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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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시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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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1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4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7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8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2001
2004
2007
2008





밀워키 브루어스 등번호 15번
제프 허슨
(1997)

벤 시츠
(2001~2008)


짐 에드몬즈
(2010)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15번
라이언 스위니
(2008~2009)

벤 시츠
(2010)


라이언 스위니
(201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30번
윌킨 라미레즈
(2011)

벤 시츠
(2012)


토드 커닝햄
(2013)





파일:Ben_Sheets_Milwaukee_Brewers.webp

벤 마이클 시츠
Ben Michael Sheets

생년월일
1978년 7월 18일 (45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
출신학교
루이지애나 대학교 먼로 캠퍼스
신체
185cm / 88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0번 (MIL)
소속구단
밀워키 브루어스 (2001~200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마이너 리그 시절
2.3. 메이저 리그 시절
3. 피칭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우완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세인트 아만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루이지애나 대학교 먼로 캠퍼스에 진학한다. 고교 시절까지 야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하였지만 대학 진학을 계기로 야구에만 전념했다. 2학년 시즌에 14승 1패를 거두는 한편 루이지애나 공대와의 경기에서 한 경기 20탈삼진을 뺏는 맹활약을 하여 전미 퍼스트팀에 선정됨과 동시에 사우스랜드 컨퍼런스 MVP를 수상했다. 이러한 호성적을 바탕으로 1999년 메이저 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지명되어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했다.


2.2. 마이너 리그 시절[편집]


입단 후 마이너에서 경험을 쌓아가던 중, 2년차가 되가던 2000년 미국 야구 대표팀의 자격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했다. 예선전에서는 일본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을 거두며 승리를 거뒀고, 결승전에서 쿠바를 상대로도 9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대회에서 3경기 22이닝 ERA 0.41을 기록하며 짠물 피칭의 진수를 선보였고, 미국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당시 대표팀 2선발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로이 오스왈트와 함께 차기 메이저를 이끌어갈 유망주로서의 모습을 전세계의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5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3. 메이저 리그 시절[편집]


올림픽과 마이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2001년을 앞두고 메이저에 콜업되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했고, 4월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뤘지만 6이닝 5실점으로 부진한 피칭을 보이며 패배했고, 4월 11일 다시 한번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경기를 치러 6이닝 3실점으로 좋은 피칭을 보여줬지만 타선이 고작 1점밖에 내지 못하고 패배해 2경기 12이닝 0승 2패 ERA 6.00을 기록했고, 결국 마이너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4월 28일 콜업되어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상대로 6.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첫 선발승을 거두었고, 이후 6월에만 6경기 38이닝 5승 0패 ERA 3.55를 기록하며 월간 최우수 신인 선수에 뽑혔다. 6월까지 15경기 94이닝 10승 4패 ERA 3.35를 기록하며 신인왕 수상이 가시화되었고, 팀 사상 최초로 신인 선수가 올스타에 뽑히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7월부터 급격히 폼이 떨어졌고, 시즌 최종 성적 25경기 151.1이닝 11승 10패 ERA 4.76 94탈삼진을 기록하며 전반기를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이지만 신인왕 투표 2위에 오르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1]

2002년에는 34경기 216.2이닝 11승 16패 ERA 4.15 170탈삼진을 기록하며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팀타선이 워낙에 막장이라 리그 최다패의 멍에를 썼고, 2003년은 7월까지 24경기 162.2이닝 10승 7패 ERA 3.88의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8월과 9월에 10경기 58.1이닝 1승 6패 ERA 6.02로 시즌 막판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며 최종 성적 34경기 220.2이닝 11승 13패 ERA 4.45 157탈삼진을 기록했다.

2004년에 드디어 그의 포텐셜이 폭발해 비록 답이 없는 타선 덕분에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지만 34경기 237이닝(리그 3위) 12승(다승 24위) 14패 ERA 2.70(리그 3위) 264탈삼진(리그 2위) WHIP 0.983(리그 2위)를 기록했다. 작년에 그를 괴롭혔던 허리 디스크도 한결 나아지며 90마일대 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이 위력을 더했다. 또한 칼같은 제구력도 물이 올라, 26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고작 32개의 볼넷밖에 허용하지 않으며 8:1이라는 엽기적인 K/BB를 기록했으며, 5월 16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18탈삼진을 잡으며 팀 내 한 경기 최고 탈삼진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덕분에 밀워키와 4년 3850만 달러로 당시 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2005년부터 그의 몸 곳곳에 이상징후가 생긴다. 시즌 내내 중이염으로 인한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며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해 22경기 156.2이닝 10승 9패 ERA 3.33 141탈삼진을 기록해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의 선발 공백은 팀에게 큰 타격이었다.

2006년에는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해 빠른 시기에 복귀하긴 했으나 3경기만 뛰고 어깨건염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으로 가게 되면서 최종 성적 17경기 106이닝 6승 7패 ERA 3.82 116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을 끝마쳤다. 부상으로 인해 2004년에는 평속 97마일에 준하던 패스트볼도 94마일대로 떨어지며 많은 팬들의 우려를 샀지만 그 와중에도 탈삼진 능력과 제구력은 여전하여, 106이닝 동안 116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11개만의 볼넷을 내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7년 다시 부활에 성공해 개막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8월까지 24경기 141.1이닝 12승 5패 ERA 3.82 106탈삼진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8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마감했고, 2008년에도 31경기 198.1이닝 13승 9패 ERA 3.09 158탈삼진을 기록해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즌 막판에 팔꿈치 인대 무상을 입으며 결국 포스트 시즌에는 결장했다.

