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멜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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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멜 아이젠
Jermel Eisen

파일:제르멜.png

프로필
이름
제르멜 아이젠
연령
불명
가족 관계
아버지 전대 아이젠 후작
어머니 로즈엔 아이젠[1]
[스포일러]
친아버지 라이오넬 드라카 베리타스
형제 에드워드 오스카 베리타스[1]

신분
아이젠 후작가의 후계자 → 아이젠 후작
기타
약탈의 스티그마 보유

1. 개요
2. 대사
3. 작중 행적
3.1. 회귀 전
3.2. 회귀 후
3.2.1. 초반
3.2.2. 유디트와의 독대
3.2.3. 베르크스 수성전
3.2.4. 과거와 전말
3.2.5. 후반
3.2.6. 최후
4. 평가


1. 개요[편집]


<적기사는 눈먼 돈을 좇지 않는다>의 등장인물. 아이젠 후작가를 이끄는 가주이자 흑기사단의 단장이이며 동시에 본작의 메인 빌런

재력은 물론이고 명성이나 명예 또한 모자람이 없다. 새까만 그의 머리칼은 깊은 밤을 연상케 했고, 눈동자는 붉는 핏빛이었다. 그의 에테르는 검정색을 띄며 약탈의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다.

황족만을 섬기는 흑기사답게 황족의 명령이라면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것도 주저없이 실행한다. 그의 집무실은 서류로 너저분했고 그는 서류도 보는 둥 마는 둥 한다.[2]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황궁을 돌아다녔고, 기사들을 스카우트하는 수완이 좋았다. 그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했고, 기사단원 선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3]

더불어 그는 기사들의 역량을 알고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임무는 시키지 않았다. 또 임무 완수에 대한 보상이 확실했다. 회귀 전의 유디트도 제르멜의 이런 점을 좋아했으며 그는 돈을 좇던 유디트의 삶을 인정해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4]


2. 대사[편집]


"경은 쓸모 있는 장기 말이었다. 비싼 값을 했지. 마지막 의리로, 부하의 목은 손수 쳐주마."

소설 1화 中


"이제 개를 죽였으니 개값을 물어주면 되는 일이지. 단장으로서 노고를 치하한다. 퍽 가치 있는 죽음이지. 안 그런가?"

소설 1화 中


"목숨 위에 있는 가치를 위해 검을 휘둘러라."

흑기사단의 기사 서약 中


"......골통 빈 핫바지 새끼가 드디어 일을 제대로 쳤군."

소설 115화 中


"시간의 스티그마는 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거다! 뭔가 잘못된 거야! 카르나크가 너 같은 걸 선택할 리 없......"

소설 119화 中



3. 작중 행적[편집]



3.1. 회귀 전[편집]


회귀 전 그는 유디트를 이용해 여러 사람을 죽였다.

황제가 하사한 티아라를 쓰고 오페라 무대에 선 이세에피나 황녀를 보며 자격지심을 느낀 유디트를 본 제르멜은 그날 밤, 이세에피나 황녀를 죽이고 티아라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황녀궁으로 유디트를 불러 뒷처리를 맡김과 동시에, 자신의 성의라며 황녀의 티아라를 주었다. 그는 자신의 호의를 잊지 말라며 티아라를 그녀의 약점으로 만든 뒤, 자신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듣는 개처럼 다뤘다.

낮이든 밤이든, 평일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이 제르멜은 유디트를 불러 명령을 내렸고, 티아라를 가지고 있는 한 유디트는 제르멜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불가능한 일, 수습할 수 없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약속된 포상금도, 공로를 치하하는 것도 정확했다.

그는 칼리파를 자살로 꾸며 그녀의 살육의 스티그마를 빼앗고 죽였고 세간에는 칼리파가 자살한 것이라 알렸다.[5]

그 후, 제르멜은 유디트에게 3황자를 암살하라는 명을 내렸다.[스포일러] 이에 유디트는 올가 1황녀가 보내서 왔다며 윌리엄을 안심시킨 뒤, 윌리엄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뒤이어 제르멜도 유디트의 가슴에 검을 쑤셔넣었고, 그녀는 피가 솟구치는 배를 붙잡으며 제르멜의 이름을 외쳤다. 제르멜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당연히 황족 암살범은 처단해야 한다며 그녀를 죽이려 들었다. 유디트가 명령을 내린 것은 당신이라며 반박했으나, 제르멜은 실행한 것은 그녀라며 가볍게 무시했다. 윌리엄의 시체를 살피던 제르멜의 손에서 하얀빛이 새어나왔다. 분노로 통각을 잊은 유디트의 에테르가 지면을 조각냈고 제르멜은 상황을 잊고 감탄했다. 그는 가슴이 뚫려 피가 넘쳐흐르는 상황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멀쩡한 유디트의 검끝을 보며 천재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곧 제르멜의 새카만 에테르가 그녀를 벽으로 던져버렸다. 개값을 해 주었지 않느냐며 절규하는 유디트를 보며 제르멜은 개값을 물어주겠다 말했고, 그녀의 몸 위로 금화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의 얼굴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고,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제르멜은 유디트의 죽음이 퍽 가치 있는 죽음이지 않느냐 물었고, 유디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숨통을 끊었다. 주변은 삽시간에 사막의 밤처럼 고요해졌고, 너저분한 회백발과 피 묻은 금화가 제르멜의 발치를 어지럽혔다. 그의 주위에는 시체 두 구가 나뒹굴었다. 그러나 제르멜은 다른 사람이라면 기함하고도 남을 장면을 보아도 아무 감흥이 없었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흑기사 한 명에게 뒤처리를 명령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뜬 제르멜은 유디트의 몸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하얀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3.2. 회귀 후[편집]



3.2.1. 초반[편집]


흑기사단장인 그는 신입 기사들의 실력 테스트를 보기 위해 시작 시간보다 늦게 연병장에 나타났다. 이를 본 유디트가 제르멜을 보고 검이 무너졌고, 기류의 검이 그녀의 목을 스침과 동시에 긴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기류가 유디트를 안아 의무실로 가려고 하자, 제르멜이 뒤는 자신에게 맡기라며 그들을 보냈다.

