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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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남왈성(1909).png
[1]
족보명
남용식(南容式)
이명
남광풍(南光豊)·남용식(南容植)·남일성(南日星)[2]
본관
영양 남씨[3]
출생
1909년[4] 7월 2일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정림리
(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5]
사망
1956년 10월 20일
강원도 울진군
(현 경상북도 울진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남석순은 그의 본생가쪽 사촌 동생이며[6], 남원수는 그의 6촌 형 남순하(南舜河)의 손자로 남왈성에게는 삼종손(三從孫)이 된다.

2. 생애[편집]


남왈성은 1909년 7월 2일 강원도 울진군 상군면 정림리(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의 평민 가정에서 아버지 남만년(南萬䄵)과 어머니 신안 주씨 주경욱(朱景旭)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수학하였으며 고향 울진의 제동학교(濟東學校)를 졸업하였다.#

그는 1931년 강원도 울진에서 비밀결사 울진공작단에 가입한 뒤 양양, 강릉, 삼척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933년 3월 울진농민조합 조직선전부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체포되었고, 1935년 7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같은 달 30일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939년 1월 30일에 출옥하였다. 이후 1943년 12월 울진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후 울진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6년 10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남왈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935년 8월 3일, 울진 농민조합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을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1935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남일(日)성으로 기재되어 있다.[3] 송정공파(松亭公派)-울진 정림(井林) 문중 16대손 용(容) 항렬. 영양 남씨 24세.[4] 남씨대동보 2권 대광공후 송정공파(영양 본관) 494쪽에는 1907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5]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복이·남석순·남원수·남왈기도 이 마을 출신이다.[6] 남석순의 아버지 남백년(南百䄵)은 남왈성의 아버지 남만년(南萬䄵)의 친동생인데, 남만년이 11촌뻘되는 족숙 남국영(南國永)에게 입양되면서 남석순과 남왈성은 14촌 지간으로 멀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