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FIFA 월드컵 브라질/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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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13개국 본선 13강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1조와 2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2조의 개막전은 잉글랜드와 칠레의 경기였다. 당시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으로서 얼마나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줄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기대에 걸맞지 않게 공방전을 거듭했고 모두가 기다리던 잉글랜드의 골은 전반 39분, 스탄 모텐슨의 헤딩골로 나왔다. 그리고 후반 6분, 윌프 마니온이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만들어냈고 잉글랜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여담으로, 월드컵 최초로 소속팀 선수들간의 맞대결이 펼쳐진 경기이다.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소속 선수인 칠레의 호르헤 로블레도와 잉글랜드의 재키 밀번의 대결이었다. 다만, 재키 밀번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또 다른 유럽의 강호 스페인은 미국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사실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의 파리아니가 스페인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철통같은 우주 방어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스페인은 미국의 방어를 뚫어내고 후반 35분, 동점골을 넣고야 말았다. 미국은 이 골로 힘이 빠진 듯 보였고 2분 후 바소라의 발리킥으로 스페인이 역전하고 말았다. 후반 44분에는 사라의 쐐기골로 3:1로 스페인이 승리를 거두었다.
처음 경기의 주도권은 칠레가 잡았다. 칠레는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고 어떻게든 스페인을 잡으려고 초반부터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오히려 선제골은 스페인의 바소라에게서 나오고 말았다. 선제골을 먹힌 후에도 칠레는 포기하지 않고 맹공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새로운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3] 그 와중에서 전반 30분, 스페인의 사라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하여 칠레는 2:0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기가 그 이후 다소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큰 일이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고 칠레의 세르히오 리빙스톤 골키퍼도 좋은 선방을 보여주면서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부터 64년 후, 두 나라는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된 월드컵에서 같은 경기장에서 만났고 칠레가 똑같은 스코어로 복수하면서 스페인을 조별리그가 끝나기도 전에 광탈시켜 버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시합.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파란 셔츠를 입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팀을 대충 만들어서 아마추어가 많은[4] 미국을 상대로 잉글랜드가 어떤 경기력으로 밟아줄지에만 쏠려 있었다. 전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칠레를 상대로 2골 밖에 못 넣은 것은 브라질에 적응이 제대로 안된 탓이었고 미국을 상대로는 화끈한 골 폭풍을 선보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시합은 미국의 진영에서 진행되었고 미국의 골키퍼 프랭크 보기는 무지하게 바빴다.
하지만 전반 38분, 몇 번 안되던 미국의 공격에서 월터 바르가 잉글랜드 진영 오른쪽에서 쏜 슛이 흘러나오자 조 게이젠스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잉글랜드에게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 이것이 이 경기에서 미국이 유일하게 공격을 한 장면이었다. 이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선제골은 미국이 넣었지만 스페인이 3골을 넣으면서 역전했던 적이 있으니 잉글랜드도 곧 그리 할 거라 생각했다. 먹히기 전이나 먹힌 후나 잉글랜드의 파상공세는 변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을 상대로 예방주사를 맞았는지 하프백 찰리 콜롬보를 축으로 한 미국의 수비는 오히려 잉글랜드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결국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는 역대 월드컵 역사에 남을 대 이변이 완성되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나오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변 시리즈 첫 번째를 장식했던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다.[5] 대충 만든 팀이자칭 슛 고작 1개로 세계 최정예를 눕힌 것이다[6] .
오죽하면 미국의 일부 신문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다는 기사를 믿지 못하고 잉글랜드가 미국을 10:0으로 이겼다고 추측성 오보를 냈다가 정정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자국 신문에서조차 '우리 팀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다고? 개소리 하지 마라.'라며 승리를 불신했었을 정도로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변인 셈.
유럽의 두 축구 강국이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7만 4천명이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하였는데 이는 홈팀 브라질의 경기를 제외하면 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경기였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스페인은 이미 2승을 거두었고 잉글랜드는 1승 1패를 거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골득실을 따지면 스페인은 2경기에서 +4, 잉글랜드는 +1. 즉, 잉글랜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무조건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결승 리그에 진출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이기고도 3시간 후에 열리는 미국과 칠레전의 경기 결과도 지켜봐야 했다. 잉글랜드가 스페인을 2골 이상 차이로 이긴다 해도 미국이 칠레를 그들의 결과보다 3점차 이상 더 집어넣어서 잡아버리면 결선 리그에는 미국이 올라가는 거였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잉글랜드의 에이스 스탠리 매튜스가 처음으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만큼 잉글랜드는 절박했다.
