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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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jpg

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The Grover Shoe Factory Disaster

1905년 3월 2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록튼의 글로버 신발 공장에서 일어난 보일러 폭발사고.


2. 사고 내용[편집]


브록튼은 당시 신발 제조 공장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R. B. 글로버 신발 공장도 브록튼의 신발 공장 중 하나였다. 1891년에 세워진 이 공장은 R. B. 글로버 소유였다. 공장에선 에머슨(Emerson)이란 상표의 신발을 생산했는데, 당시 대중에서 인기가 많아 공장에 새 층을 추가해 생산량을 늘렸다. 1903년엔 새 층에 맞는 새 보일러를 새로 설치했다. 1905년에만 해도 전용 매장이 33곳이나 있고, 같은 해 2월에만 54,000 켤레의 신발을 생산할 정도로 회사는 잘나갔다.

사고 전날, 새 보일러가 고장나 작동되지 않았고, 비상대책으로 쓰지 않던 헌 보일러를 가져와 작동시켰다. 해당 보일러는 1891년에 만들어진 보일러였다. 새 보일러가 최대 125 파운드의 증기 압력을 버티는데 반해, 헌 보일러는 최대 90파운드의 증기 압력을 버틸 수 있었다.

사고 당일, 40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오전 7시 45분, 라디에이터에서 이상한 소음이 났다. 50분, 보일러가 폭발했다. 폭발하면서 보일러가 4층 높이의 건물을 뚫고 47m를 날아갔다. 날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건물 지붕 하나를 뚫고, 다른 건물에 박힐 정도였다. 다행히 두 건물엔 사상자가 없었다.

하지만 보일러가 폭발하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인근 물탱크 타워도 무너지면서 그대로 공장을 덮쳤다. 폭발로 보일러 밑에 있언 불타는 석탄이 날아갔고, 그대로 화재로 번져 가스라인이 터지는 2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 바닥은 나무로 되었는데, 먼지를 치우느라 전날 기름칠을 해 피해가 커졌다. 거기다 건물에 있던 300개 넘는 창문이 다 깨지며 산소를 공급해 불이 커졌다. 물탱크 타워가 무너지면서 스프링클러 시스템도 고장났다. 불이 너무 거세 구조도 힘들었다. 소방대는 불을 먼저 끄고 구조를 해야했다.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불길이 잡혀 구조를 할 수 있었다.

사고로 58명이 사망했다. 2차 폭발로 인한 피해자가 더 많았다. 18명의 시신은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보일러 담당 엔지니어는 사고 이후 도망쳤다는 루머가 퍼졌으나, 사고 현장 수습 도중 시신이 발견됐다. 그리고 15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는 술타나호 침몰 사고 이후 미국에서 보일러 폭발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편집]


3월 22일,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 브록튼 시 극장에서 행해졌다. 시장이 직접 극장을 대관해 열었다. 장례식 동안에는 마을 가게들이 잠시 문을 닫았고, 건물마다 검은 깃발이 걸렸다.

사고로 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사고로 회사는 파산했다.

사고 이후, 주 의원들은 미국 최초의 보일러 설계 법안인 Board of Boiler Rules를 제정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기금이 설립됐고, 104,187 달러가 모여 유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앤드루 카네기도 소식을 듣고 1만 달러를 보탰다.

공장은 이후 철거됐고, 1919년 까지 공터로 남아있다가 자동차 판매소가 들어섰다.

브록튼의 멜로스 공동묘지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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