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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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일본 제국 ]][[틀:국기| ]]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폐지된 군 | | 양천군 陽川郡 Yangcheon County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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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의 양천군 관할 구역 | ||||||
상위 행정구역 | 경기도 | |||||
폐지 이후 | 금포군 |
1. 개요[편집]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금포군(후에 김포군으로 독음이 변경됨)으로 통폐합된 경기도 소속 행정구역으로, 1962년 이후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서구(오곡동, 오쇠동 제외)와 양천구, 영등포구 양화동 및 양평동 일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이 지역이 수도(한성, 경성)와 별개의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던 것이다.
상단 지도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성과물로써 학술 연구를 통해 비정된 것이다.
2. 역사[편집]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다. 757년에 남북국 시대 신라 경덕왕이 공암현(孔岩縣)으로 개칭했다. 고려 초기인 1018년에 과주(果州, 동시기에 율진군(栗津郡)에서 개칭, 현 과천시 등)에 속한 공암현에서 수주(樹州, 옛 부평군)에 속한 공암현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이후 주군(主郡)이 수주에서 안남도호부, 계양도호부, 길주목(13), 부평부(1310)로 읍호와 읍격이 몇 차례 변경되었다. 1310년에 양천현으로 하였다.
1920년대에 안양천 제방이, 1980~1990년대에 한강변 제방이 축조될 때까지 한강이 범람할 때마다 물난리를 겪었다. 한양으로 천도한 뒤인 조선시대에 조정의 지원을 받는 근거가 되어 사또, 즉 양천현감(또는 양천현령)의 치부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겉은 형편 없어보이나 실상은 알부자인 사람을 양천현감 같다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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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r1223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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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내면(郡內面): 현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마곡동 일대로 행정구역 단위가 현이었을 때에는 현내면(縣內面)이었다.
- 삼정면(三井面): 현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방화동 일대
- 가곡면(加谷面) / 가배곡면: 현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과해동, 내발산동, 외발산동 일대로 1896년에 가배곡면에서 가곡면으로 개칭되었다.
- 남산면(南山面): 현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염창동·화곡동,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양화동 및 양평동 일부 일대
- 장군소면(將軍所面): 현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신정동 일대
1914년에 부군면 통폐합으로 군내면, 남산면, 장군소면이 양동면(김포)으로, 삼정면, 가곡면이 양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4. 기타[편집]
오늘날 김포시 지역과 잠시 같이 묶이게 되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양천은 1988년 양천군 전체가 속한 강서구의 일부가 분리되어 신설된 구에 붙여졌다.
이를 반영한 것으로 양천로, 양천향교역 등이 있다. 이 지역이 김포가 되었다가 다시 서울이 되면서 서울 땅에 김포라는 지명이 붙은 김포국제공항이 있게 되었다.
양천 허씨의 양천이 이 곳이며, 허준의 관향(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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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5. 고전 내용[편집]
- 세종실록 지리지: 양천현
6.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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