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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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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 국장.svg 러시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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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Russian Federation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장.sv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러시아 연방 국가
국화
카밀레
역사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
1917년 11월 7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소련 독립
1991년 12월 25일[1][2]
크림반도 합병[3]
2014년 3월 26일
지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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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최대도시
모스크바
면적
17,125,407㎢(크림반도 포함)[145] | 세계 1위
접경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대한민국 헌법상),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A](사실상),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B],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리투아니아[B],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라트비아,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언어별 명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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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한국어
러시아 연방, 러시아
일본어
ロシア連邦, ロシア
중국어
俄罗斯联邦, 俄罗斯
영어
Russian Federation, Russia
독일어
Russische Föderation, Russland
이탈리아어
Federazione Russa, Russia
스페인어
Federación Rusa, Rusia
포르투갈어
Federação Russa, Rússia
그리스어
Ρωσική Ομοσπονδία, Ρωσία
아랍어
الاتحاد الروسي, روسيا
타타르어
Русия Федерациясе, Русия
크림 타타르어
Rusiye Federatsiyası, Rusiye
추바시어
Раççей Патшалăхĕ, Раççей
바시키르어
Рәсәй Федерацияһы, Рәсәй
카라차이-발카르어
Росси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투바어
Россия Феделасияз, Россия
우드무르트어
Россия Федерация, Россия
코미어
Рочму Федерация, Рочму
체첸어
Росси́н Федера́ци, Росси
인구시어
Россе Федераци, Эрсече
아디게어
Урысые Федерацие, Урысые
카바르다어
Урысей Федерациэ, Урысей
오세트어
Уæрæсейы Федераци, Уæрæсе
칼미크어
Әрәсән Федерац, Әрәсә
부랴트어
Оросой холбоото улас, Росси
우크라이나어
Росі́йська Федера́ція, Росі́я
벨라루스어
Расі́йская Федэра́цыя, Расія
조지아어
რუსეთის ფედერაცია, რუსეთი
아르메니아어
Ռուսաստանի Դաշնություն, Ռուսաստան
아제르바이잔어
Rusiya Federasiyası, Rusiya
몽골어
Оросын Холбооны Улс, Орос
터키어
Rusya Federasyonu, Rusya
에스페란토
Rusia Federacio, Rusio

인문 환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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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145,912,022명(2021년) | 세계 9위
민족 구성
러시아인 81%, 타타르족 3.7%, 우크라이나인 1.4%, 바시키르인 1.1%, 추바시인 1%, 체첸인 0.8%, 기타 및 미집계 11%
인구밀도
8.37명/㎢
출산율
1.61명(2018년)
공용 언어
러시아어
공용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기독교 73%[146],무종교 15%, 이슬람 10% 등
군대
러시아 연방군

하위 행정구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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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관구
8개
일반
22공화국, 46, 9지방, 3연방시, 4자치구, 1자치주[147]

정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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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제(국민주권), 민주주의(대의제), 연방제, 정교분리,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혼합)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24위(2020년)[권위주의체제]
[[러시아 대통령|{{{#ffffff 대통령}}}]]
(국가원수)

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
정부 요인
총리
미하일 미슈스틴(Михаил Мишустин)
연방평의회의장(상원)
발렌티나 마트비옌코(Валентина Матвиенко)
국가두마의장(하원)
뱌체슬라프 볼로딘(Вячеслав Володин)
연방대법원장
뱌체슬라프 레베데프(Вячеслав Лебедев)
헌법재판소장
발레리 조리킨(Валерий Зорькин)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엘라 팜필로바(Элла Памфилова)
여당
없음(법적) / 통합 러시아당(실질적)[148]

경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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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경제, 토지 사유제[149], 상대적 소유권, 제한적 사적 자치
명목
GDP

전체 GDP
$1조 4,640억(2020년 10월) / 세계 11위
1인당 GDP
$9,972(2020년 10월) / 세계 61위
GDP
(PPP)

전체 GDP
$4조 217억(2020년 10월) / 세계 6위
1인당 GDP
$27,394(2020년 10월) / 세계 50위
국부
$3조 520억 / 세계 18위(2019년)
수출입액
수출
$3,378억(2015년) / 세계 15위
수입
$3,239억(2014년) / 세계 17위
외환보유액
$5,944억(2020년 8월)
신용 등급
무디스 Ba1
S&P BBB
Fitch BBB
화폐
공식 화폐
러시아 루블
ISO 4217
RUB
국가 예산
1년 세입
$1,865억(2016년)
1년 세출
$2,366억(2017년)

단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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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2 ~ +12[150]
도량형
SI 단위[151]

외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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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조선국 최초수교: 1884년
대한민국: 1990년[152]
북한: 1948년[153]
국제연합 가입
1945년(소련 승계[154])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60일

주한대사관 / 총영사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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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러시아대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43
주부산러시아
총영사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94
주인천러시아
명예총영사관

인천광역시 연수구 갯벌로 12

ccTLD
.ru, .su,[4] .рф[5]
국가 코드
643, RU, RUS[6]
국제 전화 코드
+7[7][8]
여행경보
철수권고
체첸, 다게스탄, 북오세티야-알라니야,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인구셰티야,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야, 아디게야
특별여행주의보
적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SARS-CoV-2]



위치
[1] 소련의 붕괴는 다음날인 1991년 12월 26일 새벽 2시이다.[2] 소련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공화국들이 연합해 생긴 연방국가고, (애초에 이름이 소비에트 연방이다.)러시아는 그중 영향력이 가장 많았던것 뿐이다. 즉 독립이 맞는 표현.[3] 크림 공화국, 세바스토폴 연방시[4] 본래 1990년 소련에게 할당된 것으로, 동구권 붕괴 이후 다른 도메인들(동독의 .dd 등)은 모두 폐기되었지만 얘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존을 요청해서 아직까지 살아있다. 사이트 수는 .ru의 약 3%로 11만 개 수준이라고 한다.[5]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러시아 연방)에서 비롯되었다. .ru를 그대로 키릴 문자로 바꾼 .ру와, Россия (러시아)의 앞 두 글자인 .ро는 로마자 .py, .po와 모양이 같아서 .рф를 쓰게 되었다.[6] ISO 3166에서 규정. alpha-2는 RU, alpha-3는 RUS이다. UN 통계를 비롯하여 국제 공통으로 사용한다. IOC 국가코드와 FIFA 국가코드도 RUS이다.[7] 소련 시절부터 쓰던 전화코드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사용하고 있다.[8] +8번도 일부 혼용중이다.[SARS-CoV-2] http://www.0404.go.kr/dev/country_view.mofa?idx=&hash=%23RUS&chkvalue=no2&stext=&group_idx=8&alert_level=0


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3. 국가
4. 자연환경
4.1. 영토
4.2. 기후
5. 인문환경
5.1. 인구
5.2. 민족
5.4. 종교
5.4.1. 정교회
5.4.2. 이슬람교
5.4.3. 유대교
5.4.4. 불교
5.4.5. 기타 종교
5.5. 기행
7.2. 국력
8.1. 항공산업
8.2. 우주산업
9. 사회
9.1. 치안
9.1.1. 과거의 치안
9.2. 사회 문제
9.2.1. 부정부패
9.2.3. 성문화
9.2.4. 동성애 증오
10. 문화
10.1. 유럽과 아시아 사이
10.3. 음악
10.4. 영화
10.5. 음식
10.5.1. 차(茶) 문화
10.5.2. 음주
10.6. 전통공예
10.7. 학문
10.7.1. 과학
10.7.2. 인문학
10.8. 교육
10.9. 스포츠
10.9.2. 격투기
10.9.3. 국제대회
12. 창작물에서



1. 개요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북아시아까지 걸쳐 있는 유라시아 국가이다. 수도모스크바(Москва), 공용어러시아어이다.
국토 면적이 17,125,407km²로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 1위를 자랑한다. 러시아의 면적은 유럽, 오세아니아, 남극 대륙 전체보다 넓은 나라이며 남아메리카 대륙보다는 조금 작다. 남한의 170배, 한반도 전체의 77배 정도 이다. 국토 최서단인 칼리닌그라드에서부터 최동단인 추코트카다이오메드 제도까지 총 11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며, 국토가 넓은 관계로 도로 수송보다 항공, 철도 수송에 의존한다. 국토가 춥고 황량한 땅도 많지만 비옥한 땅도 많아서 국토 면적 중 경작지가 1,237,294km²로 전 세계 4위이다.[9][10] 그리고 러시아는 중동에 많은 식량을 수출한다. 천연자원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국, 석유 매장량 8위, 석탄 매장량 2위를 자랑하는 등 경제의 많은 부분을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면적에 비하면 적어서 그런지 인구 많은거 못 느끼는 경우가 좀 있는데, 인구 순위도 세계 9위, 유럽 1위다.
세계의 국가들 중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답게 접경 국가도 매우 많다. 서쪽으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있다. 월경지칼리닌그라드까지 포함하면 폴란드, 리투아니아와도 접경하고 있으니 국토 서부의 접경국만 8개국이다. 그뿐 아니라 남쪽으로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 북한,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노보로시야[11])까지 6개국과 접경하니 총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남쪽으로 사할린 섬에서 오호츠크 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보며[12] 동쪽으로 베링 해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마주보고 있다.[13]
1945년 UN 창설 당시 원년 회원국이며,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을 승계[14]한 이후 현재 UN 상임이사국으로 있다. G20의 참가국이다. 기존 G8의 라스트 멤버이기도 했다. 또한 중국,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독립국가연합의 창설국 중 하나이며, 2012년 1월에는 유라시아 연합을 창설했다. 브릭스 (BRICs)에서 R이 러시아다.

2. 상징



2.1. 국호


국명의 유래는 러시아인의 근간인 동슬라브인, 혹은 그들이 사는 땅을 가리키는 단어인 루스(Русь). 지금의 국명인 러시아(Россия)는 중세 그리스어로 '루스'를 가리키는 명칭인 '로시아(Ῥωσία)'에서 유래했다. 러시아어에서는 강세와 모음약화로 인해 'Росси́я'을 '[rɐˈsʲiɪ̯ə\](라시여)'처럼 발음한다.
원래 러시아라는 명칭은 전통적으로 국명이라기보다는 지역명이었으며 루스와 구별되는 이름은 아니었다. 이는 벨라루스를 일컫는 다른 이름인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남부를 일컫는 소러시아, 벨라루스 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흑러시아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슬라브족 국가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이 15세기 이후 동슬라브족이 중심이 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역을 거의 통일해 '루스' 혹은 '러시아' 지역의 대표 국가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국호를 루스 차르국(Русское царство)으로 바꿨고, 이후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의 일환으로 그리스어 어원의 이름인 '로시아'를 채용해 러시아 제국(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을 선포했다. 이후 '러시아'가 지금까지 국명으로 이어졌다.
한국 표준어에서는 영어식 표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라는 표기를 쓴다. 2005년 제정된 러시아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로시야'로 쓰는 것이 맞겠지만 이미 굳게 정착한 표기라 뒤집기 힘들어서인지 지금도 표준 표기는 러시아이다. 북한 문화어로는 '로씨야'를 쓴다.
러시아를 한자로 옮긴 이름으로는 '노서아(露西亞)'와 '아라사(俄羅斯)'를 예로 들 수 있다. 전자는 일본어 한자 음차,[15] 후자는 중국어 한자 음차에서 비롯한 것이다. 노서아란 음차는 '로시아'(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아라사란 음차는 만주어로 러시아를 뜻하는 '오로스(ᠣᠷᠤᠰ, Орос)'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국어에서 한 글자로 줄여쓸 땐 '러'라고 한다. 아주 가끔 노서아에서 따온 '노(露)'를 쓰기도 한다.[16] 1990년대 후반까지 신문에서 한자를 자주 병용했을 때만 해도 신문기사 표제에서는 이 나라의 약칭을 '露'라고 적었고 1991년까지는 露라고 적을 일이 없었다 2018년 기준으로 지금도 '露'로 약칭하는 기사 또한 가끔 찾아볼 수는 있지만 거의 '러'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먼 과거엔 아라사에서 따온 '아(俄)'도 있었지만 아관파천 한 단어를 제외하고는 사장된 표현이다.
이렇게 대다수 언어에서는 '루스'에서 따온 말을 쓰지만 일부 언어에서는 다른 데서 유래한 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핀란드어에서는 러시아를 '베내얘(Venäjä)'라고 하는데 이는 게르만인들이 슬라브인을 부르던 말인 '위니다즈(*winidaz)'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작 루스에서 따온 말인 '루오치(Ruotsi)'는 스웨덴을 가리킨다.[17]
공식 국호는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이다. 러시아에서는 구소련 이래로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독립 국가의 한 형태로 사용하기보다 정치적 연합체(주로 연방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사용하였다. 소련부터가 소비에트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수용한 공화국들의 연합체(그래서 국호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였지 스스로를 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은 15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필요에 따라 다시 내부에 공화국을 설치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구 소련이 해체되고 그것을 구성하던 공화국이었던 러시아가 독립국이 되자, 독립국이면서 스스로를 공화국으로 부르는 건 기존의 관행과 충돌하기에 '러시아 연방'이 공식 국호로 채택되었다. 어차피 지금 러시아 연방 내에도 공화국들이 연방을 구성하는 단위의 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어서 국호에서 뭔가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18]

2.2. 국기


[ No.620790 ] 이미지 준비중
러시아 연방의 국기(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флаг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는 삼색기(Триколор)이다. 위에서부터 하얀색, 파란색, 빨간색 등의 가로형 3색순이다. 하얀색은 고귀함, 순결함, 진실, 자유, 독립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정직함, 충성심, 헌신, 순수함을 상징하며 빨간색은 용기, 지혜, 슬기로움, 사랑, 국가와 자신에 대한 희생정신을 나타낸다. 전통적으로는 천상세계, 푸른 하늘, 속세를 가리키는 해석도 있다.
원래는 국기가 아닌 상선(商船)에서만 사용하였던 전용깃발이었다. 그러다가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이 깃발을 국기로 제정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국기로 승격되었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깃발로 대체되었고, 러시아 제국 시절의 국기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1991년 8월,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국기를 삼색기로 재지정했으며, 그 후에 러시아 연방도 1993년까지 이 국기를 썼다. 이때의 국기는 지금 국기와는 다르게 중간 부분이 파란색이 더 옅었다. 소련 시절의 국기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계엄령까지 선포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던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러시아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지금도 소련 시절의 상징물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국기를 썼던 러시아 제국슬라브 민족의 가장 영향력있는 국가였던 만큼, 러시아 국기에서 착안한 청(靑)-백(白)-적(赤) 조합이 범슬라브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슬로바키아, 체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의 국기가 러시아와 유사한 것은 이러한 이유. 이런 나라들은 국기에 자신들의 국장을 반영해 러시아 국기와 구분한다.

2.3. 국가






3. 역사





4. 자연환경



(러시아의 그룹 리틀 빅(Little Big)이 편곡한 폴류시카 폴레, 드론으로 찍은 러시아의 다양한 지역들의 풍경을 담았다.)

