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정치인)/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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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맥으로 정치 입문 논란
2. 박근혜와의 2시간 발언 논란
3. 위안부 피해자는 "이해당사자" 발언 논란
4. 군복무 토론 중 태도 논란
5. 문재인 참수 만화 논란
6. 강용석 칭찬 논란
7.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의혹 제기 관련 논란


1. 인맥으로 정치 입문 논란[편집]


2011년 말, 이준석은 19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비대위원으로 영입됐다. 당시 이준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교육봉사단체 배나사 교육장을 찾아와 대화를 나눴던 박근혜 때문에 마음이 움직여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에 입문하는 20대가 한둘이겠는가? 물론 20대 때 대한민국 보수정당에 입문하는 하버드 출신이 한둘일 수는 있지만,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대위원까지 영입은 오바이다.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수첩속 사람들만 기용한다고 알려진 박근혜의 채용방식으로는 전혀 일면식도 없이, 아니 일면식만을 가지고 비대위원으로 영입하지 않는다. 아니 이건 어느 정당이고 마찬가지이다.

그러던 중 박근혜의 전 비서실장이던 유승민과 이준석의 아버지가 친구 사이라고 하며, 이 인맥으로 정당에 천거되었을 거란 추측이 많았다. 당시 강용석 등이 인맥빨로 정치 입문했다고 의혹제기에 이준석은 “사석에서 유 의원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어떻게 아버지와 유 의원이 친구가 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했고 추후 이준석이 유승민 및 유승민의 딸 유담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왔던 것이 자연스럽게 밝혀지며 의혹의 신빙성이 더했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로는 대학교 1학년 재학 시절, 유승민 의원실에서 2004년 6월부터 8월까지 인턴(아마도 입법보조원)으로 근무하였다. 사실상 그동안의 스토리는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준석의 아버지와 유승민 의원은 친분이 있었고, 그 인맥을 통해서 인턴을 통해 비대위원으로 영입되었다는 것이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에 이 사실을 이준석은 부정하였으나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정신 없어 대답을 잘못했다고 하였다. 물론 입법보조원의 근무형태가 다양하여 유승민 의원과 실제로 한 번도 못 봤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지만 만약 유승민 의원과 이준석의 아버지가 친구이고 그 사실을 유승민 의원이 인지했다면 친구의 아들인데 채용되었을 때 얼굴이라도 보는 게 한국의 정서이다[1]. 또한, 아무리 인턴이고 의원이 의정활동으로 바쁘다고해도, 새로운 인턴을 소개시키지 않는 조직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 몇평되지 않는 의원회관 혹은 지역구 사무실에서 유승민 의원과 얼굴을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0% 확률에 수렴한다.

원문보기:
`이준석, 유승민 의원실 인턴 출신`… 강용석 트위터 공방 `2라운드`
한나라 비대위원 이준석 아버지, 유승민 의원과 친구


2. 박근혜와의 2시간 발언 논란[편집]


파일:external/e1aa2db612ab2863c444d1d35b239d6ff3a49401d728e5543bb27275d2c076f3.jpg


이준석의 흑역사로 꼽히는 사건. 이준석은 과거 소속이 새누리당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은 합리적 중도 우파라 주장하면서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정치인을 표방한다. 하지만 박근혜의 설득에 넘어가서 정치에 입문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고 박근혜가 직접 발탁해서 청년대표로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친박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준석 본인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박근혜가 자신이 교육 봉사하는 곳에 직접 찾아와서, 본인의 의견에 동의하며 설득하는 과정이 그 대화였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입인사가 이렇게 이루어자며 문재인 대통령이 영입했던 인사들인 고민정, 표창원, 조응천 등도 사실 이렇게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그들도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이 끌려 입당하게 됐다는 인터뷰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찾아와서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입절차가 없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밝혔다. 즉 먼저 추총하면서 입당하는 케이스가 잘못됐다는 것.

딱히 정치적인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고, 청년층에 인기가 낮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포스터 차일드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키즈"로 활약할 당시에는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 이상에서 '참된 젊은이가 나왔다'며 좋아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시간이 지나자 친박 세력에서 소외되었고 안철수 지역구에 공천되는 등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쓰였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사실은 다르다. 당시는 야권이 분열되었던 때라 새누리당이 구도상으로 매우 유리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전문가와 여론조사기관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을 점치고 있었으며, 여론조사상으로도 안철수와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노원구는 이준석의 고향으로 이준석이 출마할 가장 유력한 지역구로 꼽혀왔던 곳이다.