스티그마. 유디트를 치료한 신관이 기류에게 건넨 말이다. 제르멜은 그녀에게 신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곧 스티그마가 각성하거나 이미 각성했을 것이라고 한 신관의 말을 엿듣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금방 사라졌다.

3.2.2. 유디트와의 독대[편집]


칼리파를 만나기 위해 흑기사단 숙소에 숨어들었다가 소등 시간이 다가와 숙소를 빠져나온 유디트가 담벼락을 넘어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제르멜의 살기가 소름 돋게 쏟아졌다. 세상만사를 무심한 듯 가소롭게 보고 있는 눈동자. 특유의 고압적이고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 하지만 드물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는 유디트를 회색 시궁쥐라 칭하며 그녀를 훑었다. 유디트는 자신이 살해당한 과거가 떠올라 뒤를 돌았고, 제르멜은 흥미롭다는 눈빛을 던지며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즐거워 보였다. 제르멜은 노스카나 공작령의 습격 사건과 은빛 용의 폭주를 언급하며 한 번 겪을까 말까 했던 일을 모조리 수습한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유디트에게 시간의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는지 물으며 다가갔다. 제르멜과 유디트의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퍼졌다. 유디트는 소름이 돋아 얼음처럼 굳은 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제르멜이 유디트를 향해 손을 뻗은 그 때, 하얀 로브를 걸친 팔이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고 유디트를 보호하듯 제르멜의 손을 쳐냈다. 남자의 정체는 카르나크 제국의 백기사단장이었다. 제르멜은 을 보며 비아냥댔고, 셴은 제르멜의 속을 박박 긁다 못해 파낼 정도로 말했다. 한밤중에 보니 제르멜의 얼굴이 워낙 무섭다며 흑기사단 숙소를 누추한 곳이라고 돌려깠다.[6] 빡친 제르멜이 꺼지라고 해도 셴은 싫다고 대꾸했다.[7] 이에 제르멜은 불쾌함을 넘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셴과 한 자리에 있으면 빈대가 달라붙는다고 말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8] 제르멜은 당장이라도 유디트를 박제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왔고, 아까 전의 대답[9]은 나중에 듣겠다며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3.2.3. 베르크스 수성전[편집]


로제타 사절단을 맞이하던 날, 만찬이 중지되고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안건은 베르크스 변경백의 해임과 베르크스를 지킬 방법. 제르멜은 여유를 잃지 않고 느긋하게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베르크스에서 온 혈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수의 습격으로 갈수록 피폐해지는 영지민의 생활. 고갈되어 가는 식료품. 베르크스 변경백이 실성하여 결국 영지민을 마수의 밥으로 내던졌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제르멜은 나른한 목소리로 기사단의 가장 큰 전력을 투입하자며 의견을 제시했다. 회의장에는 자신을 포함한 에테르 마스터가 이나 존재했다. 제르멜은 소수의 핵심 인력인 에테르 마스터를 투입해 마수를 토벌하자고 말했다. 그는 회의를 주관하던 1황자 알베르트에게 유혹적인 말을 던졌으나 붉은 눈은 기류유디트를 향해 있었다. 결국 에테르 마스터의 베르크스 급파가 결정됐고, 1황자가 즉시 출발하도록 명령을 내린 탓에 급하게 행군이 결정되었다.

베르크스에 도착한 행군은 충격적인 상황을 보게 된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죄다 쑥대밭이었고, 종종 발견한 사람의 흔적은 참혹했다. 시신을 수습하느라 몇 번이고 멈췄던 행군은 한밤중에 베르크스 관문에 도착했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하고, 닫혀 있다고 전해 들은 관문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제르멜은 마수의 흔적이라며 가볍게 말했다. 마치 엊그제 날씨라도 읊는 사람처럼 건조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였다. 유디트는 회귀 전의 경험으로 도개교를 내렸다. 도개교를 건넌 후는 일사천리였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기사단과 황가의 깃발 때문인지, 성문을 열지는 않을지언정 공격은 없었다. 황명을 받들어 문을 열라는 외침에도 성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고, 이에 제르멜은 무식하게 성문을 통째로 날려버렸다.[10]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황명을 따랐을 뿐이라며 검을 집어넣었다.

다음 날 오후, 흑기사에게 변경백이 양팔을 구속당한 채 끌려왔다. 끌려온 변경백은 죽은 딸의 목숨값을 갚기 전까지 순순히 죽지 않겠다며 발악했지만 제르멜에게는 택도 없었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형식적인 황명[11]을 읊고 임무를 완수했다는 증거로 변경백의 양쪽 귀를 잘랐다. 그리고는 죽은 유리아나를 조롱하며 미소 지었다.

