연봉으로 환산된 '16m=1모즈' 라는 새로운 화폐단위로 희화화했을 정도로 정말 이 계약은 뜬금없는 계약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레이커스가 기대한 면모는 하나도 못보이고 돈이나 퍼먹다가 쫒겨났다.
  • 히도 터콜루: 일명 터키조던, 올랜도에서 준수한 외곽슛과 리딩까지 겸비한 S급 다음가는 포인트 포워드로 이름날리면서 09르브론의 클블까지 격침시키고 NBA파이날 진출에 기여한 선수였다. 그러나 토론토로 온 뒤 당시 내외곽을 넘나들면서 플레이하던 보시와 바르냐니와 공격 지역이 겹치고 수비에서 구멍이 되면서 먹튀로 전락했고 설상 가상으로 랩터스 팬들과 척까지 지게 되면서 1년만에 쫒겨나듯 피닉스로 이적후 수비에서의 약점과 공격에서의 노쇠화가 드러나면서 먹튀가 된다. 거기에 2013년에는 약물까지 걸리면서 출장정지까지 당했다.
[1] 사실 김태술의 암흑기는 13-14시즌 후반기부터 예견되어 왔다. 이미 그 이전부터 만성 장염에 시달리면서 근육량 관리에 애를 먹은 것도 모자라 무릎 부상, 체력 부족 게다가 부친의 별세로 인해 피지컬, 멘탈에 급격한 난조를 겪어 리딩능력 상실, 득점력이 전반기에 비해 1/2가량으로 줄었고, 모든 지표에서 하향세 폭이 컸다. 이후 최하위를 기록할 뻔한 암울한 상황에서 그나마 양희종이 폭발하여 꼴찌는 면한 거다. 하지만 14-15시즌은 모든 정신을 새로이 한 입단 때, 그리고 이후 보여줬던 몸상태로 보아서 정상적인 멘탈,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먹튀짓을 했으니 훈련이나 개인 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건 불보듯 뻔한 것. 특히 6억이라는 거액을 받고 이적해 왔으면 못할 경우 전주 팬들한테 어떠한 쌍욕을 들을지 모른다. 김민구를 두둔, 네티즌들과 충돌하며 행실에 문제를 일으킨 추승균(감독시절 한정), 그리고 그 범죄행위의 당사자 김민구와 함께 금지어. 포인트 가드 6년 주기설의 원조인 삼성 이상민 감독과의 궁합은 잘 맞아 서울 삼성이 한때 13승 3패로 리그 1위를 달리게 하는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후 또다시 부진에 빠졌고 심지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인삼공사가 2라운드에서 뽑은 신인가드 박재한한테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다시 원상복귀된 모습을 보이면서 먹튀라고 까이고 있다.이후에 원주 DB 프로미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2] 오죽하면 16-17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당시까지 악명높았던 김승기 감독을 4쿼터 마지막에 사용할 작전으로 어떤 걸 쓸지를 놓고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을 정도. 그리고 양희종의 이 제안을 수용한 결과, 안양 KGC가 통합 우승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3] 2001-02 시즌에 첫 우승을 하였다.[4] 정확히는 선수 1명씩 더 포함된 2:2 트레이드.[5] 하지만 이 최악의 먹튀시즌은 파슨스의 16-17시즌부터 행각에 의해서 경신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6] 그런데 정작 닉스는 그 사면룰을 앨런 휴스턴이 아닌 제롬 윌리엄스에게 행사했다. 물론 조만간 휴스턴이 은퇴할 것이라 여겨 그렇게 한 것이긴 하다.[7] 2016년 기준으로는 샐러리 캡이 대폭 인상되면서 왠만큼 실력 있는 선수들은 2천만, 심지어 3천만까지 넘기는 등 기준이 대폭 항샹되어 더 이상 거액이라고 볼 수 없는 연봉. 그러나 당시로서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계약이었다. 이 계약 끝날때까지 해마다 리그 고액연봉자 순위를 내면 매번 다섯 손가락 안에 하워드가 들어갈 정도.[8] 여담이지만 바로 1년뒤 워싱턴보다 작은 서부의 한 스몰마켓에서 하워드처럼 2년만에 올스타에 뽑히고 하워드보다 더 어린 파워포워드에게 하워드보다 더 큰 액수의 거대계약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 도박은 하워드와 달리 대성공을 거둬 이 선수는 역대급 선수로 성장해 소속팀의 황금기를 이끈다. 이 선수의 이적 이후 이 팀은 10년 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었다. 바로 케빈 가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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