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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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允謙
1463년(세조 9) ~ 1536년(중종 31) 6월 12일
1. 개요[편집]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익부(益夫), 시호는 장양(莊襄).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여인천하로 유명한 정난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463년 강원도 횡성현(현 횡성군)[1] 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정3품)를 지낸 정온(鄭溫)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92년 무과에 급제한 후 1506년에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병충분의정국공신(秉忠奮義靖國功臣)에 책록되었다.[2]
1518년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이듬해인 1519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르는 등 잇따라 승진하며 청계군(淸溪君)으로 봉해졌고, 회령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
1522년, 전라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고, 무기와 병선을 고쳐서 왜구를 토벌하여 공을 세웠고, 1526년에는 훈련원도정의 자격으로 성절사(聖節使)의 일원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모함으로 고향 횡성현으로 유배를 떠났다가, 다시 복권되어서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1536년 6월 12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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