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이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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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루마니아 알바 주(Judeţul Alba)의 주도.
헝가리 역사와 루마니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진다.
2. 언어별 표기[편집]
3. 역사[편집]
로마 제국의 아풀룸(Apulum) 유적이 있던 곳으로 10세기 경 이슈트반 1세에 의해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슈트반 1세는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이곳에 에르데이 지역의 대주교구를 설치했다. 헝가리 왕국의 장군 후녀디 야노시는 이곳에 대규모 성채를 짓고 이를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에 맞서 항전할 준비를 했고 죽어서도 이곳의 대성당에 묻혔다.
1542년 헝가리 왕국이 삼분할되면서 동헝가리 왕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헝가리인의 자치공국으로 들어선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베틀렌 가보르 치하에서 여러 학교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제2차 빈 공방전이 실패하고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패권다툼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1690년 오스트리아군에게 함락당했고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며 합스부르크 제국 산하 헝가리 왕국으로 재합병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레오폴트 1세는 헝가리인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자 독일 색채가 강한 헤르만슈타트로 공국의 수도를 옮겼고, 이후 오스트리아군의 병영으로 사용되며 몰락했다. 요제프 2세 시기에 루마니아인 농민 봉기가 벌어져 주모자 중 하나였던 클로슈카(Cloșca)는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1868년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재편되어 헝가리가 부활하면서 얼쇼페헤르 주(Alsó-Fehér vármegye)의 주도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직후인 1918년 12월 1일 트란실바니아 전역의 루마니아인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만장일치로 루마니아와의 통합을 선언했다.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되며 루마니아 왕국으로 귀속되었고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는 1922년 이곳에 행차하여 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를 통합한 통일 루마니아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하는 한편 루마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자 작위를 알바이울리아 대공(Mare Voievod de Alba-Iulia)으로 명명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헝가리가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빼앗았을 때 이곳은 루마니아 왕국에 그대로 잔존했다. 2012년 미하이 1세의 딸 마르가레타 왕세녀가 트란실바니아 병합 9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기도 했다.
4. 인구와 사회[편집]
인구는 2011년 기준 약 6만 3천 여 명. 95.3%가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루마니아인으로 헝가리인은 집시보다도 적은 1.9%에 불과했다.
1910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인구조사에서는 약 11,000여 명의 인구 중 헝가리인이 45%, 루마니아인이 44.51%, 6.82%가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이었다.
5. 명소[편집]
요새 내부에 대부분의 볼거리가 몰려있으며 후녀디 야노시, 베틀렌 가보르 등을 비롯한 대다수의 트란실바니아 공국 공작들이 안장된 대성당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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