2008년을 끝으로 FA 권한을 취득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되며 향후 1년 이상의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는 타입 A FA로, 그를 데려가는 팀은 원 소속팀 밀워키 브루어스에게 신인 드래프트 픽을 넘겨야 했기 때문에 많은 팀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2009년은 1년동안 재활에 매달리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돼야 하는, 부상에 걸려도 참 재수없는 타이밍에 걸리고 말았다.[2]

결국 2010년 1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1년 1000만불의 FA 계약을 맺었다. 선발진의 강화가 시급했던 오클랜드는 팀의 빠듯한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시츠를 데려오는 모험수를 뒀다.[3] 항상 부상을 달고 살았던 그였기에 그를 영입한 빌리 빈 단장의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하였고, 그 의구심은 현실이 되어 최종 성적 20경기 119.1이닝 4승 9패 ERA 4.53 84탈삼진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보여줬다.

게다가 팔꿈치 인대가 더욱 악화되어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2010년 8월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을 것을 발표해 기나긴 재활에 들어가 오랜 재활 끝에 2012년 7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에서 두 번의 선발 등판을 거치고 7월 15일 뉴욕 메츠로 상대로 2년만의 복귀전을 치뤘고, 최고 구속은 150km로 전성기보다 떨어졌지만 6이닝동안 실점하지 않고 2안타만 내주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여 성공적인 복귀전을 이뤄냈다.

이후 5경기까지 5경기 32이닝 4승 1패 ERA 1.41의 좋은 피칭을 이어갔지만 곧바로 3연패를 당하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8월 2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 이후 어깨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몇 주 쉬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완쾌되지 않았고, 결국 은퇴를 결심하면서 10월 3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끝내며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커리어를 마감했다.


3. 피칭 스타일[편집]




투구폼. 구종은 커브로, 해당 경기에서 9이닝 18K를 기록했다.구속은 84마일(135.1)

전성기 시절 평균 94마일 최고 99마일에 달하는 패스트볼와 결정구인 80마일 중반 파워 커브를 중심으로 삼진을 많이 잡아냈다. 전성기였던 2004년의 경우 237이닝 264K로 K/9가 10이 찍혔을 정도. 투구 비율은 포심 53.6% 커브 32.6% 싱커 7.2% 스플리터 5.6%.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1
MIL
25
11
10
0
0
151⅓
4.76
166
23
48
5
94
1.414
90
1.1
0.4
2002
34
11
16
0
0
216⅔
4.15
237
21
70
10
170
1.417
98
3.5
2.3
2003
34
11
13
0
0
220⅔
4.45
232
29
43
6
157
1.246
97
3.2
1.8
2004
34
12
14
0
0
237
2.70
201
25
32
4
264
0.983
162
7.9
7.3
2005
22
10
9
0
0
156⅔
3.33
142
19
25
2
141
1.066
128
3.1
2.8
2006
17
6
7
0
0
106
3.82
105
9
11
2
116
1.094
119
3.7
1.7
2007
24
12
5
0
0
141⅓
3.82
138
17
37
1
106
1.238
116
2.1
2.5
2008
31
13
9
0
0
198⅓
3.08
181
17
47
1
158
1.150
137
4.3
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0
OAK
20
4
9
0
0
119⅓
4.53
123
18
43
0
84
1.391
91
0.8
0.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2
ATL
9
4
4
0
0
49⅓
3.47
52
6
13
1
35
1.318
116
0.2
0.2
MLB 통산
(10시즌)
250
94
96
0
0
1596⅔
3.78
1577
184
369
32
1325
1.219
113
30.0
23.2



5. 여담[편집]


  •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앤디 시츠[4]와는 사촌 관계이다.

  • 사실 2004년 사이 영 상 투표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랜디 존슨은 억울하게 패한 2인자로 두고두고 회자되기라도 하지 시츠는 리그 정상급 성적을 올리고도 사이 영 상에서 단 한 표밖에 못 받았으며, 이 때문에 현재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 올림픽 대표 시절 라이벌이었던 로이 오스왈트가 2006년까지 98승 47패 ERA 3.05를 기록하며 61승 69패 ERA 3.83의 시츠를 완벽히 추월했고, 특히 오스왈트와의 세 번 맞대결에서도 3전 전패해 시츠의 천적으로 군림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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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이 해의 신인왕은 세인트루이스의 한 노안 유망주에게 돌아갔다. [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애덤 웨인라이트는 부상으로 한해 쉬고도 1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다시 가치를 증명하고 장기 계약을 따내며 말뚝을 박았지만 시츠의 경우는 FA를 앞두고 걸린 것이니 참으로 불행한 경우다. 브랜든 웹처럼 돈 받으면서 1년 쉬고 FA가 되었다면 차라리 좀 나았다. [3]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1999년 드래프트 당시 9번 픽을 소유했던 오클랜드가 시츠를 지명하지 않고 배리 지토를 지명한 덕분에 10번 픽을 소유했던 밀워키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4]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었다. 요미우리vs한신 전에서 이승엽의 발을 밟은 행동으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졌다. 여담으로 이 선수는 자기 타석 때 볼카운트 1-2 상황에서 심판이 볼을 선언했으나 선수 스스로는 루킹삼진이라 생각해 분노하여 배트를 내던진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