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삼(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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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01년 2월 5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사망1965년 3월 27일
경상남도 동래군
종교개신교
상훈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삼은 1901년 2월 5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래고등보통학교(현재 동래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7일 동급생인 추규영(秋圭暎)·김귀룡·정호종·서진랭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는 4학년생 고영건이 하숙 중이던 이한주(李漢周)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500여매를 복사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기와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고 대서한 격문 수백매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동래군청의 정문에 올라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신호로, 김기삼은 주변에 모여 있던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부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과 수비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기삼은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간 그는 오사카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된 뒤 오사카성결교회에서 일하면서 한국 교포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 때문에 다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인천영화중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6.25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1965년 3월 27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김기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