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팔레스타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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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근세
2.4. 20세기
2.5. 21세기
2.5.1. 2000년대
2.5.2. 2010년대
2.5.3. 2020년대
3. 대사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키스탄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영국으로 부터 독립 이후 민족간 문제로 앙숙인 이웃나라(인도, 이스라엘)와 갈등을 빚는다는 공통점이 있다.[1] 파키스탄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걸프 아랍 국가들과는 종파문제로 근로자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서로 갈등을 빚긴 하지만[2] 파키스탄 내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좋다. 심지어 파키스탄 여권부터 대놓고 이스라엘을 제외한다는 문구가 떡하니 있을 정도다.


2. 역사적 관계[편집]


후술하는 설명 중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부분은 양국 사이의 직접적인 외교 관계 관련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공통점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므로 참고 사항 정도로 읽으면 좋다. 파키스탄은 인도양에 접해 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지중해와 가깝다. 양 지역 사이의 지리적 거리 역시 상당한 편이지만 의외로 전근대 당시에도 양 지역 사이의 인적/문화적 교류는 활발했던 편이었다.

앞서 말했듯 파키스탄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파키스탄과 팔레스타인 양국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이후 영국의 분할 정책에 갈라준 땅으로 원래 살던 땅에서 쫒겨나 강제 이주당한것도 모자라서 원래 살던 땅에 있는 민족간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완전히 동병상련인지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1. 고대[편집]


고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오리엔트 지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파키스탄에 해당하던 인더스 강 유역 지역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에 해당하는 지역 모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시리아 북부에서 사용되던 아람어아람 문자는 고대 페르시아의 공용어였고 인더스 강 유역에서도 아람어가 주요 공용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고대 인더스 강 유역에서 사용되던 카로슈티 문자의 기원 역시 아람 문자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 시대 당시 팔레스티나 속주 주민 대다수는 아람어를 모어로 사용하였다.


2.2. 중세[편집]


아랍 무슬림들이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 예루살렘 일대를 정복하고 이후 우마이야 칼리파조 시대에는 인더스 강 유역이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면서 같은 이슬람권으로 편입되었다. 한동안 양 지역은 상당한 거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활발하였다. 하지만 한동안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양 지역 사이의 교류는 압바스 칼리파조 시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일대가 파티마 왕조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감으로서 축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3. 근세[편집]


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은 3개의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무슬림 순례객들을 보호하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무굴 제국의 무슬림 일부는 예루살렘을 순례할 수 있었다.

2.4. 20세기[편집]


양국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 그리고 분할 과정에서 상당수의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했었던 역사를 공유한다. 영국으로 독립 이후 종교 문제로 각각 인도와 이스라엘과 수차례의 갈등을 겪었다. 파키스탄의 경우 인도에 예속되는 형식으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었으나, 독립이 워낙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보니, 지폐를 인쇄할 조폐창이 없어서 적대국인 인도의 조폐창을 빌려 써야 할 정도로 건국 초창기 상황이 뒤숭숭했다. 파키스탄은 명목상으로는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당시 제코가 석자였던 파키스탄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측에 큰 도움은 줄 수 없었고, 제 4차 중동전쟁에선 파키스탄은 아랍편에 약간의 군사 지원을 하는 선에 그쳤다.

1989년에 양국은 수교하였다.


2.5. 21세기[편집]



2.5.1. 2000년대[편집]


2005년 최초로 파키스탄은 이스라엘과 외무회담을 지녔으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이스라엘과 국교를 승인하지 않고 국교 정상화 과정에 돌입하기 위해 교류하기 시작했다.[3]#


2.5.2. 2010년대[편집]


2012년 11월 17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하자 파키스탄 측이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2017년 12월 7일, 파키스탄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일어났다.#


2.5.3. 2020년대[편집]


2020년 12월, 임란 칸 총리는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관계 정상 소식에 가짜뉴스라고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탄압을 중단하기 전까지 국교를 맺을 일이 없다고 하였다.#

2021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파키스탄에선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가 진행되었다.# 5월 30일, 파키스탄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일어났다.#

2023년 1월 16일, 파키스탄 등 유엔 40개국이 이스라엘을 팔레스터인에 대한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2023년 10월 7일, 파키스탄 정부는 하마스를 무력으로 침공한 이스라엘을 규탄했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로 밝혔다.

3. 대사관[편집]


이슬라마바드에는 주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대사관, 라말라에는 주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대사관이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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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와 이스라엘도 파키스탄과 팔레스타인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2] 사실 걸프 아랍국가 정부 측은 예전부터 비무슬림계 차별을 걱정했으나 건설업체는 유독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 수단, 이집트, 예멘 출신 근로자들을 이단자 취급하여 노예 취급하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해외 근로자 차별 금지법을 도입했으나 여전히 건설업체 내부에서 부정부패가 심한 탓에 여전히 탄압받는 경우가 많다.[3]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파키스탄이 이스라엘에 대한 교류를 중단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