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탐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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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탐라국의 성주.
2. 행적[편집]
양호는 탐라 성주로 1266년 고려 원종을 알현했고, 같은 해 12월에 고려의 정연 현석(玄錫)과 함께 원나라로 향했다. 이듬해 1267년 1월 6일, 양호는 원나라 조정에 입조했다. 원나라 기록에서 양호를 백제의 신하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탐라국은 600년도 전인 삼국시대에 백제에 조공했고, 성주들은 좌평의 직함을 사용하기도 했다.百濟遣其臣梁浩來朝, 賜以錦繡有差.
백제가 그 신하 양호를 보내서 입조하니, 수놓은 비단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
『원사』 권6, 지원 4년(1267) 봄 정월 을사.
같은 해에[1] 원나라에 다녀온 다음으로 보이는 시점에, 탐라에서 초적 문행노가 반란을 일으켰다. 양호가 당시 탐라성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長坪。在州西六里。高麗元宗時,文幸奴作難,陳兵于長坪。副使崔托、星主梁浩等討平之。
장평: 주 서쪽 6리에 있다. 고려 원종 때 문행노가 난을 일으켜, 병사를 장평에 주둔시켰다. 부사 최탁과 성주 양호 등이 토벌해 평정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전라도 제주목.
3년 뒤인 1270년 김통정이 삼별초를 앞세워 제주에 침입했다. 『원사』 기록에 따르면 김통정이 양호를 쫓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1272년 원나라의 신하들은 앞서 직접 와서 조공을 바쳤던 양호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 탐라의 반적들을 처벌해야 함을 주장했다. 결국 원나라는 일본 원정에 앞서 고려와 연합해 먼저 삼별초의 난 진압에 나섰다.且耽羅國王嘗來朝覲, 今叛賊逐其主, 據其城以亂, 舉兵討之, 義所先也.
또 탐라국왕은 일찍이 와서 조정에서 황제를 뵀는데, 이제 반적이 그 군주를 쫓아내고 성을 근거로 난을 일으켰으니, 병사를 일으켜 그들을 토벌하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옳습니다.
『원사』 권208, 탐라 열전. 원나라 중서성과 추밀원 신하들의 논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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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지도서』에 따르면 문행노의 난은 원종 8년(1267) 정묘년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