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하로전

덤프버전 :

분류



파일:통도사 하로전.png}}}
통도사 하로전 지도[1]
1. 개요
2. 전각 및 문화재 목록
2.1.1. 삼층석탑
2.1.2. 영산전 팔상도
2.1.2.1. 보물 제1041호
2.1.3. 영산회상탱
2.1.3.1. 보물 제1353호
2.2.1. 아미타여래설법도
2.2.1.1. 보물 제1472호
2.2.2. 광서19년명 신중도
2.2.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9호
2.3.1. 건륭40년명 약사여래후불탱
2.3.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9호
2.6. 범종각
2.6.1. 동종
2.10. 명월료
2.11. 금당
2.12. 은당
2.13. 육화당


1. 개요[편집]


통도사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구역이다.

2. 전각 및 문화재 목록[편집]



2.1. 영산전[편집]



2.1.1. 삼층석탑[편집]



2.1.2. 영산전 팔상도[편집]



2.1.2.1. 보물 제1041호[편집]

부처가 태어나 도를 닦고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이다. 가로 151㎝, 세로 233.5㎝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팔상도는 모두 8폭으로 액자에 끼워 벽에 붙여 놓아 보관하고 있다.

이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거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51년(1775)에 여러 화가에 의해 그려졌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2.1.3. 영산회상탱[편집]




2.1.3.1. 보물 제1353호[편집]

탱화란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하는데, 통도사영산회상탱은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렸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10대 제자, 제석·범천, 사천왕, 팔부신중 등의 무리가 석가모니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높다란 수미단(須彌壇) 위의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에 앉아 있으며, 등 뒤에는 커다란 키 모양의 광배가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단정하며 굵은 목에는 세 개의 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손모양은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법의는 적색 위주로 전면에 걸쳐 원무늬와 함께 잔잔한 꽃무늬가 장식되어, 기타 인물들의 무늬와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준다.

이 영산회상탱은 그림의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 영조 10년(1734)에 임한(任閑)의 지휘아래 민휘(敏輝)·순백(舜白)·포근(抱根)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선이 뛰어나고 선명한 색채의 사용과 잔잔한 무늬를 채용함으로써 명랑한 부위기와 함께 부드러움을 제공해 주는 불화로, 18세기 전반기 불화의 흐름, 특히 임한(任閑)이 주도한 불화의 경향파악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2. 극락보전[편집]




2.2.1. 아미타여래설법도[편집]




2.2.1.1. 보물 제1472호[편집]

화면의 중앙에 본존인 아미타여래가 보단(寶壇)위에 결가부좌하고 그 좌우에 관음과 세지보살을 비롯한 8대보살과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화면 윗부분에는 10대 제자와 용왕·용녀 등이 배치된 전형적인 설법도 형식의 그림이다. 채색은 주, 군청 그리고 녹청을 주조색으로 하였으며 중간색은 억제되어 있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본존을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하여 주제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며, 법의의 옷주름 역시 비교적 굵고 활달하여 본존의 모습과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구도는 물론 색감도 안정되어 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다. 한편 이 그림은 화기(畵記)에 의하면 임한(任閑)이란 화사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임한은 기림사의 비로자나삼신불도(1718년)를 비롯하여 통도사의 석가설법도(1734년)와 비로자나삼신불도(1759년) 및 석남사, 운문사 등 통도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의 불화제작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화사이다.

전반적으로 필치가 섬세하고 유연함이 돋보이며 인물배치에 있어서도 독특함이 엿보임과 아울러 ‘임한’이 수화원을 맡아 조성한 이른 시기의 불화로서 이른바 ‘임한파’ 화풍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2.2.2. 광서19년명 신중도[편집]




2.2.2.1.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9호[편집]

신중도는 대승불교에서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봉안되어 신앙의 대상이 된 신중(神衆)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나타낸 예배용 불화이다.

이 신중도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중탱화로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168.2㎝×153.0㎝이다.

구도가 다른 신중도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상단은 마치 왼쪽 일부가 잘려 나간 것처럼 왼쪽으로 치우친 제석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상중을 배치하였으며, 오른쪽 한편에 동진보살을 배치하였고, 하단에 신중상을 배치하여 화면의 초점이 좌측의 제석천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꽃무늬·구름무늬·호피무늬 등의 정교한 무늬와 현란한 색채가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화면에 쓰여져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신중도는 조선 고종 30년(1893)에 금어(金魚) 비구해규(海珪)·덕림(德林)·두행(斗幸)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신중도는 통도사 금강계단 앞의 극락보전에 봉안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나 특이한 구도의 신중도로 조선시대 후기의 불화연구에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3. 약사전[편집]




2.3.1. 건륭40년명 약사여래후불탱[편집]




2.3.1.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9호[편집]

본 작품은 약사전 후불탱으로 1775년 통도사 불화제작의 주요인물인 화사 포관(抱冠) 등이 제작한 작품이다.

본존의 신광을 중심으로 보살과 신중들이 지니고 있는 지물과 의문에 금분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화면에 생기를 더하고 있으며, 신장상의 다양한 복식 또한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2.4. 화엄전[편집]



2.5. 만세루[편집]



2.6. 범종각[편집]



2.6.1. 동종[편집]



2.7. 가람각[편집]



2.8. 천왕문[편집]



2.9. 일주문[편집]



2.10. 명월료[편집]



2.11. 금당[편집]



2.12. 은당[편집]



2.13. 육화당[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1 13:32:27에 나무위키 통도사/하로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색칠되어 있는 부분이 하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