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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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4년에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2. 배경[편집]
제2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레오니드 쿠치마는 집권 2기에 들면서 레임덕에 시달려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자신의 후계자로 밀어주었다. 한편, 레오니드 쿠치마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던 빅토르 유셴코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는 빅토르 유셴코와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대결이 주가 되었다. 한편 이 선거는 동서구도 자체가 이 선거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동서구도는 199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와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본질적으로 크라우추크나 쿠치마나 딱히 동부나 서부에 한정해서 지속적으로 몰표를 받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었고[1] 공산당원 관료 출신이면서도 서방과의 관계증진에 나서고 사유화를 추진한 빅텐트 성향이었던데 반해, 2002년 총선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공산당이 몰락하고, 동부지역이 지역당의 텃밭이 되었고, 서부와 중부지역에서 친서방 자유주의 정당이 세를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이 선거를 기점으로 갈등 양상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대선을 앞둔 빅토르 유셴코는 다이옥신 테러를 당할 뻔했다. 유셴코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 테러가 러시아나 친러 세력이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당선시키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음모가 우크라이나에서 퍼지기도 했다.
3. 선거 결과[편집]
3.1. 개표 결과[편집]
3.1.1. 1차 투표[편집]
3.1.2. 결선 투표[편집]
3.1.3. 결선 이후[편집]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결선투표에서 당선되자, 빅토르 유셴코는 결선 투표에서 대규모 선거 부정 정황이 있었다는 증거자료들을 입수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에 키이우 등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니 이것이 바로 오렌지 혁명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대법원과 우크라이나 중앙선거위원회가 개입하면서 12월 26일에 재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여기서 당시 빅토르 유셴코의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등판했던 인물이 훗날 빅토르 유셴코와 정적으로 돌변하는 율리야 티모셴코였다.
3.1.4. 결선 재투표[편집]
3.2. 선거 이후[편집]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당선되자 지역당과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 역시 부정선거 증거를 입수해 법원에 선거 무효를 요청했으나 법원이 전부 기각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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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라우추크는 1991년 대선에서 동부지역에서 몰표를 얻은바 있고, 쿠치마는 1999년 대선에서 서부지역에서 몰표를 얻은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