표면적인 임무가 일단락되고, 제르멜은 유디트를 응시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의문만이 맴돌았다. 도개교의 봉화 암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제르멜은 출발 직전, 1황자를 통해 도개교의 봉화 암호와 개인적인 지령을 들었다. 변경백을 피신시킬 것. 하다못해 목숨만이라도 건질 수 있게 적기사단보다 먼저 움직일 것. 꼴에 약혼자의 아버지라고 베르크스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를 피신시키라는 명령도 명령이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유디트였다. 제르멜은 이미 그녀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명목상은 청문회지만, 에드워드의 계획을 모조리 망친 기사라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조사를 통해 유디트가 베르크스에 연고는 커녕 들른 적조차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는 유디트가 봉화 암호를 스티그마를 통해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스티그마를 노리고 있던 그는 유디트에게서 데샹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다음 먹잇감을 결정한 배부른 짐승처럼 웃으며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변경백이 해임된 후 그들은 베르크스의 군단장 아론 히사나이오트와 함께 이틀 후에 있을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보호 기지에 있는 난민은 물론 영지민 모두가 죽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이에 기류에 제르멜에게 어떡할 것이냐 묻자, 제르멜은 답지 않게 시원시원하게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유디트는 제르멜을 가만히 응시하며 의심했다. 적기사단과 흑기사단에 내려진 명령은 단 두 개였다. 변경백 해임과 베르크스 성 내부 진압. 변경백은 해임되어 두 귀가 날아갔고, 베르크스 성 내부 역시 손쉽게 진압되었다. 몬스터 웨이브는 책임 밖이란 소리다. 제르멜은 곧 죽어도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실력이나 지위만을 믿고 행동했다. 그것은 지난 6년동안 옆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유디트가 제일 잘 알았다. 제르멜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도 황제나 2황자에게 질책받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굴 때가 있었다.[12] 유디트는 제르멜이 오브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를 흑기사단에서 떨어뜨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의실을 차례대로 나가던 도중, 습격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은 분명 이틀 뒤였건만 적습은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이루어졌다.

유디트가 웨어울프를 썰고, 기류와 아론이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또다른 에테르 마스터인 제르멜은 오브가 있는 탑으로 올라섰다. 오브를 지키고 있던 데샹이 다가오지 말라며 경고했으나 그는 느긋하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왔다.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이 제르멜이라는 것을 확인한 데샹은 불안과 안도를 함께 느꼈다. 데샹이 그에게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제르멜은 되려 그에게 왜 여기에 있는지 물었다. 아니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하면 어떡해요. 데샹이 그에게 오브는 자신이 지킬테니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제르멜은 조용히 문을 잠궜다. 데샹의 동공이 커지고 손은 자연스레 칼자루로 향했다. 제르멜은 데샹에게 다가갔고, 데샹은 지휘관 이탈로 항의하겠다 협박했으나 그는 살아 돌아갔을 때 해보라며 검을 뽑았다. 반사 신경으로는 일가견이 있던 데샹도 빠르게 검을 뽑았다. 그러나 몸통을 노리고 날아온 검에는 새까만 에테르가 실려 있었고, 데샹은 검을 황급히 물렸다. 제르멜이 검을 넓게 여러 번 그으며 데샹의 움직이을 봉쇄했다. 결국 검을 포기한 데샹은 주먹을 제르멜의 안면에 꽂아넣었다. 제르멜이 충격으로 한 걸음 떨어지자, 틈을 놓치지 않은 데샹이 제르멜의 팔목을 친 다음 그의 검을 쳐냈다. 뒤이어 재빠르게 몸을 틀러 제르멜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무장을 해제당한 제르멜은 어이가 없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데샹을 바라보았다. 제르멜은 재미있어했고, 데샹은 재밌으면 맨손으로 붙어보라며 그를 도발했다. 제르멜은 순순히 도발에 넘어가주었다. 데샹은 잠시 희망을 가졌으나 그 희망은 가지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제르멜의 주먹이 벽을 부쉈기 때문이다. 데샹은 형제처럼 자란 기류가 에테르 마스터란 사실도 잊어버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르멜은 주먹질을 처음 해 보는 사람처럼 데샹에게 엉망으로 맞아가면서도 미친 듯이 마구 웃으며 그를 후려치려 들었다. 평면적인 냉소 아래 숨어 있던 광기. 지독한 절제가 끊어진 순간. 데샹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제르멜의 주먹에 창문이 깨져나갔고, 그는 깨진 유리 조각을 집어들었다. 광소를 터뜨렸던 입이 다시 차갑게 굳었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감지한 데샹이 옆으로 굴렀으나 제르멜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13] 발끝으로 그를 걷어차 유리 조각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제르멜은 그대로 데샹의 목을 잡아 들어올렸고, 발버둥치던 데샹은 제르멜의 애꿎은 제르멜의 장갑만 벗겨냈다. 제르멜의 손등에는 까만 문신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제르멜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밝혔다. 그가 노린 것은 오브가 아닌 데샹의 전지의 스티그마였다. 제르멜은 미래를 보는 데샹의 눈알을 파내려 했고, 곧이어 데샹의 스티그마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그제서야 데샹을 놓아준 제르멜은 자신의 손등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제르멜의 손등에는 눈동자 모양의 검은 성흔이 새겨졌고, 데샹은 그것을 어렵잖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지의 스티그마였다.

그때, 창문 밖에서 커다란 뿔 나팔 소리다 들렸다. 정신을 차린 듯, 제르멜이 떨어뜨린 검을 집어들고 까만 에테르를 둘러 사신처럼 데샹에게 다가갔다. 그는 유언을 물었으나, 데샹은 너 같은 놈한테 유언을 남길 바엔 그냥 뒈지겠다며 뾰족하게 말했다. 미친듯이 웃은 제르멜은 검을 휘둘렀고, 데샹은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제르멜은 굳이 데샹의 시체를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어차피 죽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스스로 시체를 치워준 데샹에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제르멜은 깨진 창문을 바라보다 탑을 내려왔다. 그는 유디트도 죽여 그녀의 스티그마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베르크스에서 그녀를 없애기에는 힘이 들 터였다. 데샹과는 달리 그녀는 에테르 마스터였고, 야전이 끝나면 데샹의 실종 사실로 소란이 일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흑기사에게 수도로의 회군을 명령했다. 베르크스가 망하든 말든 상관없던 그는 이후의 계획을 생각했다. 태만에 젖은 근위대와 중앙 경비대, 적기사단을 비롯한 에테르 마스터 둘이 빠진 지금. 황제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 그는 30분 뒤, 텔레포트용 마석을 사용해 흑기사 무리와 함께 조용히 베르크스를 빠져나갔다.


