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차흐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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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르차흐 분쟁
Հայ-ադրբեջանական պատերազմ Արցախում
Azərbaycan və erməni qüvvələri arasında döyüşlər
2023 Artsakh clashes

기간
2023년 9월 19일[1] ~ 2023년 9월 20일
원인
2022년 아르차흐 봉쇄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아르차흐 무력화 시도
장소
아르차흐 공화국 전역
교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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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차흐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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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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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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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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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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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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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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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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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아르차흐 방위군
아제르바이잔군
인명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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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차흐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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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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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명 이상 전사
400명 이상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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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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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202명 전사
512명 부상
러시아 평화유지군 6명 전사 1명 부상
결과
아제르바이잔의 승리
아르차흐 공화국 멸망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대규모 아르차흐 탈출
아제르바이잔의 국제법적 영토 회복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9월 18일
3.2. 9월 19일
3.3. 9월 20일
3.4. 9월 21일
3.5. 9월 24일
3.6. 9월 25일
3.7. 9월 26일
3.8. 9월 27일
3.9. 9월 28일
3.10. 9월 29일
3.11. 10월 1일
3.12. 10월 2일
3.13. 10월 3일
3.14. 10월 15일



1. 개요[편집]


2023년 9월 19일 아제르바이잔아르차흐 공화국 간에 발생한 단기간 분쟁. 20시간여 만에 유혈 충돌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며, 9월 20일 휴전협정을 조인하였다. 이 군사적 충돌로 아르차흐 공화국은 군대와 정부를 해산하고 소멸 절차를 밟게 되었다.


2. 배경[편집]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을 승전으로 장식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게 자국의 주권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며, 휴전협정문에는 이를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배치와 병행한다고 명기하면서 못을 박았다. 아르메니아는 실제로 대부분의 병력을 아르차흐에서 거두어 본국으로 귀환시켰으나 아르차흐 방위군에 대해서는 자국과 별개인 현지인들이라는 명목으로 손을 대지 않고 음성적으로 이들의 재건을 후원하다 적발되었다. 이 군사충돌 이전까지 아르메니아의 군사 후원은 단순히 아제르바이잔의 선전선동으로만 여겨졌으나, 교전 이후 아제르바이잔군의 노획품에 기존 아르차흐 방위군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9K330 토르가 눈에 띄는 등 2020년 이후 아르메니아의 괴뢰국 후원 이력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존재하는 동안 아제르바이잔의 전면적인 무력 사용이 억제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는 평화유지군 잔류 시한인 5년 동안 아제르바이잔과의 신규 협상에 실질적으로 응하지 않고 외교 총력전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을 압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억제력을 행사할 의지가 사라진지 오래였고,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생각보다 우호적이었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의 시간벌이 전략을 깨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은 단계적으로 아르차흐의 실질적 무력화를 기도한다.

그 첫째로 아제르바이잔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에 대한 2022년 국경분쟁을 개시하고 승전하며 아르메니아군이 본토 방어 이상의 작전을 수행할 역량과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다. 둘째로, 국경분쟁 직후인 2022년 12월 라츤 회랑을 닫으며 아르차흐 봉쇄로써 아르차흐 방위군의 반격 역량을 최소화한다. 셋째로, 이 분쟁(소위 '대테러작전')을 개시하여 아르메니아의 불개입·아르차흐의 미반격·국제사회의 묵인을 증명한다. 이로써 아르차흐 공화국은 소멸한다.


3. 전개[편집]



3.1. 9월 18일[편집]


라츤 회랑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 군인 4명과 민간인 2명이 지뢰 폭발로 사망하자, 아제르바이잔은 원인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지목하며 대테러작전을 선포하고 아르차흐 침공을 개시한다.


3.2. 9월 19일[편집]


작전 개시 직후 트위터 등 여러 민간 출처를 통해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 스테파나케르트(한캔디)에 포연이 올라오고 총성이 울리는 영상들이 게재되었다.# #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이 된 시설은 통신기지, 스테파나케르트 공항 등 군시설 위주이기는 하였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민간인 피해와 학살이 대량으로 발생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지 인터넷이 블랙아웃 되었고 암전이 해제된 이후에 그러한 사실에 대한 자료는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언론사가 송고한 사진들#로 미루어 볼 때 민간인 피해가 상당수 발생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다.

