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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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계의 거두인 량스이

1. 개요
2. 역사
2.1. 호국전쟁 이전
2.2. 호국전쟁 이후


1. 개요[편집]


북양정부의 주요 파벌 중 하나로 이름처럼 교통수단(철도)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다. 철도 노동자와 기술자, 자본가들이 주요 지지층으로 삼고있었다.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량스이가 있다.


2. 역사[편집]



2.1. 호국전쟁 이전[편집]


이들은 청나라시기 철도를 담당하던 체신부와 우편을 담당하던 통신 은행의 관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1] 교통계의 창립자는 초대 국무총리 탕사오이였다. 하지만 교통계의 수장으로 군림한 사람은 량스이였다. 탕사오이가 위안스카이와 갈등 끝에 경질된 이후 교통계는 위안스카이와 직접 대항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여기고 그의 독재를 적극 옹호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그가 홍헌제제를 단행하여 황제가 되겠다는 희대의 개소리 무리수를 둘때도 량스이와 교통계는 위안스카이의 제제를 적극 지지하였다. 결국 이 무리수는 호국전쟁이라는 내전으로 이어진다.

2.2. 호국전쟁 이후[편집]


호국전쟁의 결과 홍헌제제가 취소되자 홍헌제제의 주요 원흉으로 지목된 계임 총통으로 임명된 리위안훙은 량스이를 비롯 파벌 지도부에 대한 수배를 내리고 철도를 장악하고 있던 교통계를 완전히 내칠 수는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수배령을 하나둘 해지한다. 돤치루이가 자신의 독재를 위해 설립한 신국회(안복 국회)에서도 안복계의 뒤를 이어 제1야당에 오를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2]이렇듯 자신들에게 협조적이지 않으면서도 내칠 수 없는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군벌들은 노력했다.[3] 그렇게 질긴 명줄을 이어가다 국민당의 2차 북벌로 끝을 맞이한다. 그들을 반동자본가로 낙인찍은 국민당에 의해 교통계는 해산되었고 그 재산은 친국민당 은행가 쿵샹시쑹쯔원에게 전부 넘어가게 되어 4대가족의 힘을 키우는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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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해혁명 이후 체신부의 후신 조직인 교통부와 통신 은행의 앞글자를 따 교통계라고 명명되었다.[2] 제1당은 당연히 안복계였고 제3당은 량치차오의 연구계였다.[3] 대표적으로 직예군벌의 우페이푸는 코민테른과 접촉하여 철도노동자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려했다. 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일어난 일이 그 유명한 2.7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