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우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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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농우회는 1930년 농촌 교인들이 조직한 종교협동조합이었다. 일본 제국은 협동조합의 성격을 띄는 농우회를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였으며 이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를 검거한 사건이 농우회 사건이다.


2. 역사[편집]


농촌연구회는 원래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던 촌락에서 교육과 신앙 보급을 목표로 유재기[1]를 비롯한 교인들과 농촌운동가들이 조직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곧 국내외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좌절 후 군국주의의 길을 걷던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것이 발단이었다. 1938년 2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청년연합회(YMCA) 간부들이 검거되었고 YMCA의 흥업구락부운동과 농촌사업이 조선의 독립을 표방했다고 발표된 후 유재기 목사가 체포되었고 박학전, 송영길 부목사도 체포되었으며 주기철 등 신사참배에 반대하던 교회 인사들까지 위험인물로 몰려 검거되었다. 이들은 의성경찰서로 끌려갔으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유재기는 농우회 사건 이후 건국훈장을 수여받았으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등록되면서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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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전문 농업지식을 배운 후 평양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