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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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O 리그 다승왕

게리 레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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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김자윤
(1999~2000)

레스
(2001)


신용운
(2002~2003)
두산 베어스 등번호 57번
김성환
(1997~1998)

레스
(2002)


성영재
(2003~2003.6.2.)
두산 베어스 등번호 57번
성영재
(2003~2003.6.2.)

레스
(2004)


박성남
(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56번
조영민
(2007)

레스
(2008)


진야곱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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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게리 래스
Alfred Gary Rath

출생
1973년 1월 10일 (51세)
미주리 주 걸프포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4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7번,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8)
미네소타 트윈스 (1999)
해태-KIA 타이거즈 (2001)
두산 베어스 (2002)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
두산 베어스 (200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
라미고 몽키스 (2007)
두산 베어스 (200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MLB 시절
3. 한국 프로야구 시절
3.1.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의 전 외국인 선수. 자주 팀을 옮겨 다니며 저니맨 생활을 한 선수다. 속구 평균 구속이 130km/h대로 느린 것을 절묘한 컨트롤과 수 싸움으로 보완한 기교파 투수였다.


2. MLB 시절[편집]


1994년부터 마이너 생활을 시작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의 활약은 98년 99년 총 8경기에 그쳤다. 계속 마이너 생활을 전전하다 2001년 해태 타이거즈와 손을 잡아 한국 무대로 오게 되었다.


3.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파일:두산베어스 게리레스.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2001년 시즌 도중 루이스 안두하의 대체 외국인 투수로 해태 타이거즈에 합류했다. 팀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바뀐 상황에서 27경기 방어율 4.34 7승 9패로 활약을 보여주었고, 시즌 초 대체선수로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153이닝을 소화하며 규정이닝도 채우는 등 이닝 이터로써의 모습도 보여 줬다.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은 ERA와 피홈런이 많았다는 점 등으로 KIA 구단은 레스와 재계약을 포기했으나, 마침 레스를 계속 지켜 보고 있던 두산 김인식 감독이 직접 그를 영입해 달라고 요청하며 2002년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두산에서는 31경기 202.1이닝 방어율 3.87 16승 8패 154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준다. 2002년의 돋보인 활약으로 두산 구단은 레스를 2003년 시즌 재계약 대상자로 묶었으나, 그 해 엄청난 활약을 보인 덕에 레스의 가치는 이미 올라 있었고, 일본 구단들이 레스를 영입하기 위해 머니게임에 참전하는 바람에 당시 자금 사정이 좋지 못했던 두산은 레스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결국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첫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다음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 등 임팩트 있는 활약을 남기며 시작했다. 특히 두 번째 등판은 한신전 5연패를 끊는 귀중한 승리였다. 그러나 보크 문제[1]와 투구폼이 상대팀에게 분석되면서 이후 부진,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13경기, 63이닝, 방어율 4.14라는 그리 좋지는 못한 성적을 기록하며 1시즌 만에 요미우리에서 방출, 다시 친정 팀두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레스는 2004년에도 방어율 2.60에 200.2이닝 17승 8패 4완투를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배영수, 다니엘 리오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 타이틀도 차지했다. 그러나 레스는 다시 한 번 일본 무대 도전을 하겠다며 두산 구단과 재계약을 거부, 일본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계약하게 된다. 대신 이전과는 달리, 두산을 떠나면서 자신의 대체 외국인 투수로 맷 랜들을 추천해주고 갔다. 그리고 랜들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두산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게 되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아무튼,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며 일본프로야구에 재도전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2003 시즌부터 지적되었던 보크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고(시즌 5보크 기록), 결국 23경기 91이닝 방어율 6.33이라는 나쁜 성적을 기록한 데다 시즌 막판에 부상까지 당하며 라쿠텐에서 방출된다. 라쿠텐에서 방출된 이후 2006년 다시 두산 복귀를 타진했으나 이미 2005년 중반부터 합류한다니엘 리오스, 본인 대신 추천한 맷 랜들이 버티고 있어 외국인 TO 2자리가 찬 두산에는 그의 자리가 없었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 리그, 2007년에는 대만 리그 라미고 몽키스에서 뛰었다.

2008년 시즌을 앞두고 2007시즌 정규시즌 MVP 타이틀을 흭득한 다니엘 리오스가 일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함에 따라 자리를 메꾸기 위해 다시 두산에 복귀, 02시즌과 04시즌에 이어 3번째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동시에 자신이 추천했던 랜들과 같이 뛰게 되었으나, 4월 27일 쌍둥이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간 뒤 5월 3일 부인이 위독하고 쌍둥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다음날 두산에서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그 후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는 5년동안 야구코치를 하다가 스테이트팜이라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듯하다.


3.1. 여담[편집]


  • 2004년 4월 18일 삼성과의 대구 원정 경기에서 36경기 연속 안타행진을 기록중이던 박종호와의 맞대결에서 1~3번째 타석은 범타로 요리했고 4번째 타석에서도 좌익수 뜬공을 유도했으나 좌익수가 잡지 않아 결국 안타행진을 이어나가게 됐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연속 안타행진은 39에서 멈췄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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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4일 경기에서 1경기 3보크를 기록했다. 일본프로야구는 보크 규정을 좀 엄격하게 적용하는 탓에 대체로 외국인 투수들이 많은 보크를 기록한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한 투수로 예를 들면, 삼성에서 뛴 라이언 글린은 단 4시즌 뛰고 20보크, SK에서 뛴 에스테반 얀은 단 1시즌 뛰고 12보크라는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