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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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드미트리 하린
Dmitri Kharine

본명
드미트리 빅토로비치 하린
Dmitri Viktorovich Kharine
출생
1962년 3월 4일 (55세)
소련 모스크바
국적
[[러시아|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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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코치
신체
188cm
선수 경력
FC 토르페도 모스크바 (1982~1987)
FC 디나모 모스크바 (1988~1991)
PFC CSKA 모스크바 (1991~1992)
첼시 FC (1992~1999)
셀틱 FC (1999~2002)
혼처치 FC (2002~2004)
코치 경력
루턴 타운 FC (2004~2013 / 골키퍼 코치)
스티버니지 FC (2015 / 골키퍼 코치)
헤멜 헴스테드 타운 FC (2015~ / 골키퍼 코치)
국가대표
6경기 (소련 / 1988~1991)
11경기 (독립국가연합 / 1992)
23경기 (러시아 / 1992~1998)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은퇴 이후



1. 개요[편집]


러시아의 전 축구선수. 현 골키퍼 코치


2. 클럽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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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디나모 모스크바와 CSKA 모스크바로 이적하며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1992년 12월 첼시 FC로 40,000유로로 이적했다. 1994년 FA컵 4강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결승전에서 4골을 실점하였다. 1970년대 이후 첼시는 처음으로 UEFA 컵위너스컵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말년은 부상 문제와 네덜란드의 골키퍼 에드 데 고이의 영입으로 타격을 입었고, 3시즌 동안 20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린은 첼시 소속으로 146경기에 출전하였다. 잔루카 비알리가 첼시 감독직을 맡았을때 고이를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서브 골키퍼로 클럽에 있었다. 1999년 여름, 자유 계약 신분으로 인해 셀틱으로 이적하였지만 부상 문제로 인해 11경기 (리그 8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2002년 여름에 방출되었고, 혼처치로 이적하였고 2004년에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소련, 독립국가연합, 러시아까지 세가지 국명의 대표팀에서 국가대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소련 말기인 1988년 처음 대표팀에 소집되어 소련 유니폼을 입고 A매치 6경기를 출장했고, 이후 유로 1992 본선을 준비하던 중 소련 해체로 인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독립국가연합 대표팀으로 예정된 유로 1992 본선에 출장했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소련 해체 이후 자연스레 러시아 국가대표로 소집되었고, 초창기 러시아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서 1994년 월드컵과 1996년 유로 대회에 주전 수문장으로 나섰다. 이후 1998년 9월, 우크라이나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4. 은퇴 이후[편집]


2002년 셀틱에서 사실상 프로 생활을 마감했고, 2004년에는 논리그 아마추어 선수생활까지 끝마쳤다. 이후 쭉 영국에 거주하던 그는 루턴 타운 FC의 골키퍼 코치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루턴에서 2013년까지 장기 근속하며 5부리그로 떨어진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켰다. 이후 스티버니지 FC로 2015년 새로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나 그를 데려온 테디 셰링엄 감독이 중도 경질되며 그도 얼마 못가 사임했다. 현재는 6부리그의 헤멜 헴스테드 타운 FC의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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