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영(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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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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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닐 영
Neil Young

본명
닐 제임스 영
Neil James Young
출생
1944년 2월 17일
잉글랜드 맨체스터 팔로우필드
사망
2011년 2월 3일 (향년 66세)
국적
[[영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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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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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1] / 은퇴)
소속
유스
맨체스터 시티 FC (1959~1961)
선수
맨체스터 시티 FC (1961~1972)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72~1974)
로치데일 AFC (1974~1975)

1. 개요
2. 클럽 경력
2.1. 데뷔 전
2.3. 이후
3. 은퇴 이후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기록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윙.

1960년대 UEFA 컵위너스컵FA컵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첫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 중 하나이다.


2. 클럽 경력[편집]



2.1. 데뷔 전[편집]


맨체스터 팔로우필드에서 태어난 영은 당시 맨체스터 시티 FC의 홈 구장이었던 메인 로드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집에서 자랐다.[2] 학교에서 2살 많은 형들을 상대로 좋은 실력을 보였던 영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제안을 거절하고 맨체스터 시티 FC 유스에 입단하게 된다.


2.2. 맨체스터 시티 FC[편집]


영은 1961-62시즌 11월 아스톤 빌라 FC와의 경기에서 처음 출전한 이후, 해당 시즌 잔여 경기에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았다. 이후 12월 입스위치 타운 FC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첫 시즌을 26경기 11골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후 시즌에서 맨시티는 부진에 빠졌고, 1962-62시즌 4월에 영의 활약으로 무패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마지막 경기에서 팀은 강등당하고 만다. 결국 조지 포이스터 감독은 팀을 떠났고, 조 머서 감독이 1965-66 시즌에 새롭게 맨시티에 부임하게 된다.

1965-66 시즌 편도선 수술로 시즌 초반 경기들을 결장한 영은 코번트리 시티 FC전에 2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머서 감독 부임 이전까지 커리어 내내 왼쪽 윙어로 뛰었던 영은 머서 감독 아래에서 인사이드 포워드로 기용되기 시작했고, 해당 시즌 맨시티는 2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한다. 영이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된 것은 덤.

승격 이후에도 영은 팀의 주요 자원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했고, 1967-68 시즌에 20골을 기록하여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오르며 리그 우승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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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FA컵 결승전, 닐 영의 결승골

이어진 1968-69 시즌, 맨시티는 리그 우승권은 아니었지만 FA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결승에 오른 상황. 레스터 시티 FC와의 결승전에서 마이크 서머비의 크로스를 발리슛으로 때리며 그대로 골로 연결지었고, 그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팀은 지난 시즌 리그 우승에 이어서 FA컵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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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위너스 컵 결승전 선제골

1969-70 시즌에는 이전 시즌 FA컵 우승팀의 자격으로 UEFA 컵 위너스 컵에 출전했다.
4강에서 샬케 04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렸고, 결승에서는 구르니크 자브제를 상대로 1골 1PK 유도를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렇듯 시티에서 승승장구를 계속하던 중 1970년에 형이었던 크리스 영이 31세의 나이로 죽은 이후 경기력이 급격하게 저하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1971-72 시즌 중에 2부 리그 팀이었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로 이적하면서 맨시티에서의 선수 커리어를 마감한다.


2.3. 이후[편집]


버밍엄 시티 FC를 상대로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데뷔전을 치렀고, 프레스턴에서 68경기 18골을 기록한다. 팀이 강등된 이후 로치데일 AFC로 이적했고, 여기서 한 시즌을 보낸 이후 선수 은퇴를 선언한다.


3. 은퇴 이후[편집]


선수 인생을 마감한 이후, 우유 배달이나 스포츠 샵 운영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을 이어나갔고,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3]

2010년에 말기 암을 선고받고, 2011년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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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프트윙, 인사이드 포워드[2] 얼마나 가까웠냐면 집에서 맨시티의 축구 경기가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3] 집을 팔고 이사해야 했을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