4.1. 영토


러시아의 아주 중요한 지리적 특징은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영토이다. 17,125,407㎢[19][* 이는 명왕성의 표면적(17,790,000㎢)이나 남아메리카(17,840,000㎢)와 거의 비슷하고 남극(14,000,000㎢)과 유럽 전체(10,180,000 km²)보다 거대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바티칸 면적의 3892만 1380배이다.][20]로 세계 최대. 한반도 면적(약 22만 3천㎢)의 76.8배, 남한 면적(약 10만㎢) 170배에 달하며, 2위인 캐나다(약 998만㎢)와도 700만㎢ 이상 차이나는데 인도의 국토면적이 330만㎢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좀 무섭기까지 하다.
21세기 이후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중 유일하게 10,000,000km²를 넘어간다.[21]
해안선의 길이는 필리핀비슷하다고 한다.
사실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19세기 말에 알래스카미국에 팔기 전까지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걸친 영토를 자랑하기도 했다. 즉, 1867년 이전만 해도 2,393만 ㎢가 넘었다는 거다.[22] 이러한 러시아는 인류 역사상 4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이보다 넓었던 국가는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 칭기즈칸 시절의 몽골 제국, 과거의 러시아(러시아 제국, 소련) 정도가 있다. 그 외의 대형 나라들이 있었지만 영토를 다 쳐줘도 현 러시아보다 작다.
무지막지한 영토 덕분에 러시아 본토 내의 두 지점 간에 가장 먼 거리가 7,900km가 넘는다. 우크라이나와 영유권 분쟁 중인[23] 크림반도까지 포함한다면 8,000km를 넘는다.
문제는 그 넓은 영토가 다 쓸만한 영토는 아니라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들이 사실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과 기후 때문에 그 넓은 영토들 중 유의미한 인간 거주구역들은 대부분 동유럽 부근에 밀집해있고 드문드문 소수민족 마을이나 자치구가 여기저기 퍼져있는 정도이다. 만약 사람이 살만한 영토였다면 진즉에 여러 거대 세력들이 난립하여 러시아와는 상관 없는 별개의 국가들로 살아갔을 것이다. 오히려 해당 구역들을 동유럽의 러시아가 먹여살리고 있다고 봐야 할 정도. 이런 특징은 사회간접자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인 도로를 상당히 열악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기후적 특성도 더해졌는데, 러시아의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하계망이 겨울에 죄다 얼었다가 봄에 녹으면서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길을 다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대 루시인들은 겨울에는 언 강을 썰매로 다니는 등 도로의 필요성 자체도 느끼지 못했다.
하여간 이런 도로 정비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도로 대부분이 엉망이며 나아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제조사가 러시아에 수출하는 차들은 방청[24]과 극악의 도로 상황, 혹한에 대비한 처리를 하여 만든다. 다른 국가의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9] 특히 남부 연방관구의 흑해 연안 지역이 날씨도 좋고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하다.[10]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춥고 황량한 기후가 아닌 국가에서도 여러가지 이유로 경작이 가능한 땅은 적다. 중국이나 미국의 여러 사막도 그렇고, 세계 각지의 정글도 덥고 비도 많이 오지만 경작하기 좋은 토질이 아니다.[11]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12] 1905년~1945년 일본이 러일전쟁 승전국으로서 러시아로부터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을 할양받아 러시아와 일본이 접경하고 있었다.[13]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기 전까지는 대영제국도 접경국이었다. 다만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을 때에는 캐나다는 없었다.[14] 러시아가 기존에 있던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책임지고 계승하기로 했다.[15] 최근에는 가타카나 ロシア를 줄인 ロ를 쓰고 있고 露는 日露戰爭(일로전쟁), 征露丸(정로환, 현재는 正露丸이라고 쓴다) 같이 이미 정착된 표현에서나 주로 쓴다. 마이니치 신문은 여전히 露라고 쓴다. 역사적으로는 露西亞와 魯西亞를 병용해왔는데,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일본에 露西亞를 쓸 것을 요구하여 露西亞로 굳어졌다. 에 '미련하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16] 예를 들면 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노한사전 등.[17] '루스'라는 단어 자체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 쓰이던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루스'는 곧 노젓는 사람들 이라는 뜻인데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 공국이 바로 바이킹 류리크가 동슬라브족을 정복한 다음 그들을 규합하여 세운 나라이다.[18]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을 구성하던 공화국 산하에 설치된 자치 공화국들도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러시아로서는 여기에 빌미를 안 줄 필요도 있었다. 만약 러시아가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나 러시아 공화국 식의 국호를 채택했을 경우 러시아 산하의 자치 공화국의 주민들에게 "러시아나 우리나라(자치 공화국)나 똑같은 공화국인데 왜 우리가 러시아의 일부로 묶여 있는 거지? 그냥 독립하면 안 되나?" 식의 생각을 부추길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안 쓰고 '공화국'보다 상위인 정치적 연합체라고 강조하기 위해 러시아 연방을 국호로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19] 크림 반도 제외 시 17,098,242㎢.[20] 동아시아 면적(11,839,074㎢)보다도 크다.[21] 다만 캐나다도 통계에 따라서는 10,000,000km²로 보는 경우도 있어서 두군데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따지든지 간에 러시아가 독보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이다.[22] 알래스카 땅만 해도 153만 7,000㎢로 한반도 면적의 7배다![23] 실제로는 러시아 정부가 통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 등이 인정치 않는 형태다.[24] 주위의 습도, 온도의 변화로 인해 자동차 하부의 철판이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공하는 것



이건 변두리의 어느 시골길이 아니라 한국 기준으로 일반국도 급인 도로다. 한참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Rasputitsa) 중에 찍은 모습. 오죽하면 농담으로 러시아의 3대 불량품은 도로, 날씨, 루스키(러시아 남자)라는 말도 있다. 다만 혹독한 국난의 시기에는 이 3대 불량품이 3대 수호신으로 돌변한다! 중세 이래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25]도, 스웨덴 카를 12세의 군대[26]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그랑 다르메[27]도, 아돌프 히틀러GOH[28]도 처음에는 위풍당당하게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곧 거지 같은 도로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 하며 혹한에 시달리다 끝내는 죽음을 향해서 묵묵히 전진하는 러시아 남자들과의 격전 끝에 도륙당했다. 반대쪽의 더 거지 같은 환경에서 진격해온 몽골인들에겐 안 먹혔다[29]는 게 함정이긴 한데…사실 저 3대 요소를 전략적 결정 병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유럽 특유의 전쟁 방식은, 킵차크 한국의 지배 아래에서 중세 내내 깨지고 박살나면서 뼈로 배운 타타르 인들로부터의 교훈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도 지상군을 동원한 전쟁으로는 이 3대 수호신을 꺾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 그들의 존재 의의다.[30]
지역적으로 크게 보면 우랄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의 동유럽에 포함되는 유럽 러시아(Европейская часть России, European russia)와 동쪽의 북아시아로 나뉘어진다. 우랄 산맥 동쪽을 전부 시베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베리아의 범위는 북아시아 중부 지역에 해당하고 북아시아 서부는 우랄지역, 북아시아 동부는 러시아 극동에 해당된다. 유럽 러시아 지역은 러시아 전체 면적의 25%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러시아의 발원지이자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제1의 도시이자 현 수도인 모스크바와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옛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러시아 대도시 대부분이 위치해 있으며 러시아 전체 인구의 77%가 거주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 국토의 75%에 해당하는 북아시아지역에는 러시아 전체 인구의 불과 23%만이 거주하고 있다.
큰 규모의 운석이 잘 떨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확률적으로 운석이 잘 떨어질만하다.[31] 가장 유명한 건 퉁구스카 대폭발과 2013년에 일어난 첼랴빈스크 운석우 사건[32]
전체적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평탄한 지형이 대부분이나 캅카스 산맥, 알타이 산맥, 캄차카 반도 등 일부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유럽 대륙 최고봉이자 러시아 최고봉인 옐브루스 산이 러시아 서남부에 있다.
2011년에는 동서로 펼쳐진 거대한 영토 덕분에 설정된 여러 시간대에 부분적인 변경을 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동쪽 끝에 위치한 추코트-캄차카 지역의 독자 시간대를 폐지하고, 서머타임을 없앤 것이다.#
2014년 10월 26일 대대적인 시간대 조정을 단행했는데,
  • 대부분 지역에서 시계를 2011년 이전같이 1시간 전으로 돌려서 모스크바와 한국의 시차가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었으며, 한국보다 2시간 빨랐던 블라디보스토크는 1시간 빠르게 되어 시차가 줄었다.[33]
  • 이외에 자바이칼 지방은 한국보다 1시간이 빨랐던 것이 한국보다 1시간이 느리게 조정되었으며, 마가단은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에서 한국보다 2시간 빠른 시간대로 조정되었다.
  • 사마라 주,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캄차카 반도, 추코트카는 종전의 시간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사마라 주는 결과적으로 모스크바보다 1시간 빨라지게 되어 '사마라 시간'이 부활했고, 한국보다 3시간 빠른 시간대인 '마가단 시간'은 '캄차카 시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4.2. 기후


한국에서 러시아 이미지는 시베리아로 대표되는 추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동장군이란 말이 원래 러시아의 겨울을 이르던 말이니까. 다만 대부분 지역이 겨울에 추운 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답게 남부 쪽은 생각만큼 춥지 않은 지역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흑해 연안 소치2월 평균기온은 6℃아열대기후에 속하며 제주시의 6.4℃와 비슷하다.[34] 게다가 여긴 일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고 연간 강수량도 1,700mm를 넘어 한국 기준으로도 다우지에 속하는 곳이다.
내륙의 모스크바 역시 서울보다는 춥지만 강원도 대관령, 북한 신의주, 라선특별시와 비슷한 정도(1~2월 평균기온 -7.5℃)의 기온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까지는 아니다. 북아시아(시베리아) 지역도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 지역은 러시아 기준으로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다. 모허 국경지역은 -30℃ 내외로 엄청나게 춥다.[35]
반대로 한반도에 한파가 닥칠 때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일시적으로 낮은 기온을 보일 때가 있어서 러시아 겨울 별 거 아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 진짜 호되게 혼난다(...)
러시아가 전체적으로 겨울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1년 내내 추운 것도 아니고[36] 여름에는 충분히 덥다. 한여름 대낮에 30℃를 넘는 지역도 많고, 2010년 7월 칼미키아의 우타에서는 45.4℃라는 러시아 역사상 최고기온이 기록되었다. 오이먀콘에서 기록된 최저기온이 -71.2℃이니 무려 116.6℃의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소련[37] 이전 러시아 제국 시절[38], 그리고 현재 러시아는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이다. 즉, 못 쓰는 얼음땅만 있는 게 아니라 농사 짓기 좋은 땅도 엄청나게 넓다는 것이다.
물론 북극권에 가까운 시베리아 북쪽으로 올라가거나 동쪽으로 갈수록 극단적으로 추운 기후를 자랑한다. 야쿠츠크의 1월 평균 기온은 -40℃, 베르호얀스크는 -45.9℃, 오이먀콘은 -51.3℃다. 각 도시의 위엄에 대해서는 문서를 참조. 한국의 추운 겨울의 원인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시베리아 기단 때문이다.
러시아는 9월 중하순부터 5월까지 겨울일 정도로 추운 나라인데도 워터파크가 있다. 물론 100% 실내이다. 물론 러시아가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소치처럼 한국보다 따뜻한 지역도 있긴 하다.
지구 온난화의 수혜를 보는 나라 중 하나. 일단 시베리아 남쪽부터 농사 가능한 온대지역이 조금씩 올라올 추세인데 캐나다나 알래스카보다 그런 영역이 훨씬 넓으므로 가장 이득을 보게 된다. 게다가 점점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의 통행세를 기대하는 눈치. 동아시아의 한중일이 싱가포르 찍고 가는 남쪽 항로보다 훨씬 가까운 지름길이 될 북극항로의 주 수혜자가 될 예정이다.

5. 인문환경



5.1. 인구


인구는 2021년 기준 약 1억 4,624만 명(크림반도 제외시 1억 4382만)으로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하지만 그 넓은 국토에 비하면 적은 인구다. 미국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며,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적다. 국가별 인구 순위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를 참조하자.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에서 러시아와 인구가 비슷한 국가는 일본 정도가 있을 텐데 약 1800만 명 정도 차이가 난다.
면적과 인구를 대비해 보면 인구 밀도는 km²당 8.36명으로 한국의 1/60 정도로 굉장히 낮은 편이다. 물론 국가 전체로 일반화하면 곤란하다. 사하 공화국은 인구밀도가 km²당 0.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보다 4,300배나 큰 땅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싱가포르의 1/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데 반해 유럽 부분의 평균 인구밀도는 km²당 27명으로 비교적 높다. 다만 한국 같은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인구밀도가 낮긴 낮아서 서울, 델리마닐라의 km²당 인구밀도가 각각 17,000명, 25,500명, 42,000명인 것과는 달리 모스크바 시의 인구밀도도 km²당 4,000명에 불과하며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바 주 (오블라스트)의 인구밀도도 km²당 150명 정도다. 참고로 충청북도의 인구밀도가 km²당 210명이다.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이유는 대부분의 국토가 미국, 유럽에 비하면 무척이나 척박한 데다[39]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된 인구감소도 한몫하고 있는데 1987년 2.2명선이었던 출생률이 1988년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991년 소련 붕괴 후 의료보건체계와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고물가에 따른 예금가치의 추락이 겹치면서 출생률 감소가 가속화되고 평균수명도 같이 줄어들어 1993년엔 출산율 1.5명선이 붕괴되고 사망자수도 연 200만 명선을 넘음에 따라, 매년 -0.4%~-0.6% 정도의 인구감소 추세[40]가 2008년까지 이어졌다. 어찌나 정도가 심했는지, 한때 2050년이 되면 러시아의 총 인구가 8,000만 명대로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2009년부턴 출산율의 증가와 평균 수명의 증가, 구 소련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자 유입으로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부터 이민을 제외하고도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2016년부터 다시 감소 추세이다.#[41]
부연 설명하자면 1999년 1.17명으로 저점을 찍은 출산율은 2000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때마침 고유가로 재정이 풍족해지면서 적극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침에 따라 출산율 상승에 가속도가 붙었다. 위 문단에서 2008년까지 인구 감소 추세였다고 하는데 사망률 때문이었고 2000년부터는 사망률은 감소하고 출산율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에 다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출산율도 2014년 기준으로 1.75명대까지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율이 막장을 찍은 나라와 비교해보면[42] 석유빨이 크게 작용했어도 해도 출산율이 밑바닥에서 이 정도까지 올라온 건 분명히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출산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수치가 낮아서 대체출산율(2.1명)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거기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이 되어서 은퇴하고 있고, 수가 적은 1990년대-200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 노동인구로 편입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출산율의 추가적인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출생아수가 다시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어서 인구가 일정 기간동안 감소될 수도 있는데다가 앞으로 2020년대까지는 적은 노동 인구로 늘어나는 아동층과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며, 그래서 러시아의 인구학적 위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16년부터 다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16년에 2천명, 2017년에 13만, 2018년에 22만, 2019년에 32만, 2020년에 52만 명 등등 감소 폭도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기에 크림 사태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급속도로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해 2019년 기준 1.504명까지 떨어져 버렸다. 2019년 기준 러시아의 출생아수는 1,481,074명으로 2015년에 비해 24.7% 가량 출생아수가 감소했다.[43] 출생률로 보자면, 2015년 러시아의 1,000명당 출생율은 13.3명에서 2019년엔 10.1명까지 줄어들었고, 이것은 한국(8.6명)보다야 높지만 중국(12.1명), 미국(12.4명)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아무튼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출산율이 브레이크 없이 감소했던 만큼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확실하다.
2015년 UN의 예측에서는 2050년 인구가 2015년 대비 18% 감소해 14% 감소하는 일본을 인구감소에서 앞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정부는 저출산에 대한 대책에 나섰고, 푸틴 대통령은 젊은층 가구에게 64억 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액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1천만 외국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러시아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이 심각하게 낮아서 고령화 문제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심하지 않았으나 2010년대 이후로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평균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2019년 기준 고령 인구가 15.6%로 이미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중위 연령 역시 2019년 기준 40.3세로 40대에 진입했다.