3.2.4. 과거와 전말[편집]


어린 시절, 그는 에드워드와 함께 황제의 앞에 섰다. 아버지라고 믿었던 사람은 그들의 황제의 앞으로 데리고 갔고, 둘은 자신이 황제의 사생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14] 그들이 믿고 따르던 아버지는 상등품 돼지 귀에 도장을 찍듯, 제르멜과 에드워드의 인생을 손짓 한 번으로 나누었다. 전대 아이젠 후작은 둘 중 한 명만 황궁으로 보내고 한 명은 자신이 데려가 키우고 싶어했다.[15] 그는 라이오넬 황제가 제르멜이 아닌 에드워드를 황궁으로 데려가길 바랐다.[16] 황제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 에드워드를 데려오기로 했고 제르멜은 아이젠 후작가에서 후계자로 키워지게 되었다.[17]

그 후 에드워드가 황궁으로 떠난 지 일 년째 되는 날, 그의 어머니인 로즈엔은 창문 밖으로 투신해 죽었다. 그녀는 제르멜과 에드워드가 황궁으로 가기 전, 제르멜을 붙잡고 말했다. 황제가 선택하는 것은 너일 거라고, 자신을 쏙 빼닮은 붉은 눈을 보면 너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러나 황제가 선택한 것은 에드워드였다. 심지어 황제는 제르멜의 붉은 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로즈엔을 외면한 것과 똑같았다. 로즈엔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지기 전, 제르멜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한 발자국만 더 나섰어도, 한 번만 아버지라고 불렀어도 됐을 텐데라며 그를 힐난했다. 제르멜은 말이 통하지 않는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로즈엔의 몸뚱아리가 떨어졌다. 제르멜의 발 앞까지 유리 조각이 튀었고 사용인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는 숨이 끊어진 어머니를 보고 엉엉 울거나 자지러지지 않았다. 그저 상황에 압도당했을 뿐.

남은 건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민망한 둘이었다.[18] 그러나 제르멜의 왼쪽 손등에 스티그마가 나타났을 때, 양부인 전대 아이젠 후작과 제르멜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다. 스티그마는 국난의 증표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전대 아이젠 후작은 로즈엔과 제르멜이 집안을 망치려 작정했다며 더러운 것을 보듯 했다. 경멸과 혐오. 전대 아이젠 후작은 사람을 보내 장장 14시간동안 제르멜을 다락에 가두어 폭행했다.[19] 이에 제르멜은 어느 날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은 이렇게 살 바에야 순순히 죽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억울했다. 왜 나만? 그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에드워드가 선택받아서 그런 것이라 여기며 분해했다. 황제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지옥과 별다를 바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화나고 서러웠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어떻게든 후작가 기사들 틈에 섞여 훈련하고, 멸시 섞인 시선을 무시하며 꾸역꾸역 음식을 삼켰다. 모든 인내의 시간이 끝났을 때, 제르멜은 에테르를 익혔다. 양부에게서 배운 것이라고는 경멸과 혐오밖에 없었고, 에테르를 익히자 상황은 역전됐다. 그는 저를 따르는 기사와 입을 맞춰 양부를 죽이고 후작가의 정당한 주인이 되었다.

위협은 사라졌고, 승리자는 그였다. 하지만 제르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돌아가려 했다. 사생아를 낳고도 떳떳한 황제와 형제는 여자에 정신이 팔려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병신 나부랭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특히 에드워드를 볼 때면 그의 마음은 마구 요동쳤다. 어떤 날은 황자랍시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며 사는 것이 미웠으나 어떤 날은 그냥 잘 먹고 잘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제르멜이 될 수 있는 또다른 미래였다. 견딜 수 없이 밉다가도 그가 행복해하면 자신도 웃음이 나오는 애증의 관계. 그리하여 제르멜은 에드워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황좌에 올라 황제를 치워버리면 가슴 속에 낙인처럼 새겨진 분노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칼리파에게 빠져 황좌 대신 공국 독립을 선택했다. 그는 임페노르 공작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분풀이이자 본보기로서.

그렇게 제르멜이 분노에 미쳐 날뛸 때, 그는 로제타의 신학서에서 마지막 희망인 시간의 스티그마를 찾았다. 제국이 무너지기 직전, 카르나크 신이 시간의 스티그마를 내려 제국의 마지막 명운을 시험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르나크 신이 금지한 세 가지를 전부 행하던 에드워드 덕분에 시간의 스티그마가 존재하리라 확신했다. 에드워드의 뻔뻔한 행적은 제르멜조차 박수를 보낼 정도였고, 그것을 카르나크 신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제르멜은 혈통 좋은 집안과 황족 등을 조사하며 시간의 스티그마를 찾아 헤맸다. 유디트처럼 사생아로 의심되는 자에게 떠보듯 물어도 허탕이었다. 그러나 데샹의 전지의 스티그마를 빼앗으면서, 확신이 들었다. 황족 중 누군가 한 명은 스티그마를 지녔을 거라고.[20] 그는 황제의 피가 닿은 역겨운 자식을 모두 치우려 했다. 겸사겸사 시간의 스티그마가 있는지 알아보고, 약탈의 스티그마로 시험한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던가. 혹시 모를 허탕을 대비해 칼리파를 흑기사단으로 끌어들여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자살로 꾸며 그녀의 스티그마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빼앗다보면 언젠가는 시간의 스티그마도 제 손으로 굴러들어오리라.

