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섭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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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초한쟁패기에 활약한 인물. 본래 연나라의 승상이었지만, 후에 한나라 편에 서서 결국 전한의 공신이 된다.
2. 생애[편집]
본래 연나라 왕 장도의 신하로, 연나라의 승상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 장도가 한신에게 항복했고, 이후 한왕 4년(기원전 203년)에 장도의 명령으로 장군 온개와 함께 한나라 지원군으로 파견되어 항우의 대사마 조구(초한쟁패기)를 무찌르는데 힘을 보탰다.
그러다가 온개와 함께 한나라에 남기로 한 것인지, 이듬해인 한왕 5년(기원전 202년)에 연왕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오히려 연나라 토벌군으로 참전하여 연나라를 쳤다.
이후 이천석 질석의 장군에 올랐고, 기원전 198년 8월 갑진일에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져 식읍 1,000호를 받는다.
3. 사후[편집]
문제(전한) 2년인 기원전 178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공후(共侯)라고 하였다. 작위는 아들 소섭복이 잇는다. 그 뒤를 이어 소섭가문은 무려 5대에 걸쳐 80년 동안이나 평주후의 봉국을 유지하는 명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5대째인 소섭매 때 작위를 몰수당하지만, 이후 후손들이 다시 가문을 일으켰다고 하니, 한고제 때 공신들 중에 후손들도 잘 먹고 잘 산 축에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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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천석(二千石)의 장군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