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송/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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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군주
2. 묵가
3. 기타


1. 역대 군주[편집]



시작 시점의 송공. 제-노-송-월의 연합 전선이 된 월나라 내전 이후 휴공 전에게 양위한다.

조선이 중원계로 인정받을 당시의 송공. 기식이 주관한 한치의 틀림도 없는 제사를 관망한 결과 기식과 자매결연을 맺을 정도의 감동을 받고 만다. 이후 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법 등을 실시하고 위나라를 끌어들이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위나라가 제나라와의 적대관계 천명을 요구하였을 때 진짜로 했는데도 여력이 안 되어 돕지 못하고, 변법을 통한 백성과 귀족의 통제의 진척에도 여론은 친제쪽으로 기울어 있던 탓에 모든 게 허사가 되다시피 하는 불행을 겪었다. 사후 송공의 자리는 벽병에게 계승된다.

송휴공 전의 적통으로써 송공의 자리를 계승했지만 휴공이 저지른 의도치 않은 실책의 여파로 인해서 색을 탐하는 아무 생각 없는 자로 가장하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나라의 침공을 계기로 잠시 척성과 힘을 합쳐 변법을 재건하는 등의 행보도 있었지만, 결국 척성이 거병한 내전에서 외세인 초를 끌어들여 명분에서 열세를 점하고, 이것이 대언이 초군을 상대로 선전하는 동안 쐐기가 되어 중립 파벌이 척성 쪽으로 돌아서버리며 이승에서 축출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대언의 형제이거나 부친인 자. 송나라의 재건을 위해 누구든 끌어들이려는 행보를 보였지만, 월나라는 당시 친제인 대부 금강의 존재, 위나라는 제나라를 기만하려는 행동이 되려 찍혀서 거절, 조선은 거리가 상당히 있는 국가라는 점 등의 문제로 쉽지는 않았다. 제후 전인제의 치세에 들어서는 계절존망의 명분 덕을 톡톡히 보면서 벽병을 내전 끝에 죽이고 송공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후 한나라의 유사시 견제를 목표로 위나라와 연합하고자 하는 뜻을 위후에게 전했으나, 위후 위앵은 평양을 그토록 갈망하는 한의 모습을 보고 그럴 일이 없다고 판단한 탓에 좌절되었다. 기비가 사신으로 송을 방문했을 때 명망 높은 학자를 덮어놓고 좋아한다는 의외의 면모를 표출하였다. 언제 사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조선 정왕 재위 초에 명을 다하고 송공은 대언이 된다.[1]

고토수복을 겸해서 벽병 편으로 개입한 초나라를 상대로 수춘에서 선전하였고, 내전의 종식 이후 웅량부의 친정군을 격퇴하며 량부가 목숨만 붙은채로 살아돌아오게 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대 초나라 합종전에서 대부 굴의구를 벤 공이 있으나, 참전 병력이 너무 적었던 탓에 그 외의 공이 없었던 불운이 있었다. 조선의 학문이 주로 부국강병 특화라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 다만 그 야심의 크기가 제나라의 눈 밖에 날 정도의 모습을 너무 자주 보였고, 화남대전 이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변법을 강제로 밀어붙이고, 거기에 질려서 조선에서 파견된 법가와 장자가 떠났다. 결국 귀족들의 반란에 민란까지 일어나 송의 백성들이 굶어죽을 지경의 생지옥이 열려서 송나라 백성들이 도주하고, 그 결과 끝내는 6개월 간의 장렬한 수성 끝에 제나라에게 붙잡히고 연홍옥에게 달기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죽었다.
본인의 능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만 믿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인물. 이후 마찬가지로 모욕을 당한 기유가 제나라에게 복수를 거의 완벽히 성공하고 영사가 패전 후 본인이 쌓아온 업적들을 전부 무위로 돌릴 딜을 거는등 왕으로써의 책임감을 보인 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 송성왕 연홍옥 [燕紅玉] (AA: 연홍옥)
대언 이후 제나라에 의해 추대된 왕. 자주 내정을 통해 망국에 가까워진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워낙 약한 국력으로 제나라와 초나라에 휘둘리는데다가 타국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한 인재풀 때문에 소득은 거의 없는 편.
몇십년동안 본인이 밭에 나가서 직접 일을 돕는등 몸을 아끼지 않고 송나라의 정상화를 위해 구르고 성공한 덕에 백성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다.
나름대로 송을 안정화시키고 내실을 다졌지만 국제정세의 험난함에 앞날은 오리무중으로 이 문제로 인해 조선의 연종 질서 아래로 들어오는 중에도 인질을 보낼 순 없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 대신에 조선에서 병서까지 지은 명문 무가 고씨의 당주 고나를 받음으로써 유사시 초의 신경이 다른 연종 국가들보다도 집중될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왔다.[2]
기원전 286년, 고나의 사심 없는 추천으로 송유를 사마에 올리고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다져둔 뒤 편안히 사망. 시호의 비밀은 역사적으로 송강왕의 행보나 말로가 영 그랬기에 성으로 정해졌지만, 어째 그 다음 대가 불안불안한 시호가 되어버렸다.

