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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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기록상으로 확인된 서고트족 최초의 지도자. 콘스탄티누스의 고트족과 사르마티아 원정에서 패배해 로마의 봉신이 되었다.
2. 행적[편집]
5~6세기의 동로마 제국 수도자이자 정치가, 작가인 카시오도루스를 비롯한 몇몇 고대 기록에 그의 행적이 전해진다. 그는 다키아 트란실바니아에 거주하는 고트족의 지도자로, 329년 다뉴브 강을 건너 로마 제국의 모에시아와 트라키아 속주를 침략해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출격해 이들을 격파하고 고티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받았다. 331년, 그는 사르마티아인들을 침략해 복속시킨 뒤 로마 제국에 속한 발칸 반도로 쳐들어와서 현지 로마군을 격파하고 각지를 황폐화시킨 뒤 돌아갔다.
332년 3월 또는 4월 초,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를 위시한 대규모 야전 기동대가 다뉴브 강에 새로 건설된 석조 다리를 건너 고트족의 영역으로 쳐들어갔다. 이들은 고트족 마을들을 불태우고 가축들을 포획했으며, 고트족이 쌓아뒀던 식량을 모조리 빼앗았다. 고트족은 급히 일찍이 복속시켜뒀던 사르마티아인들의 영역인 크림 일대로 도피했지만, 로마군이 거기까지 쫓아온데다 4월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추워서 상당수가 얼어죽자 어쩔 수 없이 로마군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 4월 20일, 양군은 오늘날 불가리아 바르나 인근에서 격돌했는데, 전투 결과는 로마군의 완승이었다. 오리고 콘스탄티니 칙령에 따르면 10만에 달하는 고트족이 기아와 추위로 죽었고 다수가 전사하거나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로마 황제에게 평화를 청했고, 콘스탄티누스는 그의 아들인 아오리크를 포함한 고급 인질을 받고 제국에 매년 공물을 바쳐야 하며, 40,000명의 병력을 로마군에 공급해 제국 국경 방비에 협조하게 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리하여 고트족은 제국의 봉신이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는 원로원으로부터 고티쿠스 막시무스 칭호를 두 번째로 받았으며, "Debellatori gentium barbararum(야만인 근절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추가로 받았다. 이후 아리아리크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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