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장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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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의 신무제 고환의 차녀. 본래 동위의 효정제 원선견의 황후였으나, 동위가 멸망하고 효정제가 중산왕에 책봉되면서 고씨 또한 중산왕비가 되었다. 태원장공주라고도 불린다.
어머니 누소군은 고씨를 잉태하기 전에 달이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이후 천평 4년(537년)에 효정제 원선견이 고씨를 장차 황후로 삼으려 하니, 당시 제왕(齊王)이었던 고환은 굳게 사양했으나 황제가 불허하였다.
흥화 원년(539년) 5월, 효정제가 마침내 조서 내려 시중·사도 공손등(公孫騰), 사공·양성왕 원욱(元旭), 사주목·하서왕 원변(元忭), 태상경·종정경 원효우(元孝友) 등으로 하여금 예를 갖추게 한 후, 친히 진양(晉陽)에 위치한 승상 고환의 집으로 행차하여 고씨를 황후로 맞이하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천보 원년(550년) 5월, 제왕 고양이 동위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여 북제를 건국하였다. 고환이 효정제를 중산왕(中山王)으로 봉하면서 황후였던 고씨 역시 중산왕비로 격하되고 태원장공주에 봉해졌다. 태원장공주는 남편이 제위를 선양해준 이후로 그가 암살당할 것을 경계하여 항상 곁에 붙어서 모든 생활을 함께하였다.
천보 2년(551년) 12월, 문선제 고양은 태원장공주에게 형제자매들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자는 제안을 하며 궁에 초대했다. 태원장공주가 그 청에 응해 연회에 참석하자, 처음부터 그녀가 남편과 떨어진 틈을 이용할 작정이었던 문선제는 부하를 보내 중산왕 원선견과 그의 세 아들을 모두 짐독으로 주살하였다.
천보 3년(552년) 정월, 문선제가 자신의 충복인 상서좌복야 양음(楊愔)을 왕에 봉하면서 명을 내려 태원장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 재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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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의 황후 太原長公主 | 태원장공주 | |
시호 | 없음 |
성 | 고(高) |
생몰연도 | 불명 |
본적 | 발해군(渤海郡) 수현(蓨縣) |
재위 | 동위의 황후 |
539년 5월 ~ 550년 6월 9일 | |
북제의 중산왕비(中山王妃) | |
550년 6월 9일 ~ 552년 1월 21일 | |
부모 | 부황 고조 모후 무명황후 |
형제자매 | 15남 9녀 중 차녀 |
부군 | 효정황제(孝靜皇帝) |
1. 개요[편집]
북제의 신무제 고환의 차녀. 본래 동위의 효정제 원선견의 황후였으나, 동위가 멸망하고 효정제가 중산왕에 책봉되면서 고씨 또한 중산왕비가 되었다. 태원장공주라고도 불린다.
2. 생애[편집]
어머니 누소군은 고씨를 잉태하기 전에 달이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이후 천평 4년(537년)에 효정제 원선견이 고씨를 장차 황후로 삼으려 하니, 당시 제왕(齊王)이었던 고환은 굳게 사양했으나 황제가 불허하였다.
흥화 원년(539년) 5월, 효정제가 마침내 조서 내려 시중·사도 공손등(公孫騰), 사공·양성왕 원욱(元旭), 사주목·하서왕 원변(元忭), 태상경·종정경 원효우(元孝友) 등으로 하여금 예를 갖추게 한 후, 친히 진양(晉陽)에 위치한 승상 고환의 집으로 행차하여 고씨를 황후로 맞이하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천보 원년(550년) 5월, 제왕 고양이 동위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여 북제를 건국하였다. 고환이 효정제를 중산왕(中山王)으로 봉하면서 황후였던 고씨 역시 중산왕비로 격하되고 태원장공주에 봉해졌다. 태원장공주는 남편이 제위를 선양해준 이후로 그가 암살당할 것을 경계하여 항상 곁에 붙어서 모든 생활을 함께하였다.
천보 2년(551년) 12월, 문선제 고양은 태원장공주에게 형제자매들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자는 제안을 하며 궁에 초대했다. 태원장공주가 그 청에 응해 연회에 참석하자, 처음부터 그녀가 남편과 떨어진 틈을 이용할 작정이었던 문선제는 부하를 보내 중산왕 원선견과 그의 세 아들을 모두 짐독으로 주살하였다.
천보 3년(552년) 정월, 문선제가 자신의 충복인 상서좌복야 양음(楊愔)을 왕에 봉하면서 명을 내려 태원장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 재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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