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플리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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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 플리니우스.jpg
이름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Gaius Plinius Secundus)
출생
23년 또는 24년
사망
79년
지위
로마 해군 제독

1. 개요
2. 생애
2.1. 사망
3. 박물지(Naturalis historia)



1. 개요[편집]


서기 1세기에 활동한 로마 제국정치인, 작가, 박물학자, 해군 제독.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친구였으며, <박물지>의 저자로 유명하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위험에 빠진 폼페이 등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다 순직했다.

그 업적을 기려 화산 분화의 양식 중 가장 격렬하고 폭발적인 분화에 플리니식(Plinian) 분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 생애[편집]


서기 23년 또는 24년경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 노붐 코뭄(Novum Comum: 현재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코모)에서 출생했다. 16세기 베로나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기사계급 출신인 플리니우스 켈레르였고 어머니는 마르첼라였다. 여동생으로 플리니아가 있었는데, 그녀는 카실리 가문으로 시집갔고 소 플리니우스를 낳았다. 즉, 그는 소 플리니우스의 외삼촌이다. 소 플리니우스가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는 걸 두려워하는 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걷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겨 가마를 타고 로마를 돌아다녔고,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또한 일생을 글쓰기에 전념하여 팔을 따뜻하게 유지하고자 긴 소매가 달린 튜닉을 입었고, 저자 100명 이상이 쓴 저서 2천여 권을 읽었으며, 기록을 2만 개 이상 목록화했다고 한다.

그는 일찍이 로마로 가서 법학을 공부했다. 서기 46년 군대에 입대해 하급 장교가 되었고, 47년 게르마니아로 가서 라인 강 전선에서 복무하다 나중에 기병대장이 되었다. 그는 전선에 복무하는 동안 남는 시간을 활용해 말에서 창을 던지는 어려운 기술에 대한 소책자를 집필했고, 훗날 복무 경험을 토대로 20권에 달하는 저서 <게르마니아 전쟁(Bella Germaniae)>을 저술했다. 역사가 타키투스 또한 저서 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를 집필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했으나 정작 게르마니아 전쟁은 실전되었다. 한편, 그는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될 베스파시아누스와 친구가 되었다. 소 플리니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종종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라인 전선에서의 복무를 마친 뒤, 그는 로마로 돌아가서 공직에 근무했지만 그리 주목받을 만한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네로 황제가 집권한 뒤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숨죽여 지냈다. 그 대신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에 대해 견해를 밝힌 글을 집필했다. 그는 칼리굴라가 다소 기이한 행동을 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미치광이는 절대 아니었다고 보았다. 또한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존경할 만한 성품을 갖췄고 당대의 가장 학구적인 작가들 중 하나였다고 했지만, 아내 발레리아 메살리나의 난행을 통제하지 못한 게 흠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라틴어 문법에 관한 8권짜리 책을 집필했고, 웅변을 잘하는 비법에 관한 소책자도 출간했다. 라인 전선에 복무하던 시절에 상관으로 모셨던 폼포니우스 세쿤두스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여성 화장품에 대한 조언이 담긴 글도 집필했는데, 당나귀의 우유는 주름을 없애고 흰 납과 혼합된 버터는 여드름에 유용하며, 따뜻한 소의 태반은 안면 궤양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기 68년 네로 황제가 몰락하고 69년 친구였던 베스파시아누스가 새 황제로 등극한 뒤, 그는 황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스페인, 갈리아, 벨가이, 그리고 히스파니아 일대의 황실 감찰관으로 삼았고, 그는 이 지역들의 재정을 책임졌다. 그는 이 시기에 식물학, 지리학, 생물학에서 수학, 농업, 예술,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박물지>를 집필했다. 서기 75년에서 76년 사이에 로마에 귀향한 뒤 제국 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해안 경비를 책임졌다.