그는 카르나크가 자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제게 약탈의 스티그마를 주고, 다른 이들의 스티그마를 빼앗아 제국을 구하라는 사명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르멜은 시간의 스티그마를 찾아 빼앗고, 황제 앞에서 선택을 기다렸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황제의 관을 빼앗고, 멍청한 형제를 치우고, 제국을 바로잡는다. 제르멜은 카르나크 신이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1부터 6, 주사위처럼 구르는 인생. 제르멜의 인생은 1면뿐인 주사위였다. 그러나 약탈의 스티그마를 보며 느낀다. 스스로 쟁취하고, 6이 나올 때까지 움직이라는 카르나크 신의 계시라고.

3.2.5. 후반[편집]


제르멜은 수도로 귀환하자마자 에드워드의 궁으로 향했다. 2황자의 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1황자 알베르트의 시신.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바닥은 피가 굳지 않고 흥건했다. 제르멜은 비아냥[21]거리며 커튼을 잡아 뜯어 알베르트의 시신을 가렸다. 그리고는 에드워드가 저지른 일을 뒤처리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제르멜에게 누군가 칼리파를 사칭해 자신의 보관함에 손을 댔다고 내뱉었고 제르멜은 웃음을 터뜨렸다.[22] 제르멜은 마침 시험해 보기 좋은 기회라며 보관함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손등에서 일어나던 하얀 빛은 보관함에 가까워지자 녹색빛으로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르멜은 쭉 찢어진 입으로 웃으며 옷장으로 다가갔다. 옷장 뭍 사이에는 검은색 드레스 밑단이 끼어있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였다. 옷장 안에는 칼리파가 숨죽인 채 울고 있었다.[23] 제르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르멜은 뒤이어 황제를 찾아가 그를 죽이고 황제궁에 불을 질렀다. 그의 실력으로 황제와 근위대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와보니 2황자 궁의 비밀공간에 있어야 할 에드워드와 칼리파가 사라져있었다. 제르멜은 끝까지 귀찮게 한다며 이를 갈고는 전지의 스티그마를 사용했다. 관자놀이를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으나, 그는 에드워드가 기절한 칼리파를 데리고 신전 방향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를 지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는 통로 앞에서 부하에게 2황자 궁에도 불을 지를 것을 명령했다. 부하가 반문하자 그는 턱을 치켜들며 자신이 괜찮지 않은 명령을 내릴 것 같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하는 즉시 고개를 내젓고는 카펫을 벽난로로 집어 던졌다. 실로 충실한 모습이었으나 제르멜은 그를 보며 제거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제르멜은 비밀 통로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제르멜은 에드워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옷장 안에서 칼리파를 발견하자마자 에드워드는 칼리파 앞을 지키고 막아섰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을 만난 것 마냥, 그는 제르멜에게 빌었다. 제르멜은 에드워드를 보며 제게 용서를 구하며 목숨을 구걸하던 황제를 떠올렸다. 똑 닮은 푸른 눈동자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르멜은 그를 경멸하듯 바라보았고, 참 눈물 나는 연정이라 비웃으려 했다. 이렇게 쉽게 꿇을 무릎이라면 처음부터 제게 빌어보는 건 어땠을까 싶었다. 제르멜은 사랑을, 연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에드워드를 사랑에 빠진 머저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칼리파를 그 정도로 소중하게 여길 줄은 몰랐다. 그는 통로를 빠져나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칼리파를 좀 더 요긴하게 이용해서 그를 괴롭혀 줄 걸 그랬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불길에 휩싸인 황제궁과 2황자궁이 보였고, 그는 잠시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뒤 신전을 향해 걸었다. 제르멜은 에드워드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빼앗는 대신, 대단한 재주도 없는 그를 황제로 추대해 주기로 했다.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을 테니까. 그는 에드워드가 인생의 앞길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모두 앗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건 정당한 복수고 분노라고 스스로를 되뇌었다.

그러나 신전까지 이어진 샛길 저편에 유디트가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이곳으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제르멜은 우아한 그녀의 모습에 잠깐이나마 말을 잃었다. 제르멜은 유디트와 기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유디트가 그에게 칼리파의 위치를 물었다. 대답에 따라서는 길을 비켜줄 수도 있다고 덧붙이면서. 마치 상대를 용서할지 말지 시험하는 듯한 말투에 제르멜은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유디트의 제복에 달린 브릴란테 훈장을 보며 비아냥댔다. 브릴란테 훈장을 받은 자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기사를 그만 둘 수 없다. 그것도 모르고 유디트가 수여식 날 실실 웃던 모습을 떠올린 그는, 백금으로 된 훈장으로 열심히 포장해봤자 개는 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제르멜은 고작해야 사랑 때문에, 돈 때문에 제 앞길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외면하는 이들을 쓰레기라고 칭했다.[24] 생각과 선택을 놓아버리는 머저리들. 그는 그런 이들을 경멸하고 혐오했다. 그러면서 유디트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저처럼 직접 쟁취하라며 오만하게 검집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디트가 그를 용서한다는 마지막 선택지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지웠다는 사실을 그는 죽어서도 알지 못했다.

유디트가 그에게 자신이 시간의 스티그마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말했고, 제르멜의 눈동자는 환희에 젖었다. 일기당천의 실력자 두 사람이 동시에 검을 맞댔다. 황금빛과 검은빛이 부딪치는, 처음이자 마지막 결투가 시작됐다.