5.1.1. 평균 수명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은 2015년 WHO 통계에 따르면 69.83세로 이는 북한(69.91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면 이해가 가기 힘든데, 이는 러시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터무니없이 짧아 평균값이 확 내려가서 그렇다.[44]
러시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77.1세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상 범위인데 반해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62.5세[45]에 불과해 남녀 평균 수명이 15년이나 차이 난다. 즉, 평균적으로 러시아 여성들은 사별 후 무려 15년 동안 혼자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4~5년보다 훨씬 높다. 러시아에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로는 보드카를 비롯한 과음 문화가 많이 꼽힌다. 도수 높은 보드카를 늘 달고 사니. 유튜브나 영상에서 자주 보이는 러시아인의 기행 때문에 러시아 남자들이 빨리 죽는다는 해외의 인식이 있다
그래도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70대 후반 정도는 되기에 노인 인구는 꾸준히 늘어 어느새 전체 인구의 14.3%나 되어 벌써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0~14세 유년층 인구는 전체의 17.1%로 아직은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추월하지는 않았지만 그 격차가 불과 3% 이내로 많이 좁혀진 상황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노년층 인구가 유년층 인구를 추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합계 출산율은 1,000명 당 12명 정도의 수준이고, 합계 출산율은 1.7명 대 정도이지만 결혼을 빨리 하는 편이라 그런지 여성들의 초산 연령은 2009년 기준 24.6세라고 한다. 즉, 러시아 여성들은 결혼을 빨리 하지만 애는 잘 안 낳는 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영아의 장애 발병률이 낮다. 영아 사망률은 1,000명 당 6.8명이다.

5.1.2. 성비


러시아는 대표적인 성비 불균형 국가 중 하나로 성비가 겨우 86 : 100밖에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여초 국가다. 러시아 전체 인구가 2017년 기준 1억 4,225만 7,519명인데 이 중 남자가 6,581만 4,697명이고 여자는 7,644만 2,882명이나 되어 여자가 남자보다 무려 1,062만 8,125명이나 더 많다.
이런 비정상적인 수치가 가능한 이유는 장년층과 노년층 성비 때문. 실제로 러시아의 신생아와 0~14세 유년층 성비와 15~24세 청년층 성비는 106:100, 105 : 100으로 정상에 가깝다.[46] 그런데 25~54세 장년층의 성비는 96 : 100, 55~64세 중년층 성비는 75 : 100이며 65세 이상 노년층 성비는 45 : 100까지 벌어진다. 남성의 수명이 여성의 수명보다 압도적으로 짧은데다 노년층은 독소전쟁으로 90대 이상의 남성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5.2.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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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다민족 국가라 하면 미국, 캐나다를 떠올리는데 러시아도 대략 20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47] 유럽아시아를 아우르는 것 같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러시아인들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아시아계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48] 이것도 스탈린의 강력한 러시아 동화 정책, 강제 이주와 굴라그로 대표되는 억압으로 조금 줄어든 수준이다.
2010년 인구 조사 결과 러시아인[49]이 인구의 81%, 약 1억 1,500만 명 정도를 차지하며, 볼가 타타르인, 우크라이나인, 바시키르인, 추바시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벨라루스인, 불가리아인, 폴란드인, 카자흐인,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키르기스인, 아제르바이잔인, 핀인, 카렐인, 독일인, 시베리아 타타르, 사미인, 카라차이인, 발카르인, 조지아인, 쿠미크인, 쿠르드족, 몽골족, 루마니아인, 부랴트인, 체르케스인, 조지아인, 아바르인, 다르기인, 칼미크인, 코미인, 마리인, 사모예드족, 나나이족, 에벤키족, 축치인, 야쿠트인,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 크림 타타르족, 하카스인, 니브흐족, 아이누족 등 엄청나게 많다. 고려인도 50만 명 정도 거주해 인구의 약 0.3% 정도를 차지한다. 러시아 내에는 그 넓은 영토에 걸맞게 모두 160개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550만 명에 달하는 타타르인과 2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부터 98명이 거주하는 콜라 노르웨이인[50]까지 그 수도 다양하다.
러시아 흑인[51], 5만 명의 인도인, 일부 파키스탄인,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에 러시아에 피난 온 일부 아프가니스탄 피난민[52]도 살고 있다. 러시아 흑인들의 역사는 의외로 길어서 18세기에 이미 장군을 배출했을 정도이다. 유명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바로 흑인의 후손이다. 곱슬머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상이 에티오피아의 귀족이었는데 푸시킨도 자기 집안의 이러한 내력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는 흑인의 규모는 약 4만에서 7만 정도 수준. 그 외 러시아에도 구소련출신의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상당한 편이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은 러시아에서 3D#s-2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러시아 내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러시아 내 스킨헤드#s-3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러시아 내 중국인이 증가하면서, 2050년까지 러시아 인구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링크

5.3. 언어




공용어이자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러시아어다. 하지만 전부가 러시아어를 모어로 하는 것은 아니라서, 러시아 인구의 약 92%인 1억 3천만명만이 러시아어를 모어로 삼는다. 이는 러시아가 다민족 국가인 특성상 러시아인을 제외하고도 소수민족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 소수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어족도 인도유럽어족, 북서캅카스어족, 우랄어족, 고아시아어족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또한 러시아가 연방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체(공화국, 민족 자치구 등)는 러시아어 이외에도 따로 공용어를 지정하여 사용한다. 타타르 공화국의 타타르어, 사하 공화국야쿠트어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러시아어의 세가 워낙 강력하다보니 지금은 소수민족 상당수가 자신의 민족어를 점차 잊어버려서 언어학자들은 발등에 불이 붙은 심정이라고 한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죽으면 그 언어는 그대로 사멸하니까. 2009년 유네스코는 러시아 내 언어 136개(!)가 사멸 위기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러시아내 소수민족들의 언어들은 러시아 정부의 특별 기금으로 보호를 하는 것을 마련하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관련 자격증으로는 러시아 교육부가 주관하는 공인 시험인 토르플(ТРКИ, Тестирование по русскому языку как иностранному)이 있다. 토르플은 한국슬라브문화원 산하 토르플센터, 계명대학교 등에서 응시가 가능하다. 그외 기타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으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외국어능력시험인 FLEX,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주관 언어능력시험 SNULT, OPIc 러시아어가 있다.

5.4.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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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4대 대표 종교 : 유대교, 정교회, 이슬람, 불교)
소련이 1991년 붕괴되고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세워진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종교 활동이 보장된다. 다만, 1,000여 년의 세월 동안 러시아 민족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신자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를 표방하지만,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가 매우 사이가 가까우며, 사실상 정교회가 러시아 제1종교이자 국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종교를 믿는 러시아인은 급증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적어도 "다소" 종교적이라고 응답한 러시아 성인들은 1991년 11%에서 2008년에 54%로 증가했다.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응답한 러시아인들은 같은 기간 동안 38%에서 56%로 상승했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종교는 정교회 41%, 무신론 13%, 이슬람 6.5%, 무응답 5.5%로 집계되었다. 정교회 신자들은 주로 슬라브계 러시아인(русские)들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슬람 신자(무슬림)들은 북캅카스, 타타르스탄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소련 시절 국가 무신론 정책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일단 소련이 붕괴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간 이후로는 러시아 정교회가 강세지만 21세기 사람들이 그러듯이 북유럽처럼 문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믿지않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으며 종교는 구식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반종교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그리고 현대 러시아 문화는 호모포비아 성향이 강한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세속적인 분위기이다. 그냥 한국의 유교사상이나 일본이나 베트남에서의 불교사상이 생활에 영향을 끼친정도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소련시절에 비하면 줄긴 했지만 무종교인 인구가 2천2백만명 정도 된다고 하니 적은편은 아니며 전세계에서 6번째로 무종교인이 많은 국가이다.

5.4.1.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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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교회동로마 제국선교사들이 전교해,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통치하는 키예프 루스[53]의 국교가 되었으며 1037부터 1448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임명한 그리스인 대주교가 통치했다.
키예프 루스가 정교회를 국교로 선택한 데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블라디미르는 형제들과 싸워 권력을 얻은 탓에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그래서 권력을 키우고 키예프 러시아를 강력하게 통치할 수 있는 사상이 필요했는데 그 사상이 바로 종교였다. 국교를 정할 당시 블라디미르는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유대교 4개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슬람교는 술과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니 아웃, 유대교는 블라디미르가 "왜 유대인이 선택받았다는데 당신네는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닙니까?"라는 질문에 랍비가 아무 말 못해서 아웃. 그래서 두 그리스도교가 남아서 두 쪽 다 사절을 보냈는데, 가톨릭 측 사절이 갔던 독일은 거의 암흑시대로서 야만족과 다름없는 안습이었기 때문에 아웃되었다. 반면 정교회 측에서는 휘황찬란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로 데려가서 그 화려함에 당장 정교회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다 실질적인 이유로는 접근성과 당시 권력의 차이 문제가 있었다. 유대교로 개종했던(!) 하자르 칸국은 이 시절이면 쇠퇴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로마보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훨씬 가까우며 당장 직접적인 무역 루트나 영향력 면에서 여러 모로 정교회를 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당대 러시아의 중심지였던 키예프에서 드네프르 강을 타고 내려와 흑해에 이르면 동로마 제국의 크림 반도 거점이던 케르손에 도착할 수 있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 흑해를 건너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르게 된다. 반면 당시 가톨릭의 중심지인 독일 지방이나 이탈리아 및 이슬람 중동권은 거리도 멀고 육상 교통로에 의존해야 했다. 수상 운송이 육상 운송보다 훨씬 효율적임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교역 파트너인지는 뻔하다. 게다가 러시아의 개종 당시 지지리도 가난하고 분열되어 있던 서유럽에 비해 동로마 제국은 강력한 통일 국가로서 사절들이 와서 구경한 뒤 "그리스 애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곳에 가 봤는데요, 엄청 멋있어서 이 세상 같지 않았어요! 그렇게 대단한 데니까 분명히 하느님이 사실 거예요!!"라고 보고할 정도로 엄청난 성당을 지을 정도로 부유하기까지 했다. 당시의 종교는 정치와 사회 전 영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고, 특정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종교를 믿는 국가와 우호적 교류 관계를 맺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시 러시아에게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었을지는 뻔하다.
이후 1589년 이오프 모스크바 대주교(Патриарх московский Иов)가 모스크바와 모든 러시아인의 총대주교가 되면서 자치 교회가 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에 이어 제5위의 정교회가 되었다. 현재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키릴이다.
수세기 동안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의 지배적인 종교였다. 특히 1055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완전히 분리되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에 이어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동방 정교회 세계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마저 무슬림들에게 점령당한 뒤에 동방 정교회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추정되는 지도력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 뿐이었다. 이 말은 결국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정교회 지역들이 모두 이슬람의 손에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이 즈음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마저도 당시의 신흥 강자였던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했다. 이들 정교회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이 패망한 1922년까지 과거 누렸던 종교의 자유를 제한받았다. 반면 이 시기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와 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러시아 문화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 말기, 황실과 결탁한 정교회의 부패는 끝을 달리고 있었고, 이러한 모습은 1917년 10월 혁명과 적백내전으로 집권한 소비에트 연방에게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써 간주되었다. 공산주의는 사상적으로도 무신론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고. 특히 레닌은 교회가 소유한 재산을 국유화할 것을 지시하며, 이를 거부하는 많은 수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투옥시키거나 처형했다. 이후 소련 전역에 위치해 있던 성당수도원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거나 파손되었다.
또한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명망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공산당은 정교회의 권위를 깨부수기 위해서 정교회 성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했다. 정교회와 가톨릭 등 기독교 보편교회에선 훌륭한 삶을 살다 죽은 일부 성인들의 유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썩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데, 썩은 성인들의 시체를 보여 주어 대중의 신앙심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근데 수백년 전에 죽은 시신들을 파냈는데도 전혀 썩지 않아 공산당원들이 하얗게 질리고 흥분한 군중들이 공산당원들을 비난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한다.[54]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스탈린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는 데에 종교적 열의를 이용하기 위해[55] 다시 정교회 신앙을 부활시켰다. 스탈린은 남몰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경호원들과 손녀가 증언한 적이 있기는 하나퍽이나 정교회 신앙 부활은 인간의 감정을 이용한다는 현실주의적인 목적도 있었다.
진짜 독실한 신자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탈린 본인이 신학생 출신이었던데다가 정치적인 면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정교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 역시 사실이다. 스탈린은 자유 진영 사람들이 원칙과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인간 행동의 기저를 의심한 치밀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56]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스탈린 치하에서 어느 정도 정교회가 복원되기는 하지만, 다음에 집권하는 흐루쇼프의 탄압을 받았다. 그래도 소련 붕괴 시까지 민중들은 물론 공산당원조차도 정교회 신앙을 비밀리에 이어 갔다. 대표적인 예가 소련 붕괴 후 정교인임을 드러낸 블라디미르 푸틴. 이 사람은 소련 비밀경찰기관인 KGB의 간부 출신이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거의 국교가 되어, 보리스 옐친이나 푸틴은 소련 시절에 명목상 공산당원이었음에도 정교회 신자라고 커밍아웃했고, 이후 성찬예배에도 자주 참례했다. 심지어 소련 공산당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쥬가노프도 교회에 다니며 정교회 성직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공산당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홀리는 예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으로서, 그리고 러시아의 국가 정체성 강조를 통한 통합강조 차원에서 정교회를 대폭 밀어주는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제로 악명높은 일본의 옴진리교가 한때 러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러시아인 신자들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체포되자 무력으로 아사하라 교주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 몰락 이후 각 나라별 교회 문제 때문에 대판 다투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영토 내의 교회는 각 국가의 교회이나 그 교회 건물의 소유권을 러시아 정교회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각 국가들의 독립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바탕으로 교도권을 주장하면서 독립 교회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다. 2018년 10월에는 크림 반도 분쟁 등의 이유로 러시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단절을 선포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정교회 세계에서 제일 현지화가 많이 진행된 교회이기에 다른 교회 지체와의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애초에 초대 교회가 동서로 찢어진 사건 때문에 정교회 성직자들은 러시아 지역에 선교할 때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일치!'를 외쳤으나, 이번엔 이 동네가 당시 서유럽보다 더한 깡촌이라서.... 결국 원조(?)와 좀 많이 달라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17세기 중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재위 기간에 모스크바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슬라브 토속 신앙과의 융합을 피하려고 전례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맞춰 바꾸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니콘의 전례 개혁에 반발한 구전례파와 니콘을 지지한 신전례파가 나뉘어 내분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57] 게다가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가 서유럽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정교회에 가톨릭적 색채가 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딱히 큰 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고,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신앙이 깊기도 한 데다가 딱히 핵심 교리에서 변질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러시아 정교회가 정교회 그 자체로부터 분열해 버리는 사태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가 즉위할 무렵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공석이 되자 차르는 신성종무원을 만들어 정교회를 관리했고, 신성종무원은 러시아 혁명으로 해체될 때까지 이어졌다.
혁명 직후 러시아 정교회는 새 총대주교로 티혼을 뽑았지만 곧바로 볼셰비키가 집권하며 박해받았다. 공산당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 티혼 러시아 총대주교가 해외 러시아 정교회의 설립을 명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국내파와 해외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후임 총대주교인 세르게이는 교회의 존속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소련 정부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지지를 표명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조치'를 이어가지만 실질적인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련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실제로 살아있는 교회란 별칭이 붙었다)'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갔고, 이러한 모습에 비판적이었던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나라의 남북한 이상으로 갈등과 대립을 겪어 왔다. 러시아에서 정교회가 자유를 얻은 것은 1990년 고르바초프의 주도로 소련 최고회의가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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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러시아 정교회와 해외 러시아 정교회는 100년간의 갈등을 끝내고 2007년 5월 17일 일치를 선언한다. 무려 100년간의 갈등 끝에 이뤄진 일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푸틴이 정교회 신자다 보니 직접 나서서 챙기고 다독거려서 상호 양보를 받아내고 일치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한편 한국 정교회 역시 본래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었으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서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 정교회는 한국 정교회를 미국의 미트로폴리아 관구의 일본 정교회에 맡기려 했으나, 일본 정교회 역시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아 갈등하던 중 1955년 12월 25일에 서울 성 니콜라스 성당 신도회의 결의에 따라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된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아니고 1월 7일인 이유도 정교회의 세가 워낙에 강한 영향이다. 자세한 건 크리스마스 문서 참고.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아예 양력설과 크리스마스를 연계시켜 신년 연휴를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러시아는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인 유일한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58]