2.1. 사망[편집]


서기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등 베수비오 화산 인근의 해안 도시들이 위험에 처했다. 당시 미세눔에 주둔하던 그는 스타비아에 있던 친구 레티나로부터 급보를 접하자마자 여러 척의 갤리선을 이끌고 나폴리만을 가로질러 헤라쿨라네움 근처의 해안으로 향하여 피난민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이때 화산재가 배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어서 떠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행운은 대담한 자를 선호한다."라며 거부하고, 원로원 의원 폼포니아누스가 있는 스타비아로 향하여 그를 구조했다. 그러나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나폴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서 묶여 있어야 했다.

그들은 바람이 잦아지길 기다렸지만, 화산의 상태가 갈수록 위험해지자 저녁 늦게 급히 출항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중에 유독가스가 배를 덮쳤고, 그는 질식사했다. 당시 나폴리 만에서 상황을 지켜봤던 조카 소 플리니우스는 사흘 뒤 발견된 삼촌의 시신엔 어떠한 외상이 없었고, 깊이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고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플리니우스는 화산 활동에 흥미를 느끼고 해안으로 접근했다가 화산의 열기를 피하려고 노예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간주하고 있다.


3. 박물지(Naturalis historia)[편집]


파일:박물지.jpg

참고로 한자 명칭이 '박물지'인 중국 서적이 있으며 나무위키에 박물지를 치면 해당 중국 서적으로 넘어간다.

플리니우스는 생전에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고 알려졌지만, 긴 세월 동안 모두 사장되었고 <박물지>만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저서는 37권으로 구성되는데, 그는 77년경에 처음 10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나머지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사망하는 바람에 마무리되지 못했고,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후에 정리한 후 출간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인간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리학, 광산학, 광물학, 조각, 예술, 보석 등 수많은 주제를 다뤄, 현대 백과사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서문에서 티투스 황제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목적은 "사물의 본성과 삶의 연구"라고 설명했다. 제1권은 나머지 36권의 책들의 요약본으로,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활용한 저자들과 책들의 제목을 나열했다. 제2권은 우주론과 천문학에 전념했는데,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저서의 내용을 대부분 다루었다. 다만 세부 사항을 번역할 때 종종 실수를 범해 많은 기술적, 수학적 구절의 의미를 본의아니게 왜곡했다. 제3권부터 제6권까지는 고대 세계의 물리적, 역사적 지리를 다뤘는데, 특히 고대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제7권부터 제11권까지는 인간을 포함해 당대에 알려진 모든 동물들을 다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부터 대부분의 정보를 얻었으며, 당시에 전해지는 상상속의 동물 서술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12권부터 19권까지는 식물학을 다뤘다. 그는 게르마니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식물을 관찰하여 저서에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농업 및 원예에 쓰이는 식물 종에 대해서도 큰 비중을 두었다. 특히 제18권은 농업에 할애되어 작물 수확, 농장 관리, 콩류 및 기타 작물의 식물 등 농업기술 증진에 필수적인 요소를 잘 다루었다. 갈리아의 소물이 곡물 수확기에 대한 그의 묘사는 오랫동안 학자들에게 공상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지만, 1958년 벨기에 남부에서 그러한 도구를 묘사한 2세기 석조 부조가 발견되면서 실존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여러 식물의 그리스 이름에 라틴어 동의어를 기록함으로써, 초기 그리스 문헌에서 언급된 식물 대부분을 식별할 수 있게 하였다.

