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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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이념



1. 개요[편집]


나흐다는 19세기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문화 부흥 운동이다. 아랍어로 "각성"을 의미하는 나흐다는 본래 일반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점차 19세기 문화 개혁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잡아갔다.


2. 역사[편집]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1798년에 점령하자, 오스만 제국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들은 중동이 서양 문명에 비해 뒤처져 있음[1]을 인식했고, 이것을 과학적, 문화적 개혁으로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스만 제국의 정치/행정적 현대화를 맡은 개혁이 탄지마트라면, 문화적/이념적 개혁은 나흐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개혁에 무색하게 오스만 제국의 영토 손실을 점점 가속화되었다. 1822년에는 그리스가 독립을 선포했고 1830년에 알제리를 프랑스에게 빼앗겼다. 1908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했으며, 1909년에는 불가리아가 독립을 선포했고, 오스만 제국은 1913년에는 발칸 연맹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유럽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붕괴할 경우 영토 분할 문제를 "동방문제"라는 이름 하에 엮어서 토론하고 있었다.

한편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던 이집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립해 메흐메드 알리의 지배하에 놓였다. 알리는 서양 문물과 기술을 도입하고 기술적, 군제적, 정치적, 재정적 현대화를 시행하고 있었다. 메흐메드 알리가 주목한 부문 중에는 인쇄술이 있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대부분 지방들은 수필을 사용했다. 아랍어가 서양 알파벳과 달리 단어 위치에 따라 쓰는 방법이 변형되어 서양 인쇄술을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서예를 중시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메흐메드 알리의 개혁 덕에 이집트는 나흐다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 전역, 특히 시리아에서 이슬람 문명의 재건을 원하는 지식인들이 이집트에 정착해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알 타흐타위 같은 작가나 압달 라흐만 알 카와키비 또는 라시드 리다같은 정치 철학자가 있었다.

3. 이념[편집]


나흐다는 역사와 아랍 문학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아랍 정체성에 자부심을 넣어주고 아랍 민족주의를 부흥시키려고 했다.

이집트에서 활동하던 레바논 작가 주르지 자이단은 나흐다를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에 한 분기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헤겔 역사 철학을 빌려, 역사는 필연히 밟아야하는 발전 단계들이 있고, 고대, 중세, 현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슬람 문명이 아직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으며, 현대 사회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는 서양의 르네상스에 비견할 만한 이슬람 문명의 문화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록 아랍인들 중 15%에 육박하는 인구가 무슬림이 아니었지만, 주르지 자이단을 포함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이슬람과 아랍 정체성을 같은 것으로 보았고, 중세 이슬람 제국을 하나의 "문명"이라 여겨 모든 아랍인들의 자부심으로 여겼다. [2]

나흐다 지식인들은 유럽 열강들의 강점이 애국심과 동일한 정체성에서 온다고 믿었고, 아랍 세계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심점을 만들려고 했다. 나흐다는 이런 점에서 1800년대의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운동인 리소르지멘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하지만 나흐다의 지적 원천은 이슬람 문학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 나흐다의 지식인들은 전통 이슬람 교육 기관인 마드라사를 졸업하지 않았고, 유럽 전도사들이 창립한 기독교 학교들을 졸업했다.이들은 아랍 문학의 고전들을 현대 아랍어로 옮기고, 아랍어의 문법을 개정했으며, 유럽의 철학적, 과학적 개념들을 아랍어로 알맞게 개념화했다. 레바논의 저술가 부트루스 알 부스타니는 미완성작인 아랍 백과사전의 초판을 1876년에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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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랍어로 인히타트 inhitat라고 부른다.[2]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같은 다종교 지방에서는 무슬림의 비율이 50%에 불과하기도 했다. 나머지는 마로니트 기독교, 정교회, 유대교 또는 드루즈 (이슬람,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비주의의 섞은 혼합종교)들이 지배적이었고, 오늘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