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하노버 가문의 수장.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와 빅토리아 루이제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스 왕비 프리데리케 루이제의 큰오빠이며, 콘스탄티노스 2세와 소피아 왕태후의 외삼촌이다.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사촌동생이다.
2. 생애[편집]
1914년 독일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와 빅토리아 루이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조부모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와 덴마크의 티라였고 외조부모는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다.
태어난 해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독일 제국이 패전하고 제정이 폐지되면서 외할아버지 빌헬름 2세는 황제위에서 폐위되었고, 친할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도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에서 쫒겨났으며,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에서 폐위되었다.
나치 독일 시절에는 다른 독일의 왕족들이나 귀족들처럼 나치 독일의 군사 조직인 슈츠슈타펠에 가담했다. 독소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가 부상을 입어 제대했다.
1951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오르트루트 공녀와 결혼하여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를 포함한 3남 3녀를 낳았고 1980년에 사별했으며 1년 뒤인 1981년에 졸름스라우바흐의 모니카 여백작과 재혼하여 살다가 1987년에 사망했다.
3. 사건사고[편집]
1943년에는 대형사고를 하나 쳤는데 다름 아닌 외사촌형인 후베르투스 폰 프로이센 왕자[1] 의 아내인 마리아 안나 폰 훔볼트 다흐로덴(1916년 ~ 2003년) 여남작과 바람이 나서 사생아를 낳았다.(...) 이후 후베르투스는 마리아와 1943년에 이혼했다. 직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마리아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부모가 뒷목을 잡으며, 만약 마리아와 결혼한다면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박탈시키겠다며 크게 반대했고 결국 결혼하지는 않았다.
한편 마리아와의 사생아인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현재 은행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4. 가족관계[편집]
자세한 내용은 하노버 왕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파일: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의 가족들.jpg
이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오르트루트 공녀[5] 와 결혼해서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후처인 졸름스라우바흐의 모니카 여백작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다.
장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6] 는 현 하노버 가문의 수장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8 00:15:28에 나무위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큰외삼촌 빌헬름 폰 프로이센의 삼남.[2]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다.[3] 1981년 결혼 / 1997년 이혼[4] 라이닝겐 가문의 현 수장,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세자인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의 외손자다.[5]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의 외숙모 알렉산드라 빅토리아(외삼촌 아우구스트 빌헬름의 아내), 팔촌 할아버지인 카를 에두아르트(외할아버지 빌헬름 2세의 사촌)의 아내 빅토리아 아델하이트의 친사촌이다.[6]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의 현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