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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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김씨[1]
출생
1896년 5월 13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 진평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2][3]
사망
1957년 9월 26일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성윤은 1896년 5월 13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동군 읍내면 교동(현 구미시 인의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대구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金道吉)과 박봉술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200여명을 마을 뒷산에 모이게 한 다음,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7년 9월 26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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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진평동은 본적이고, 인의동은 주소지라고 한다.[3] 독립유공자 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박순석·이내성·이범성·이상백·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