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구

덤프버전 :

崔龜
(? ~ 1015)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려 제8대 현종 때의 관료.


2. 생애[편집]


본래는 유생으로 병부낭중이 되었고 제2차 여요전쟁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1011년에 개경으로 남하해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자 호종했다.

성격이 거칠고 천박해 최질과 교류했다고 하며, 황보유의, 장연우가 경군의 영업전으로 문관들의 녹봉을 충당하면서 무신들이 영업전을 빼앗기자 1014년 11월 25일에 김훈, 최질, 박성, 이협, 이상, 이섬, 석방현, 최가정, 공문, 임맹 등이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침범하는 김훈·최질의 난을 일으켰으나, 최구는 언급이 없어서 이 반란에 참가했는지 알 수 없다.

김훈, 최질 등 무신들이 상참 이상의 무관이 문관을 겸하게 하면서 어사대를 혁파하고 금오대를 설치하며, 삼사를 혁파하고 도정서를 설치하는 등의 요구를 하자 현종이 받아들였는데, 이자림한고제가 운몽택에서 놀러나가는 척 했다가 한신을 사로잡은 옛 일을 언급하며 김훈, 최질 등을 주살할 뜻에 대해 전달하자 현종은 서경으로 김훈, 최질 등과 함께 서경의 장락궁에서 연회를 열었다.

최구는 연회에 참석했다가 술에 취해 김훈, 최질 등 18명과 함께 주살되었다. 고려사의 왕가도 열전을 보면 최구에 대해 "성품이 거칠고 천박하여 최질 같은 자와 교류하였으므로 〈화를〉 당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난 자체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불확실해도 주동자들과 어울린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3. 대중매체[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2-09 23:21:10에 나무위키 최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