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르 스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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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 슈니르(אשר שניר / Asher Snir : 1942. 2. 12~1986. 10. 5)

1. 소개
2. 출생
3. 6일 전쟁의 활약
4. 최초의 더블 에이스
5. 승승장구
6. 증언


젊었지만 아주 조용한 성격에다 말수도 거의 없었죠. 하지만 훈련을 받으면서 숨겨진 재능이 드러났어요. 뭐든지 간에 동기들보다 빨리 배웠고 그가 6일 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나갈 때는 이미 최고의 파일럿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비행학교의 동기가 전투에서 죽자 눈물을 보일 만큼 인정 많고 심약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죠.

- 랜 로넨



1. 소개[편집]


대부분의 항공 애호가에게도 매우 낯선 이름으로 들리는 아슈르 슈니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실전 경험을 가진 공군으로 일컫는 이스라엘 공군 뿐만 아니라, 중동전쟁을 통틀어 4위, 어쩌면 3위의 격추 기록을 보유한 전투기 조종사였다. 아슈르 슈니르는 이스라엘 공군이 처음 배출한 더블 에이스로, 당대에는 명성을 떨친 제트 에이스였지만 "하늘의 기사"라는 별명과는 달리 평소 매우 내성적인 성품에다 더 활약하기 전에 으로 사망해 그 이름은 잊혀져 가고 있다.


2. 출생[편집]


독일계 유태인이었던 그는 1942년 2월 12일에 아버지 일라이저 쇤펠트(Eliezer Schoenfeld)와 어머니 레이첼 쇤펠트(Rachel Schoenfeld) 사이에서 팔레스타인유태인 정착촌에서 태어났다. 공군에 입대한 그는 다쏘 우라강으로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고 1967년 6월에 6일 전쟁이 개전될 무렵에는 박쥐 비행대로 불리던 119스쿼드론에서 최신예 전투기 다쏘 미라주를 모는 젊은 파일럿이었다.


3. 6일 전쟁의 활약[편집]


국경을 넘는 공습 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출격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조종사들과는 달리 아슈르 소위는 북부 국경 지역에서 전투공중초계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첫날에 시리아 공군MiG-21 전투기를 DEFA 기관포로 1기 격추시켰고, 전쟁의 마지막 날에는 이집트 공군의 MiG-21을 2기나 한꺼번에 격추시켜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활약상은 전세계에 대서특필되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소련제 초음속 전투기를 3대나 떨군 조종사에게도 언론의 촛점이 맞춰졌다.


4. 최초의 더블 에이스[편집]


그후로도 중동에는 수 차례의 분쟁이 이어졌고, 이스라엘 공군과 아랍 공군간에는 간헐적인 공중전이 끊이지 않았다. 1970년 3월 27일, 이제는 대위로 진급한 아슈르 슈니르는 그날 오전 출격에서 동시에 2대의 MiG-21을 격추시켰고, 이로써 이스라엘은 초음속 전투기 시대 이후 처음으로 10대를 격추시킨 더블 에이스를 배출하게 된다. 아슈르 대위는 그후로 미라주 전투기 대신 막 새로 지급받은 F-4 팬텀 II 전투기를 타면서 단좌기와는 이별을 고하게 된다.

그해 7월 30일에 욤 키푸르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베카 고원 상공에서 다시 중동 연합공군을 맞아 싸운 아슈르는 또다시 MiG-21 한 대를 기관포 한발 쏘지 않고 저고도 기동으로 추락시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격추한 것은 1973년 10월 17일로 항법사 카츠 케임(KATZ Chaim)과 함께 비행하며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로 잡은 MiG-21이었다.

아슈르 스니르는 그때까지 14대의 단독 격추, 1대의 공동 격추로 14.5킬로 집계되지만, 당대에는 미확인 격추까지 포함시켜 17대로 알려져 있었다. 그 중에서 10대는 초음속기인 MiG-21이었고, 4.5대는 MiG-17이었으며 모든 격추를 통틀어 미사일로 잡은 것은 4기에 나머지는 전부 근접 공중전에서 기관포로 잡은 것이다.


5. 승승장구[편집]


이스라엘 공군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능력과 성과 위주로 진급이 이루어진다.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으면서 삼면이 적으로 둘싸인 그들로서는 효율성과 실용주의을 중시하는 풍토가 일찍부터 자리잡은 탓에, 하급 장교들은 상관의 지휘 능력과 경험을 존중하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복종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조종사 중에 전투조종사로 불리던 아슈르 슈니르 역시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는 지상에 있을 때에도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적기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구파 장교이기도 했다. 이런 복무 태도 때문에 부하들은 평소에는 마치 수줍음 많은 아가씨처럼 말하는 아슈르를 신뢰했으며,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영감과 창의력이 번뜩이는 지도자였다.

이러한 모습은 동기 조종사들에 비해 군계일학으로 비쳤고 빠르게 진급을 거듭했다. 먼저 그는 자신의 부대인 제119비행대대장을 역임했고 그 후에는 공군 아카데미의 교장을 지내다가 하체림(Hatzerim) 기지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그다음 IAF 작전참모장을 거친 그는 공군 부사령관까지 올라갔다. 아마도 그렇게 일찍 병사하지 않았더라면 공군 사령관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권위있는 항공 역사가로 알려진 마이크 스픽(Mike Spick)은 자신의 책을 통해 아슈르 슈니르를 1차 대전의 영웅 붉은 남작이나 RAF더글러스 베이더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6. 증언[편집]


비행 아카데미 교장 시절, 슈니르는 새파란 생도들에게도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교장이면서도 정기적으로 직접 지휘비행을 이끌었는데, 비행 도중에 생도들의 긴장을 불어주기 위해 곧잘 문학적인 표현을 써가며 랜드마크를 가리키거나 비행 그 자체를 즐기라고 말하곤 했다. F-16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현재는 이스라엘 국영 항공사 엘알에서 기장으로 근무하는 마크 베르그만(Mark Bergman)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나는 생도 자격으로 남쪽으로 야간 비행을 했습니다. 비좁은 조종석에 갇혀 계기에 의존해 칠흑 같은 밤에 비행하는 건 보통 배짱이 필요한 일이 아니지요. 특히 중요한건 비행 현기증(Vertigo)을 방지하는 겁니다. 바깥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명확한 시각 참조점이 없으면 방향 감각을 잃고 심지어는 땅과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데 아주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수천 미터 상공이라 해도 음속에서는 겨우 몇 초면 지상에 충돌하기에 충분하거든요. 신참인 전 계기와 나침반을 뚫어져라 보면서 좌표, 경과 시간, 풍향, 대기 속도 같은 비행정보를 머릿속으로 확인하고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쩔쩔 매고 있는데, 함께 날던 슈니르 교장이 무선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마크, 우리는 안정되게 컨트롤을 취하고 있어. 모든 걸 떠나 잠시 주위를 둘러 봐. 베르그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세요."


"나는 캐노피 너머로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봤고,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지요."

"오늘은 달빛이 춤을 추고 있네.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인걸?"


"온 신경을 계기와 항법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물론 그런 걸 볼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그리고 슈니르 교장이 말했습니다."

"그냥 앉아서 잠시 이 순간을 즐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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