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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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편집]


1921년 8월 17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대백과사전에서 고향을 언급하지 않는 것을 봐서 중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헤이룽장성 의란현 대우동에서 성장했다. 8세에 소년탐험대와 아동단에 들어가서 생활했다고 한다.

1934년 1월, 헤이룽장성 호림현 산림대를 이끌고 항일유격대에 합류, 부대장의 연락병으로 복무하였으며, 1936년 1월, 동북항일연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인민해방군에 배속되어 국공내전에서 싸웠으며 1946년 9월에야 귀국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1사단 산하 2연대장에 임명, 부사단장, 여단장을 거쳐 종전 이후 3사단장에 임명됐다. 이후 1956년 10월, 15사단장 이임이 확인됐다. 1958년 2월 5일, 군관자격으로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61년에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4차 당대회 명단에는 김양춘의 이름이 없다. 그 이후에 보선된 것으로 보인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64년 12월, 1군단장 임명이 확인되었으며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67년 5월 1집단군 사령관 임명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1969년, 허봉학, 김창봉 숙청에 휘말리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되었다. 이후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다가 말년에 복권되어 1992년 4월 2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살아있던 다른 빨치산들과 함께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이후 1994년 7월 25일에 사망하였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항일혁명렬사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4권.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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