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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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84년

안자르
عنج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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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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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njar_vu_du_palais.jpg
유적지 전반부
파일:Anjar,_Lebanon,_Ancient_ruins_of_the_city_of_Anjar (1).jpg
왈리드 1세 궁전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안자르
영어
Anjar
아랍어
عنجر
국가·위치
레바논 베카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4년
등재기준
(iii)[1], (iv)[2]
지정번호
293

파일:Anjar_Church,_March_2017_1.jpg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당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현대


1. 개요[편집]


아랍어 عنجر
아르메니아어 Այնճար
영어 Anjar

레바논 동부의 유적 도시. 바알벡에서 남서쪽으로 35km, 자흘레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베카 협곡 남단의 안티 레바논 산맥의 기슭에 자리한다. 산맥 너머의 시리아 국경과 불과 3km 거리로 가깝지만, 도로가 직결된 것은 아니라 국경도시 느낌은 나지 않는다.

709-10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왈리드 1세의 아들 알 압바스가 세운 도시로[3], 얼핏 보면 로마 유적지라 착각할 정도로 기존의 동로마 양식을 철저히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8세기 이후 천년 이상 버려져 있던 안자르는 1939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 지방에서 이주된 아르메니아인들이 정착하여 현재는 인구 2400의 작은 도시로 남아있다.

2. 상세[편집]


파일:2560px-Anjar_-_Cardo_vu_du_nord_2.jpg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카르도 회랑의 유구

직사각형의 도시는 동서 350m, 남북 385m의 성벽으로 둘러져 있고 4개의 문과 40개의 성탑이 있다. 내부는 너비 10m의 카르도 (남북대로)와 데쿠마누스 (동서대로)로 구획되어 있고, 그 지하에는 하수도가 놓여 있다. 도시의 남동부와 동북부에는 714-15년에 세워진 궁전 유적이 남아있다. 그중 전자의 경우 2층 규모의 아치가 남아있어 가장 유명하다. 도시의 북부에는 로마식 공공 목욕탕 (하맘) 유적이 남아있다. 건물들의 외벽은 벽돌과 돌을 번갈아 쌓는 내진설계가 적용되었기에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버려져 있었음에도 상당 부분 외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3. 역사[편집]


미완성 상태의 왕실 도시로 유지되던 안자르는 3차 피트나 중인 744년,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마르완 2세 간의 전투 후 파괴되어 버려졌다. 1623년에는 이곳에서 파크르 앗 딘 2세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하고 레반트 지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3.1. 현대[편집]


천년 이상 버려진 유적과 요새만이 남아 전시에나 군 주둔지로 쓰이던 안자르는 1939년, 프랑스 위임통치령 시리아에서 튀르키예로 넘겨진 하타이 (이스칸데룬 산작) 지방의 무사 다그에서 아르메니아인 수천여명이 이주해오며 재차 도시화되었다.[4] 정착에 있어 아르메니아계 석유 재벌 칼루스트 굴벤키안의 후원이 있었다.

지금도 주민들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들이고, 무사 다그에 있던 6개 마을들을 재현하여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1950년대에는 안자르에 앞서 1920년대에 티레의 엘바스 난민촌에 정착했던 아르메니아 피난민들이 안자르로 유입되었다.

1980년대 레바논 내전 당시 개입한 시리아 군은 베카 협곡의 거점 중 하나로 안자르에 주둔하였다. 1984년에는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때 4천이 넘던 인구는 내전기와 그 후에 구미 등지로의 이민으로 인해 2천명 대로 감소한 상태이다. 코로나 발병 직후 안자르 시는 강력한 방역 조치를 통해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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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혹은 왈리드 1세가 직접 세웠다고도 한다[4] 다만 일부는 바크플르 마을에 남아 현재까지도 튀르키예 내의 유일한 아르메니아인 마을로 남아있다. 인구는 약 140명 규모로, 2023년 지진 시에 다행히 사망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