3.2.6. 최후[편집]


제르멜은 유디트를 죽여서 해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달려드는 번번히 그녀를 놓쳤다. 팽팽한 접전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합을 나눴다. 마치 세차게 회전하는 팽이끼리 부딪치는 모습이었다. 접전 속에서 제르멜은 유디트의 어깨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기사단장이라는 지위를 혈연만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유디트가 피하면 다시 검을 겨눴고 시야에서 벗어나면 넓은 시야로 그녀를 끝까지 쫓아갔다. 연달아 쏟는 검격, 그 안에 담긴 살기와 선명한 혐오. 이는 제르멜의 에테르를 더 강하게 만들어 유디트에게 쏟아졌다. 제르멜의 검이 유디트의 목, 어깨, 몸통, 허리, 심장으로 날아왔고 그것은 누가보아도 철저한 살인을 위해 익힌 검이었다. 그러나 제르멜의 맹공은 모조리 막혔고 마침내 유디트가 제르멜의 검을 정면으로 막았다. 제르멜은 순식간에 공격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수세로 돌아섰다. 제르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제르멜은 궤도가 변하는 유디트의 검을 힘겹게 막아냈다. 그녀가 휘두르는 일격 하나하나가 모두 막기 힘든 궤도로 들어왔다. 그는 유디트의 검을 밀어내며 틈을 찾았으나 틈은 보이지 않았다. 유디트의 앞에서 제르멜의 검 끝은 폭포를 거슬러 오르듯 맥없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제르멜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유디트의 검은 기사가 익힐 수 있는 검이 아니다. 명예와 정의를 추구하는 기사에게는 이런 집요함이 없다.[25] 동시에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쓰레기이면서 땅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먹는 버러지. 그런 것들 앞에서 쩔쩔 매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제르멜의 검은 분노를 담고 날아갔으나 유디트는 동요하지 않고 황금빛 에테르를 검끝에서 떠나보냈다. 맞물린 에테르가 폭발했고, 허공에서 부스러진 에테르가 두 사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여파로 유디트의 초커가 너덜너덜해졌고,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초커를 힘으로 뜯어냈다. 그러자 모래시계 모양의 스티그마가 빛나며 만천하에 드러났다. 스티그마를 발견한 제르멜의 눈이 번뜩였다. 신에게 선택받은건 자신이다. 그런데 신이 선택했다는 증거가 지금 유디트에게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신이 그녀를 선택할리가 없다. 인정할 수도 없었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제르멜은 유디트의 도발에 허연 이를 내보이며 달려들었다.[26]

각기 다른 색의 에테르를 머금은 검이 부딪친 바로 그 순간. 유디트의 목덜미와 제르멜의 손등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세 스티그마가 빛을 내뿜으며 매서운 소리로 울었다. 마치 공명하듯이. 황금빛과 녹색빛, 검은빛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기억을 훑었다.[27] 회귀라는 기적을 선사한 시간의 스티그마는 지워져 나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전지의 스티그마는 그 모든 세월을 한 번에 읽어냈다. 유디트가 흑기사로 살았던 시간을 포함해, 제르멜이 벌였던 악행과 그의 인생이 기록된 시간까지. 마지막으로 약탈의 스티그마가 읽어낸 세월을 탐하며 발광했다. 그렇게 제르멜은 지워져 나간 6년의 세월과 유디트의 인생을, 유디트는 제르멜의 악행과 인생을 낱낱이 읽어들였다.

한순간 검을 거둔 상황에서 유디트는 분노에 눈이 돌아갔다. 눈앞에 있는 자는 데샹을 습격하고 친구 칼리파를 황자 궁에서 끌어내고 페온에게 용의 피를 건넨 만악의 근원이요, 회귀 전, 삶의 의욕을 잃은 칼리파를 자살로 위장해 죽여 그 스티그마를 강탈한 살인마였다. 비굴하게 용서를 구하던 황제이자 아버지를 죽인 금수이기도 했다. 인간과 용의 공존을 방해하고 제국의 도리를 저버린 자였다. 이자를 쓰러뜨리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카르나크가 직접 내린 자신의 사명임을 깨달은 유디트가 도약했고, 쏜살같은 기세에 제르멜의 눈시울이 파르르 떨렸다. 제아무리 에테르 마스터라 한들 그는 오랜 시간을 에테르 능력에 의존해 검술을 다뤘기에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익힌 유디트의 검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의 눈이 처음으로 상대를 놓쳤다. 뒤늦게 머리보다도 빠르게 손이 움직였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유디트의 검이 제르멜의 가슴을 정확하게 관통했고,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검을 빼냈다. 제르멜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검을 휘둘렀지만 다음 순간, 그의 오른팔이 허공을 날았다. 분수처럼 솟은 피 사이로 유디트의 검이 보였다. 천천히 허공을 나는 오른팔을 보며 제르멜은 깨달았다. 그녀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엄연한 강자인 제르멜조차 등뒤를 노려야 승리를 장담할 정도의 실력자였고 그렇기에 회귀 전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흑기사단으로 영입한 상대. 귀신까지 홀려버리는 솜씨를 가졌고 세상을 뒤져도 찾을 수 있을까말까의 검의 귀재. 그것이 유디트였다.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에테르를 두른 유디트의 검이 제르멜의 어깨를 완전히 박살냈다. 드디어 제레기가 분리수거 되는 순간 유디트는 곧바로 제르멜의 무릎 또한 아작냈다. 그의 몸이 붕 뜨더니 저만치 날아가 굴렀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며 주춤주춤 물러나던 제르멜은 나무와 부딪혔고 그의 팔뚝과 가슴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지저분한 흔적을 남겼다. 유디트는 제르멜을 내려다보며 제르멜의 말을 정정해주었다.[28] 그러나 제르멜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회귀 전과 회귀 후의 기억이 한데 뒤섞여 그 무엇보다 혼란스러웠다. 그에게 있어서 유디트는 여전히 돈뭉치 앞에서 이성이 달랑달랑 흔들리던 사람이고, 돈 때문에 제 선택을 시궁창에 팔았던 여자였다. 제르멜은 그것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비아냥댔다. 온갖 세치 혀로 유디트를 조롱하던 제르멜이 피거품을 터뜨리며 웃었다.