5.4.2. 이슬람교


이슬람은 러시아에서 2번째로 세력이 강한 종교로, 현 러시아 인구의 13~20% 정도가 무슬림이다. 주류 민족인 슬라브계 러시아인보다는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인 타타르족(3.9%)이 대표적으로 이슬람을 믿으며, 그 외에 바시키르인과 북캅카스에 거주하는 민족 대다수도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비무슬림 러시아인들은 이슬람에 반감을 가질 때도 많지만, 종종 우호적인 감정을 보여줄 때도 있다.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이슬람 관련한 내용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슬람 정명론과 관련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으며,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 같은 소설에도 체르케스인들과 아바르인 무슬림들이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구소련의 유명한 여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같은 경우는 자신의 타타르인 할머니의 무슬림 성에서 자신의 필명 아흐마토바[59]를 따왔다.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7세기 가량으로, 당시 다게스탄에 처음 선교사를 파견, 이후 주변 민족을 중심으로 전파했다. 10세기 경 볼가 강 유역에 거주하던 불가르 칸국에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으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멸망한 불가르 칸국을 계승한 카잔 칸국의 볼가 타타르인들도 무슬림이었다. 유대교를 믿었던 하자르 칸국의 수도 아틸 근처에는 튀르크인의 (이슬람) 성지라는 뜻의 하지 타르한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인 아스트라한 칸국이 건설되었다. 16세기 중엽 이반 4세 제위 시기의 루스 차르국이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지배층의 내분을 이용해 병합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타타르인들이 러시아 제국 내로 흡수되었다.
러시아 제국 시절 중앙정부 차원에서 농노제와 러시아 정교를 동시에 강요하면서 무슬림들은 종종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카잔과 아스트라한의 볼가 타타르인들의 경우는 비교적 덜했으나, 캅카스 지역과 크림 반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탄압이 심해, 억압적인 소수민족 정책과 더불어 1817년부터 1864년까지 지속된 캅카스 전쟁같은 무력저항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오스만 제국과 연계된 경우가 많았는데, 체르케스인들의 경우 러시아인들과 전쟁에서 인구 상당수가 사망하고 대부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갔으며,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던 크림 칸국의 경우 수백년동안 기독교인 노예 인신매매[60]행각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다른 타타르인들에 비해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카자크를 포함한 러시아 군인들이 이들에게 제대로 복수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크림 타타르인들이 이미 어른의 사정으로 사실상 종교만 이슬람인 우크라이나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
10월 혁명 이후 집권한 소련 정부는 러시아 제국 내에서 탄압받던 이슬람 신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특히 1920년대 중앙아시아에서 실시한 현지화(Коренизация) 정책으로 이들 이슬람 교리가 보장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 스탈린 시기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 함께 다시 위축되었고, 이후 소련 말기까지 정교회와 같이 국가 관리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 종교의 자유가 부활하면서 캅카스를 중심으로 이슬람을 믿는 신자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일단 소련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내의 무슬림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물론 체첸 공화국처럼 근본주의 성향을 보인경우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오늘날 러시아가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극우 민족주의화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존재하나, 중국처럼 무슬림 소수민족들을 수용소에 감금하고 성고문하는 막장 상황보다는 훨씬 양반이다.

5.4.3. 유대교


러시아 제국유대인들이 밀집해 살던 지역인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일대를 병합한 역사 때문에,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아슈케나짐 계열 유대인이 많기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지역이었다. 유대인 자치주는 그 흔적이고, 러시아를 떠난 유대인들 중에서 아직 러시아어가 편한 이스라엘인이 많아서 지금도 이스라엘 정부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이스라엘 관련 사이트에서 러시아어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많을 정도.
그러나 독소전쟁홀로코스트로 큰 피해를 입고 소련 정부도 나치만큼은 아니지만 유대인에 호의적이진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빠져나갔다. 러시아계 유대인들 중에는 거의 다 아슈케나짐 유대인이지만 페르시아계 유대인의 일파인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 및 현재 극소수가 남아있는 카라임 유대인들도 있다. 부하라 유대인과 조지아 유대인은 혹여나 세파르딤, 미즈라힘 유대인으로 인식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적잖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묻혀 가는 편을 선호한다. 여전히 유대교는 명목상 러시아 4대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나 대부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상태이다. 무신론을 강요한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코셔 율법을 별로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이스라엘에 이민와서도 돼지고기를 별 거부감 없이 먹는 편이다. 그 때문에 보수적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특히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서구권으로 망명한 러시아계 유대인의 후손들은 서구권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 유대교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가 아닌 이상 러시아 본토 유대인들의 돼지고기 섭취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5.4.4. 불교


대부분은 티베트 불교로, 시베리아 등 러시아 동부에 사는 몽골이나 튀르크 계열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다. 불교 신자는 대부분 투바 공화국과 자바이칼 변강주, 부랴티야 공화국, 이르쿠츠크 주 등 시베리아에 산다. 불교 공동체와 사원들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있지만,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불교의 전통과 역사, 정신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시베리아에 가봐야만 한다.
이 곳 역시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시대에 상당한 탄압을 받았고,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의 사원[61]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러시아 서부, 즉 유럽 지역에서도 칼미키야 공화국티베트 불교권이다.[62] 애초에 여긴 유럽의 유일한 불교 국가다.

5.4.5. 기타 종교


가톨릭, 개신교[63], 힌두교[64], 도교를 믿는 경우도 있는데 힌두교를 믿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 러시아 소수 민족들을 중심으로 원시 신앙을 믿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신이교주의자들이 슬라브 신화나 기타 다른 토속신앙을 복원하려고 하지만 규모도 작고 기성종교 집단에게 탄압을 받거나, 이러한 민족 신앙이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네오나치 사상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5.5. 기행


[25] 폴란드-모스크바 전쟁(1605년-1618년).[26] 대북방전쟁(1700년-1722년).[27] 조국전쟁(1812년).[28] 독소전쟁(1941년-1945년).[29] 기병에 크게 의존하는 몽골 군은 봄이 되면 도로가 뻘밭으로 변하는 걸 보자 겨울에만 진격을 했다. 날씨는 몽골 인들에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도로 문제는 부분적으로나마 효과가 있었다는 뜻.[30] 현 러시아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나토와의 전쟁은 고전적인 육군 싸움보다는 핵전쟁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러시아의 국토는 여전히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한다. 전면 핵전쟁이란 것은 양 측이 전략 핵무기로 엘리전을 벌인 뒤 국민이 몇 명이 죽고 나라 꼴이 어떻게 되었는지 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추가적인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쪽이 이기는 전쟁인데 러시아의 우월한 국토 넓이는 핵무기로 파괴해야 할 국토 면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온 나라의 지표면을 석기시대로도 못 돌아갈 방사능 황무지로 만들어버리는데 필요한 핵무기의 양이 미국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31] 지구 육지 면적의 11%를 차지하고 있으니 육지에 운석이 떨어진다면 9개 중 하나는 러시아에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32] 스베르들롭스크 주와 튜멘 주에도 일부 피해가 갔지만 첼랴빈스크 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33] 참고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는 이래도 표준시와 실제 태양시가 1시간 차이가 나는데, 왜냐하면 연해주는 UTC+10의 기준선인 150˚E선이 안 지나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일본의 표준시인 UTC+9의 기준선인 135˚E선이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150˚E선이 지나가는 지역이라면 쿠릴 열도마가단 일대에 해당하는데, 정작 마가단은 165˚E선 기준인 UTC+11을 쓴다.[34] 이렇게 따뜻한 지역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개최했던 캐나다 밴쿠버도 마찬가지.[35] 미국 접경지대에 몰려 있는 캐나다와 이래저래 비슷하다. 그래도 1월 평균기온 -15℃를 찍는 곳이어서 개마고원을 제외한 한반도의 어느 곳보다도 춥다.[36] 당장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연해주 남부는 온도만 약간 낮을 뿐 한반도의 기후특징들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점에서 러시아가 겨울만 있는 나라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37] 소련 시절에는 역으로 미국에서 식량을 어마무시하게 수입해왔다. 이 때문에 소련은 핵을 쥐고 있어도 미국한테 아킬레스건 하나를 내준 셈이 되었다. 핵은 둘다 죽을것 각오하고 싸울 지경이 되어야 날리는 물건인데 단순 식량 수출 제재는 그 정도 레벨이 아니지 않은가? 식량으로 위협당하는 것도 일종의 국가 안보 위협이지만 지들이 농업 제끼고 중공업에 몰빵해놓고는 미국탓할 수도 없고...[38] 다만 러시아 제국의 곡물 수출은 농노들을 쥐어짠 결과물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곡물이 절대적으로 남아돌아서 수출한 게 아니라, 서유럽에 내다 파는 것이 이익이 크니까 정작 국내에서 곡물이 부족해도 그냥 내다 판 것이다! 조선이 풍요로운 국가가 아니었는데도 개항기에 일본에 쌀을 수출한 것과 비슷하다.[39] 그러다보니 그나마 살만한 지역인 우랄 산맥 서부에 인구 대부분이 몰려 있다. 특히 척박한 기후의 시베리아로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에도 러시아인들이 기피하다보니 우랄 산맥 동부는 인구가 적어서 거의 비어있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40] 물론 당대에 이탈리아스페인처럼 출산율 1명대 초반선을 찍은 나라들이 있긴 했으나 사망률은 낮았다. 반면 당시 러시아의 사망률은 이들에 비해 굉장히 높았다.[41] 크림 반도를 통한 인구 증가는 제외한다.[42] 예를 들면 대한민국, 일본, 이탈리아, 불가리아, 스페인[43] 크림 반도 합병이 얼마나 실속 없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다. 서방측의 태도는 러시아가 자초한 것이다.[44] 사실 북한도 국가의 상태(...)를 생각하면 의외로 높은 축에 든다. 당장 전 세계 평균 수명이 66.5세다.[45] 남자의 평균 수명이 이거보다 더 짧은 나라는 막장국가들 말고는 없다.(...)[46] 여러 나이대 별로 성비를 조사한 성비에서도 34세 이하의 나이대에는 남성 1000명당 여성이 960명이지만, 35~39세의 나이 대에서는 여성이 1027명인 것으로 나왔다.#[47] 러시아 연방 헌법 전문도 '우리 러시아 연방의 다민족 인민들은(Мы, многонациональный народ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으로 시작한다.[48] 예를 들면 푸틴이 새로 임명한 세르게이 쿠주게토비치 쇼이구(Сергей Кужугетович Шойгу) 현 러시아 국방부 장관도 몽골에 인접한 투바 공화국 출신이며 투바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49] 러시아 민족. 러시아어로는 Русский(민족)와 Россиянин(국적)으로 표현하여 구별한다. 러시아 국적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민족이든 Россиянин인 것이다.[50] 19세기에 노르웨이와의 국경 지역인 콜라 반도로 이주해온 노르웨이인들의 후손들. 노르웨이에서 어업 등의 목적으로 러시아로 이주해오는 수요가 있어서 국경 지역에는 노르웨이어와 러시아어가 섞인 혼합 언어가 만들어질 정도였으나 소련 건국과 2차 세계대전, 또 노르웨이가 석유 발견으로 부국이 됨으로 인해 러시아에 거주하던 노르웨이계 러시아인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소수만 잔존해있다.[51] 소련 시절 아프리카 공산권 국가에서 소련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과 러시아 연방 설립 이후에 러시아로 이민 온 아프리카계 이주민들.[52] 이들은 주로 카잔이나 북캅카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53] 최초의 동슬라브인의 국가는 이 나라이며,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이를 키예프 공국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훗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된다.[54] 관을 열었을 때 시신이 정말 거짓말처럼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엠버밍이 아주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매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인데, 엠버밍을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레닌처럼 지속적으로 화학처리를 해주거나 혹은 무균상태로 보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한다. 즉 성인들의 유해가 썩지 않았다는 것은 과학이나 합리주의로 설명이 되지 않는 기적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수백년(경우에 따라서는 천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어떤 엠버밍이나 무균상태 처리 없이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성인성녀들이 유해가 아주 많다. 심지어 몸의 다른 부분은 부패했는데도 그 성인의 거룩한 행적과 관련된 일부 유해(혀나 심장 등)만 온전히 남아있는 놀라운 일도 있다. 그러나 밑에서도 언급된 바처럼 비밀신자들이 많았으므로 관리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꿔치기 되어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중세에 ~의 뼈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다른 이의 것이었듯이 말이다.[55]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러시아에 가톨릭을 무력으로 전파하려던 튜튼기사단을 작살낸 공으로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는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다.[56] 스탈린의 현실주의적인 면모[57] 구전례파도 둘로 나뉘었는데 따로 성직자단을 꾸린 분파와 아예 성직을 인정하지 않는 분파로 갈렸다.[58] 다른 개최국은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거나 아예 평일로 지낸다.[59] Ahmad(أحمد‎) + 러시아어 여성 성 접미사 ova => Ahmatova[60] 러시아보다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를 주로 약탈했으며, 비옥한 우크라이나 일대를 한 때 거의 무인지대로 만들 정도로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악질적인 노예 상인들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기원한 카자크들의 역사적 숙적이다.[61]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Aginskoe datsan)[62] 이 곳의 수도인 옐리스타(Elista)에 가면 불교 사원과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서 러시아에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칼미크인도 몽골계이다.[63] 다만 개신교 선교사들의 포교는 제한하는 편이다.[64] 인도가 친러 국가인것 때문인지 러시아에서도 인도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2분만에 보는 세계: 러시아편
대륙의 기상을 위시한 중국에 밀려 그 동안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의 기이하고도 대단한 장면들이 인터넷 상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러시아에서는 가 사람을 산책시킨다는 식의 러시아식 유머같은 내용은 기본이다.[65] '한편 러시아에서는(Meanwhile in Russia)'으로 구글링 해보면 그야말로 온갖 기행들을 구경할 수 있다.
주로 폭설 및 추위, 총기를 위시한 각종 무기류, 난폭운전, 싸움, 위험한 장난, , , 미녀아줌마, 경찰군대, 국가원수특정 인물들이 주 희생양이 된다.
물론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고 순순히 믿으면 곤란하다. 가령 러시아 시리즈의 단골소재인 난폭운전의 경우 인터넷상에 러시아 난폭운전 모음집 같은 게 하도 많이 퍼져있어서 진짜로 러시아 도로가 헬게이트인 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한국인들 중에서도 실제로 러시아 전국을 장시간 운전해본 사람들이 늘어가면서[66] 실제 러시아 도로를 경험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보면 러시아의 운전 매너는 유럽과 별다를 바 없고, 보행자 중심에 양보도 한국보다 더 잘 해주고 과속도 힘들다고 한다. 일단 길가에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멈춰선다. 이런 문화가 습관화 되어있어 도심 외곽의 자잘한 도로에는 오히려 횡단보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이들의 기행은 온라인 게임, 특히 1인칭 슈팅 게임 쪽에서 빛을 발하는데, 단순한 트롤링부터 시스템을 교묘히 이용한 고도의 플레이로 전세계 온라인 게이머들에게 악명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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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이건 의자건 일단 쭈그리고 앉는 걸로도 유명하다. 고프닉 콘셉트을 잡고 있는 러시아인 유튜버 보리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쭈그려 앉는 이유는 일행/패거리들과 모여서 수다 겸 맥주나 보드카 흡입. 아파트가 좁고, 나가도 앉을 곳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보니 그냥 아무데나 앉아버리는데 엉덩이도 얼어붙고 옷도 더러워지니 쭈그리고 앉는다고.동아시아 제외하고 아시안 스쿼트 가능한 유일한 민족[67] 여기에 아디다스 츄리닝이 추가되면 더 이상 금상첨화일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이는 고프닉 청년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항목 참조.
여담으로 이렇게 길거리에서 쭈그려앉는 문화는 다른 동부 유럽국가에서도 일상적이다. 터키처럼 좌식생활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라도 서유럽보다 낙후된 환경에 편의시설도 부족해서 서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쭈그려 않는 경우가 많았다.