연홍옥의 딸, 먼저 낳았던 자식이 명을 다해버린 결과 계승 1순위가 되었다. 고나가 객경 생활을 그만두면서 근왕파인 송유를 차기 사마로 추천했고, 이에 그나마 송인 파벌로 안배된 인연인 전불예가 앞장서 고개를 숙이자 상방 위염도 뒤따르며 정국이 안정되었으나, 이는 선왕의 장례에 필요한 시간까지 당겨 쓰고 뒤로 미루어서 이룬 결과였다.
그러나 연홍옥이 최대한 모든 것을 안배했건만, 연패는 그 이름에 걸맞게 패업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기저에 깔려있었고, 이는 무려 연종체제 아래서 초의 땅을 노리려는 의지를 신하들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강렬했기에 신하들이 연패의 방향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망국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3]
결국 여태까지의 승승장구가 근본적으로는 조선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점을 초의 분국 당시 주지당해서 조선의 뜻을 거스르기 힘든 상황에 달했는데, 그렇기에 함양회맹에서 제의 실책을 빌미로 항구를 조차시켜 송나라의 이득과 조선의 의도를 동치시키고자 했으나 되려 태왕이 이 안을 걱정하(는 척하)며 제왕을 떠보는 수를 던져 조선이 제나라에 국제항구를 건설하게 되었다.

2. 묵가[편집]



작중 등장 시점에서 이미 사망한 인물. 그래도 그 유명한 묵가의 시초로,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의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시대 들어서 묵가의 인재들이 견해 차이로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수성을 중점으로 하는 묵가의 성향상, 공성을 목적으로 하는 공수속이 묵가 원로들에게 질타받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수속의 묵가 조선 지부가 그녀와 함께 공성부라는 부서로 승격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복돈이 잠시 금골리와 착각하기도 했던 인물, 여하튼 진나라의 요청에 응해 복돈이 묵가 진나라 지부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이후 송나라 묵가 대리로 쓰이는 중

맹승과 함께 출연한 묵가인. 수춘방위전 지휘도중 성이 함락당하고 초나라군에게 전사하였다.

3. 기타[편집]


대언 대에 등용된 인물. 감무의 스승으로 청출어람의 일례중 하나이다(...) 군재가 뛰어난 대언이 몰락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화남대전에서 이 사람의 장대한 트롤로 인해 연합군이 초에게 일격을 받게 된다.

역시 대언 대에 끝임없는 노력끝에 친구인 혜시에게 바깥 해자까지 막혀(...) 등용되었다. 하지만 대언이 변법 멈추라는 자기 조언을 듣지 않자 미련없이 떠났다. 그래도 혜시가 졸할 때에는 칼을 꺾어버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 초회왕에게 천자의 검을 논하면서 초회왕의 멍청한 행동 일변도에 약간의 발전을 준다.
경취의 꿈에 나타나고 부러트린 칼을 가져오거나 어장주가 반농반진으로 안 죽는다고 말하는 등 이 어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원역사에서는 대언 대의 재상. 이 판에서는 연홍옥 대에 등장한 간신으로 나온다. 위염과 주도권 다툼을 하다가 2차중원대전에 조선군 무서운 줄 모르고 참전했고, 상구전투에 송군을 이끌고 지원을 갔다가 2회전만에 대패, 군은 와해되고 본인은 죽는다.[4] 유언은 위염 개x끼.

원역사에서는 대언 대의 대신. 이 판에서는 연홍옥 대에 등장한 간신 2호기.
상구대전에서 당앙이 죽은 후 현실적으로 조선에 붙자고 주장하나 위염에게 논파당했다.
종횡대전에서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참패를 강요당하다시피 한 송유를 이참에 제거하자는 의도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위염과 작당하고 송유로 대표되는 근왕파의 운신폭을 줄이려 했으나, 책임 문제로 논파 당하고 대신 함께 봉지를 깎는 한이 있더라도 근왕파인 송유의 강등을 도모했지만 이마저도 연홍옥이 조선 쪽으로의 위험한 사신행을 명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얄궂게도 본인은 간신이 맞지만 위염이 처지 등이 비슷한 고나와 가까워지려고 밑작업을 하는 통에 어쨌건 출신 성분이 송인(...) 이라는 점 때문에 위염을 위시한 외국인물 파벌과의 대치구도를 위하여 연홍옥의 안배로 송유와 한 배를 타고 첫 연종회맹에서 송왕의 보좌로 낙점되었다.

