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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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룬 항구의 전경. 6세기 중반의 현지 주교 스테파노스를 기리는 성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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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조명을 끄지 않는 전통시장 (수크 / 바자르)

1. 개요
2. 역사
2.1. 중세
2.2. 근대


1. 개요[편집]


아랍어: البترون
아람어: בִתרוֹן
영어, 불어: Batroun

레바논 서부의 해안 도시.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20km, 비블로스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4만 5천명으로, 대부분 기독교도이다. 마론파 가톨릭,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순으로 많다. 고대 페니키아 시절부터 항구로 이어져 3천년 역사를 자랑하고, 유적들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 덕에 남쪽 해안에는 리조트들이 모여 휴양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바트룬은 북부 레바논의 주요 관광 도시 중 하나이다. 인근 과수원 덕에 질좋은 과일이 공급되며, 해변 카페에서 파는 신선한 레모네이드가 유명하다. 동북쪽에는 하마트 공군 기지가 있다.

2. 역사[편집]


파일:바트룬 방파벽.jpg
페니키아 시절 해안에 세워진 방파벽

기원전 14세기 아마르나 서신에서 바트루나로 언급될 정도로 유서가 깊다. 전설에 따르면 티레의 국왕 이소바알 1세가 세운 도시라 한다.[1] 그리스, 로마 시기에도 '보스트리스'라고 지도에 표기될 정도로 도시 규모가 유지되었다. 동로마 제국기에는 '테오프로소폰'이라 불렸고, 551년 베이루트 대지진 당시 해일이 덮쳤다. 파괴를 겪고 쇠퇴한 다른 페니키아 도시들과 달리, 바트룬의 경우 거대한 파도로 반도의 일부가 움푹 파이며 자연 항만의 입지 조건이 생기는 이점을 얻었다.

2.1. 중세[편집]


파일:메슬리하 .png
십자군 ~ 파크르 앗 딘 2세 시기에 세워진 메세일하 성채 (قلعة المسيلحة). 도시 동북쪽 2km 지점, 자우즈 강을 막아 만든 저수지 앞에 있다.

7세기 이슬람 정복 후에도 기독교 도시로 유지되었고, 아랍식으로 바트룬이라 불렸다. 10세 후반 동로마 제국의 수복 후 '페트루니온'이라 불렸고, 그리스 정교회 주교좌가 설치되었다. 1104년 십자군이 점령하여 트리폴리 백국의 바트룬 영주령에 편성되었다. 이후로 2세기 가까이 십자군 지배 하에 있다가, 1289년 트리폴리 함락 당시 맘루크 왕조령이 되었다.


2.2. 근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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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기에 세워진 마카아드 엘미르 (에미르의 옥좌) 유적

오스만 제국기 바트룬은 레바논 주의 일개 면에 해당하는 카자의 치소였고, 마론파 안티오크 대주교에 속한 주교좌가 있었다. 17세기 레바논 독립을 시도한 에미르 파크르 앗 딘 2세는 바트룬을 군사 거점 중 하나로 삼았다. 1999년 바트룬 주교구는 수석 주교구로 승격되었다.

[1] 다만 그는 기원전 10세기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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