이준석이 승리하게 된다면 자신의 고향에서 대권후보급 의원을 꺾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리스크가 있었지만 젊은 이준석에겐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지역구였다. 수도권에서 출마한다면 노원구보다 좋은 지역구도 없었다. 또한, 총선 당시 후보 등록 전의 이준석 측에서는 안철수가 비례대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만약 추측이 맞았다면 당선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리고 젊은 이준석이 대권주자인 안철수에게 지는 건 앞으로의 정치인생을 생각했을 때 뼈아픈 패배는 아니었다. 같은 낙선이지만 보수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광역시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에게 수성구에서 개박살이 난 김문수와는 상황이 다른 것. 오히려 낙선보다는 위의 인터뷰가 더 뼈아프게 남았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유승민계 쪽에 호감을 표시하는 등, 친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타인이 이를 언급하면 인신공격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싫어한단 자신도 자신의 억지를 위해서 박근혜키즈를 써먹는 모습을 보면, 이준석이 이보다 큰 사건을 벌이지 않는 이상 이준석을 상징하는 단어로 박근혜키즈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이미지를 없애기보단 흑역사를 더 들춰내고 희화화하여 이미지를 순화시키려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듯하다. 대표적인 일화로 본인의 스타벅스 아이디를 '박근혜키즈'라고 지으려 했었다.

3. 위안부 피해자는 "이해당사자" 발언 논란[편집]


##
JTBC의 썰전에서 정부의 위안부 합의 관련 주제를 토론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이해당사자"라고 표현하며 논란이 되었다.

방송에서 이준석이 "국가 간 협약을 맺는 과정 중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운을 떼며 “정부는 원칙대로 협의를 하고 그 뒤 내부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국가 간의 협상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포함시켜 진행할 수 없다"고 발언을 마무리 지었는데, 이 발언을 두고 반대 패널이었던 이철희 소장이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피해당사자"라고 발언을 고쳐주었다.

이후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비판여론이 일자 "이해당사자의 해(害)자에 이미 피해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며 “야당 인사, 경향신문도 사용하는 표현인데 이준석이 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실제로 이해(利害)는 이득과 손해를 둘다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라는 표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이익과 손해를 보는 당사자를 통틀어 가리킨다. 사실상 어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는 억지트집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부정확한 서술은 아니나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이득'과 관련하여 수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4. 군복무 토론 중 태도 논란[편집]


tvN ‘토론대첩 - 도장깨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학생들과 군복무 단축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준석은 군 복무 단축에 반대하는 주장을 내세웠고, 3라운드의 토론 중 2라운드를 승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토론 과정간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고 일갈하며 훈계조로 상대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등 토론에 임하는 이준석의 태도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학생들의 논리적 허점을 잘 공략하기는 했으나 토론 상대 학생들에게 훈계조로 일갈하는 태도적인 면에서 몇몇 시청자들, 특히 군복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남성층에서 이준석의 공격적인 발언과 복무사항을 연관지어 일종의 도발로 간주하고 많은 여론을 쏟아내었다.

또한 이준석의 논리가 토론 내내 주도권을 잡는 듯 보였으나, 이는 상대가 평범한 학생이어서 일방적인 우세가 가능했을 뿐 이준석의 논리에도 허점이 있다. 가령 군복무 단축의 방향성을 부사관을 충원하는 쪽으로 잡는 것이 반드시 '모병제'로 가자는 뜻을 내포하는것은 아니다. 부사관은 지금도 열심히 뽑고 있는 중이지만 아무도 우리나라를 모병제라고 부르지 않듯, 부사관 TO를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모병제 찬성론으로 볼 여지는 없는 것이다.

또한 부사관들을 충원하고, 중책을 맡기고 돈을 많이 주면 (복무를)열심히 할 것이라는 대학생 측 주장에 "뭐야 그게"라며 다시 군대를 가라고 한다면 얼마를 주면 갈거라고 반문했고 해당 학생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런데 뭘 자꾸 모병제를 하자고 하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군인이라는 직업 선택에 있어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적성에 달린 문제에 가깝기에 해당 학생의 "나는 다시 가기 싫다"라는 말이 모병제에 대한 부정 근거로 작용하기에는 지나친 비약이다.

