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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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1세기 동로마 제국 두카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0세와 로마노스 4세의 황후, 미하일 7세의 섭정.
콘스탄티노스 10세와 혼인하여 아들 미하일 7세 등을 낳았다. 남편 콘스탄티노스 10세는 죽기 직전에 군인 정치가가 득세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에브도키아로부터 재혼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 1067년 5월에 사망했고, 에브도키아는 아들 미하일 7세의 섭정이 되었다.
1067년 대규모 유목민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에브도키아는 원로원과의 협의 끝에 유능한 지휘관 중 한 명과 혼인하기로 결정했고, 1068년 1월에 로마노스 4세와 재혼해 그를 황제로 삼고 본인은 그의 황후가 되었다.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의 패배로 인해 1071년 10월에 황제 자리에서 폐위되자 에브도키아는 다시 공동 통치자가 될 뻔했지만 그녀가 언제든지 로마노스 4세와 같은 인물을 또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요안니스 두카스 부제에 의해 이는 저지되어 에브도키아는 수녀원으로 은퇴당했다.
1072년 8월에 사망한 로마노스 4세의 장례를 치러줬고, 미하일 7세의 다음 황제가 된 니키포로스 3세의 결혼 후보자에 올랐지만 성사되지는 못했고, 알렉시오스 1세의 즉위 후에 죽었다.
2. 여제 설[편집]
현대 역사가들은 에브도키아를 단순한 섭정이 아니라 여제로 보기도 한다. 미하일 7세와 통치할 때도 바실리사(황후 또는 여제) 칭호를 유지한 점(유럽의 언어에서는 황후와 여제의 칭호가 동일), 동시대의 미하일 프셀로스가 그녀가 남편을 최고 통치자로서 승계했다고 기록한 점, 아들과 함께가 아니라 단독으로 묘사된 주화가 발견된 점, 금석문에서 '대 여제(Megale Basilis)'로 불리운 점(그냥 '황제(basileus)'였을 미하일 7세와 구별하기 위함으로 추정) 등이 증거로 제시된다. 그녀가 여제라고 볼 경우에는 아들보다 서열이 앞서는 선임 황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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