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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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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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산릉 난징 중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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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난징 중국 중산.jpg
능으로 향하는 계단과 기념관 내의 쑨원 동상. 그 위에는 중국 본토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중국국민당 휘장이 새겨져 있다
능문
쑨원의 관

中山陵 / Sun Yat-sen Mausoleum

중화민국인물이자 현대 중국의 국부인 쑨원이 안장된 무덤으로 장쑤성 난징시에 위치해 있다. 1926년 착공되어 1929년 완공되었다. 입장료는 무료다. 쑨원이 사망하고 두 달이 지난 1925년 5월 15일, 공모전을 통해 디자인이 선정되었으며 이 양식은 대만중정기념당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중국의 국부이며 국민당공산당 모두에게 추앙받는 쑨원의 영묘인 만큼 국공내전으로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후에도 유지되었으나 기록에 따르면 한동안은 중산릉의 국민당기가 제거되었다가 추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청천백일만지홍기 문서에도 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신해혁명~국부천대 사이 시기의 역사물에 한해서는 청천백일만지홍기나 중국 국민당 국장(청천백일)에 대해 크게 제재하지 않는데, 중국 공산당 입장은 중화민국은 1949년에 망해버린 국가고 그 이후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역사기념물로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손대지 않지만 현재의 대만을 상징하는 표상으로서는 철저히 탄압한다. 중산릉의 경우 1925년 건축물이라 이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천자도 아닌 이의 무덤이나 능()의 명칭을 가진 무덤인데 이러한 명칭이 쑨원이 건국중화민국 시기 뿐만 아니라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하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 사이 쑨원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장제스는 쑨원의 후계자였던 만큼 특히 중산릉의 방문이 잦았다. 잘 알려진 공식 방문 사례들로는 쑨원의 숙원이었던 북벌끝마친 1929년중일전쟁의 종전 후인 1946년이 있다.

국부천대 후 56년이 지난 2005년에는 당시 중국국민당 주석(당수)이었던 롄잔이 중국 본토를 방문하여 후진타오 주석과 회동하고 중산릉을 방문해 참배한 바 있다. 이후 2023년에는 마잉주가 대만 전현직 총통 중에서는 처음으로 본토를 방문하여 중산릉을 참배했는데, 방문 당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언급하여 관심을 끌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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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편 마잉주는 후난성 샹탄시에 있는 조부의 무덤을 찾아 성묘를 하면서 '자신이 중화민국 총통에 두 차례나 당선됐다'고 대놓고 말하는 패기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