그는 궤변가였다. 자기 손으로 감자 한 알 쪄본 적 없는 그는 가난한 인생을 경멸했고, 책임은 나 몰라라 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것은 억울해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이 있다. 선택은 네가 했으니 날 원망하진 마라. 선택조차도 아닌 가난과 누군가는 그런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비겁한 궤변가였다.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다잡으며 제르멜이 킥킥 웃었다. 눈앞이 어지럽고 귀가 먹먹했다. 변하겠다는 유디트의 선택을 비웃은 그는 여전히 선택만으로 세상만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제르멜에게 유디트가 떨어진 그의 검을 들고 다가왔으나 제르멜은 변변찮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손등에 검이 꽂혔다. 그녀가 검을 힘주어 비틀자 검은 손등을 관통해 땅에 뿌리내렸다. 오른팔을 잃은 제르멜이 입으로 절대 뽑지 못하도록. 유디트는 제르멜의 목숨을 운에 맡기기로 했다. 신전 근처라지만, 황궁에 불이 났기에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모두 자리를 비웠을 테고, 운 좋게 몇 명이 남아 있다고 한들 시간이 없다. 제르멜을 발견하고 신관이 와서 그를 치유할 때까지 그가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유디트는 쭈그려 앉아 제르멜의 눈을 보며 딱 하나의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혀를 깨물고 죽는 것. 선택권이 없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제르멜은 박제 당한 벌레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붙었다. 유디트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어 제르멜의 몸 위로 뿌렸다. 황금빛 동전이 거지에게 적선하듯 뿌려졌다. 제르멜은 회귀 전 유디트에게 주었던 개값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운이 좋아서 그가 자기 앞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기회는 제르멜에게 너무 과분했다.

머지않아 흑기사단장 제르멜 아이젠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이 늦어진 덕에 치유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운 나쁜 죽음이었다.[29]


4. 평가[편집]


제레기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피해망상과 약탈의 스티그마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착각하여 자신이 한 일들을 대의로 포장하여 정당하다고 합리화한 작자이자 만악의 근원이다.

아버지가 인간쓰레기였고 학대당했다는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지만 단순히 자신의 화풀이[30]로 죄없는 칼리파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후에 뻔뻔하게 그걸 이용하여 부하로 만들고 자살로 위장해 죽인 데다가 자신이 황자를 죽이라고 명령했으면서 그걸 수행한 유디트를 반역죄인라면서 죽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다른 부하들에게도 가차없이 소모품으로 쓰고서 꼬리자르듯 버리고 남들에게는 선택이 값진 것을 모르는 쓰레기라고 하면서 황궁에 불을 지르고 황제를 죽인 자신이 한 반역행위를 값진 것이라는 듯이 내로남불태도로 말하기까지 했다.[31] 게다가 이자는 진짜 가난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유디트의 인생을 무시하고 모욕하기까지 하며 가난도 선택이라며 막말을 했다.[32]

그리고 이런 그의 행보는 목숨을 살릴수도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리게 되었고 끝내 카르나크가 선택했다는 증거인 시간의 스티그마를 보유한 유디트에게 철저히 패배해 죽음 이외의 선택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33] 그동안 벌인 악행치고는 작은 대가처럼 보이지만 평생을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믿어온 그에게 있어 신에게 선택된 자에게 철저히 패배하고 어떤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은채 맞이한 죽음은 그에게 있어 합당한 최후였다.신이 제르멜을 선택한 건 영웅이 되라는 것이 아닌 대악으로서 멸하기위해서였다는 뜻이다