사실 해당 영상을 보면 토론 태도의 측면에서 이준석 자신의 토론 스타일이 스스로 말한 '사안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정치인들 간의 토론으로 정반합을 만들어가는' 토론과는 괴리가 있다. 해당 토론에서 이준석이 보여준 스타일은 좋게 말하면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잘 공략한' 것이라지만 사실 '상대의 논지 자체를 합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그 논지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허점을 이용하여 논지를 기술적으로 봉쇄하는' 스타일에 더욱 가깝다. 이준석의 지지층 중에서 해당 토론을 비판하는 측은 이런 면으로 인해 괴리감을 느꼈던 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방송 직후 이준석이 이미지 브라우저 개발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서 대체 복무하였다는 사실이 주목받으며 대체복무자가 현역들의 군복무 단축에 대해 강한 반대입장을 나타냈다는 것에 여론이 들끓었다. 물론 대체복무자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병역의무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2] 하지만 이미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 병역의무의 문제점에 대해 접근하는 이준석의 태도엔 대중과의 공감대와는 분명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만 비판 여론 중엔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도 있었는데, 사실 프로그램 컨셉 자체가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건설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처럼 주제를 일단 정한 다음에 토론으로 상대를 이기는 게 주 목적이다. 이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각각 초청해서 부른게 아니라 일단 토론하자고 모아놓고 두가지 스탠스 중에 하나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여 토론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제목 자체에 괜히 '도장깨기'라는 타이틀을 넣은 것이 아니다.

또한 군복무 토론이 끝나고 난 이후에 이준석은 자기가 비열하게 토론한게 맞다면서 1, 2, 3 라운드의 토론 스킬을 일부러 다르게 해서 이런저런 스타일을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실제로 모든 토론 스타일을 다르게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대중들에겐 1 라운드 이외의 다른 모습은 퍼지지 않다보니 이준석의 토론 방식이 꼰대짓으로 보일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3] 하지만 알고보면 이건 이준석이 미리부터 계획해놓은 토론 방식이었고 윽박지르는 방식의 토론[4]을 처음 접해본 대학생들은 당연히 대응을 하기 어려웠으니 전략이 성공적으로 맞아 들어간 셈이다.[5] 때문에 자신을 변호할 때 이 점을 집중적으로 언급하였다면 여론이 조금 더 유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평가도 있다.

이준석 역시 이러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여 본인의 페이스북에 “내가 토론에서 국회 고급정보를 더 많이 갖고 토론에 임했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말자. 나는 주제도 즉석에서 알려주고 하수(상대 대학생)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어 자신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보좌관도 없다며, 낙선자를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여론 분노의 본질은 이준석의 토론 태도와 군복무 단축관련 주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지 이준석 본인이 생각한 정보력에 기반한 토론 수준차이 논란이 아니었다. 또한 뜬금없이 자신의 낙선 사실을 언급하며 동정심을 이용해 문제를 회피하려는 그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준석이 주장한 군복무 단축에 대한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비판을 한 것도 있는데 이준석은 태도가 어찌 됐던 간에 대학생들이 주장한 '대안'들에는 충실하게 모두 반박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병역의무의 문제점 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모든 류의 부조리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측에게 반드시 그에 따른 대안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많다고 해서 이준석을 현 상태 유지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해당 토론을 승패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준석이 이긴 토론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이 토론에서 이준석이 보여준 태도로 인해 본인의 정치적 이미지인 '젊은 보수'에 어느 정도 금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당 영상이 올라간 클립들에는 이준석에 대한 칭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6] 주로 해당 영상에 대한 지지여론에 의해 작성되는 영상 관련 댓글과 클립에도 적어도 비판과 옹호로 양분되는 양상이 비일비재하고, 꼭 영상 관련이 아니라도 논란이 되었던 당시 커뮤니티들을 찾아보면 태도와 논리적 허점을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게 보인다. 비판 여론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보더라도 어느 한 쪽이 우세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런 무수한 비판 의견들이 모두 영상을 보지도 않고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 대학생들이 토론을 하루만에 준비해갔다는게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의 토론에 임하는 자세와 성의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학생들에게도 비판할 점이 있다고 해서 꼭 이준석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건 아닐 것이다.