하지만 신은 잉글랜드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스페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일단 스페인의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는 잇단 선방으로 잉글랜드 공격수들의 기를 꺾었다. 게다가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재키 밀번의 슈팅이 스페인의 골네트를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가 되었다.
전반은 치열한 공방 속에 이렇게 0:0으로 끝났다. 하지만 후반 3분, 잉글랜드를 좌절에 빠뜨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스페인의 알론소가 올린 크로스를 받은 가인사가 헤딩으로 잉글랜드의 수비수 로리 휴즈를 무력화시키며 텔모 사라에게 패스해준 것을 사라가 간단하게 골을 넣은 것이다.
결국 이 시합은 스페인이 잉글랜드를 꺾었고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기는 했지만 이미 전 경기에서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확정되었던 터라 이 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렸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스페인전이나 잉글랜드 전에 비하면 다소 힘이 빠진 상태였다.
칠레가 이 시합에서 먼저 2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2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칠레는 후반 9분부터 잇달아 3골을 넣으며 미국의 추격 의지를 뿌리쳤고 결국 칠레가 5:2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정보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선 리그항목에서 기재.
1. 개요[편집]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13개국 본선 13강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1조와 2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2. 1경기 잉글랜드 2 vs 0 칠레[편집]
2조의 개막전은 잉글랜드와 칠레의 경기였다. 당시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으로서 얼마나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줄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기대에 걸맞지 않게 공방전을 거듭했고 모두가 기다리던 잉글랜드의 골은 전반 39분, 스탄 모텐슨의 헤딩골로 나왔다. 그리고 후반 6분, 윌프 마니온이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만들어냈고 잉글랜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여담으로, 월드컵 최초로 소속팀 선수들간의 맞대결이 펼쳐진 경기이다.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소속 선수인 칠레의 호르헤 로블레도와 잉글랜드의 재키 밀번의 대결이었다. 다만, 재키 밀번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3. 2경기 미국 1 vs 3 스페인[편집]
같은 시각 또 다른 유럽의 강호 스페인은 미국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사실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의 파리아니가 스페인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철통같은 우주 방어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스페인은 미국의 방어를 뚫어내고 후반 35분, 동점골을 넣고야 말았다. 미국은 이 골로 힘이 빠진 듯 보였고 2분 후 바소라의 발리킥으로 스페인이 역전하고 말았다. 후반 44분에는 사라의 쐐기골로 3:1로 스페인이 승리를 거두었다.
4. 3경기 칠레 0 vs 2 스페인[편집]
처음 경기의 주도권은 칠레가 잡았다. 칠레는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고 어떻게든 스페인을 잡으려고 초반부터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오히려 선제골은 스페인의 바소라에게서 나오고 말았다. 선제골을 먹힌 후에도 칠레는 포기하지 않고 맹공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새로운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3] 그 와중에서 전반 30분, 스페인의 사라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하여 칠레는 2:0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기가 그 이후 다소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큰 일이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고 칠레의 세르히오 리빙스톤 골키퍼도 좋은 선방을 보여주면서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부터 64년 후, 두 나라는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된 월드컵에서 같은 경기장에서 만났고 칠레가 똑같은 스코어로 복수하면서 스페인을 조별리그가 끝나기도 전에 광탈시켜 버린다.
5. 4경기 잉글랜드 0 vs 1 미국[편집]
잔디 위의 기적 (Miracle on Grass)
다윗과 골리앗의 시합.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파란 셔츠를 입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팀을 대충 만들어서 아마추어가 많은[4] 미국을 상대로 잉글랜드가 어떤 경기력으로 밟아줄지에만 쏠려 있었다. 전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칠레를 상대로 2골 밖에 못 넣은 것은 브라질에 적응이 제대로 안된 탓이었고 미국을 상대로는 화끈한 골 폭풍을 선보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시합은 미국의 진영에서 진행되었고 미국의 골키퍼 프랭크 보기는 무지하게 바빴다.