심지어 제르멜의 사후, 흑기사단이 이든의 암살을 막아냈다는 화려한 성과를 선보이며 부활했음에도 흑기사단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등, 그가 흑기사단에 끼친 악영향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담으로 이 작자와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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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전 이름은 로즈엔 비슈발트.[2] 오죽하면 회귀 전의 유디트가 가끔씩 서류 정리를 해주었을까(...).[3] 회귀 후 데샹이 기류에게 이번에도 흑기사단에게 인재들을 뺏길 거냐며 화내는 것을 보니 실력 좋은 기사들을 죄다 스카우트해서 데려간 듯하다.[4] 물론 이건 유디트를 이용하기 위한 가식이었을 뿐이다. 마지막에 자기가 시킨 일을 유디트 혼자서 저지른 짓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인정해줬다기 보다는 이용하기 쉬운 상대로 생각했을 듯. 제르멜이 유디트를 장기말이라며 개 취급했던 것을 보면 다른 부하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듯 하며 실제로 그랬다.[5] 애초에 그녀를 흑기사단으로 들인 이유도 그녀의 스티그마를 편하게 빼앗기 위해서였다.[스포일러] 약탈의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던 제르멜은 황족 중 스티그마를 가진 이를 찾아 죽여 스티그마를 빼앗으려 했다.[6] 정확히 "공사다망하신 흑기사단장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앗, 여기 흑기사단 숙소 근처였죠. 실례했습니다." "한밤중에 보니 제르멜, 맙소사! 당신의 인상이 워낙 무서워서요. 어린양의 구원자처럼 굴어보고 싶어졌지 뭡니까."라고 했다. 역시 신실한 또라이[7] 유디트는 심장이 벌렁거리다 못해 졸도할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제르멜이 에테르를 실어 검을 날리지 않을까 걱정했다.[8] 정확히는 제르멜이 셴을 파리 취급한 것이다.[9] 시간의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10] 기류가 기겁하며 "저 미친놈이! 야!"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11] 변경백의 지위에서 해임한다는 내용이다.[12] 베르크스의 성문을 날려버린 것이 그 예이다.[13] 기류와 몸 쓰는 방식이 비슷하다며 언제든 죽일 수 있었다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14] 라이오넬 황제가 황태자였고 그들의 어머니인 로즈엔 아이젠이 로즈엔 비슈발트 백작 영애였던 시절, 그들은 은밀한 정사를 즐기고 열정적인 사랑을 불태웠다. 그러던 중 제르멜과 에드워드가 생긴 것이다.[15] 아이젠 후작가에도 후계자는 필요했기 때문이다.[16] 제르멜에 비해 에드워드가 더 총명하고 배움이 빠르며 입이 무겁다는 것이 이유였다. 눈치도 잘 보았기에 전대 아이젠 후작은 황궁에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17] 더불어 제르멜은 황가의 상징 중 하나인 검정색 머리카락은 가지고 있었으나 눈동자는 로즈엔의 홍안을 닮은 반면, 에드워드는 황가의 상징인 흑발과 벽안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사생아란 사실이 들통날 일도 없고, 황가에 입적시키기도 쉬웠다.[18] 애초에 전대 아이젠 후작이 제르멜을 데리고 있던 이유는 로즈엔이 황제의 씨를 멋대로 지웠다간 큰 후환이 생길 거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19] 이 밖에도 제르멜에게 달군 숯 조각을 주어 맨입으로 삼키게 한 뒤 기름을 먹이기도 했다. 헤엑 미친놈[20] 그의 확신대로 1황녀 올가가 예언의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다.[21] "골통 빈 핫바지 새끼가 드디어 일을 제대로 쳤군."이라며 짜증을 냈다.[22] 오히려 제르멜이 에드워드를 사칭해 칼리파에게 편지를 보냈다.[23] 제르멜은 데샹에게서 빼앗은 전지의 스티그마로 보관함의 과거를 엿보았고, 그가 본 광경은 칼리파가 보관함 속 내용물을 빼돌리고 옷장에 숨는 장면이었다.[24] 정작 본인 역시 그만둔다는 선택을 외면하고 황궁을 불태운 반역자라는 길을 선택했다.[25] 제르멜은 기사라는 단어 대신 멍청이라고 칭했다.[26] 웹툰판에서는 시간의 스티그마를 보고 자신이 가진 전지와 약탈의 스티그마를 드러내면서 신이 자신을 선택했기에 유디트가 자신에게 온거라며 원작보다 뻔뻔함이 더 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27] 황금빛은 유디트의 시간의 스티그마, 녹색빛은 제르멜이 데샹에게서 빼앗은 전지의 스티그마, 검은빛은 제르멜이 가진 약탈의 스티그마다.[28] 카르나크가 유디트를 선택할 리 없다며 선택 받은 건 자신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너 같은 걸 신이 직접 선택했다면 제국은 끝장이지."라고 맞받아쳤다.[29] 그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착각하며 살던 제르멜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운 나쁜 죽음은 어울리는 최후라고 볼 수 있다.[30] 복수나 원한같은 그런 화풀이가 아니라 공국으로 독립하겠다는 에드워드의 말을 듣고는 황위에 오르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하면 주변인을 해칠 것이라는 짜증과 협박의 의미다. 그것을 약속어긴 에드워드 탓이라며 남탓하는 건 덤. 한마디로 자기기분과 자기목적만 중요할 뿐 다른 건 중요치 않다는 의미이다.[31] 유디트에게는 자신의 앞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른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선택지를 지우고 범죄자라는 사실을 선택하여 스스로의 죽음을 초래하여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지워버린 셈이다.[32] 유디트보고 돈에 도리를 저버렸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도 자기 피해망상과 욕심때문에 배신과 살인을 일삼았으니 뭐라 할 입장도 아니었던 셈.제르멜의 논리대로라면 제르멜 본인이 불행했던 것도 자기 선택으로 봐야한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33] 결국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선택을 버림으로서 입버릇처럼 말하던 '선택은 네가 했으니 날 원망하진 마라'라며 여태까지 자기가 해왔던 짓들을 합리화한 것이 본인 스스로에게 돌아와 스스로가 겪게 된 셈이다.[34] 실제로 행적이나 가치관이 매우 유사하다. 욕망과 열등감에 미쳤다는 것부터 부하들을 이용해서 자기편할때로 쓰고 마지막에 자기가 불리해지거나 잘못이 없음에도 위험하다 싶으면 꼬리자르기식으로 쓰다버리는 점, 남을 죽이고 남의 힘을 억지로 빼앗고 거기에 너무 의존하는 점, 죄없는 사람을 자기 밑으로 끌어들여서 불행으로 몰아갔으면서 뻔뻔하게 책임전가하는 무책임함, 자기합리화식 궤변에 내로남불 방식의 별명, 단조가 자기 권력욕 때문에 마을이 무너지는 것을 이용한 것처럼 제르멜 역시 자기목적 때문에 인간과 용의 공존을 방해하여 전쟁을 계획하는 등 제국의 도리를 져버린 매국노라는 점, 마지막까지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점까지 유사하다. 게다가 사후에 자기가 속한 조직에 악영향을 심각하게 준 존재라는 것까지 판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