6. 행정구역





7. 정치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폐기하고 1993년에 제정된 러시아 연방 헌법에 의거해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이원집정부제, 연방제 국가이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2011년 12월부터 2013년까지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2017년에도 잠깐 반정부 시위가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2020년 7월에 하바롭스크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다시 나타났다.

7.1. 외교




7.2. 국력


병력수는 징병제로 90만 명의 상비군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5위) 액티브 국방비 지출은 2020년 기준 8위다.
핵무기 보유량 1위 국가고 # ICBM SLBM 기술 모두 가지고 있으며 #, #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인우주선, 우주도킹#, #도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나라다[68].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상호확증파괴를 유지할 수 있는 대규모 핵무기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러시아가 미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핵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의 유일한 존재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고 말했다.#
군사무기 수출은 2위이다.[69] 특히 AK-47는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모잠비크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반서방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GDP는 11위 정도인데 출처, 다음 GDP IMF 순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로 인한 서방경제제재셰일가스사우디의 증산에 따른 유가 파동 여파가 크다. PPP는 6위다. IMF 투표권 9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보유고 5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AIIB에서 중국인도 다음으로 발언권이 높다. 외환보유고 4위 #

8. 경제



대표적인 자원 부국이자 세계 최대의 산유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이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세계 최대이다. 군사무기 수출과 더불어 오일머니가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이웃국가에 뭔가 심사가 꼬일 때마다 천연가스 동결을 했다.

8.1. 항공산업


[65] 사실 러시아가 아니어도 애완견이 웬만한 중형견(특히 투견이나 경비견) 이상이면 이게 정말로 가능하다는 거다. 그 이유는 사람보다 힘이 세서...[66] 한국에서 카페리가 운행하며 다른 나라들과 도로가 계속 연결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둘 뿐인데 둘 중 중국은 한국의 자기 차를 가지고 가서 운전하기가 중국 현지의 법적인 문제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차로 유럽이나 중동 같은 먼 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가장 쉬우면서 거의 유일한 방법이 강원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67] 보통은 아시안 스쿼트라고 불리지만, 러시안 스쿼트라는 표현도 그에 못지 않게 쓰이며 더 적은 빈도로 슬라브 스쿼트라고도 한다.[68] 세계 최초 우주 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을 배출한 국가다. [69] 1위는 미국. 미국이 주로 서방 선진국 동맹국에 파는 것과 달리 러시아제 무기 수출대상은 인도, 아랍, 아프리카 국가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어 질적으로는 열세다.

Su-47, 2001년 MAKS 에어쇼
러시아는 소련 때부터 군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항공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고[70] , 소련 자체가 위낙에 넓었던데다가 비행기값도 왕창 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수용으로도 수요가 많았다.[71] 비록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많이 밀렸지만, 과거 소련 시절에는 공산권 및 제3세계에 투폴레프, 안토노프, 일류신을 비롯한 여객기 및 수송기를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미그, 수호이, 야코블레프 등 고등전투기를 설계할 만큼 뛰어난 항공산업을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유럽계 항공회사들이 민항기 시장을 완전히 독점하면서 민항기로는 시장성을 많이 잃은 상황이고, 옛 공산권뿐 아니라 러시아 본국조차도 서방 비행기를 점차 많이 사고 있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엔진이나 항공전자 부문의 기술 투자가 전무했기 때문으로, 그 뒤에 나온 러시아의 항공기는 핵심 부품을 서방에 의존하고도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안전성마저 문제시되고 있다. 현재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것은 서방 경쟁기종이 아예 없는 초대형 화물기이고 그나마도 우크라이나 국적의 안토노프 제품이다 보니[72]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는 생산과 판매가 막힌 상태이다. 그나마 항공무기 쪽에서는 Su-47같은 전진익 실험기나 Su-57같은 스텔스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세계 각국에 수출할 만큼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시장 규모가 큰 민수 분야에서는 캐나다나 브라질에도 밀리는 상황이다.[73]
대부분 국가가 국가원수 전용기로 서방제 비행기를 쓰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산 비행기인 IL-96#s-4을 사용한다.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다는 제스처긴 하지만 못 믿을 정도로 부실한 기술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여객기와 수많은 전폭기를 생산해낸 품질로 시장성만 되면 얼마든지 베스트셀러를 뽑아낼 기반은 된다는 뜻.[74]
헬리콥터의 경우 군사핼기는 안정성과 유틸성 등 소프트 스팩과 유지비가[75] 서방제에 비해 떨어지지만, 싼 도입가격과 무식할 정도로 강한 내구도와 내구연한, 극한의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우수한 적응성으로 인해 현재에도 많은 국가에서 산불진압 등 민간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산림청 소방헬기만 봐도 불곰사업때 들어온 기종으로 도배가 될 정도. 또한 냉전 당시에는 헬리콥터를 통한 대규모 전술도 구사했을 만큼 여러기종을 체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 3세계나 민간헬기 분야에선 인기가 높다.

8.2. 우주산업


[70] 특히나 독소 전쟁을 거치며 공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냉전시대에는 미국을 잡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양을 건너야 했기에(또는 대양에서 건너오는 미군을 대양에서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항공산업이 더더욱 발전하게 되었다.[71] 소련의 플래그 캐리어였던 아에로플로트는 1970년대에 연간 승객 1억 명을 돌파한 세계 최대 항공사였다.[72] An-124의 설계와 마케팅은 안토노프가, 제조는 러시아의 아비아스타르가 했다.[73] 군용 항공 기술이 발달한 것과 민수용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은 군용 중대형 수송기를 자체 개발하고도 미쓰비시 스페이스젯에서 한껏 헤매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그나마 러시아는 200석급 중형 여객기까지는 취역시킬 기종이 있지만.[74] 다만 Il-96의 후계기종이 없어 현재 중국 COMAC과의 합작개발을 추진중인 CR929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야말로 어디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75] 소련은 특유의 공산주의 경제시스템때문에 실업을 인정하지 않기때문에 끊임없이 공장을 돌릴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럴려면 절대로 튼튼한 부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따라서 공장을 계속 돌려 내구도가 떨어지는 대신 가격이 싼 부품을 대량 생산해서 부품이 고장나면 수리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그냥 교체하는 마인드였다.이ㅅ런 방식은 현재에도 유효해서 값싼 도입가격에 비해 유지비는 서방제에 비해 1.5배에서 정도 높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을 택해도 어차피 전체 비용은 서방제와 비숫하다. 싸게 구입해서 비싸게 굴리냐,비싸게 구입해서 싸게 굴리냐 선택의 문제일뿐이다.또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산유국이다 보니 마력 높은 엔진을 많이 사용하지만 반대로 기름도 많이 먹는 편.

미르(Мир) 우주정거장, 1998년
소련 시기 미국과 함께 선도적인 우주기술을 보유한 국가였다. 구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우주유영, 우주정거장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우주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었다. 특히 소련 시절 핵전력 보강을 위한 ICBM과 체제 우월 경쟁을 위해 국가적으로 우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구 소련 해체 이후에는 NASA도 부러워하는 소유즈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우주여행 산업을 통해 동서양의 갑부들에게 우주 경험을 시켜주면서 새로운 우주산업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또한 받았다.[76] 갑부들만 터는게 아니라 셔틀 퇴역한 후에는 자기 힘으로 우주인 못 보내는 NASA한테도 소유즈 한 좌석당 수천만불씩 삥뜯고 있다.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은 NASA 우주선보다 소유즈가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인정했을 정도.
참고로 '어지간한' 우주비행사들이라 함은 우주비행사를 제일 많이 뽑는 NASA에서 선발된 미국인들을 말한다. 7인승 셔틀을 굴렸던 NASA의 역사적 특징 때문에 NASA는 셔틀 시대에 우주비행사 한번씩 모집할 때마다 적게는 십수명에서 스무명대, 많게는 서른명 넘게도 뽑아댔는데 그들이 러시아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셔틀보다 소유즈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과거지사로 지금은 우주항공에 있어서도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소련은 미국에게 밀리지 않았다. 우주왕복선 같은 비싼 우주발사체를 운용하고 SDI 같은 미친 짓거리를 하다가 STS-51-L 챌린저 참사 같은 희대의 쇼크를 맛보면서도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소련에 비하면 화수분이었지만 소련도 우주정거장 미르와 우주왕복선 부란을 개발하며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주요 설계국들이 떨어져나가고[77] 경제난으로 재정수입이 크게 줄었으며 따라서 지원도 크게 줄어 월급이 푼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주요 인재들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러시아의 우주산업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즉 80년대에는 밀리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위기가 치명타가 되어 우주 개발이 정체되어 버린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 경제를 회복하면서 우주개발 예산을 급격히 늘렸지만, 그동안 투자한 돈의 단위 자체가 이미 너무 벌어졌다. 2008년 미국이 439억 달러를 우주에 퍼부을 때 러시아는 고작 35억 달러를 투자했을 뿐이다. 2011년에는 65억 달러로 늘어났고 미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420억 달러선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건 마찬가지. 그리고 이런 예산 차이가 구 소련 붕괴 이후 20년이나 계속되었다.
현재 러시아가 우주개발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로켓우주선을 비롯한 발사체 분야고, 인공위성이나 위성 응용 서비스, 이를 보조하는 지상 시설 면에서는 미국에게 상대가 안 된다. 당장 위성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게 미국이다. 예산 규모로 따지자면 사실 러시아의 경쟁상대는 미국보다는 유럽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나마도 로스코스모스는 발사체 분야에서는 ESA보다 우월하지만 위성 분야에서는 밀리는 판이고.[78]
사실 10년 가까이 경제상황이 막장으로 치닫았던 나라에서 소련시절의 항공우주 기술 경쟁력을 바라는것 자체가 무리다. 게다가 비교상대는 미국. 기초과학 강국이란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10년은 실력있는 학자들이 다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79] 게다가 연착륙한 것도 아니고 단숨에 바닥으로 쳐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NASA 우주인들이 소유즈를 타고 ISS에 가는 것도 러시아의 기술이 미국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소유즈가 값싸고 신뢰성 높으며 안전한 우주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반은 1950-60년대 기술이며, 첨단 기술의 우주선은 아니다. 소유즈가 지금까지 쓰이고, 우주왕복선이 결국 퇴역크리를 맞은 것은 까놓고 말해 소련이 망했기 때문이다. 즉 소련 이후 불황을 맞은 러시아는 대규모로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검증된 소유즈를 계속 사용하면서 원가절감을 한 반면, 미국은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80]을 마구 사용하다가, 냉전이 종식되자 러시아와의 경쟁이라는 예산 확보 명분이 사라지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 경제도 어려워지자 줄줄이 프로젝트가 취소당하고, 결과적으로 소유즈식의 1회용 캡슐 우주선인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으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덧붙여 기술 혁신의 가능성 면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뒤쳐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마저도 불안한 게 러시아의 고급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데 항공 우주 분야가 그 중에서도 특히 타격이 크다고 한다.###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인력이 태부족한 실정이니, 침체는 불가피한듯. 러시아의 우주산업 전문가이자 스타트업의 CEO인 파벨 루진은 개혁이 없다면 러시아의 우주 능력 상실은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또 러시아는 우주항공 산업을 상업화하는데 명백히 실패했다. 러시아의 상업 위성 시스템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다. 또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상업 발사체 시장에서 러시아의 점유율은 절반을 넘었으나 2018년 기준 미국의 민간 기업들에 밀려 점유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지구 저궤도 운송 사업을 국가 기관이 주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누가 하냐면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ULA 같은 민영 기업들이다! 보잉록히드 마틴이라는 고인물들이 모여서 만든 ULA는 사실상 기존 NASA의 발사체 기술력 그 자체이고 스페이스X는 특기인 로켓 재활용 기술을 이용해 발사 비용 절감과 위성 발사 수주 물량으로 러시아를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블루 오리진 역시 엔진 기술력에 몰빵하는 개발 방식으로 인해 자사 로켓은 아직 개발되기도 전에 엔진 공급 계약부터 체결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래서 NASA의 주력 분야는 SLS 같은 외우주 탐사 로켓과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이다. 그리고 이제 상기의 스페이스X팰컨 헤비스타십을 통해 외우주 미션까지 NASA의 밥줄을 끊겠다고 나서는 판이라 로스코스모스라는 공공기관이 타국의 민간기업과 모든 영역에서 경쟁해야 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상업화 실패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주산업을 민간에 이양하는데에도 실패했다. 또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메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위치도 아니며 혁신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지도 않다. 소련 이후 러시아의 우주항공 기술의 절대다수는 군사적 응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직까지도 최고급 굴절망원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광학계(렌즈)는 주로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로고진 러시아 연방 우주청장은 2018년 11월 6일에 달표면에 장기 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로보트 아바타의 도움을 받아 달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심각한 정체상황과 더불어 러시아 연방 우주국의 심각한 비리, 횡령도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아가 달이나 화성 탐사용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초대형 로켓발사체 개발을 2028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9. 사회


러시아 문화 자체는 불청객들에게 그렇게 차가운 문화는 아니다. 물론 전쟁 시기에는 서로 모두를 경계하거나 불청객으로부터 집 지키는 게 일이었지만, 1861년까지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내 재산, 내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1861년, 농노해방령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까지 수백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은 인구의 약 91% 정도가 농노 혹은 소작농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개인 재산도 일부 허용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땅이 아닌 주인의 땅에서 농사를 짓기에, 정말 순수한 자신만을 위한 개인 공간은 없었다. 근대에 농노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근대화가 조금씩 진행되어 이러한 경향이 약해져 갔으며 중산층에서도 내 것, 내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후 여러 전쟁과 소련 붕괴 같은 사회가 혼란해지는 사태를 여러번 겪어서 러시아인들이 호전적이고 자신의 안전 침해에 민감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대부분의 타 유럽 지역에서는 이러한 봉건적인 문화가 빠르면 16세기, 늦게는 18세기에 정리되어 상당수의 농민들이 도시로 가 일을 하며 자신들의 공간과 삶을 만들거나, 미지의 타지(他地)로 가서 모험,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가 퍼지기도 했다. 이렇듯 19세기 중반~말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러시아와는 다르게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거쳤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9.1. 치안