하지만 전반 38분, 몇 번 안되던 미국의 공격에서 월터 바르가 잉글랜드 진영 오른쪽에서 쏜 슛이 흘러나오자 조 게이젠스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잉글랜드에게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 이것이 이 경기에서 미국이 유일하게 공격을 한 장면이었다. 이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선제골은 미국이 넣었지만 스페인이 3골을 넣으면서 역전했던 적이 있으니 잉글랜드도 곧 그리 할 거라 생각했다. 먹히기 전이나 먹힌 후나 잉글랜드의 파상공세는 변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을 상대로 예방주사를 맞았는지 하프백 찰리 콜롬보를 축으로 한 미국의 수비는 오히려 잉글랜드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결국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는 역대 월드컵 역사에 남을 대 이변이 완성되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나오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변 시리즈 첫 번째를 장식했던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다.[5] 대충 만든 팀이
오죽하면 미국의 일부 신문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다는 기사를 믿지 못하고 잉글랜드가 미국을 10:0으로 이겼다고 추측성 오보를 냈다가 정정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자국 신문에서조차 '우리 팀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겼다고? 개소리 하지 마라.'라며 승리를 불신했었을 정도로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변인 셈.
6. 5경기 잉글랜드 0 vs 1 스페인[편집]
유럽의 두 축구 강국이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7만 4천명이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하였는데 이는 홈팀 브라질의 경기를 제외하면 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경기였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스페인은 이미 2승을 거두었고 잉글랜드는 1승 1패를 거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골득실을 따지면 스페인은 2경기에서 +4, 잉글랜드는 +1. 즉, 잉글랜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무조건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결승 리그에 진출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이기고도 3시간 후에 열리는 미국과 칠레전의 경기 결과도 지켜봐야 했다. 잉글랜드가 스페인을 2골 이상 차이로 이긴다 해도 미국이 칠레를 그들의 결과보다 3점차 이상 더 집어넣어서 잡아버리면 결선 리그에는 미국이 올라가는 거였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잉글랜드의 에이스 스탠리 매튜스가 처음으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만큼 잉글랜드는 절박했다.
하지만 신은 잉글랜드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스페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일단 스페인의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는 잇단 선방으로 잉글랜드 공격수들의 기를 꺾었다. 게다가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재키 밀번의 슈팅이 스페인의 골네트를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가 되었다.
전반은 치열한 공방 속에 이렇게 0:0으로 끝났다. 하지만 후반 3분, 잉글랜드를 좌절에 빠뜨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스페인의 알론소가 올린 크로스를 받은 가인사가 헤딩으로 잉글랜드의 수비수 로리 휴즈를 무력화시키며 텔모 사라에게 패스해준 것을 사라가 간단하게 골을 넣은 것이다.
결국 이 시합은 스페인이 잉글랜드를 꺾었고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7. 6경기 칠레 5 vs 2 미국[편집]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기는 했지만 이미 전 경기에서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확정되었던 터라 이 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렸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스페인전이나 잉글랜드 전에 비하면 다소 힘이 빠진 상태였다.
칠레가 이 시합에서 먼저 2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2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칠레는 후반 9분부터 잇달아 3골을 넣으며 미국의 추격 의지를 뿌리쳤고 결국 칠레가 5:2로 승리를 거두었다.
8. 결선 리그 진출팀[편집]
이후 정보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선 리그항목에서 기재.
[1] 본명은 호세 곤살보 팔콘. 3형제 중 둘째로 3형제가 모두 축구 선수로 활약하였다. 형 훌리오-통칭 곤살보 Ⅰ는 카탈루냐 대표팀에서만 뛰었지만 곤살보 Ⅱ는 동생 곤살보 Ⅲ와 함께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다[2] 본명은 마리아노 곤살보 팔콘. 3형제 중 막내[3] 그로 인해 라마예츠는 마라카낭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는다[4] 그도 그럴것이 당시 미국은 징병제를 하고 있었고 월드컵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지라 불법체류자나 유학생이나 되는대로 미국 국적을 줘가면서 선수로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골게터 조 게이젠스는 원래 아이티 사람이였다.[5] 그 후 독일7:1브라질 미네이랑의 비극이 이변 1위가 되었고 그 뒤이어 대한민국2:0독일 카잔 대첩이 이변 2위가 되었다.[6]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렇게 급조된 팀을 만들어 놓고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미국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인적, 물적자원은 물론, 인프라도 제대로 발달되고 갖춰져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7] 최초의 영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EPL 선수의 월드컵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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