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정(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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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상세[편집]
호는 청남(晴南), 산은(汕隱)이다. 1897년 대구부 서문로12번지[3] 에서 태어났으며 항일 저항시인 이상화, 교수 겸 체육행정가 이상백의 형이다. 부인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이며, 1928년에 결혼했다.[4]
3. 활동 내역[편집]
큰 동생 이상화가 문학을 통해 항일 투쟁을 했다면, 이상정은 중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다.
1923년 만주로 망명했으며 북만주에서 약 2년 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이후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초청으로 충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항일 독립 운동에 참여했다.
8.15 광복이 된 후에도 상하이의 교민 보호를 위해 귀국하고 있지 않다가, 1947년에 모친상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후 40여 일만인 그 해 10월 27일에 뇌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4. 가족 관계[편집]
- 이상화(1901~1943): 이상정의 둘째 아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 여러 편의 시를 집필한 시인.
- 이상백(1904~1966): 이상정의 셋째 아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체육인, 사학자.
- 이상오(李相旿, 1905~1969): 이상정의 넷째 아우. 수렵가이자 저술가.
- 한문이(韓文伊, 1895~1941): 이상정의 첫째 부인.
- 권기옥(1901~1988): 이상정의 둘째 부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독립운동가.
- 이숙희(李淑熙, 1914.1~1914.12): 이상정과 한문이의 첫째 딸.
- 이중희(李重熙, 1918~1995): 이상정과 한문이의 맏아들. 영남대 교수 재직.
- 이선희(李善熙. 1916~?): 이상정과 한문이의 둘째 딸. 포항에서 양조장을 하는 배씨 집안으로 시집갔다고 한다.
[1] 39세 상(相) 항렬.[2] 이상정의 생년에 대해 1894년#, 1896년, 1897년, 1898년 등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경주 이씨 족보에 기재된 1897년 생을 정설로 본다.[3] 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즉 서문시장 근처였다.[4] 조혼한 첫 부인 한문이가 따로 있다. 권기옥과는 사실상 중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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