러시아 국가경찰과 러시아 국가근위대(구 내무군)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부패가 만연한 러시아의 특성상 국민의 신뢰는 낮다. 다만 이런 부패는 대부분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거주지 불명 같은 경범죄 처리에 해당하며, 강력한 집권자가 존재하는 국가답게 중범죄 처리는 엄격하다.
러시아 레드 마피아는 그 세력이 강하기로 유명한데, 택시를 타도 마피아 계열의 택시를 타면 강도로부터 안전하고, 의뢰받은 일은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완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만 정부의 단속으로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그래도 여전히 마피아의 암약은 상당한 수준이다.
살인발생 수 통계를 보면 러시아의 살인범죄 발생 수는 1987년에는 소련 10만명당 6명, 러시아 SFSR은 6.4명으로 1987년 10만명당 8.3명이었던 미국보다 낮았다. 소련 붕괴 이후로 3배 이상 급증하여 2001년 33,600건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고 살인건수도 10만명당 20명 이상을 찍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2000년대 이후 치안이 크게 개선되어 2018년에는 7,067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약 4분의 1로 줄어든 수치이나 여전히 대한민국의 6배 정도 되는 높은 살인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에는 소련 시절보다 살인률이 낮아졌고 2018년에는 10만명당 5.2명으로 살인율이 급감해서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감소했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는 뉴욕 살인율의 절반 수준이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치안 지수는 85.69로 세계 1위이다. 반면에 같은 조사에서 러시아의 치안 지수는 52.69로 세계 68위다. 이 정도면 인도네시아(67위), 요르단(66위) 보다 낮은 순위이며 동유럽권 국가 중에서도 세르비아(58위), 불가리아(48위) 등 보다 낮은 순위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러시아가 110개 국가 중 뒤에서 46위의 치안지수로 미국과 비슷한 치안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개도국 수준의 치안상태가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문제는 앞에 있는 나라에 이라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와있는 crime index 가지고 러시아가 그만큼 안전하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관광객들이 접할 수 있는 범죄로는 관광지, 지하철역, 열차 등에서 소매치기가 있으며, 특히 4월 20일 히틀러 생일부터 5월 9일 승전기념일 사이에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
러시아 스킨헤드는 피부가 보일 정도로 머리를 짧게 밀고 검은색 옷을 입거나 아니면 웃통을 아예 벗고 다닌다는 인식과 다르게 요새는 평범한 옷차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7년에는 가정 폭력에 대해 처벌을 대폭 낮추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서부 러시아에 비하여 이르쿠츠크나 블라디보스토크 등의 동부 러시아는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어두컴컴해지기 전에는 뒷골목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반 여행객 처지에서는 나름 치안이 괜찮은데, 여름에 가면 백야 현상 때문에 하루종일 어두컴컴해지지 않는다.

9.1.1. 과거의 치안


소련에서는 암시장이 전국적으로 크게 성행했다. 그냥 조직 한 두개가 여는 그런 소규모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도시의 주민들이나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닐 일이 많던 러시아 선원들이 부업으로 콜라, 플레이보이 잡지, 말보로 담배, 재즈 음반 등등 적성국가들의 것이니 당연히 금수(禁輸) 품목이던 미국, 서유럽, 일제 물품들을 들여와 몰래 비싸게 팔아서 재미본 것이었지만 연방의 붕괴가 진행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단순히 소박한 수준의 서방 물품 유통용 암시장은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전직 소련군의 제대 군인들, 순식간에 러시아 내에서 불법체류자가 된 많은 타 공화국들의 노동자들, 한 순간의 충동으로 아파트고 차고 다 잃어버려 새로 생긴 극빈층들,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전직 KGB의 첩보 요원들 등등으로 구성된 수 없이 많은 마피아들에 의해 시장이 잠식되었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약해질 대로 약해진 중앙정부는 제대로 통제 시도도 못했기에 결국 각 도시들은 여러 범죄 그룹에 의해 나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들 간의 세력갈등이 너무 심해서 공사장이나 상점 한 번 잘못 들어갔다가 총알세례로 벌집이 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곤 했다. 사유지가 아니라 공사장이나 상점 등의 '개인' 명의로 된 공공장소에서 실제 일어나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경찰들은 당시 이런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못본 척 했는데, 경찰 몇 명이 가서 통제를 해보려고 해도 상대는 재량에 따라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등 타 공화국들에서나 자국에서 밀수입한 '군사용' 돌격소총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영화 로드 오브 워에 나오는 것처럼 소련 붕괴 이후 대량의 무기가 주인을 잃거나 애매해져서 무기상들에게 넘어갔고, 실제로 엄청난 양의 무기들이 팔려나갔다. 반면에 경찰들의 무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정부 치안 유지 기구들은 급격한 민주화로 인해 권한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경찰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이 마피아들에게 '매수'되어 있었다. 당시는 블랙박스나 CCTV 등의 기록장치들이 선진국들에서도 흔하지 않던 시대였는데 러시아 같이 한순간에 헬게이트가 열린 나라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포상이나 사후 보상은 커녕 월급이나 제대로 챙겨줄지도 의문인데 시민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느니 그냥 안전하게 갈길 가거나 위험하긴 해도 자기들의 밥줄과 생존을 보장해 주기는 하는 마피아들과 붙는 게 그들의 마인드였던 셈. 이렇게도 중앙정부가 무능한 상황에서 통제를 하려고 해도 통제가 안 되니 사유지, 사유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상 그냥 신경을 껐다는 것이 온당한 표현일 것이다.
1990~2000년대 초반 상황을 다룬 러시아의 여러 매체들을 보면, 총기, 도검류 등의 살상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인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같이 범죄 조직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인구 밀도도 높은 도시들의 빈민가나, 러시아 마피아들이 세를 날리던 곳의 주민들 중의 상당수는 총기류를 보유하고 있었다. 보통은 가벼운 경무장이었지만, 소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RPG같은 대전차 화기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무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집안에 있을 때는 대담히 전시, 혹은 소지하고 있었다. '내 집엔 이런 게 있으니, 너 나 잘못 건들면 개발살난다' 라는 일종의 위력과시가 주목적이었겠지만 강도나 도둑들이 들어왔을 때 진짜 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당연히 경찰이 출동해서 조사하고 총기를 압수해 가고 법원에 회부한다. 사실 의외라고 한다면 러시아는 사냥용 이외의 총기 소지가 불법이며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보다 총기소지법이 빡빡한 편이다. 예를 들어 사냥용 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산탄총이나 공기총 등의 무기를 5년간 무사고로 소유해야만 겨우 허가가 나는 수준.

9.2. 사회 문제



9.2.1. 부정부패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심각한 국가들 중 하나이다. 그만큼 부정부패는 러시아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점이자 치부로 꼽힌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 인식 지수에서도 2017년 기준 180개국 중 135위를 차지하면서 하위권을 기록했다. 러시아가 그 많은 자원과 상당한 인구수, 과학기술과 잠재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 수준의 중진국에 머무르면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러시아에서는 뇌물을 당연한 듯이 여긴다.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관공서나 은행을 방문할 때 초콜릿 같은 선물을 준비하면 더 빨리 처리해 준다던가 더 친절(?)해진다. 러시아 내무부의 세르게이 솔로포프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오고 간 평균 뇌물 액수는 1인당 6만 루블 정도라고 했는데, 러시아 평균 월급이 2012년 7월 2만 8천 루블이다. ‘러시아에 여행을 갈 땐 (뇌물로 줄) 담배와 스타킹을 챙겨라’는 말이 있을 정도.
특히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뇌물을 요구하거나 받는 것은 약과고 아예 공금횡령 등도 흔하게 일어난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2012년 4만 5,000건의 부패 관련 범죄를 적발해 8,000명의 공무원을 기소했으나 하급 공무원이 아닌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손쓸 도리가 없다고 한다. 고위 공무원들은 월급이 수백 달러에 불과한데도 고급 주택과 승용차,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와 가족들은 명품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외국 여행과 유학까지 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지금은 물러난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었으나 오랜시간 동안 시장직에 무사히 있었다. 이 정도면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러시아 내에서도 국가를 좀먹고 있는 큰 적이 부정부패라고 항상 지적한다.
'가이'[81]라고 불렸던(ДПС의 전신) 러시아 교통경찰도 부정부패로 유명하다. 뇌물 받고 경찰차를 택시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이는 교통경찰 뿐만 아니라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외국인이면 좋은 타깃이 되는데, 온갖 트집을 잡아 돈을 받아내려고 한다. 돈 주기를 거부하면 결국 경찰서까지 동행해서 해당 국가 대사관의 외교관이 와서 해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거기서 썩혀야 하니 외국인으로서는 보통 짜증나는게 아니라서 결국 돈을 줄 수 밖에 없다. 외국인한테 이러니 자국민한테 저지르는 짓은 더 심하다. 러시아인들도 경찰들의 뇌물 요구라면 치를 떨 정도.
군대도 예외가 아니라서 군 간부들이 공무원들처럼 예산을 빼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뇌물을 받거나 뇌물 바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일이 흔하다. 군 간부들의 월급은 고위 공무원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수준이지만 고급 주택, 승용차를 소유한 사람이 많고, 군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쳐 멀쩡한데 징병에서 면제되거나 군 생활을 하더라도 보다 편한 보직을 받는게 흔하다. 또한 러시아군은 국가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가져감에도 군 예산의 20%가 부정부패로 날아간다고 한다. 2012년까지 국방부 장관이었던 아나톨리 세르듀코프도 정작 자신은 방산비리 척결을 그렇게 외쳤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뇌물을 받았고 국방부 소속 토지를 자기 멋대로 팔아먹는 등 거액의 횡령을 저질러 철창 신세를 지게 생겼다. 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는 격노하여 그의 행동을 사보타주라고 비난할 정도. 러시아 정부에선 군 내의 비리를 단속하지만 러시아군 간부들의 급여가 물가에 비하면 낮아서 뇌물을 당연시 여기는게 아예 뿌리가 박힌터라 단속에도 군의 비리는 개선이 안 된다.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 존 버렐에 의하면 크렘린 밑에는 시장과 주지사가 뇌물을 주고 FSB와 경찰은 자국의 사업가들에게 보호비를 받아내며 레드 마피아모스크바 시 당국이나 경찰, 정보기관, 검찰에게 뇌물을 바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며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1년에 3,000억 달러 가량의 뇌물이 거래된다고 한다. 외국인 사업가들도 러시아에서 사업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공무원들의 뇌물 요구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러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사업을 하기 힘들 정도다. 스웨덴의 유명한 가구 기업 이케아도 러시아에서 사업하다 공무원들의 계속된 뇌물 요구에 짜증나서 2009년에 철수했다.
이케아가 뇌물 안 주었을 때 당한 불이익의 예로 모스크바 교외에 가게를 내서 오픈 기념식을 하려는데 소방당국이 안전을 이유로 기념식을 금지시켰다. 사업할 때도 전기료를 빠짐없이 냈는데 공공전력회사가(한국으로 치면 한국전력 같은 기관) 갑자기 전기를 끊고는 말로만 복구시켜 주겠다 하고선 해주지 않아 촛불과 손전등을 켜고 사업해야 했다. 이외에도 사소한 잘못으로 고액의 벌금 폭탄을 먹는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다 보니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뇌물을 주지 않을 경우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을 괴롭혀서 뇌물을 바치게 만든다.
러시아의 행정은 비효율적이기로 유명한데, 가게 하나 내려고 하면 무려 140개나 되는 공무원의 확인 날인이 필요하다. 이게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대략 6개월에서 1년이나 걸린다. 특히 공무원에게 밉보이면 아예 허가조차 내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업가 처지에선 보통 속터지는게 아니라서 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받으려면 뇌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러시아 공무원들의 서비스 수준은 세계 최악을 자랑한다. 불친절한데다 민원인을 대상으로 한 갑질은 물론이고 뇌물 안 주면 제대로 된 민원처리를 안 해 준다. 해주더라도 느려터지게 해 주니 민원인은 혈압이 오를대로 오른다.
러시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하고 경직된 태도와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현지인들도 치를 떨며, 러시아인들의 언어 생활에서 줄곧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러시아어에서는 정부 기관, 조직, 요인 이름을 약어로 적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이걸 비틀어서 정치 세태를 풍자한다.[82] 다 적기에는 너무 많고 일부만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ГИБДД: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инспекция безопасности дорожного движения (국가 도로 교통 안전국) → Господа, инспектор беден — дайте денег (여러분, 검문 경찰은 가난하니 돈을 줍시다)
  • ДПС: Дорожно-патрульная служба(도로 순찰대)[83]Дайте, пожалуйста, сто (100(루블)만 줍쇼)
  • ППС: Патрульно-постовая служба(순찰대) → Покупаем, продаём совесть (양심을 사고 팔자)
  • КГБ: Комитет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국가 보안 위원회) → Как грабить банк (어떻게 은행을 강탈할까)[84]
  • ФСБ: Федеральная служба безопасности (연방 보안국) → Фантастически сумасшедшее бюро (환상적으로 미친 부서)
  • КПСС: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소련공산당) → Клуб пенсионеров, стариков и сумашедших (연금생활자, 노인네 그리고 미친 사람들의 모임)
  • МВД: Министерство внутренних дел(내무부) → Мало важных дел (중요한 일은 딱히 없다)
  • ЗАГС: Запись актов гражданского состояния (호적등록과) → Зверски адская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служба (지독하도록 지옥같은 국가 기관)[85]
  • РСФСР: Российская Совет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 Разная сволочь фактически слопала Россию (이런저런 개자식들이 러시아를 해쳐먹었다)
  • СССР: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 Строили, строили, строили - рухнуло (건설에 건설을 거듭하여 붕괴하다)
  • ГОРБАЧЕВ(고르바초프) → Готов обогнать Рейгана, Брежнева, Андропова, Черненко, если выживу (살아남는다면 레이건,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를 능가할 자신이 있다)[86]
파일:external/resource.24tsag.mn/6nmcmteq6limbshjv2hh0isasu.jpg[87]
2014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실 부패 척결의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소련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질적 문제이고 고위층의 부패는 전혀 손쓸 도리가 없어서 언제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그러다보니 러시아 내에서도 기대를 안 한다. 결국 푸틴의 선포는 효과가 없었고 2016년 1월에 다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저 선언대로 될지가 미지수다. 푸틴 본인부터가 도둑정치로는 수하르토에 비교되는 인물인지라.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이전에도 불경기와 계속된 물가상승, 실업난,[88] 부유층이 국가 전체 부(富)의 "'75%'"를 쥘 정도의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89] 빈약한 복지로[90][91] 알고 보면 국민의 생활은 서방보다 훨씬 어렵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오일머니로 성장하는 와중에도 이랬다. 오일머니로 인한 부는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부유층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보아 러시아 국민의 삶의 질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었다. 특히 러시아 공무원들과 일반인들이 받는 월급은 갈수록 오르고 있는 물가에 비하면 턱없이 낮기만 한데, 러시아 직장인의 94%가 연소득이 1만 달러 미만이다. 미국은 연소득 1만 달러 미만인 직장인이 30%인데 이 정도면 미국의 3배가 넘어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뇌물을 가외소득으로 여기게 되니 국가에서 아무리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고 행동으로 옮겨도 근절이 안 된다.
푸틴의 부정부패 타도를 비웃듯 2016년에도 비리사건들이 뻥뻥 터졌다. 9월에 러시아군의 고위급 간부인 드미트리 자하르첸코 대령이 80억 루블(한화 약 1370억원)을 축재한게 들통나 부정부패의 영웅이라는 비난까지 받았고, 심지어 푸틴의 측근인 경제개발부(한국으로 치면 재정경제부)의 수장인 울류카예프 장관이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로부터 한화 23억원대의 뇌물을 받은게 들켜 푸틴과 러시아 정치권에 충격을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 반부패 수사를 담당하는 GAESC의 에너지산업부 부부장 드미트리 자칼첸코의 자택에서 약 220만달러(24억4706만원)에 이르는 돈다발이 발견되어 반부패 수사기관 수장이 부정축재한 것이 들키고 말았다. 이거 보면 부정부패 타도하려면 한참 멀은듯. 서방 언론들과 미국 국가기관들은 부정부패 근절하겠다는 푸틴부터가 400억 달러의 자산가이며 재산을 어떻게 쌓은지를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어[92] 부정축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추정치에 따라 세계 부자랭킹 1, 2위인 제프 베조스빌 게이츠에 맞먹는다는 주장도 있다.#
노멘클라투라, 올리가르히 문서도 참고.