5. 문재인 참수 만화 논란[편집]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머리를 참수하는 만화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과하였다.# [7]

결국 이후 문재인 후보에게 직접 찾아가서 사과했다.
파일:2012050814358261002_1.jpg


6. 강용석 칭찬 논란[편집]


강용석청와대트럼프 따라하기 쇼를 한다고 비난을 하자 예리하다고 강용석을 칭찬하였다. # 하지만 강용석의 말은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 이후 본인 페이스북에 자신이 동조했던 글 캡쳐본과 함께 글을 올려서 사실관계 파악 없이 글을 공유한 점에 대해서 반성하고 앞으로 타인의 글을 공유할 때 점검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7.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의혹 제기 관련 논란[편집]


시밀러웹의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대한 논란을 제기했으나, 그 근거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청원 자체를 드루킹과 엮는 듯한 발언을 했다.YTN 베트남 쪽 트래픽이 수상하다"면서 "여론 조작의 의혹이 있다"라는 내용의 루머의 근거로 사용된 '시밀러웹'의 청와대 공식 사이트에 대한 국가별 트래픽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51.75%, 베트남 14%(2350% 증가), 미국 11%(67% 증가), 브라질 2.17%(463% 증가) 순인 것은 사실이나, 이후 이런 의혹을 다룬 기사에 따르면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통계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여 전인 3월 기준 트래픽 결과'이며 '이번 청원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기사(한국일보)연합뉴스 참고로 해당 분석 통계의 상단을 보면 'March 2019 Overview'라고 쓰여져 있다. 링크(시밀러웹) 즉, 2019년 3월 자료이다. 이후 한국일보에서 이준석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기사가 올라왔다.한국일보

파일:청와대해명.jpg
청와대는 구글애널리틱스 자료로 반박했다. 4월 29일 트래픽 중에 베트남 지분은 0.17% 뿐이고 3월달에도 3.55%에 불과하는 것이다. 3월 한정으로만 따져봐도 결국 이준석은 부정확한 자료로 의혹을 제기하다가 또하나의 흑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이후, 4월 30일 저녁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3월에 발생한 것과 같은 이상 해외 트래픽이 4월 말에 진행되는 정당해산 관련 청원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중략) 트래픽의 데이터를 검증하자는 취지로 요구한 정보공개가 타 정당의 정치인에게 변질되어 인용되어 '청원에 동의한 100만 명 중 14만 명이 베트남'과 같은 전혀 관련없는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8]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청와대 국민청원의 보완 및 폐지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기사(이데일리)

결국 이준석은 청와대의 설명이 맞다고 인정했다. 기사(JTBC) 같은 날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는 "타 당에서 (제 발언을) 이용해서 사용했던데 그 부분은 상당히 유감입니다. 자유한국당 모 의원의 경우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14만 명 이상이 베트남에서 왔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거든요."라면서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발언 맥락을 비틀어서 언급한 정용기에 대해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기사(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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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건 한국을 떠나 전 세계의 보편적 행위다[2] 다만 자신보다 어린 '하수'들에게 "자신도 지키지 않는" 원칙을 지키라고 훈계하는 것이 최근 젊은층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었다는 점과 대한민국의 병역의무의 문제점 중 형평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당시 비판 여론의 중점이 태도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예 쟁점이 없어야 한다고 하기도 힘들다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3] 이에 따르면 이준석이 의도한 바가 흥분할 생각은 없었는데 일종의 컨셉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나 본인이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실제 의도한 바가 다르더라도 국내 정서 상 분명 과한 면이 있었다.[4] 한국에서는 토론이라고 하면 점잖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통 연상하지만 논쟁 문화가 깊은 서양권에서는 이런 식의 토론이 적지 않다. 이준석은 미국 유학생 출신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5] 다르게 보면 결국 논리보다는 기선제압으로 이긴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6] 사실 인터넷 문화의 주류인 20~30대 청년층의 대다수인 군필 예비역 남성들이야말로 오히려 군 대우 문제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보상심리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롭기가 힘들기 때문.[7] 그때 진중권 교수가 트위터에서 신나게 비판한 적이 있는데, 문제는 진 교수 본인도 이명박 대통령의 목을 조르도록 그려진 쇼핑백의 이미지를 트윗한 적이 있다는 것.[8] 한국당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파 유튜버 영상들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