아르메니아 외교부가 아르차흐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에 대해 성명서를 내놓았다.#


3.3. 9월 20일[편집]


아르차흐 방위군의 무장해제를 조건으로 아르차흐 공화국 정부가 휴전협정 조인에 합의하면서 아르차흐 정부는 아제르바이잔과의 통합 논의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역사적 건축물인 아마라 수도원이 속한 지역이 아제르바이잔에게 점령되었다. #

러시아 평화유지군 병력이 아제르바이잔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제르바이잔군이 슈샤에서 스테파나케르트 양익 방향으로 진군하며 여러 마을을 점령한 것이 아르메니아 언론의 보도로 확인되었다.#


3.4. 9월 21일[편집]


나고르노카라바흐 재통합 문제에 대한 아르차흐-아제르바이잔 회담이 열렸다.#


3.5. 9월 24일[편집]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 잔여 3개 도시 중 하나인 아그대래(Aghdara)[2]를 점령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곳에서 저항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메니아의 군사장비가 불탔고,#, 주도로상에 지뢰 설치가 확인되었다.# 아르메니아계 저항 세력은 철수하면서 마을을 불태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 봉쇄의 원인 중 하나였던 헤이발리(Heyvali)[3] 광산지역을 점령한다.#


3.6. 9월 25일[편집]



인종청소 위협을 느낀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탈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탈출 행렬 도중 급유를 위해 주유소에 차량들이 정차해 있다가, 주유소 저장 탱크가 폭발하며 125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

3.7. 9월 26일[편집]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 잔여 3개 도시 중 하나인 호자밴드(Khojavand)[4]를 점령했다.#


3.8. 9월 27일[편집]


아르차흐 공화국 인구 3분의 1인 50,243명이 아르메니아로 탈출했다.#


3.9. 9월 28일[편집]


아르차흐 공화국 대통령은 국가 소멸 법안에 서명한다. 이로써 아르차흐 공화국은 2024년 1월 1일 부로 해산된다.#


3.10. 9월 29일[편집]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스테파나케르트에 아제르바이잔 경찰이 입성하면서 스테파나케르트는 완전히 함락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아르메니아인들의 귀화를 허용하면서 1만 이상 정도 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귀화하여 남을 전망이다. 일함 알리예프가 아제르바이잔 귀화를 허용하며 종교 및 신변 보호를 보장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우디인 기독교도나 아르메니아인들이 90년대 이후에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수백여명 소수 민족으로서 줄곧 종교를 인정받고 조용히 살아가고 보호받았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일함 알리예프는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은 이제 자국민으로 보호를 보장하겠지만 아르차흐 공화국 수뇌부에 대해선 반란 범죄자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으며 9월 29일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전 아르차흐 공화국 국방군 제1부사령관 다비트 마누캰(Davit Manukyan) 소장을 체포했으며 뒤이어 국방군 총사령관이던 레본 므나차카냔(Levon Mnatsakanyan) 중장 역시 아르메니아로 대피하던 도중에 검문소에서 적발되어 구속되었다. 전 아르차흐 외무 장관 다비트 바바얀은 자수하여 구속되었는데 아제르바이잔 측은 자수하면 처벌을 완화하겠다고 아르차흐 공화국 수뇌부들이 숨어있는 가운데 자수를 권고하고 있다. 반대로 전직 아르차흐 주 장관인 아르타크 베글라랸(Artak Beglaryan)은 겨우 피해서 아르메니아로 입국했다.


3.11. 10월 1일[편집]


아르차흐 대통령궁, 아르차흐 의회에서 아르차흐 공화국의 국기가 철거되었고, 한캔디 시내는 유령도시가 되었다.[5]#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수도 한캔디에서 잔류를 희망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아제르바이잔 국적 획득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예정된 소멸 날짜인 2024년 1월 1일보다 사실상 일찍 소멸하였다.#

이미 아르차흐 내 아르메니아인 10만 847명 이상이 아르차흐를 떠나 아르메니아로 갔는데 니콜 파시냔 총리는 피난민들에게 생필품 제공 및 1달동안 숙박비로 1명당 4만 드람(14만 3천원 정도)을 제공할 예정임을 밝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아르메니아로선 이 피난민들을 맞이하는 일도 큰 일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캐나다에서 250만 달러 지원금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지원금을 보내와서 도움이 되고 있다.