원역사에서는 범수 전까지 진나라의 대량조를 맡던 권신인 그 위염이다. 미왕후와는 남매지간. 위나라 왕족의 피를 물려받기도 했다. 산동대전에서 경리를 농락하는 등 상당한 능력자이면서 백기랑 통하는 구석이 있는 싸이코(...). 산동대전 이후는 함양에서의 학살로 함양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고, 영직을 따라서 초에 망명했다. 이후 송나라에 초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파견되어 송의 상방이 된다. 상방이 된 후에는 명실상부한 송나라의 에이스. 영직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송나라가 연종에 가입하려는 당시 조건으로써 보내진 고나를 확인하자 일단 영직도 인질 신분이긴 하지만 조선에서 극진히 대접받고 있고 고나는 그 손빈병법에 각주를 다는 식으로 병법서를 작성하기까지 한데다 조선의 명문무가 당주라 줄을 댄다는 느낌으로 우호적으로 대했다.
그 자신이 근본적으로 보신주의자였던 백기와의 깊은 친분의 영향인지, 그 또한 대체로 보신주의적 행보를 철저히 보여주고 있다.
영통의 난 당시에는 구출해 낸 영직이 연종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초의 분국에 대한 언질을 주었으며, 그 결과 영직은 연종을 흔들기보다는 진나라의 존속을 우선하게 되었다.

  • 상방 송유 (AA: 캬루 , 통무지정매: 91/96/86/91/83 )
원역사에서는 초회왕 웅괴의 사신으로 가서 제나라와의 동맹을 깸을 통보한 인물. 여기서는 본디 송나라의 평민이었던 것을 그 재능을 본 연홍옥에 의해 등용되어 중신 중 한 놈은 간신에 한 놈은 초나라에서 꽂아준 천재지만 소시오패스 같은 환장의 조정에서 근왕파의 무관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종횡대전에서 겨우 긁어 참여한 송의 병력들이 약소국의 설움으로 이리저리 초와 제의 군 인사들에게 시달리면서 결국 반을 잃고 돌아온 것을 간신배들에게 문책당해 죽을 위기에 처했고, 주군의 기지로 이를 면하고 이어서 다른 두 중신에게는 있는 봉지가 없다는 점을 이용당해 계급이 강등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그 마저도 대신 연홍옥이 직접 환경 상 위험할 수도 있는 조선과의 관계를 다시 연결할 사신으로 보내지면서 강등까지도 면한다.
이때 실존 인물임이 밝혀지며 그 보정을 얻게 되었지만, 안 그래도 사신으로써는 계급이 어정쩡한 상대부[5]인 상황에서 연홍옥도 벌이라고 여겼고, 보장된 재량권 중 인질의 선정 건은 일절 전무하여 곤욕을 치루었지만 임무 자체는 성공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조선이 성공시켜주었다.(...)
기원전 287-6년 사이 고나가 귀국하면서 송유를 다음 사마로 추천하여 전불예의 지지까지 업고 등극하였다. 후일 상방에 올랐을 때 사마직은 위염에게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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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황상 양위 "당한" 듯 하다.[2] 그래도 사신으로 보낸 송유를 크게 책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인질을 보낼 수는 없다는 조건 내에서 어떻게 되든 최선이었다는 점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송 입장에서 내건 제안이 얼핏 보면 큰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그 부담이 연종 각국으로 분산된다는 점을 간파당한 시점에서 인질에 버금가는 무언가의 조건은 불가피하였다.[3] 당장 초에 보내진 사신도 송왕의 명에는 저항할 수 없기에 사실상 송나라를 충동한 한을 넌지시 언급하는 모종의 지시나 기지를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초나라는 당연하게도 송 또한 주시하게 되었으므로 최악만을 면한 형국이다.[4] 전사는 상구대전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확인되었다. 그 만큼 조사가 무지막지했지만...[5] 사실 일반적으로는 사신으로써 충분히 격이 맞는 신분이나, 하필 파견의 대상이 초강대국 조선에, 송나라는 본인의 주군 대에 나라 단위의 의절 선언을 한 전적이 있으니만큼 다소 불안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