20권부터 32권까지는 의학과 약학에 집중했다. 특히 유용한 약을 생산하는 식물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 저서에 언급된 약의 종류는 900개 이상에 달한다. 이중 양귀비꽃아편이 언급되는 게 눈에 띄는데, 그는 "아편이 수면을 유도하지만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제30권에서 마법을 다루었다. 그는 점성술이 인간을 타락시킨다며 강력히 비판하면서,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점성술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플라톤이 모두 마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면서, 의학과 마법이 동시에 번성했다면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과학에 대한 민간요법이 나오는데, 당시 치료법은 하이에나의 살과 머리카락, 사슴의 성기가 목에 둘러져 있는 가젤 가죽 가방을 목에 걸고 있는 여성은 결코 유산하지 않을 것이고, 거위 정액과 물 또는 족제비의 체액을 섞어 마시면 분만이 쉬워지고, 분만 중인 여자에게 하이에나의 오른발을 얹으면 해산을 돕지만 왼발은 그 임산부를 죽일 것이고, 사슴과 소에서 발견된 돌(위석 등)은 임신 중 보호와 건강을 위한 부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여자는 기한이 가까워지면 늑대의 살을 먹어야 하고, 출산하는 동안 같이 있는 다른 사람은 보호적이거나 극도로 위험할 수 있다고 나오는 등 미신적인데 시골에 살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여성이 산파가 되었을 때 임산부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제 33권부터는 금속학을 다뤘다. 그는 금과 은부터 시작하여 구리, 수은, 납, 주석, 철, 청동, 백금, 강철, 합금 등 다양한 금속을 서술했다.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초월적인 능력을 얻었지만 이로 인해 파멸해버린 미다스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을 경고했다. 한편, 그는 은이 본래의 형태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채굴을 통해 캐내야 하며, 보통 납광석과 함께 발생한다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브리타니아 속주의 많은 곳에서 지상에서 발견되는 납이 매우 풍부해, 은을 찾기가 매우 쉽다고 덧붙였다. 또한 구리와 은을 섞거나, 심지어 철을 섞어서 은화로 위조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그외에도 금속을 정제하고 추출할 때 사용되는 수은, 눈썹 화장품으로 사용되는 안티몬 등 다양한 금속의 용도를 서술했다.

플리니우스는 여러 권에서 예술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그는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가 소아시아 해안과 인근 섬들에서 가져온 예술 작품들을 저서에 그대로 기재하였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평화의 신전에서 확인한 뒤 역시 책에 옮겨 적었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예술 작품 상당수는 그리스 작가들의 저서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로마에서 예술 작품은 실로 무수히 많지만, 우리가 의무와 사업에 대한 강력한 열망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아름다운 작품들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예술을 동경하기 위해서는 여가와 심오한 고요함이 필요하다.


마지막 2권의 책, 즉 제36권과 제37권은 보석을 다루었다. 그는 다이아몬드의 팔면체 모양을 묘사하고, 보석 조각가들이 다이아몬드 먼지를 다른 보석을 자르고 광택을 내기 위해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그 외에 가장 가치있는 보석들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러한 보석에 집착을 보이는 세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보석을 채굴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다뤘는데, 물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금광을 채굴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으며, 지하에서 불을 지펴서 바위를 깨고 광석을 추출하는 방식도 설명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의 의사들은 박물지에서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약물을 제조하였다. 익명의 중세 약사가 저술한 메디치나 플리니(Medicina Plinii)에는 1,100가지 이상의 약리학적 조리법이 수록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박물지에서 따온 것이었다. 박물지는 이외에도 천문학, 동물학, 식물학, 지리학, 금속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중세 유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엔 플리니우스가 크게 의존했던 그리스어 문헌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박물지는 교육서로서 널리 이용되었다. 중세 유럽의 웬만한 수도원들은 박물지의 사본을 1부 이상 소장하였고, 박물지의 요약본들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1492년 페라라에서 니콜로 레오니노의 <플리니우스의 오류>가 출간된 후 박물지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면서 박물지의 영향력은 차츰 쇠퇴하였고, 17세기 말에 이르러 과학계는 박물지를 더 이상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비과학 작가들은 여전히 이 서적에 열광한다. 19세기 라틴어 학자들은 고대 최고의 문학 작품 중 하나로 떠받들었으며, 서기 1세기 로마인들의 삶을 연구하는 역사가들 역시 박물지를 중요한 문헌 자료로 취급하고 있다.

2021년 7월 국내에도 존 S. 화이트가 엮은 판본의 발췌본으로 플리니우스 박물지가 번역되었다. 전체 번역은 아니지만 국내 최초 번역이라고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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