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조/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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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군주[편집]



후대인 조무후와 함께 당시 그 영역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민족 국가인 증산국의 토벌을 신경 써야 했던 인물. 시작 시점의 조후인지라 남은 수명이 이내 다하였다.

증산국을 토벌하는 동안 수는 적지만 아득히 높은 전투력을 자랑하던 전적에 질려서 토벌에 증산국의 예상 동원량의 10배를 동원하는 등, 증산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증산국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위나라와 싸울 때 동맹군인 조선이 늦는 통에 공중련이 전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고 사전에 맺어졌던 협정에 따라 영토를 할양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 후 어느샌가 사망.

  • 폐후 조조(AA: 로리카드)
역사와는 다르게 일단 조무후의 자리를 계승했지만, 인망을 통해 세를 확보했으나 이후 벌인 개혁에서 귀족의 반발을 사며 세력이 줄자 조장 파벌을 선수친다. 제나라와 협력했으나 이쪽은 조장 파벌이 손을 뻗은 위나라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여 이내 조선으로 도망가 망명을 신청하였으나 조선에 의해 위나라에 보내진다. 위나라가 다시 조조를 조나라에 보내는 과정에서 조장이 조조의 조선 망명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등의 사실을 밝혀주고 출연 끝.

원 역사에서 조무후를 승계하는 쪽이지만 여기서는 조조가 먼저 하였다가 내전이 벌어진 이후 승계하게 된다. 이후 뒤를 봐준 위나라를 갑자기 공격하여 위나라가 오기를 보내 조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고 여기에 조선이 끌어들여진 전쟁에서 패하여 대다수의 영역을 내놓은 뒤에 명을 다하게 된다.

원 역사에서의 시호는 조성후. 즉위 당시 이미 위나라의 속국 상태였지만 북부의 변경을 담당해주는 과정에서 최대한 조나라의 자율권을 가져오는 등의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국운을 걸고 시도한 당시 상방인 대성오의 계획이 완벽하게 틀어지고, 이후 가용 가능한 전 병력으로 수도인 진양에서 농성하였으나 조선이 끌고 온 병력은 무려 8만이었기에 조선군에 800명의 희생을 강요하는 장렬한 싸움을 했으나 결국은 패배하였다. 대성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모든 게 끝났음을 한탄하며 왕좌에서 자결한다.

2. 역대 상방[편집]



위무후 시기 들어서 위나라가 조나라에 대한 태도가 점차 험해지면서 위나라와의 동맹관계를 끊고 조선과 동맹하는 등의 계획을 획책한 인물. 해당 과정에서 증산국이 멸망할 때 증산국이 조선과 내통했다는 증거가 병사들의 일탈행위 등으로 인멸되었을 때 안도의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이후 조위관계가 반전되어 위나라와 전투를 치르게 되었을 때 서문표를 상대로 직접 군대를 지휘하다가 부상을 입어 전사하게 된다.

조의 마지막 충신.
원 역사와는 다르게 조나라를 진심으로 위하는 인물이 되었지만 그 등장이 이미 조나라의 세가 기울 대로 기울어 위나라의 속국인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등장한 거의 직후에 위나라의 내전으로 시작된 위-진 전쟁을 기회로 조나라 재건을 시도한다. 이 때 문제가 된 것이 위나라의 동맹이자, 조나라 북방 국경을 접하고 있던 조선. 조선과의 접경지역은 전차가 다닐 만한 길이 없다는 것, 조선이 예맥을 비롯해 국가의 기틀을 갖추지 못한 세력에 보인 폭압적인 태도 등을 근거로 하여 조선을 이민족 세력을 사주해 견제한 뒤 그 동안 진나라와 연계해 세를 불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때 동원한 누번이 이미 관시로 인해 조선 민간인들과는 긴밀한 관계여서 결국 배후를 들켰고, 조선은 당시에 이미 전차를 실질적으로 전력에서 배제한 상황이라 지형의 제약을 생각보다 받지 않았으며, 여기에 귀족들이 배반하는 등의 불행이 이어졌다. 결국 진양에서 숙련도도 떨어지는 1만 병력으로 태자 기이의 8만 조선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분전하였으나 진양성이 함락되는 난전 중에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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