9.2.2. 인종차별


러시아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영향으로 인해 서방에 비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일찍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르면, 자본가들은 민족(nation) 개념을 통해 노동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실제로는 자본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민족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노동자들을 값싸게 징병 등으로 동원하려는 수단이다. 따라서 민족이란 개념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요소로 소련은 전체 국민 중 러시아계가 51%, 비러시아계가 49%를 차지했기 때문에 미국 등과 별다를 바 없는 다민족 국가였고, 그런 사정 탓에 "특정 민족"을 내세울 수 없었다. 민족으로 찢어지기 시작하면 냉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처럼 국가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에서 '저 타타르 X놈'이라고 욕하는 등의 중앙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주의는 만연했지만 공적인 표현은 사회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테리 마틴, 쉴라 피츠패트릭 등의 연구가 말해 주듯 오히려 일부 소수 민족을 전문직이나 고위직에 올려 놓아 현대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 비슷한 걸 선례로 남긴 적이 있다. 사실 소련은 국부 포지션 인물이자 소련 전국에 동상을 세우고 존경했던 블라디미르 레닌부터가 주류 슬라브계와 전혀 연관이 없는 튀르크, 몽골, 유대인 혼혈 소수민족 출신이며, 레닌 말고도 고위 정치인들 중 비러시아계 소수민족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93] 어떻게 보면 저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으로 바뀐 지금도 세르게이 쇼이구 등 비러시아계 소수민족 출신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소련에서는 정치적 차원에서 일본과 너무 가깝다던지 파시스트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든지, 이런 식의 정치적 이유로의 민족 박해는 계속 되었고, 이 와중에 볼가 독일인, 크림 타타르인, 체르카시인, 조지아에 있는 마슈케트 지방의 터키인, 벨라루스의 폴란드인, 콜라 반도의 노르웨이인 등 수많은 뿌리 깊은 민족 공동체들이 사라졌다. 러시아인들도 스탈린이 군수산업이 우랄산맥으로 이전되면서 강제이주를 당했고,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의 인민들은 퇴각 금지령을 받았기에 언급된 도시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피부색을 따지는 인종주의보다는 소련의 스탈린주의의 독재전체주의로 인한 인권 탄압에 가깝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뻔할 때는 '어머니 조국'을 강조하며 러시아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사용하긴 했으나, 러시아 우월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2~3천만명의 인민이 희생된 마당에 러시아계와 비러시아계를 구분은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금지됐지만, 전선의 상황상 사치 그 자체였고 수많은 동양계들도 소련군에 징집되어 전선에서 싸웠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록 사진에서 동양계 병사들이 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보이고, 특히 전차의 경우 T-34의 특성상 내부가 비좁아 체구가 작은 동양계가 선호되었다고 한다.
소련의 혁명영웅 중에서도 블라디미르 레닌(칼미크-유대-러시아 혼혈) 트로츠키(유대인), 스탈린(조지아인), 미코얀(아르메니아인) 등 비슬라브인들이 한가득이며. 사회주의노력영웅 훈장을 수여받은 김병화와 음악가 빅토르 초이고려인이었고[94], 푸틴의 후임 러시아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는 세르게이 쇼이구도 동양인 혼혈이다(투바 출신). 러시아에서 국민적 위인으로 존경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아예 흑인 혼혈이다[95].
단 동양인계와 달리 소련 사회에서 보기가 드물었던 흑인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시선이 없지 않았고, 현 러시아에서도 없다고 보긴 힘들다. 사실 러시아 소수민족 중에 동양인은 많고 흑인은 거의 없기 때문에 러시아에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있고 사회분위기상 금기시하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좀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실 러시아가 그나마 동양인, 중앙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에 좀 더 민감한 것은 당연한 것이 과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식민지배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흑인과의 인종문제가 주 이슈인 것처럼 러시아 역시 동양계(시베리아) 소수민족, 중앙아시아 민족문제가 주 이슈인 것이다.

어렸을 때 공식적으로 소련에서는 인종주의가 없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련 내에서의 인종주의를 굉장히 심각하게 느낀 경험이 있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남자친구가 에티오피아 출신이었는데 이 친구랑 길거리를 다니면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지만 너무 당황해서 못했다.

이리나 말렌코(노동운동가)

친소적인 인물의 발언이니만큼 신빙성이 높은 증언이다.
아무튼 인종주의, 민족주의, 파시즘을 앞세운 나치 독일에게 나라가 멸망당할 뻔 했으니 상대적으로 당시의 서유럽에 비하여 소련 시절에는 차별의 의미로서 민족, 인종의 개념이 희박했고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극복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극심해진 빈부격차 등 때문에 무개념적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시장이 개방되면서 값싼 노동력이 유입되자[96]백인 하층민들이 백인우월주의자로 변했다. 이들은 모순적이게도 슬라브인들을 노예화 하려했던 아돌프 히틀러를 찬양하고 다녔으며 히틀러가 태어나고 또 죽었던 4월경에 특히 극성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 90년대 치안이 막장이던 옐친 정권 때는 적지 않읏 외국인들이 습격을 받았었는데, 러시아의 언론에선 "조상의 뼈 위에서 춤추는 패륜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주요 타깃은 러시아에서 천덕꾸러기라고 불리는 캅카스인과 러시아 극동으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중국인들이다. 이들은 슬라브 애국주의를 열심히 외쳐대기에 저들과는 별 상관없는 한국인, 일본인도 종종 중국인으로 오인당해 인종범죄 피해자가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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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이후 이 문제가 심하던 2000년대까지 한국인 유학생 역시 12명이나 아무 이유 없이 살해당했고 고려인 가라데 챔피언 야코브 칸은흉기 린치로 사망한 적도 있다. 다른 외국인들도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초기에는 전임이 말아먹은 러시아의 행정 시스템을 재정비하느라 이들 집단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으나, 집권 중반기부터 푸틴이 직접 나서서 연설을 통해 이들의 문제를 거론하고 색출할 것을 직접 지시하였고 그 수가 거의 절멸에 가까울 정도로 사라졌다.
시베리아라고 흔히 부르는 동부 지역에는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서의 동양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의 경우 동양계 민족의 비중이 과반을 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 타인종에 대한 범죄는 사실 자국민이나 타국 백인에 대한 범죄도 꽤 있는 편인데, 러시아판 차브족인 고프닉들, 그러니까 동네 양아치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 "야, 저 놈 맘에 안든다. 조지고 털어버리자."했는데 피해자가 외국인이었다 라는 식이다. 골 때리는건 이놈들이 꼴통들이라 아무한테나 달려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체격이 192cm, 134kg에 달하는 유명 레슬링 선수 알렉산드르 카렐린#s-3.2에게 청소년 2명이 린치할려다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카렐린에게 하루종일 벌받은 사건도 있었을 정도. 이들 외에도 잉구시, 체첸, 다게스탄 등 북카프카스 지방 출신 사람들은 내전의 여파가 가신 지 얼마 안 되어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고 강력범죄 비율이 높다. 가끔 비러시아인들도 휘말린다.[97]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들어서는 레드 마피아스킨헤드들에 대한 사냥에 가까운 단속과 진압 작업이 강화되었고 특히나 푸틴의 지지 기반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스킨헤드들은 레드 마피아와 함께 러시아 FSB 내무부의 집중적인 단속대상이 되어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우범 지역을 찾아가거나 정말 재수가 없는게 아닌 이상 마주칠 일은 드물다.
푸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 주요 인사들을 보면 소수민족 출신이 많은데, 국방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는 투바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아르메니아계, 엘비라 나비울리나 연방 중앙은행 총재는 타타르계, 국영 기업 가즈프롬의 회장 알렉세이 밀레르와 게르만 그레프 전 재무장관은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내각의 장관과 관료들뿐 아니라 러시아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황인이 적지 않다. 이린체이 마트하노프 의원(부랴티아계), 페도트 투무소프 의원(사하계), 세르게이 텐 의원(고려인) 이리나 하카마다 전 의원(일본계 러시아인)등.
공중파 뉴스 앵커만 봐도 소수민족이 상당히 많은데, 국영방송 로시야 1에는 에르네스트 마츠캬비추스(리투아니아계)가 현재 메인 뉴스인 베스티의 앵커로 있으며, 이전에는 마리나 김 (고려인)앵커도 있었다. 또한 러시아 채널1에는 이라다 제이날로바(아제르바이잔계), 옐레나 빈니크(독일계), НТВ에는 라마스 치아우렐리(조지아계), 릴리야 길데예바(타타르계) 등이 있다. 실제로 러시아 방송국들에서는 소수 민족에 대한 우대가 있다고 한다.
2018년 6월 13일에 러시아 공산당소속의 타마라 플레트뇨바 의원이 고보리트 모스크바에 출연하면서 월드컵 기간에는 유색인종과 성관계를 하면 안된다는 발언을 하면서 인종차별논란을 빚고 있다.조선일보 , 중앙일보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예전에 소련 올림픽 기간에 같은 백인종이 아닌 남성과 성관계를 하고 미혼모가 된 경우 나중에 그 자녀가 인종차별 당하는 게 현실이라는 걸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UFC 헤비급 파이터 데릭 루이스도 러시아 국적의 알렉산더 볼코프가 대결을 원한다고하니까 "흑인이 모스크바에 간다고?"라며 러시아의 인종차별을 비꼬는 발언과 함께 미국에서 경기하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2018년 10월 10일(현지시간)에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알렉산드르 코코린과 파벨 마마예프가 고려인 공무원을 폭행하고 중국인이라고 비하하자 러시아에서는 두 선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고 푸틴 대통령도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록 한 시즌을 날려 보내긴 했으나 가석방되었고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코코린은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스킨헤드에 대해 한국사람들은 이들이 제대로 된 조직 없이 동네 양아치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 스킨헤드가 정부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왔다. 또한 스킨헤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법부가 이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에 대해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러시아 정부가 이들에 대한 처벌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들이 2004년 타지키스탄 출신의 10대 소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 스킨헤드는 가급적 여자는 범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도 허상에 가깝다. 한 기자는 스킨헤드를 취재하던 중 이들이 심지어 모스크바의 한 경찰특수부대 건물에서 부대원이 직접 스킨헤드를 훈련하는 현장도 고발했다. [98]
스킨헤드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특정 사상을 갖고 행동하는 경우도 많으며, 무정부주의적인 테러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정부를 상대로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당연히 정부를 겨냥했기 때문에 이때는 처벌이 강하게 이루어지긴 하지만.

9.2.3. 성문화


동북아시아 국가들보다 여자들이 사회진출을 더 많이 하므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 남자들이 워낙 많이 죽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같으면 남자들이 주로 하는 직종에서도 여자들이 대신 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회현상이자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도 이때는 복지혜택으로 그나마 보상을 받을수있었지만 러시아가 막장이던 1990년대에는 경제난과 함께 직장인들이 돈벌이에 더욱 매달려야했기 때문에 여성직장인들의 지위가 추락한 암울한 시절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로도 러시아는 정교회 근본주의가 상당하기 때문에 여성과 아동을 향한 가정폭력이 만연한데도(#) 오히려 가정폭력 처벌을 완화할 정도이다. 여성인권은 차라리 같은 서양국가인 유럽, 북미도 아니고 동북아시아가 더 낫다고 볼 수 있는 면이 적지 않다.
19세기 대가들이 쓴 소설을 보면 이미 그 당시부터 공산화 이전 러시아 성문화는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지금은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본토보다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개방적이다.
연인 사이에서 연애 진도는 유교 문화권 국가들보다 빠른 편이고 성적인 주제를 대하는 태도도 서유럽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다.