3.12. 10월 2일[편집]


아제르바이잔의 방송사 AZ TV에서 라츤 검문소를 통해 아르메니아로 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내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인터뷰 전문
(영상 1분 7초부터)
리포터: 어디에서 오십니까?
남자1: 한캔디에서요.
리포터: 어디로 가십니까?
남자1: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리포터: (작게들림) 아직은 모르겠다라...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시는 겁니까? 누가 내쫓았습니까?
남자1: 아니요. 다들 가니까 나도 가는 것이지요.

(1분27초)
리포터: 본인의 의지로 가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가 선생님을 여기서 내쫓았습니까?
남자2: 아니요, 우리 스스로 가고 싶었습니다.

(1분41초)
리포터: 어떤 문제를 겪으시진 않으셨는지요?
남자3: 아니요 아니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리포터: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셨습니까?
남자3: 길이 열려있으니 모든 것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리포터) 잘 가십시오 / 남자3: 고맙소

(1분53초)
리포터: 1990년대 이전에 그곳에서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아르메니아인들과 함께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남자4: 우리는 늘 그들과 함께 잘 살았지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운전기사였는데 바쿠에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농산물들을 가져왔지요.
리포터: 아제르바이잔인들과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시 함께 살 수 있기를 희망하시는지요?
남자4: 보세요.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전처럼 이제부터는 다 같이 살아야합니다.

(3분), 이 부분은 아제르바이잔어로 진행됨
리포터: 한캔디에서 여기로 오시는데 어떤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남자5: 아니요 아니요 모두 정상적이었습니다.
리포터: 한캔디에서 몇 년이나 사셨습니까?
남자5: 1975년부터요.

(3분24초)
리포터: 그들(아제르바이잔 국경수비대)이 여러분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남자6: 보통으로요.
리포터: 전부 일반적이었습니까? 여러분들께 물을 주었습니까?
남자6: 예
리포터: 왜 이 지역을 떠나시는 겁니까? 여러분을 강요한 자들이 있습니까?
남자6: 아니요. 저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리포터: 수술후 돌아오실 겁니까?
남자6: 당국이 허락한다면 돌아올겁니다.
리포터: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머물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허락을 합니다.
남자6: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3분53초) 이 부분은 아제르바이잔어로 진행됨.
리포터: 뭐 하러 가시는겁니까?
짐말을 끈 남자: 나는 안 떠나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는 중입니다. (...) 내 동생이 도와달라고 해서
리포터: 머무실겁니까 아제르바이잔에?
짐말을 끈 남자: 정말로, 도망 안간다니까요
리포터: 형제분은 왜 안 오신대요?
짐말을 끈 남자: 그는 예레반에 있어요. (...) 말도 여기에 있고, 형제 몇명도 이쪽에 있는걸
리포터: 형제가 몇이에요? 그는 아르메니아 국적인가요?
짐말을 끈 남자: 네네
리포터: 선생님은 카라바흐에서 살고 계셨고요?
짐말을 끈 남자: 나는 다샬트(Daşaltı)에서 살았습니다. 슈샤구에서요.
리포터: 그럼 그 후 돌아오시는거지요?
짐말을 끈 남자: 그럼요 돌아올겁니다 여기로.


3.13. 10월 3일[편집]


아라이크 하루튜냔 전 아르차흐 대통령 수배령이 내려진 이후, 바코 사하캰, 아르카디 구카샨, 아라이크 하루튜냔 세 명의 전직 대통령들과 다비트 이슈하냔 국회의장, 친척 아르투르 하루튜냔은 아르메니아로 도피하다 라츤 회랑에서 아제르바이잔 국경수비대에게 체포되었고 바쿠로 압송되었다.

한편, 아르차흐의 마지막 대통령이였던 삼벨 샤흐라마냔은 대다수의 언론에 따르면 라츤 회랑을 통과하여 고리스에 머물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아제르바이잔에서도 그는 특별히 수배하지 않았는데 겨우 한 달 남짓 대통령을 임시로 맡았기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는 분석이다.


3.14. 10월 15일[편집]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한캔디에 도착해 아르차흐 대통령궁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고 아르차흐 의회, 정부청사 등을 살펴보면서 아르차흐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1] 현지 시간.[2] 아르메니아어로 마르타케르트(Martakert).[3] 아르메니아어로 드름본(Drmbon)[4] 아르메니아어로 마르투니(Martuni).[5] 영상을 보면 한캔디 시내에 쓰레기가 가득 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0년에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철수하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나무를 자르고 집까지 불태우고 떠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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