9.2.4. 동성애 증오


[76] 2001~2009년 동안 7명의 사람을 우주로 보냈으며 현재는 진행하지 않는다.[77] 예를 들어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에 소속된 하르트론 설계국 등.[78] 대신 발사체 부문에서 큰 재미를 못 보는 ESA와 짝짜꿍하여 합작 프로젝트를 자주 진행한다. 2016년 발사된 엑소마스 화성 탐사선이 대표적. 의외라면 의외겠지만 ESA는 21세기 들어서는 미국이 안보 핑계를 대며 ESA에게 츤츤거리기 때문에 자신들과의 협력에서 좀 더 절실하게 다가서는 로스코스모스와 더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일례로 ISS에서 쓰인 유럽 화물선 ATV는 미국도 아닌 러시아 모듈에 도킹했고 러시아도 자기네 보조할 새 로봇팔을 구한다고 ESA에게 손을 내밀었다![79] 골때리는 부분이, 학자 뿐만 아니라 회사도 빠져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러시아의 항공우주 기술을 키운 설계국 중 일부가 소련 해체와 함께 다른 나라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르를 만든 하르트론 설계국으로, 얘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하르코프에 위치한 회사다. 당연히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미르 운영에서 초비상이 걸렸고 그 때문에 미국 NASA에 손을 내밀었다.[80] 우주왕복선급의 수송능력을 가진 발사체는 NASA 한정으로 개발 중인 물건만도 2020년대 SLS 블록 II 뿐이다. 스페이스X까지 확대하면 BFR 같은 플랜까지 추가된다. 즉,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반세기에 달하는 시대를 앞서간 물건이었다. 그래서 소련도 부란을 개발한 것이다.[81] ГАИ/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Автомобильная Инспекция[82] 예를 들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은 ВВП로 줄여 표기한다. 이걸‘Возможно, вы правы’(어쩌면 당신이 옳을지도)와 같은 단어로 바꿔서 독단적 국정 운영을 풍자하는 것이다.[83] 마주칠 일이 많아서 그런지 특히 악명이 높다. 도로 순찰대가 되어 움직이는 러시아의 한 모바일 게임에선 교통법 위반자를 잡았을 때 그냥 잡거나 뇌물을 받고 봐주는 2가지의 선택지가 있다.[84] 은행을 상대로 한 뇌물요구가 많은 것으로 악명높다.[85] 예식장과 주민센터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민원인들에게 뇌물 요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악평이 자자하다.[86] 고르바초프 시절부터 부정부패가 극심했고, 고르바초프도 부정부패 의혹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87] 앞은 개혁, 뒤는 부패.[88] 러시아에서는 정부가 실업률을 축소해서 발표하기에 실제 러시아 실업률은 정부에서 발표한 수치의 몇 배로 본다.[89] 빈부격차하면 흔히 생각하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해도 높다. 미국과 칠레가 50%, 멕시코가 40% 수준이다.[90] 러시아의 연금은 물가에 비하면 너무나 낮아서 연금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서 따로 일을 해야만 하니 현직에 있을 때 돈 안 모으면 노후는 매우 암울하다.[91] 사실 공공요금은 소련 시절의 유산이 남아서 많이 낮은 편인지라 월급만 제대로 받으면 그럭저럭 살만하기는 하다. 단지 임금수준이 낮을뿐이지, 이것도 옐친 때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소련붕괴 과정에서 사라진 복지혜택이 적지 않아 주택무상공급같은 정책은 사라진지 오래인데다가 러시아의 금리가 10%대로 높기 때문에 개인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적지가 않다.[92] 그것도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부를 쌓은 것이다.[93] 독일계 유대인 혈통에 우크라이나 태생인 레프 트로츠키, 조지아 태생인 이오시프 스탈린, 우크라이나 출신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그나마 니키타 흐루쇼프가 러시아 출생이지만 유소년기에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으면 거기서 성장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우크라이나계로 간주되었다.[94] 김병화는 고려인 1세, 초이는 고려인 3세. 다만 김병화와 달리 초이는 한국인 정체성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 지인들의 증언.[95] 조부가 흑인이었다. 푸시킨 본인은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96] 소련 붕괴 이전에는 다 같은 나라였고, 국가별로 경제력의 차이가 아주 크지 않았지만, 소련 붕괴 이후로 국가별로 경제적 차이가 너무 커져서 캅카스, 중앙아시아 국가 쪽에서 돈을 벌려고 어쩔수 없이 러시아로 일하러 들어갈려는 사람이 많다.[97] 한국에는 체첸 강도단이 블라디보스톡까지 도주 후 중국인들을 강도살해 후 진압팀에게 저항하다 사살당한 사건이 레드마피아 소탕으로 왜곡되어 어느정도 알려져있다. 자세한건 알파 그룹 참조.[98] 김태연(2013) "러시아 스킨헤드의 발생과 그 폭력의 활성화'' 중소연구 37권3호:301-350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 반(反)LGBT 러시아인들
러시아는 현재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속하는 강대국 중 유일하게 국가적으로 LGBT 반대를 견지하고 법제화까지 한 호모포비아 성향이 강한 국가다. 2013년 정의 러시아당 옐레나 미줄리나(Елена Мизулина) 의원이 발의하여 두마를 통과하고 시행된 '동성애 선전 금지법(Законодательные запреты пропаганды гомосексуализма в России)'이 그 중심.[99] 이란과 사우디, 예멘과 같은 중동의 강성 이슬람 국가처럼 극성적으로 종교적인 국가에서 애널섹스를 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등[100] 반동성애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나라는 있지만, 적어도 전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대국 중 이렇게까지 철저히 반 LGBT를 견지하고 법제화까지 하는 나라도 드물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동성애에 부정적이던 정교회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를 멸시하고 탄압하는 문화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던 중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에 들어선 소련은 정교회의 영향력을 뿌리뽑기 위해 동성애를 허용하였다. 당시 블라디미르 레닌은 인민의 평등을 실천하면서 계급철폐, 성별차별 철폐, 그리고 성적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동성애를 인정했다.출처[101]
그러나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잡으면서 소련 초기의 사회개혁적 분위기는 차츰 경직되었고 동성애 성향에 대해서도 조금씩 탄압을 가하다가 1934년부터는 동성애를 처벌하기 시작했다. 결국 스탈린의 독재 중반을 넘으면서 소련 사회 전반에 걸쳐 동성애는 철저히 금기시되었고 소련이 세계 공산권의 맹주가 되면서 다른 공산권으로도 반 동성애 이념이 퍼졌다.
그러다 소련 붕괴 이후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생긴 이념의 공백을 틈타, 정부는 소련 시절에 탄압을 받던 정교회를 다시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러시아는 사회적으로 정교회에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한 예로, 2002년 러시아 교육부에서 정규과목에 '정교문화'를 필수 과목으로 도입하고 2007년 종교교육기관들에게 국가인증 졸업장을 발급하는 등 정교회를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102]
기독교는 계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성경 레위기에서 동성애 반대를 교리적으로 명시하고 있기에, 정교회의 영향력이 커지며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는 더 짙어지게 되었다. 결국 2013년 반동성애 프로파간다법이 제정되면서 러시아 내 성소수자들은 사실상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반동성애 프로파간다법을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럽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103]
이에 갖가지 국제행사에서 '호모포빅 러시아', '동성애자들에게는 지옥같은 나라'라는 낙인이 찍히며 보이콧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등을 보이콧한 사례가 그 예이다. 정작 유럽, 미주와 교류하거나 해외에서 근무하고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음에도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가 호모포비아 국가로 낙인 찍혀서 이에 대한 비난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신세다. 또한 러시아인들 역시 호모포비아와는 별개로 "우리나라의 내정 관련 법에 외국이 뭘 그리 야단법석이냐"고 비판하다가 호모포비아로 낙인찍히는 등의 곤란을 겪고 있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성애고 뭐고 아예 관심 없는 러시아인들조차도 서방을 비롯한 외국에서 동성애 금지법을 논하는 걸 내정간섭으로 여기고 아니꼬운 시선을 갖고 있는 편이라는 점이 문제다. 또한 반동성애 성향이 딱히 정치성향에 좌우되는 것만도 아니라서, 그 사민주의를 내세운다는 정의 러시아당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편이다. 막심 마르친케비치같은 네오나치들도 불법적으로 성매매를 하려는 동성애자들을 심각한 린치하고 영상을 찍어 유튜브나 동영상 사이트에 게시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넷상에서는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적, 종교적 세력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트랜스젠더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비록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고, 성별 정정도 해주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차별이 많기 일쑤이고, 트랜스젠더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에 운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운전면허 발급을 금지한 일이 국제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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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일에는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인 키릴 칼루긴(Кирилл Калугин)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공수군의 날 기념행사에 맞춰 도발적인 시위를 했는데, 근처에 있던 공수부대원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LGBT 선전은 범죄'라면서 인권운동가를 폭행한 공수부대와 '공평'하게 연행해갔다.
러시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존재한다. '동성애자들이 싫어도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없이 두들겨 패는 건 아니지 않냐'며 만류하는 시선도 존재했으나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발효되고부터는 이 정도의 동정조차도 동성애 지지에 해당되는 불법행위이다. 다만 네오나치같은 과격 단체들에 대한 단속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동성애자들이 길에서 폭행당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LGBT 단체 대표가 입건된 뒤 그 단체가 미국 정부의 사주를 받아 분탕질을 꾀했다는 미 대사관 명의 조작 문서를 퍼뜨린 언론에 대한 미 대사관의 조롱[104]이 이어지며 나라망신 작작 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잡혀온 LGBT 운동가들을 취조하던 형사들이 나긋나긋하게 나와서, 험악한 조사를 각오하던 인권운동가들이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고.[105]
유로마이단과 크림 사태, 돈바스 전쟁 등으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각곡선을 타면서 호모포비아에 대한 비판을 서방의 선동/서방의 퇴폐문화 내지 반국가행위라고 여기는 인식이 늘고 있다. 보통 호모포비아 논쟁은 인권운동과 종교, 사회적 문제에 국한되곤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반동성애법에 대해 안 그래도 러시아를 적대하던 서방의 건수 잡은 지나친 참견에 대한 반동으로 성 소수자 박해에 동조하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된다.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식적인 조의 표명과는 별개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추모집회를 하던 이들이 호모들은 꺼지라는 욕설을 듣고 경찰에게 잡혀간 사건도 있었다.
2017년에는 러시아령 체첸 공화국에서 게이로 '추정되는' 남성을 대규모로 연행, 납치하고 폭행하거나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기사). 이에 대해 노바야 가제타 보도에 따르면 3명이 사망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 성소수자 운동가들은 그 기사를 쓴 기자조차도 동성애 혐오에 물든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실상은 훨씬 참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체첸 정부가 반응이라고 내놓은 논평이 "존재하지도 않는 자들을 어떻게 탄압하는가?"일 정도. 유럽 인권운동가들은 체첸의 성소수자들에게 하루빨리 도망치라고 호소하고 있으나, 성소수자를 작정하고 짓밟고 있는 체첸 공화국에서 체첸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더 희생될지는 추산조차 힘들다.
여튼 이러한 이유로 가상매체들 중 심즈 시리즈처럼 동성애 묘사가 가능한 매체들은 법에 의해 싸그리 검열당해 일명 '19금 딱지'를 모조리 달고 나오고 있으며, 오버워치 역시 오버워치 단편 만화 "성찰"이 러시아에서는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문과 함께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 이걸 공개할 경우 오버워치 역시 기존 15금에서 바로 19금 딱지로 격상된 등급을 붙여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블리자드가 취한 조치. 빌리 헤링턴의 사망 소식에도 조의드립으로 고인드립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2018년 11월 27일(현지시간), 유럽인권재판소는 러시아의 성소수자 집회 탄압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선고하였다. 이에 러시아측은 반발했다.#
2020년 헌법 개헌문에는 동성결혼 불가를 명시했다.#

10. 문화


소련 붕괴 이전인 1980년대 말 소련 정부가 미국 문화에 대해 개방조치를 취한 이후 패스트푸드, 청바지, 팝 등의 미국 문화는 1년도 안 되어 소련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 전에 서방 문화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건 아니고, 펩시 콜라가 인기를 끌고[106] 일부 예술영화도 상영되는등 암암리에 들어올 건 다 들어왔다.
실제로 1960년대 소련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바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로큰롤이나 서구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이 존재했다. 많은 음반들이 밀수를 통해 소련 국내로 흘러들어왔고, 197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씬도 있었으며, 1980년에는 록 페스티벌도 열렸다! 당장 메드베데프 총리도 소련 시절부터 락 음악 덕질을 시작한 인물 중 하나. 게다가 많은 영화나 음반이 불법 복제품으로 유통되었다. 이는 유럽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동양의 공산국가들이나 알바니아 같은 일부 특이케이스들과 달리 정치나 사상면에서는 억압적이라도 개인들의 사생활에는 어느 정도 여유있는 태도(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시각)로 일관한 것에서 기인한다.
지금도 문화산업에서 동성애 등 일부 소재는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중국 같이 직접적으로 검열을 하는 나라보다는 훨씬 창작의 자유에 관대한 편이다. 포르노 산업도 합법은 아니지만 활성화되어서 여교사가 포르노 배우를 부업으로 삼았다가 해고되는 웃지못할 일까지 일어날 정도. 물론 사회적인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자료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ONI처럼 정치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인터넷 검열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덜한 나라로 평가하기도 한다. TV방송도 수위는 한국보다 높은 편인데 금요일과 토요일 심야시간대에 성인영화를 대놓고 틀어줄 정도였다.[107]
대표적인(범용적인) 인스턴트 메신저로는 브콘탁테가 있다.
전설로 전해내려오는 것 중에는 브로스노 호수의 용이 있다.

10.1. 유럽과 아시아 사이


러시아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슬라브 문화가 바탕에 있다. 그러나 동로마 문화와 몽골 지배로 흘러들어온 몽골 문화러시아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몽골의 지배(킵차크 칸국)는 서구화를 지향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했으나, 러시아 역사에서 전반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에 표트르 대제의 급격한 서구화에 맞물려 러시아는 여러 문화가 혼합된 매우 특수한 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러시아의 모습은 바로 이런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러시아를 가보면 서구적이라고 느끼지만, 서양인들은 러시아에 오면 아시아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 중에서는 러시아를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고려한 것일수도 있으나 러시아를 비하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서유럽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역사적 과정을 밟아 왔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아시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 때 러시아인을 타타르족이라고 불렀으며, 제2차 세계 대전나치 독일도 소련을 몽골이라고 불렀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 만들어진 중, 근세 러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에서는 러시아로 결혼해서 살러가는 유럽의 왕녀나 귀족 여성이 "동토의 아시아 국가로 가게 됐다."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이반 뇌제가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에게 청혼을 했는데, 시녀가 저런 말을 하며 뇌제의 청혼을 거절했다. 러시아인들도 서유럽인들의 이런 인식을 모르는 게 아닌지 러시아에서 제작한 사극에서도 러시아 제국 황태자에게 시집가는 독일인 여주인공이 아시아 국가 운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유럽'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지리적 요소보다는 문화적 요소에서 분류되는 측면이 강했다. 유럽 문화의 근원인 로마 제국의 후예 이탈리아와 프랑크 제국 해체 이후 가장 먼저 유럽사에 등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이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스위스와 베네룩스 3국[108], 십자군 이후 유럽 국가들의 패권 경쟁에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따로 놀긴 했지만 적어도 8세기경 바이킹 등장 이후엔 유럽에 합류한 노르만계 북유럽 4국[109]의 경우 시작부터 유럽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지만 이들 외 다른 민족들이나 국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령 유럽에서는 '유럽' 문화와 이질적이거나, 혹은 낙후된 국가들을 아시아라고 분류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인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황인종으로 분류되었으며 헝가리는 19세기까지 아시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브람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의 묘사 등의 사료를 보면 발칸 반도와 그 인근 국가들 역시 19세기까지 유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10] 터키카프카스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덤으로 스페인은 나폴레옹에게서 "유럽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에 더 가깝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111]
유럽 내 민족과 유럽 국가들이 유럽의 범위에 포함되기 시작한(?) 순서와 미국에 이민을 가서 미국 사회의 주류에 합류한 순서는 매우 비슷하다. 미국은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들이 발견하고 개척한[112] 아메리카 대륙인 만큼 미국에 가장 먼저 이민 온 민족은 유럽계이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사실이고 흥미로운 건 유럽계 이민자들도 미국에 정착하여 주류 민족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먼저 정착하고 미국을 건국한 건 누가 뭐래도 영국계이다. 여기까지도 당연하지만 중요한건 누가 영국계 다음인가? 라는 질문인데, 영국계 다음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주류가 된 건 독일계이고, 유럽의 범 게르만계인 네덜란드계와 스칸디나비아계가 그 뒤를 이었다. 영국계와 게르만계를 제외하고 미국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이민자는 북미 개척 당시 영국과 함께 북아메리카를 양분했던 프랑스계이고 이후 유럽계 중에선 비교적 미국 이민이 늦은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가 미국에 이민을 온다. 지금이야 미국 이민 시기도 늦고 중남미의 정치 경제 상황과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이민이 현재진행형인 히스패닉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갱 등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미국 이민이 늦은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가 미국 사회의 하류층을 구성하며 마피아에 종사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유럽계 이민자가 아님에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왔으며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는 달리 일찍 주류 사회에 합류했다. 이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와 흑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합류하고 러시아계와 동유럽계의 이민이 시작되면서 유럽계 이민자들의 미국 사회 합류 작업은 서서히 마무리된다. 유럽계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될 무렵 인도계와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이민을 선택하여 앞선 유럽계 이민자들의 노선을 밟고 현재는 히스패닉계와 아랍계가 이민 및 동화 노선을 밟고 있다.
물론 이건 세부적인 이야기이며 세계적 인식으로 따지자면 러시아의 수도나 중심지가 유럽 땅에 있으며 인종